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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조선어의 기준 - 평양문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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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3-07-22 12:3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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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의 기준 - 평양문화어 (2)

 

편집국

 

[조선의 오늘]이 김일성종합대학 안 성의 논문 ‘조선어의 기준-평양문화어’를 연재하고 있다.

  

2편에서 필자는 고구려에서 쓰던 말은 조선어의 발전에서 중심적역할을 하였고, “고구려가 427년에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면서부터 평양은 또다시 고구려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의 중심지로 되였으며 이로 하여 고구려말은 평양을 중심지로 하여 발전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조선어의 기준 - 평양문화어 ​(2)​​

 

평양문화어가 조선어의 전형, 기준으로 되는것은 다음으로 그것이 반만년의 오랜 력사적기간 자기의 독자적계통과 단일성을 꿋꿋이 이어온 우리 민족어발전의 가장 높은 단계를 이루는 자랑스러운 언어이기때문이다.

평양문화어는 오랜 력사를 가지고 순결성을 고수해온 우리 민족과 더불어 자기의 독자성과 단일성을 꿋꿋이 이어온 조선어의 발전에서 가장 높은 단계를 이루는 자랑스러운 언어이다.

조선어는 반만년의 력사를 가지고있는 우리 민족의 우수한 언어이다.

우리 민족은 고대시기에 정연한 국가기구를 가졌던 슬기로운 민족이며 하나의 말과 글자를 가지고 하나의 문화를 창조하면서 살아온 단일민족이다.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은 B.C. 30세기초에 오늘의 평양에 수도를 정하고 조선(고조선)이라는 첫 고대국가를 세웠다.

평양을 수도로 하는 첫 고대국가가 세워지고 우리 민족은 하나의 주권밑에서 생활할수 있게 되였다.

이 혈연적 및 문화적공통성을 가지고 단일한 언어생활의 공통성을 유지하고있던 겨레들의 언어는 단군조선의 성립과 함께 나라의 말, 국가적언어의 새로운 단계에 올라서게 되였으며 이것은 우리 민족어의 형성발전의 시초로 되였다.

이때부터 우리 인민은 벌써 언어와 피줄을 같이하는 민족으로서의 집단을 이루었으며 련련히 이어진 민족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고유하고 우수한 민족성을 고수하며 강화발전시켜왔다.

옛 문헌들과 고조선시기의 유적유물들에 반영된 글자를 놓고보아도 단군조선시기 조선사람들이 뜻글자인 중국의 한자와도 구별되고 몽골글자나 인디아의 싼스크리트글자와도 구별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민족의 시조글자를 창제하여 써왔으며 이것은 우리 민족의 언어적통일을 보장하고 민족어를 보다 규범적인 언어로 발전시켜나가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여왔다는것을 말해준다.

조선어는 처음부터 평양말을 중심으로 하여 발전하여왔다.

평양은 조선민족의 발상지이다.

조선에서는 문명의 력사도 평양에서부터 시작되였으며 하나의 민족을 이루는 겨레의 동질성도 평양을 중심으로 하여 이루어졌다.

일찌기 인류발상지의 하나이며 산수가 수려하고 살기 좋은 평양지방에 단군이 국가를 세우고 도읍을 정함으로써 평양말을 중심으로 하여 민족어를 발전시켜나갈수 있는 튼튼한 토대가 마련되였다.

평양말은 우리 민족의 언어적공통성을 위한 언어적중심으로 되였으며 지역적방언들사이의 언어적련계를 지어주고 민족성원들의 언어적공통성을 공고발전시키는데서 언제나 기준적인 작용을 하였다.

그것은 단군조선의 성립, 평양도읍지의 설정과 관련한 《왕검, 아사달, 궁흘산, 금미달》 등의 고유명사들이 후기 조선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의 넓은 지역에 분포되여있으며 아직까지 조선어의 기초어휘로 확고히 자리잡고 내려오는것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고구려시기에도 평양말은 조선어의 발전에서 언제나 중심적역할을 놀았다.

우리 나라 력사에서 세나라시기 제일먼저 봉건국가로 성립된것은 고구려였다. 고구려는 정치와 경제, 군사,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가장 앞서 발전하였으며 백제와 신라에 큰 영향을 주었다.

세나라시기 력사발전에서 고구려는 늘 선도자적, 중심적인 역할을 하였다. 지난 시기 우리 나라가 가장 강했던 시기는 고구려때였다. 이에 따라 고구려에서 쓰던 말은 조선어의 발전에서 중심적역할을 하였다는것은 의심할바 없다.

고구려가 427년에 수도를 평양으로 옮기면서부터 평양은 또다시 고구려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의 중심지로 되였으며 이로 하여 고구려말은 평양을 중심지로 하여 발전하게 되였다.

새 수도에 의거하여 정비개편된 봉건통치지반의 전반적강화, 봉건적중앙집권제의 확립강화는 비록 한나라안에서의 봉건적분산성과 페쇄성으로 인한 언어발전에서의 고립화, 분화의 제한성속에서도 평양지역의 말을 기초로 하여 나라의 공통어가 형성발전되도록 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고려가 성립된 다음에도 조선어는 평양말의 언어적요소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발전하였으며 평양말의 지위는 그후에도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이 조선어의 발전에서 중심적역할을 수행하였다.

력사적사실은 평양말이 고조선과 고구려시기는 물론 그후에도 조선말의 형성발전에서 중심적역할을 하였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해방후 조선어는 혁명의 수도 평양을 중심지로 한 평양말을 본보기로 하여 새로운 높은 발전단계에 들어서게 되였다.

수령의 령도가 실현되고 당과 국가의 정책이 작성되여 정치, 경제, 문화의 발전방향과 로선이 세워지는 혁명의 수도 평양이 민족어건설의 사회정치적거점으로, 지역적중심지로 됨으로써 비로소 언어문제를 근로인민대중의 요구와 리익에 맞게 주체적으로 발전시켜나갈수 있는 참다운 길이 열려지게 되였다.

이때부터 어휘정리사업과 언어규범화사업이 힘있게 벌어졌으며 이 과정에 조선어의 기준인 평양문화어가 건설되였다.

평양문화어는 당과 수령의 현명한 령도와 사회주의국가의 통일적인 관심과 지도속에서 모든 사회성원들의 공동의 노력으로 가꾸어지고 찬란히 개화발전하는 진정한 인민의 언어, 우리 민족어의 표준적인 본보기언어로 보다 공고발전되고있다.

하기에 평양은 사회주의민족어의 찬란한 개화발전을 위한 중심지로 그 이름을 높이 떨치고있다.

이처럼 평양문화어는 고조선시기에 벌써 언어적공통성을 이룩하고 수천년의 력사를 따라 자기 발전의 길을 독특하게 걸어온 우리 민족어의 발전력사에서 가장 높은 단계를 이루는 언어이다. (계속)

김일성종합대학 안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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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어의 기준 - 평양문화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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