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 백두의 혁명전통은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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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3-05-24 09:20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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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의 혁명전통은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
편집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및 내각기관지 《민주조선》은 23일 백두의 혁명전통은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라는 주제로 무산지구전투를 소개하였다.
무산지구전투는 조선말대사전에
“[명]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주체28(1939)년 5월 22일과 23일에 무산지구에서 조직지휘하신 전투. 주력부대는
신개척과 대홍단벌 등지에서 적을 소멸하고 수많은 군수물자를 로획하였다. 전투의 승리는 일제침략자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주었으며 100여일의 고난의 행군을 승리적으로 총화하고 국내인민들을 크게 고무하였다.”고 소개된다.
글은 현명한 영도밑에 조직전개된 항일혁명투쟁의 자랑찬 역사에는 간악한 원쑤 일제에게
무리죽음을 안기고 민족의 기개를 높이 떨친 격전들이 수없이 새겨져있는데 무산지구전투도 그러한 전투 중의 하나라고 소개한다.
항일혁명투쟁시기에 창조하신 빛나는 혁명전통은 우리 당과 혁명의 억센 뿌리이며 그
대를 이어주는 피줄기라는 김정은위원장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북에서 혁명전통에 대해 강조하는 것은 조선로동당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항일무장투쟁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무산지구전투를 소개한 기사 전문과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동영상을 소개한다.
백두의 혁명전통은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
무산지구전투
간삼봉전투와 동녕현성전투, 무송현성전투, 홍기하전투…
《
1930년대말 우리 혁명의 전진에 겁을 먹은 일제는 《혜산사건》을 조작하고 조선인민에 대한 파쑈적폭압에 광분하면서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공세를 그 어느때보다도 강화하였다. 적들은 조선인민혁명군을 《완전소멸》했다는 허위선전까지 벌리고있었다. 적들의 기만선전에 속아넘어간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혁명승리에 대한 신심을 잃고있었다.
항일혁명을 앙양시킬수 있는 최상의 방도는 조선인민혁명군의 대부대가 국내에 들어가 적들을 쳐갈기고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는것이였다.
무산지구에서 원쑤격멸의 총성을 높이 울려 온 나라 인민들을 항일혁명투쟁에로 더욱 힘있게 불러일으킬것을 결심하신
이날 청봉에서 하루밤 숙영하고 다음날 건창에서 숙영한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베개봉에 이르신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조선인민혁명군 대부대가 적들이 닦아놓은 도로로 대낮에 붉은기를 휘날리며 강행한 일행천리행군은 일제에게 몇개 사단을 소멸한것보다도 더 큰 정치적, 심리적타격을 안긴 쾌거였다.
적들은 뒤늦게야 이것을 알고 《미증유의 괴사》라고 비명을 질렀다.
무산지구 인민들의 앙양된 혁명적열의를 더욱 북돋아주기 위하여 적들을 최종적으로 대홍단벌에서 소멸할것을 결심하신
그날 아침 대홍단벌에 들어선 7련대뒤에서 철갑모들이 번들거렸다. 신개척에서 얻어맞은 적들이 7련대의 뒤에 바싹 접근하여 기여들고있었던것이다.
멸적의 총성이 대홍단벌을 뒤흔들었다.
대홍단벌은 삽시에 원쑤격멸의 총성이 메아리치는 승리의 격전장으로 변하였다. 겨우 목숨을 건진 패잔병들은 극도로 당황하여 저들의 증원부대와 맞불질하는 추태까지 부리였다.
력사적인 무산지구전투를 계기로 조선혁명은 더욱 앙양되였고 우리 인민은
그때로부터 수십년세월이 흘렀지만 무산지구에 울려퍼진 승리의 총성은 년대와 년대를 이어 끝없이 메아리치고있다.
우리 혁명의 년대마다에 이룩된 자랑찬 승리들은
혁명의 환경은 변하고 세대는 바뀌였지만
우리 인민은
본사기자 김만송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 -대홍단혁명전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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