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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 | 불의에 맞섰던 제주도민 항쟁정신은 되살아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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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3-05-23 06:1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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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4.3 평화기행] “불의에 맞섰던 제주도민 항쟁정신은 되살아나야 한다” 

"(제주4.3사건) 결국 역사는 항쟁으로, 혁명으로 기록될 것"


2014년, 정부는 4월 3일을 제주 ‘4·3희생자 추념일’로 지정했다. 정부는 “제주4·3사건 희생자를 위령하고 유족을 위로하며, 화해와 상생의 국민 대통합을 도모하기 위해 이뤄진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올해, 국민의힘 주요 지도부 인사들과 함께 불참했다. 추념사를 대독시켰으나 그 내용마저도 비판받고 있다. 되려 국민의힘에서는 ‘격 낮은 기념일’ ‘김일성 지령설’과 같은 망언이 나오고, 보수단체들은 ‘빨갱이 폭도’ 등을 주장하며 역사적 사실을 폄훼하고 왜곡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매년 ‘제주4·3항쟁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한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조합원들은 매년 이 행사에 참여하면서, 제주4·3항쟁 당시 학살과 참상을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 기행을 하고 있다. 필자는 기행에 참여한 조합원(가족)들의 소감문을 입수해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세종충남지부가 2023년 제주4.3기행을 진행했다. @화섬식품노조

김명래 씨는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세종충남지부 소속으로 4월 2일부터 3일까지 1박 2일 일정으로 제주4·3기행을 다녀왔다.

김 씨는 초등학교 때 “반공영화를 시청하고 등나무꽃 아래 공산당이 싫다고 외치는 반공 웅변대회를 겪으며 커온 40대”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그는 “20살이 넘어서야 광주사태가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쳐 광주민주항쟁으로 인식되었고, 부마사태에서 부마항쟁으로 4.19의거가 4·19혁명으로 불렸다”며 “모두 처음에는 빨갱이들이 주도했다고 유포되었으나 결국 역사는 항쟁으로, 혁명으로 기록될 것”이라 했다. 이어 “아직도 잘 모르는 ‘제주 4.3사건’으로 알려진 이 엄청난 죽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라고 물었다.

김 씨는 해방 이후 제주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민중권력의 확대가 미군정 입장에서 거추장스러운 존재였으며, 도덕적 기반이 없어 미군정에 충성을 다하는 이승만과 친일파들에게는 위협이자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좌우 가릴 것 없이 분단만은 막아야 했지만, 이승만과 친일파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보장받기 위해 분단을 기꺼이 선택했으며, 미군정은 점령군으로서 한반도의 분단을 안타까워할 이유는 없었다”고 덧붙였다.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세종충남지부가 2023년 제주4.3기행을 진행했다. @화섬식품노조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세종충남지부가 2023년 제주4.3기행을 진행했다. @화섬식품노조

 

김 씨는 경찰의 발포로 주민 6명이 사망한 3·1사건(1947년)과 학살터인 정방폭포를 설명하기도 했다. 어릴 적 정방폭포에서 부모를 잃고, 연좌제로 낙인찍혀 힘들게 살아야 했던 오순명 씨를 소개하면서 “전 인류가 이 슬픈 제주도를 감싸 안아야 한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는 “제국의 야욕은 현재에도 계속되고, 전쟁기지로 쓰일 제주는 개발이라는 환상으로 공동체는 이미 파괴되어 왔다. 살육을 즐기던 서북청년단이 2023년에 제주도에 왔다. 해방 후 제주도에 가해진 폭압은 현재의 국제정세와 맞물려 되살아나려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뒤이어 “이를 떨쳐낼 거대한 슬픔이 있어 우리는 평화를 외칠 수 있다”며 “모든 죽음을 불러내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 세계 민중들에게 알려 마음속에 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고조되는 전쟁위험을 낮추고 탐욕에 망가지는 지구를 살리고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불의에 맞섰던 제주도민 항쟁정신은 되살아나야 한다”며 “항쟁정신은 살아있다”는 말로 기행문을 마무리 지었다.

아래는 김명래 씨의 기행문 전문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 교실에 스크린을 치고 무시무시한 살육이 벌어지는 반공영화를 시청하고 등나무꽃 아래 공산당이 싫다고 외치는 반공 웅변대회를 겪으며 커온 40대이다. 당시 초등학생들이 영화를 보고 난 후 공산당, 빨갱이가 싫기에 앞서 공포감을 느끼게 되었다. 공포는 합리적 사고를 경직시키고 유포되는 정보들에 대해 제대로 된 판단을 어렵게 해왔다. 그래서 친일 권력과 군부독재로 이어지는 정권들을 그대로 수용하게 되었다. 그 공포는 1945년 해방 이후 제주도에서 생산이 시작되었다.

20살이 넘어서야 광주사태가 광주민주화운동을 거쳐 광주민주항쟁으로 인식되었고, 부마사태에서 부마항쟁으로 4.19의거가 4·19혁명으로 불렸다. 모두 처음에는 빨갱이들이 주도했다고 유포되었으나 결국 역사는 항쟁으로, 혁명으로 기록될 것이다. 그렇다면 아직도 잘 모르는 ‘제주 4.3사건’으로 알려진 이 엄청난 죽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제주로 가자, 아니 1945년 8월 15일 가려진 구름을 뚫고 제주로 내려앉아 보자. 푸르른 해변, 해안 절경, 노란 유채꽃, 눈부신 제주의 아름다움에 옹졸했던 마음은 태평양으로 뻗어나간 바다처럼 넓어지고 육중하게 솟은 한라산처럼 묵직해진다. 압제에서 해방된 제주는 조용했지만, 입춘이 지나 낙엽 밑에 수많은 생명체가 움트듯 생명의 기운은 봄날 아지랑이가 되어 그 기운을 내고 내었다. 일제 권력이 없어지고 제주 민중들은 스스로 통치, 즉 자치활동을 벌이며 학교도 세우고 행정을 펼치며 민중이 권력을 쟁취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민주성은 날로 고양되었다.

급속한 민중권력의 확대는, 미군정 입장에서는 세계 패권을 쥐려는 싸움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거추장스러운 존재였으며, 도덕적 기반이 없어 미군정에 충성을 다하는 이승만과 친일파들에게는 위협이자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1947년 제주 총파업 이후에는 미군들 입에서는 ‘RED ISLAND’와 이승만 입에서는 제주도민을 ‘호열자’라는 혐오표현(hate speech)이 유포되었다. 탄압과 대량 학살의 전조이자 준비작업이었다.

해방을 맞은 민중들은 분단이란 것을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좌우 가릴 것 없이 분단만은 막아야 했지만, 이승만과 친일파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보장받기 위해 분단을 기꺼이 선택했으며 미군정은 점령군으로서 한반도의 분단을 안타까워할 이유는 없었다.

해방 후 2번째 맞은 3.1운동 기념식, 자치와 독립국가의 열망은 뜨거웠을 것이며 이미 시작된 이승만과 친일세력과의 갈등, 미군정의 실정에 대한 반감까지 더해지며 모여진 제주도민의 에너지는 거대했고, 친일경찰의 말발굽에 치인 어린이, 이에 대해 조치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도민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발포해서 6명이 죽었다. 분노가 제주도를 덮었고 9일 후 제주도민 95%가 참여하는 총파업으로 제주공동체의 적극적인 항쟁 의사가 표시되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민중권력은 이제 적극적 진압의 대상이 되어 대대적인 검거와 구속이 있었고 1948년 초까지 3명이 고문을 받다 죽기에 이른다.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은 박종철 씨의 고문치사사건이었는데 제주도 민중들은 고문치사에 대해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분노의 적막감이 흘렀을 것이다. 1948년 4월 3일 무장투쟁이 시작되었다. 무장투쟁대의 살인과 폭력을 정당화할 것인가? 정당이냐 부당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폭력에 상응하는 폭력은 마치 대기에 축적된 전기가 벼락으로 떨어지듯 자연현상에 가깝다. 제주도에 겹겹이 쌓인 분노는 폭력적 결과를 낳았다.

나는 답답한 마음에 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시원스러운 정방폭포로 갔다. 하지만 이곳 일대는 진압대들의 거점이었다. 창고 같은 곳에는 어떤 재판도 없이 수감된 이들로 빼곡했다. 이들은 나오라는 명령에 줄줄이 딸려 나가 소나무가 바다 쪽으로 머리를 풀어놓은 것 같다는 소남머리 절벽으로 가서 총살당하고 있었다. 군인들은 시체들이 저 바다로 모두 떠내려가서 흔적 없이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바다 절벽으로 갔을 것이다.

한 어린아이가 울고 있었다. 이 아이를 따라가고 싶다. 오순명- 아버지, 어머니를 한순간에 모두 잃고, 남은 할머니와 함께 커간다. 이 아이는 극심한 가난에 폭도자식이라 낙인찍혀 언제 자신도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고 아름다운 제주를 느끼지 못하며 살아가다 몇 번의 자살 시도를 한다. 방황하던 그가 삶의 희망을 품고 선생님이 되기 위해 교대에 진학했지만, 연좌제에 걸려 교사 임용도 못 되고 또 한 번 좌절하였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선생님이 되어 부모의 죽음조차 숨긴 채 교단에 서다 정년퇴임 후에나 부모의 죽음을 알리게 되었다. 서귀포 최대 학살터인 정방폭포 인근에 위령비를 세우기 위해 정부와 위령비를 반대하는 마을 주민과 싸워가며 결국 이뤄냈다. 1945년 제주로 간 나는 그 아이의 인생을 따라가다 2023년까지 오게 되었다.

이제 팔순을 넘긴 이 아이의 삶은 제주 수만 명의 죽음이 낳은 자식 중 하나일 뿐이지만 거대한 비극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절벽 위에 바다를 바라보고 세상을 원망하며 절규하다 뛰어내리는 그의 모습이 수많은 죽음 이후 남겨진 삶 중의 하나라는 것을 느낄 때 제주의 슬픔은 우리들만이 떠맡기는 버겁고 전 인류가 이 슬픈 제주도를 감싸 안아야 한다고 느꼈다.

탐나는 제주, 아름다운 꽃은 꺾이기 쉽고 아름다운 공동체는 짓밟혀지기 쉽다. 제국의 야욕은 현재에도 계속되고, 전쟁기지로 쓰일 제주는 개발이라는 환상으로 공동체는 이미 파괴되어 왔다. 살육을 즐기던 서북청년단이 2023년에 제주도에 왔다. 해방 후 제주도에 가해진 폭압은 현재의 국제정세와 맞물려 되살아나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떨쳐낼 거대한 슬픔이 있어 우리는 평화를 외칠 수 있다. 우리는 모든 죽음을 불러내어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 세계 민중들에게 알려 마음속에 품게 해야 한다. 그래야 고조되는 전쟁위험을 낮추고 탐욕에 망가지는 지구를 살리고 공동체를 유지할 수 있다. 불의에 맞섰던 제주도민 항쟁정신은 되살아나야 한다. 항쟁정신은 살아있다.


출처: 노동과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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