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 전쟁기간 농민들이 벌인 대중적 애국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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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3-05-17 17:03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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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간 농민들이 벌인 대중적 애국운동
편집국
18일자 [로동신문]은 1950년대 전쟁의 시련을 겪는 조국을 위하여 농민들 속에서 벌어진 대중적인 애국운동, 집단적인 증산투쟁에 대하여 소개하였다. 그 중에는 남편들과 자식들을 전선으로 떠나보낸 농촌녀성들이 벌인 <녀성보잡이운동>, 파괴된 농경지의 복구를 비롯하여 논밭김매기, 자급비료생산 등 모든 영농사업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 <전선청년돌격대운동>, 해방후 새 조국건설에 이바지하려는 마음을 담아 쌀을 국가에 자원적으로 바친 <애국미헌납운동> 등이 있었다고 하였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1952년도의 곡물 총수확고는 1951년도에 비하여 113%로 장성되였는바 이는 전년에 비하여 34만t의 증산으로 되며 우리 나라에서 최고수확년도이던 1948년에 비하여서는 13만t의 증산으로 전전 최고생산수준을 훨씬 릉가하였습니다.…》
이것은 주체42(1953)년 1월
그처럼 가렬처절했던 전시환경에서 그렇듯 기적적인 성과를 이룩할수 있은 근본비결의 하나는 바로 후방의 농민들이 서로의 마음과 힘을 합치고합쳐 시련을 겪는 조국의 부름에 대중적인 애국운동, 집단적인 증산투쟁으로 대답해나섰기때문이다.
녀성보잡이운동
조국해방전쟁시기 남편들과 자식들을 전선으로 떠나보낸 농촌녀성들이 농업전선의 기본로력이 되여 논밭갈이를 자진하여 맡아 주체40(1951)년부터 벌린 운동이다.
이 운동의 선구자는 당시 평안남도 개천군의 10대의 외태머리처녀 김락희녀성이였다.그의 모범은 삽시에 온 나라 농촌에 보급되였다.
녀성보잡이운동은 1951년에 평안북도에서는 3 650여명, 평안남도에서는 2 690여명, 1952년에는 황해도(당시)에서만도 5 000여명의 농촌녀성들이 망라되여 광범히 전개되였다.연약하다고만 생각해오던 녀성들이 뭉치고뭉쳐 힘차게 벌린 이 운동은 전시농업생산임무를 훌륭히 수행하기 위한 우리 나라 농촌녀성들의 강의한 혁명적기질의 발현이였다.
전선청년돌격대운동
조국해방전쟁시기 전국의 농촌들에서 힘있게 전개된 전선청년돌격대운동은 전시로동계급속에서 활발히 벌어진 전선돌격대운동에 호응하여 발단된 운동이다.
각지 농촌들에서 광범히 조직된 전선청년돌격대는 파괴된 농경지의 복구를 비롯하여 논밭김매기, 자급비료생산 등 모든 영농사업에서 핵심적역할을 수행하였으며 로력의 부족을 타개하면서 농산물증산투쟁을 힘있게 벌리였다.당시 강원도의 농촌들에서 2 230여개의 전선청년돌격대가 무어진것을 비롯하여 전국각지의 농촌들에서 광범히 전개된 이 운동은 전쟁의 승리를 앞당기는데 이바지하기 위한 농민들의 대중적애국운동이였다.
애국미헌납운동
애국미헌납운동의 선구자는 재령군의 김제원농민이다.
이 운동은 조국해방전쟁시기에도 활발히 전개되였는데 전쟁이 개시된지 3개월이 지난 주체39(1950)년 9월 어느한 도의 농민들이 헌납한 애국미만도 무려 4만여석에 달하였다고 한다.
이밖에도 조국해방전쟁시기 전국의 농촌들에서 수많은 대중운동들이 활발히 전개됨으로써 후방을 공고히 하고 전승을 앞당기는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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