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 한 로목사가 받아안은 사랑
페이지 정보
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1-11-22 15:10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한 로목사가 받아안은 사랑
한없는 민족애, 동포애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뜨거운 사랑을 전하는 하많은 이야기들중에는 한 로목사가 받아안은 가슴뜨거운 사연을 전하는 이야기도 있다.
주체70(1981)년 7월 3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외에서 조국을 방문한 한 로목사를 만나주시였다.
그가 바로 미국에서 《조국통일촉진회》 회장, 《한국인교회련합회》
고문,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해외한국인련합》의장단 성원으로 사업하고있던 전 남조선숭전대학교 총장
김성락선생이였다.
그로 말하면 평양태생으로서 평양숭실중학교를 졸업하고 교회목사를 하다가 1936년 미국에 건너가 종교활동을 벌려 미국종교계에 일정하게 영향력도 있고 미국정객들속에서도 잘 알려진 사람이였다. 그는 또한 당시 미국당국으로부터 년봉금을 타는 유일한 조선사람으로서
오래동안 미국에서 종교활동을 하는 과정에 반공의식에 물젖을대로 물젖어있었다.
그는 1980년말에 평양에서 보낸 조국의 정당, 사회단체들의 명의로 된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방도를 담은 편지를 받고 그것을 상세히
알아보는 한편 인생말년에 고국산천을 찾아보려는 개인적소망도 있고 해서 평양으로 찾아왔었다.
해방전에 평양에서 목사로 있다가 미국으로 건너간 그가 평양을 못 잊어 찾아왔다는것을 아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친히 그를 만나주시고 늦게나마 통일을 위한 길을 걸으려는 그의 민족적량심을 귀중히 여기시여 애국지사라고
불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로목사와의 담화석상에서 우리 인민에게 있어서 절박한 문제는 조국을 통일하는것이라고 하시면서 조국통일은
반드시 조선인민자체의 힘으로 실현하여야 한다고, 조선인민이 자체의 힘으로 조국을 통일하고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자면 사대주의를 철저히 반대하고 민족적자주성을 확고히 견지하여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이날 그를 위하여 친히 오찬을 마련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먼저 선생이 식전기도를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고 이르시였다.
그이의 교시에 로목사는 무척 당황해하며 어쩔바를
몰라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환한 미소를 지으시고 평생을 지켜온 신자의 도리를 어겨서야 되겠는가고,
어서 기도를 드리라고 재촉하시였다.
사실 그는 그 자리에서만은 신자의 도리를 어기는 한이 있더라도 《하느님》께 기도드리는것을 그만두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의 넓으신 도량과 포옹력에 감복되여 절절한 어조로 우리 민족의 절세의 애국자이시고 전설적영웅이시며 만민의 위대한 어버이이신 김일성주석님의 건강을 축원하며 조국의
자주적통일과 나라의 완전독립을 기원한다는 뜻깊은 기도를 드리였다.
이날 그는 이제야 비로소 자신은 인생의 새봄을 맞이하였다고 격동된 심정을 토로하였다.
그는 평양을 떠나기에 앞서 처음 도착하여 당부한것과는 달리 비행장에서 스스로 기자회견을 요청하고 기도를
올릴 때의 소감을 이렇게 피력하였다.
《저는 주석님의 말씀을
어길수 없어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충심으로 김일성주석님을 위하여 기도를 올렸습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한 마음을 간직한 사람이라면 정견과
신앙이 어떠하든 사랑의 넓은 품에 안아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은 진정 온 겨레가 우러러받드는 절세의 애국자, 민족의 어버이이시였다.
본사기자
[출처:우리민족끼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