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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3. 1인민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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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1-03-01 15:25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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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인민봉기​

 

3. 1인민봉기는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주체8(1919)년 3월 1일에 폭발한 우리 인민의 전민족적반일봉기이다.

 

 

 

인민들의 거세찬 반일투쟁을 말살하며 조선강점을 영구화할 목적으로 실시된 일제의 무단통치는 조선인민의 쌓이고쌓인 민족적울분과 사무친 원한을 폭발시켰다.

 

그것은 마침내 1919년 3월 1일에 전민족적인 반일항쟁으로 폭발하였다.

 

강도 일제에게 빼앗긴 조국을 두고 가슴을 치며 통탄하던 2천만 조선민족은 남녀로소 할것없이 《일본인과 일본군대는 물러가라!》, 《조선독립 만세!》의 구호를 소리높이 웨치면서 일제강점자들을 반대하는 항쟁의 거리에 떨쳐나섰다. 력사적인 3. 1인민봉기는 평양에서의 대중적인 독립만세시위투쟁을 봉화로 하여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평양에서의 대중적인 반일독립만세시위투쟁은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께서 일찌기 혁명의 씨앗을 뿌리시고 반일독립운동의 믿음직한 거점의 하나로 꾸려놓으신 평양숭실학교의 애국적청년학생들이 주동이 되여 일어났다.

 

3월 1일 평양에서는 낮 12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퍼지자 그것을 신호로 하여 청년학생들을 비롯한 수천명의 각계각층 군중이 장대재에 있던 숭덕녀학교 운동장으로 물밀듯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정각 오후 1시 애국의 열정으로 불타는 수천명의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한 청년학생대표가 단우에 뛰여올라 《독립선언서》를 랑독하고 뒤이어 조선은 독립국가라는것을 엄숙히 선포하였다. 장대재에서는 일시에 《조선독립 만세!》의 함성이 터져올랐다. 이 웨침소리는 평양의 온 거리와 주변농촌에로 메아리쳐갔다. 만경대와 칠골인민들도 대렬을 지어 평양으로 밀려갔다. 떠날 때 수백명에 불과했던 시위대렬이 나중에는 수천명으로 불어났다. 군중은 북과 징을 울리고 《조선독립 만세!》를 웨치면서 보통문쪽으로 밀려갔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때 어리신 나이에도 불구하시고 시위대렬과 함께 독립만세를 부르시면서 보통문앞에까지 가시였다.

 

평양시민들의 시위대렬은 삽시에 10여만명으로 늘어났다. 극도로 당황한 일제침략자들은 이 대중적인 시위투쟁을 진압하려고 수많은 경찰을 내몰고도 부족하여 기마경찰대와 100여명의 군대, 별동대인 소방대까지 동원하면서 미쳐날뛰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시위군중은 이에 굴하지 않고 맨주먹이였지만 돌을 던지면서 일제경찰 및 군대들과 맞서 완강하게 싸웠다. 남문밖에 이른 시위대렬은 여기서부터 3개의 편대로 나뉘여 행동하기 시작하였다.

 

한 시위대는 일제경찰서를 향하여 전진하였고 다른 한 시위대는 평안남도 도청과 재판소앞을 거쳐 평양역을 향하여 행진하였으며 나머지시위대는 평양감옥을 둘러싸고 거기에 갇혀있는 애국자들을 즉시에 석방할것을 요구하면서 시위투쟁을 벌리였다. 3개의 방향으로 갈라져 기세를 올리면서 싸우던 시위대는 다시 경찰서앞에서 합류하였다.

 

경찰서앞에 집결된 10여만의 시위군중은 일제야수들의 폭압만행을 신랄히 폭로규탄하면서 체포구금된 애국자들을 즉시로 석방할것을 요구하였다. 일제경찰이 이 정당한 요구에 순순히 응하지 않자 용감한 청년학생들은 시민들과 함께 돌로 유리창을 까부시고 경찰서에 돌입하여 그곳에 구금되였던 60여명의 애국자들을 구출하였다.

 

이날 평양시민들의 대중적인 반일시위투쟁은 일제의 가혹한 탄압속에서도 밤늦게까지 줄기차게 진행되였다. 전민족적인 3. 1인민봉기의 첫 봉화를 지펴올린 평양시민들의 대중적인 반일독립만세시위투쟁은 각지 인민들을 반일항쟁에로 불러일으키는데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3월 1일 서울에서는 낮 12시가 되면서부터 탑동공원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군중이 삽시에 초만원을 이루었다. 군중은 일제경찰의 저지책동을 박차고 곧 대렬을 지어 대중적인 반일시위투쟁에로 넘어갔다. 종로거리에 진출한 시위군중은 여러 대로 나뉘여 거리를 누비며 전진하였다. 시위대렬에는 청년학생들은 물론 로동자, 도시소시민, 소년, 소녀, 로인, 부녀자 그리고 지방에서 고종의 장례식을 보려고 온 농민들까지 참가하여 잠간사이에 그 수는 수십만명에 이르렀다. 총독 하세가와는 시위를 탄압하기 위해 룡산주둔 20사단무력까지 동원하였다. 놈들은 총으로 쏘고 칼로 찌르면서 시위군중을 야수적으로 학살하였다. 서울거리도 삽시간에 피바다가 되였다. 그러나 시위군중은 앞대렬이 쓰러지면 그 뒤대렬이, 뒤대렬이 쓰러지면 또 그다음 대렬이 앞장에 나서면서 전진하였다.

 

나어린 한 녀학생은 국기를 들었던 바른팔이 놈들의 칼에 잘리자 왼손에 국기를 바꿔쥐였고 왼팔마저 떨어져 더는 움직일수 없는 순간까지도 걸음을 멈추지 않고 《조선독립 만세!》를 불러 일제군경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3. 1인민봉기의 불길은 평양, 서울과 거의 때를 같이하여 평안남도 남포, 안주, 평안북도 의주, 선천, 함경남도 원산(오늘의 강원도 원산) 등지에서도 세차게 타올랐다. 그가운데서 1만여명의 광범한 군중의 참가하에 진행된 의주에서의 봉기는 일제침략자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평안남도일대에서는 평양에서 반일시위가 있은 다음날에 평양과 잇닿아있는 대동군, 룡강군, 중화군으로 투쟁이 확대되였으며 그 다음에는 강동군, 평원군, 순천군, 성천군으로 항쟁의 불길이 타번져갔고 그에 뒤이어 평양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져있는 녕원군, 개천군, 양덕군, 맹산군 같은 산간지대의 군들에서 반일봉기가 폭발하였다.

 

3. 1인민봉기는 또한 우리 나라의 북부지방으로부터 남부지방에로, 철도연선의 군들로부터 점차 교통과 통신련락이 불편한 산간지대의 군으로 퍼져나가면서 전국에로 확대되여갔다. 3월초에 서북부일대에서 급속히 타번진 반일항쟁의 불길은 3월중순에 들어서면서 우리 나라의 중부 및 남부지방에로 급속히 확대되였다.

 

3월 1일에 4개의 도에서 폭발한 반일봉기는 3월 11일에는 벌써 12개의 도로 확대되였으며 3월 19일에 충청북도에서 투쟁이 일어남으로써 마침내 전국의 13개 도를 모두 포괄하게 되였다. 투쟁의 불길은 3월 중순까지의 기간에 우리 나라 232개 부, 군가운데서 52%에 해당하는 122개의 부, 군을 휩쓸었다.

 

3. 1인민봉기의 급속한 확대로 온 나라는 일제의 식민지통치를 반대하는 반일구국항쟁마당으로 전변되였다. 반일항쟁이 급속히 확대됨에 따라 투쟁은 한층 더 격렬하여졌다.

 

3. 1인민봉기의 불길은 국내에서만 일어난것이 아니라 만주와 상해, 연해주, 하와이 등지에서도 세차게 타번지였다.

 

3. 1인민봉기가 폭발한 후 5월말까지의 석달동안에만 하여도 200여만명의 각계각층 인민들이 반일봉기대렬에 합류하였으며 그해 12월까지는 전국각지에서 3 200여회의 시위와 폭동이 일어났다. 반일항쟁의 불길은 전국의 232개의 부, 군가운데서 229개의 부, 군을 휩쓸었으며 해외의 조선인거주지역들에서까지 타번지였다.

 

3. 1인민봉기는 조선인민의 반일투쟁사에서 빛나는 자리를 차지하는 전민족적애국투쟁으로서 커다란 력사적의의를 가지는 사변이였다.

 

[출처:조선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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