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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피로써 지킨 조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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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0-10-16 17:2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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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써 지킨 조선어



요사이 이남 티비에 나오는 뉴스나 드라마, 영화, 등을 보면 외국어가 너무나 많이 나와 일반독자들이 이해하기 힘들 때가 많다. 특별히 중요 방송국의 뉴스를 듣다보면 영어가 너무 많이 나오는데 우리말로 표현해도 될 말을 구태어 영어로 표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방송국들에 묻고 싶다. 이번 10월9일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지 574주년이 되는 날이다. 연합뉴스의 홍국기 기자는 “한글날 우리의 생활터전인 주거단지의 이름에서 우리말이 사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남의 1백대 아파트 건설업체 가운데 우리말로 된 이름을 가진 업체가 단 한곳도 없다는 것이다. 아파트 이름에 순 우리말 상표를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진 부영주택(사랑으로), 코오롱건설(하늘채), 금호산업[002990](어울림)도 각각 <애시앙>, <더 프라우>, <리첸시아>라는 외국어 상표명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육 환경은 <에듀>, 숲은 <포레스트>, 공원은 <파크>, 친환경은 <에코>, 한강 변은 <리버>, 호수는 <레이크>를 단지명에 조합해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한심하다.


이남의 드라마를 보면 어린아이들이 영어를 마구 지껄이고 그것을 받아 어머니도 영어로 답하는 경우를 보게된다. 드라마 제목도 영어로 해야 시청률이 높다고 한다. 길가의 간판들도 대부분이 영어로 되어 있다. 높은 정부 관료들과 국회의원, 방송인들도 영어를 마구 사용하는 것을 보고 얼굴을 찡그리지 않을 수 없다. 이남은 점점 미국의 51번째 주로 변해가는 것 같다. 한편, 조선에서는 순수한 우리말을 사용하고 있다. 이질화되어가는 것은 조선이 아니라 이남이다.


1940년대 전반기 조선민족은 민족으로서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못하는가 하는 심각한 운명의 갈림길에 놓여있었다. 창씨를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고 일본신사에 절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다. 또한 조선말 대신 일본말을 상용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었다. 5천년의 역사를 가진 조선민족을 몇십 년 사이에 일본화하려고 <황민화>정책을 강요했으니 일제의 식민지화정책이 얼마나 악랄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 민족>이라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피줄>과 <언어>의 공통성에 의해 특징지어진다고 김일성주석은 보았다. 우리 말을 떠나서는 <조선민족>이 존재할 수 없다고 그는 강조했다. 언어를 잃으면 <민족>이라는 것도 사멸하고 만다. 일제는 “내선일체는 국어상용으로부터”라는 구호를 내걸고 관청, 회사, 학교, 공장 등에서는 물론이고 가정과 교회, 심지어 목욕탕에서까지 일본말을 사용하라고 강요하였다. <황민일보>라는 신문은 <국어보급>을 전문으로 하는 신문이었다. 일제는 <국어상용>을 외치며 조선작가들에게 일본말로 작품을 쓸 것을 강요하였으며 일본말로 된 [국민문학]잡지까지 발간하였다.


학교에서 일본말을 쓰지 않는 학생들은 비국민취급을 당했다. 조선말을 쓰면 관청이 상대도 하지 않았으며 배급도 주지 않았다. 일본말을 쓰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기차표도 팔지 않았다. 그 당시 조선사람들은 멸망하느냐, 생존하느냐 하는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해있었다.


이러한 어려운 시기에 김일성주석은 조선항일인민군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강조하였다.

“어머니가 있어서 자식이 있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민족의 품에서 태여나며 죽어서도 민족을 떠날 수 없다. 우리는 누구나 민족이라는 한집안에서 하나의 피줄로 이어져 있다. 그러므로 민족을 지키는 투쟁에서는 주인과 손님이 따로 있을 수 없다. 혁명도 민족을 위해 하는 것이며 무장투쟁도 민족을 지키기 위해 하는 것이다. 우리가 되찾자고 하는 것은 조국의 땅덩어리만이 아니라 우리의 력사와 문화, 민족 그자체이다. 때문에 동무들은 전민이 무장을 잡는 것과 전민이 민족의 얼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밀접히 결합시켜 전민항쟁준비를 잘하며 학자들, 교육자들, 언론인들, 문예인들을 비롯한 광범한 지식계층 속에 조국광복회조직을 확대하여 그들 모두가 민족의 얼을 지키는 불꽃이 되고 총탄이 되게 하여야 한다.”


<민족의 얼>은 신념이 강한 사람들만이 지켜낼 수 있다고 김주석은 역설하였다.


지식인으로서 조국과 인민에게 참답게 이바지하려면 뜨거운 “애국심”과 확고한 “과학적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김주석은 강조했다.


일제가 패망하기 전 국내에서 민족의 넋을 고수하기 위해 치열한 투쟁을 벌린 조직가운데서 김주석은 <조선어학회>를 기억하였다. 언어학자 리극로선생에 의하면 조선어학회는 1930년대 초에 나왔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 조선어사전 편찬사업이 본격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한 것은 조선어학회가 조직된 후부터라고 한다. 그전까지는 우리 나라에 온전한 조선말사전이 없었다. 그런데 조선어학회 성원들이 그 중임을 스스로 걸머지고 나섰다.


< 언어>를 떠난 문화의 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고 김주석은 강조했다. 문화의 발전은 그 기초에 놓여있는 언어와 문자의 합리적인 정리와 통일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김주석의 견해였다. 언어와 문자를 합리적으로 정리하고 통일하는데서 가장 힘있는 수단으로 되는 것이 바로 민족의 언어자원을 종합하고 집대성한 사전이다. <민족어사전>을 편찬하는 작업은 힘든 일이었다. 그들에게는 돈도 재료도 인적자원도 별로 없었다. 그들은 일본인들의 감시를 받으면서 만일의 경우를 예견해서 원고도 2부씩 만들어 따로따로 감추어두었다.


그런데 조국의 독립과 조선어의 정리보급을 위해 투쟁해오던 이 단체가 1942년 가을부터 적들의 탄압을 받기 시작했다. <조선어학회>에 속해있던 수십명의 학자들과 관계자들이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그 학자들이 함흥감옥에서 많은 고생을 했는데 고문이 어찌나 지독했던지 몇사람은 예심과정에 감옥에서 순국하였다. 일본경찰은 <조선어학회>를 반일독립단체로 지목하면서도 그 단체가 조선항일인민군 영향하에 있는 조직이라는 것을 알아내지 못하였다. 수감된 학자들이 목숨을 바치고 피를 흘리면서 비밀을 끝까지 고수했기 때문이었다.


조선어학회 내부에는 조선항일인민군의 조직선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리극로선생을 비롯한 선각자들을 망라한 비밀지하조직이 있었다. 최일천이 서울에서 살고있는 리극로선생을 찾아간 것이 1936년 가을과 1937년 여름이었다고 하는데 그때 조선항일인민군 조직에서 그에게 국내지식인들 속에 <조국광복회조직>을 꾸릴 과업을 주어 파견하였다. 최일천은 장춘에 있는 [동아일보] 지국장으로 서울에 오가면서 조직의 과업을 훌륭히 수행하였다. 리극로선생도 감옥에서 고문을 많이 받았다. 그가 고문을 많이 받은 것은 동지들이 한 일까지 자기가 다했다고 스스로 죄를 걸머지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그는 서울에 돌아가서도 만신창이 된 몸을 돌보지 않고 조선어학회를 거점으로 하여 민주역량의 단결과 자주적인 독립국가건설을 위해 많은 일을 하였다.


해방후 리극로선생은 <4월남북연석회의>에 참가하려고 남으로부터 평양에 들어왔다. 4월남북연석회의가 끝난 다음 리극로선생은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평양에 남아서 김주석과 함께 일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김주석은 서울에 있는 그의 가족들을 모두 평양에 데려오도록 했다. 

 

리극로선생은 여러해 동안 내각수상으로 활동하였다. 리극로선생은 일제시대 때 세계에 여러 곳을 여행하였으며 여러 인물들도 만나보았다. 그는 중국, 일본, 소련,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등 유명하다는 곳은 다 가보았다. 그는 크레물린 궁전에도 가서 레닌을 2번이나 만나보았다. 그는 동북지방에서 항일투쟁을 하던 최일천, 변대우, 황백하, 등 민족운동가들도 많이 만나보았다. 리극로선생은 베를린 종합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지만 아일런드를 방문했을 때 거기 간판들과 도로의 이름들이 모두 모국어로 되어있지 않고 영어로 되어있는 것을 보고 조선어도 저 신세가 되겠구나 생각하고 다른 모든 가능성을 포기하고 모국어를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결삼하고 언어학자가 되었다고 김주석에게 고백하였다.


이처럼 민족의 얼을 지키기 위해 피로써 조선어를 지킨 <조선어학회> 학자들에게 김주석은 무한한 존경을 표시하였다. 감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도 한몸을 불태워 민족의 혼을 지키고 민족정신을 깨우쳐주려는 역사학자 신채호선생같은 지성인들의 불굴의 저항정신을 보면서 김주석은 그들의 얼을 꼭 지켜주겠다는 결심을 다지었다. 이광수, 최남선, 최린, 등의 일부 지식인들이 일제의 동화정책에 순응하여 반민족적 행동을 한 반면 대다수의 교육자들, 문예인들, 학자들, 언론인들은 일제의 동화정책에 항거하여 혁명적 신념과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조국과 민족 앞에 충실하였다는 것을 김주석은 높이 평가하였다. 김주석은 늘 지식인들에게 조국과 민족을 열렬히 사랑하며 그 어떤 역경 속에서도 불굴의 의지와 혁명적 신념을 간직하고 살 것을 강조하였다. 불굴의 의지와 혁명적 신념으로 가득찬 지식인 대군에 의해 오늘날 조선의 주체사회주의 혁명은 계속 전진해나가고 있다.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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