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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 조선어말살을 노린 극악한 범죄적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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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0-08-12 13:05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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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어말살을 노린 극악한 범죄적책동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심지어 일제는 우리 인민에게 조선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창씨개명〉을 강요하면서 조선민족자체를 완전히 말살하려고 악랄하게 책동하였습니다.》


지난 세기 전반기에 강도 일제는 우리 나라를 무력으로 강점하고 《동조동근》, 《내선일체》의 황당한 궤변을 내돌리면서 조선민족을 완전히 없애기 위하여 조선어말살책동을 가장 야수적으로 감행하였다. 일제가 감행한 조선어말살책동은 강도성과 악랄성에 있어서 그 류례를 찾아보기 힘든 악독한 범죄행위였다.

 

일제는 조선어가 조선인민의 민족성을 특징짓는 대표적위치에 놓인다는것을 간파하고 민족어말살책동을 미친듯이 벌리였다.

 

일제의 조선어말살책동은 철저히 국가통치기구와 국가법령에 의하여 강행된 국가범죄행위이다.

 

일제는 통감통치시기부터 조선어말살을 위한 강력한 체계를 형성하고 그 실현을 위해 악랄하게 책동하였다.

 

우리 인민의 말과 글을 없애버리기 위한 일제의 책동은 총독통치시기에 와서 더욱 집요하게 강화되였다. 여기에 도청, 군청, 면사무소, 경찰서, 주재소, 파출소 등 행정, 경찰기관은 물론 헌병까지 총동원하였다.

 

일제는 총독통치의 첫 단계에서 《관공서와 재판소 및 기타에서 쓰는 모든 공용어를 일본어로 한다.》고 공식 선언하였으며 일본어는 조선사람들이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할 《국어》라고 거리낌없이 선포하였다. 조선총독부는 1912년 11월부터 각 도의 지사급들이 《국어(일본어)강습상황보고》를 작성하여 제출하는 제도를 세웠으며 1937년 3월에는 모든 관공청들에서 일체 공문서를 일본어로 작성하도록 전국의 도지사들에게 명령하였다. 이어 1938년부터 일본어강습소들을 대대적으로 조직할데 대한 총독부결정을 채택하고 이를 적극 강행함으로써 그해말에 이르러 일본어강습소는 벌써 3 660여개에 달하였다.

 

일제는 조선어말살책동을 법적으로 담보하기 위해 수많은 악법들을 날조해냈다.

 

일제는 1907년에 《신문지법》을, 1909년에 《출판법》을 날조하여 애국주의를 선전하고 우리 글자로 간행되던 많은 신문들의 발간을 극력 억제하였으며 1910년에는 《출판규칙》을 발포하여 조선인민의 민족성과 민족어말살을 위한 폭압의 강도를 더욱 높이였다.

 

일제는 조선어말살의 중요한 방도가 일본어의 보급과 그 사용의 장려에 있으며 여기에 가장 적합한 부문이 교육부문이라고 간주하고 학교들에서의 민족어말살책동에 본격적으로 달라붙었다.

 

일제는 4차례에 걸쳐 《조선교육령》을 날조, 개악하여 민족어말살을 악착하게 추진하였다.

 

일제는 1911년 8월에 발포한 제1차 《조선교육령》 제5조에 《보통교육은 보통의 지식기능을 교수하고 특히 국민(일본국민)된 성격을 배양하며 국어(일본어)를 보급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해놓았다. 1922년 2월에 개악된 제2차 《조선교육령》의 《중학교규정》 제10조에는 《조선어를 수의과목으로 하는것을 허락》한다는 문구를 써넣었다. 수의과목이란 해도 되고 하지 않아도 되는 과목이란 뜻으로서 결국 이것은 조선어과목을 완전히 없애버리자는것이였다.

 

일제는 1938년 3월 제3차 《조선교육령》의 《소학교규정》 제13조에서 《조선어는 수의과목으로 할수 있다.》고 정식화함으로써 소학교학생들마저 철저히 일본어교육대상에 들게 하였다. 이때부터 소학교이상의 학생들은 일본어교육만을 받게 되였으며 그들에게 있어서 조선어교육은 외국어교육처럼 되였다.

 

파렴치한 일제는 《조선교육령》발포를 통하여 교육부문에서 조선어를 완전히 말살하기 위한 법적제도를 수립하였으며 조선인학생들을 《황국신민》으로 만들어 《내선일체》에 기여하게 만들려고 획책하였다.

 

일제는 우리 나라 강점후 교과서들을 일본어로 편찬하도록 하였으며 이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하여 그 보장대책도 구체적으로 세웠다.

한편 일제는 조선말을 하는 학생들을 야수적으로 탄압하였다.

 

일제에 의해 조선인학생들은 조선말을 한마디만 하여도 욕설과 기합, 벌금과 퇴학을 비롯하여 갖은 민족적모욕과 천대, 제재를 받았다. 지어 구타와 법적제재까지 강요당하였다. 1928년 5월 조선어교수를 요구하여 동맹휴학을 단행한 함흥고등보통학교 학생 100여명을 일제경찰이 체포구금하고 그가운데서 15명을 재판에 넘긴 사실은 그 단적실례이다.

 

우리 나라에 대한 식민지파쑈통치시기에 감행된 일제의 조선어말살책동은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마저 말살하는데까지 이르렀다.

 

혈통에 따라 친족관계를 나타내는 조선사람의 성에는 민족의 력사적전통과 집안의 가풍과 관련된 정신적특성이 깃들어있으며 이름에는 부모들의 지향과 기대, 고상하고 아름다운 어휘적의미와 느낌이 반영되여있다.

 

때문에 우리 인민은 매 성원들이 가지고있는 성과 이름을 고유한 민족성과 자랑스러운 전통이 깃든 귀중한 정신적유산으로 여겨왔으며 조선어의 아름다운 말소리와 풍부한 어휘적의미, 정연한 문법적수법에 기초하여 이름짓기의 민족적전통을 고수하여왔다.

 

그러나 일제는 눈섭 하나 까딱하지 않고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을 말살하는 《창씨개명》을 공공연히 감행하였다.

 

일제의 통치기관들에서는 모든 집들의 대문에 《창씨개명》정도를 알수 있게 문패를 써붙이도록 하였으며 조선식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지 않은 사람들을 무지막지하게 탄압하였다. 지어 출생신고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공부하는 자식을 퇴학시키겠다는 위협을 받고 《창씨개명》을 한 아버지가 조상에게 진 죄를 씻을길 없어 돌을 안고 우물에 빠져죽은것도 일제가 빚어낸 참혹한 재난의 한토막이다.

 

력사적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오늘까지도 조선에서 저지른 범죄행위를 외곡, 은페, 합리화해보려고 온갖 잔꾀를 다 부리고있다.

 

우리 인민은 지난날 일본이 조선민족에게 강요한 온갖 불행과 고통을 천추만대를 두고 잊지 않을것이며 피맺힌 원한의 대가를 천백배로 받아내고야말것이다. 

라명성



                       -남포시계급교양관에서-     본사기자 찍음

[출처: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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