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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는 동포들의 북에 대한 이해와 판단을 돕고자 북녘 매체들의 글을 "있는 그대로" 소개합니다. 이 글들이 본회의 입장을 대신하는 것은 아님을 공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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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 | 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철수를 말하지 않는 청와대와 여의도는 없애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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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0-05-23 10:4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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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철수를 말하지 않는 청와대와 여의도는 없애 버려라

 

ㅡ 살 가치도 없는 개돼지가 아니라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임을 보여라 ㅡ 




 

2012년도 통진당 행사에서 <혁명동지가>를 부른 3사람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2020.05.14에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유죄 선고로 시의원직도 박탈당했다.

 

이 노래는 1991년도에 노래패 가수 백자가 한국외국어대학교 2학년 재학때에 제작하여 한국의 운동권에서 흔히 불렀던 노래다.  1990년대 민주화운동에서 널리 불렸던 민중가요를 불렀다고민주운동했다는 문재인 정권하에서 국보법으로 정죄하다니 말이되는가?  

 

무죄가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석기 의원이 지금도 감옥소에 갇혀있으며통진당을 강제해산한 불법에 대해서 사과 조차도 없는 나라이다.

 

김호가 통일되었을 때를 대비하여첨예하게 경쟁하는 전자기술시대 준비하려고국정원의 허락하에 중국에서 북의 기술자들과 안면인식 기술을 토론하고돌아와서 모든 것을 국정원에 보고하였었는데도문제인 정권의 국정원이 국보법으로 입건기소했다왜 이런 모순된 일이 일어나는가?


12 조선식당종업원들을 유괴 납치해와서 지금도 외부접촉 마저 차단하고 있는 한국의 국가법죄 국정원은 사형감이고모른척하는 이 정권은 무어라 말해도 무법양아치 조폭들이라는 말이다.  

 

왜 이런 황당한 일들이 촛불정권이라는 문제인 시대에도 일어날까?  내가 아는한 문재인은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들을 단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앞뒤 말 다르고 행동 다른 사람으로 나에게는 각인되어있다.  

 

문제인은 미국의 ‘착한개’노릇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영유하기위하여 미국의 식민지한국통치법인 “국가보안법”은 폐기하지 않을 것이며공수처 설치 엄청난 여론몰이 등과 함께이완용이 일제 귀족 작위를 받고 띵가띵가하던 삶을 즐기고 싶어하는 것 같다.

 

더하여 한국을 빅 브러더 “신세계 질서”를 이루고자 하는 ‘어둠세력’의 전위부대 ‘표본국가’로 만들어가고 있다.

 

문재인도 “새로운 세계 질서를 준비하겠습니다"라고 공언하지 않았던가!

모든 사람들이 ID전자칩 백신을 맞아야한다고 주장하는 빌 게이츠를 이태리 국회에서는 “범죄자”로 “체포하라”는 말로 비난하는데도문제인은 빌 게이츠와 궁짝을 맞추며 백신을 한국인들에게 맞도록하겠다고 한다문재인이 전자칩 백신 5G가 무슨 의미인지를 모를리가 없지 않은가?  

 


▲사진빌 게이츠의 백신 범죄 

 

한국이 최전방에서 “신세계 질서”를 본보기로 만들어 가는 것은 남녘민족 파멸의 끔찍한 일이며모두가 반대하고 감시해야 할 것이다. ‘모든’ 인민이 빨갱이 사냥 연좌제 보다도 훨씬 더 혹독한 체제 속에서 숨 죽이며 공포속에서 살게 될것이다.

 

<참고>로 조지 오웰의 1984 “빅 브라더” 이야기의 전초에 해당하는 - ‘국가보안법’ 사회의 한 단면 실화로 내 지인의 가족사를 밑에 이야기하겠습니다.

 

 

국가보안법과 국정원 폐기는 민족문제 해결의 첫걸음   http://blog.daum.net/win/81 

 

내 지인의 가족이  겪은 고통과  가슴앓이는 일견 그 가족뿐만 아니라 ,  아직도 무수한 사람들이  당한   억울하고 피맺힌  고통이기에   내 지인의  가족사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려 한다.  

         .. <생략> ..

남과 북은 근본 부터가 다르니 죄의 잣대 마저도 달라도 너무 다르다북부조국은 ‘우리민족’ ‘이웃을 위한 희생’ ‘자존심’ ‘자주’ 라는 것이 무엇보다 선행되지만, 남부조국은 ‘나’ ‘아부아첨’ ‘자존심이 밥먹여주냐? 가 무엇보다 먼저 앞서는 잣대이다.

 

남녘에서는 무조건 강한 힘에 기생하여 온갖 영화를 누리면서 나만 배부르면 된다는 “개 돼지” 주의이다. 이들에게 공의 진리 양심 정의를 말하는 것은 멍멍이와 꿀꿀이에게 말하는 것과 별반다르지 않다.

 

일제의 하수인에서 미국의 하수인으로 바뀐 남녘땅 매국노들은 양심과 정의와 사랑이 충만한 항일독립투사들을 무차별적으로 잔인하게 죽였다빨갱이라고 낙인을 찍으면서 말이다.

 

미국과 그 식민지 매국노들의 가장 무서운 적들이 바로 자주 정신이 가장 강한 독립투사들이기 때문에 이들에 관하여서는 철저히 없애야 했기 때문이다.

 

일제독립투쟁혁명가들은 조선이 일제의 손아귀에서 미국의 손아귀로 넘어가는 그 순간에도 조국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일제치하에서의 투쟁을 그대로 이어 나갔다일제시대에 불량불순분자라고 매도했던 표딱지가 미국시대에는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애비 맥아더의 치하에서 필리핀의 민간인들이 80만명(20~150만 추정민간인 학살은 정확한 숫자를 알기가 어렵다)이 학살 당하였고, 아들 맥아더의 통치하에서 그리고 미국의 고문관 정치(총독정치)에 의해서 남녘땅에서는 민간인들이 대략 100만명이 학살당하였다.

(한국전쟁에서는 민간인들 527만명 희생<정대화 박사님>)

그 살인마 맥아더를 존경하여 동상을 만들고 영화로 왜곡 선전하는 한국이 제 정신일까? 미국의 전쟁광들이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도 더 쉽게 죽여버리는데그에 기생하여 생존하는 식민지 매국노들의 잔인함은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브루스 커밍스의 The\origins of The Korean War”이란 책에만주의 항일공산혁명군들 때문에 일본 제일의 관동군들이 묶여 수렁에 빠진 꼴이 되었고결국 일제패망 원인들 중의 하나라고 했다.

 

이 항일독립운동 공산주의자들을 오카모도 미노루(박정희가 처음 개명을한 이름 다카키 마사오는 조선냄새가 난다하여 또 다시 개명을 함)와 백선엽들은 “공비들”(공산 도적놈들)이라 불렀고 그에 협조하는 조선인들을 없앤다고 견벽청야 전술이랍시고 만주의 우리동포 마을들을 싸그리 죽이고 불태웠다.

 

8.15이후에도 일제에 “견마지로를 다하여 멸사봉공”하겠다고 왜왕에게 혈서로 맹세한 박정희 같은 매국노 관동군 출신들 백선엽 등에 의하여 민간인들이 대학살 당하였다. (지리산 함양군 추모공원 - 이곳은1951년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시 11사단 9연대 3대대가 상부에서 내려온 견벽청야라는 작전으로 민간인들 700여명을 몰살한 곳이다.<한국농정2011.03.14>)

 

이 매국노들이 일제가 우리 어린 처녀들을 유괴납치하여 왜군들의 성욕대상 성노예 “위안부”를 만들었던과 똑 같은 ‘위안부 대기소’를 만들고 미군들의 성욕을 풀도록 한 더러운 犬韓蠻國이다.

 

조국을 사랑하고 정의와 양심이 투철하다는 이유로 수많은 애국자들이 죽임을 당하고 남은 그의 가족들이 한 많은 세상을 눈물과 한숨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무수히 많지만하나의 예로 내 지인 가족의 생활사를 한 부분만이라도 말하고자 한다.

 

내 지인의 아버지는 소위 지금 유행되는 말로 하자면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는 여건이었건만 동학혁명으로 초토화된 그 어머니(지인의 친할머니)집안의 반골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 탓인지 모든 부귀와 영화를 버리고 일제시대에는 항일투쟁으로 갖은 고문을 당하였고,  8.15후에도 외세와 매국노들에 쫓기었으며매국노들이 무서워 가족들이 시신을 찾으러 가는 것 조차도 포기하였다.

 

다음은 2012.06.17 한토마에 이석기 김재연을 종북이라고 마녀사냥하는 것에 분개하여 올렸던글 중에서 연좌제에 관련된 부분만을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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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지인의 아버지는 악질적인 집안에서 어머니(지인의 할머니) 40세 즈음 약간은 늦동이로 태어나셨다지인의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자기가 시집 간지 얼마 안되어 어떤 사람을 잡아다가 멍석말이로 때려 죽였는데도 아무탈도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넘어갔다고 했다그리고 그 마을 앞을 말 타고 지나가면 감히 고귀한 양반댁 마을을 말에서 내려서 지나가야지 버릇없다고 붙잡아 두들겨 패서 보냈다고 한다지인 어머니 말씀은 “그렇게 악질이라 벌 받느라고 다 망해먹고 너희가 이렇게 살지”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런 집안의 종손 두째 늦동이 아들이니 얼마나 기가 팡팡 살아 모두를 눈 아래로 보고 살았겠는가?

 

그런 그분의 삶에 큰 영향을 준 분은 그분의 외삼촌이었던 것 같다. 그분의 외갓집은 서당 훈장이었는데 동학혁명란에 가담하여 왜놈들에게 패하고 역적으로 대 학살이 일어 날때그분의 어머니가 자기 때문에 시집까지 몰살 될까 봐 우물에 뛰어 내렸는데 풍덩 소리에 마을 사람들이 달려나와 살렸으나 그 뒤로 한쪽 팔을 잘 쓰지 못하고 떤다고 했다.

 

그 어머니의 오빠는 의병나가서 죽고 큰 동생은 목포에서 일본으로 우리나라 쌀을 실어가지 못해게 사보타지 하고 화순탄광에서 사보타지하다 쫓겨 결국 왜놈 경찰손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친구 할머니는 13(14?)세에 시집와서 친정이 개박살 나고그 화가 시집까지 미칠까봐 평생을 죽은 듯이 살았다한다친정집안이 박살났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어린 동생은 누나 시집에와서 성장하여 결혼까지하게 되었는데눈치보며 살아서인지 말이 전혀없고 기가 죽은 듯했다한다.  한자를 줄줄 읽으시고 중국 고사들을 재미있게 줄줄 말씀하시던 그 할머니의 가슴에는 무슨 한이 또 얼마나 많으셨을까?

 

그 외삼촌의 영향으로 내 지인의 아버지는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전환하게 된 것 같다.

 

지인이 국민학생때 학교가 끝나면, “나라를 잘 다스리는 이승만 박사… 이승만 박사를 잘 받드실 이기붕 의장…”이라는 자유당 선거노래를 부르면서 줄을 지어 교문까지 나가야했다이것이 싫었던 지인은 급우들에게 “가련다 떠나련다해공 선생 뒤를 따라…민주당에 비가 오내 자유당에 꽃이피내”라는 이승만에 반발하는 노래를 부르도록했다학교가 난리가 났고 지인의 집에 담임선생이 방문하고 지인은 3일동안 정학 처분을 받았다

 

가족들은 경찰이 오면 도망갈 준비를 하고 3일을 꼬박 밖의 눈치만 살폈다지인의 어머니는 “꼭 생김새도 즤 애비 빼다박은 것이 하는 짓도 똑같다즤 애비가 못되처먹어서 선생한테 대들고 싸워 학교를 퇴학맞아 충청도로 한학공부하러 떠났었다.”라고 지인을 욕해댔다지인이 고등학생때 가출하여 서울에 가서 큰아버지를 만나 아버지를 욕하며 아버지가 퇴학맞아 충청도로 간 이야기를하자큰아버지가 “광주학생사건이 터지자 당시 10살이었던 늬 아버지가 동맹휴학을 주도하여 퇴학을 맞았고그래서 충청도로 한학공부를 보냈었다”라고 설명했다당시 지인은, “겨우 10살이 뭘 알아서…지 동생이라고 역상들고있네…”라고 속으로 생각했었다그러다가 번득 지인 자신의 10살때 일이 생각나서 입을 벌리고 헛웃음이 나왔다고한다.

 

기고 만장했던 그분이 멍석말이로 죽었던 집에 찿아가 논밭을 주고자기 몫의 땅들을 짓던 소작인들에게 나누어 주고술집여자들에게도 깍듯이 존대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문중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라고 난리들이었다고 한다.덕분에 지인 어머니는 죄인이 되어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았다 한다“그 왠수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없다가 한번씩 나타나서 애만 하나씩 만들어 놓고 갔지” 라고 지인의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1930,40년대에는 자칭 민족주의자들이 전향하여 일제의 앞잡이로 일제를 찬양하고 학도병과 정신대에 나가라고 설쳐댔으며박정희 같은 종왜 매국노 개들은 독립군을 때려잡는 관동군 정보장교가 되었으며상징적으로 상해에서 소수의 몇 분이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처럼 계셨고실제로 일제와 맞서 싸운 분들은 국내 국외 공산주의자들이었다.

 

그래서 해방되고 이승만이 귀국하여 처음 한 소리가 공산주의자들을 칭찬해서 “악독한 왜적의 압박하에서 지하공작으로 백절 불굴하고 배일 항전한 투사임을 높이 평가한다. (45.11.23서울신문)고 말했고 (후에 자기가 정권을 잡기위해 정반대로 일제 매국노들과 결탁하고 공산주의자들을 무참하게 짖밟았지만), 미군정청의 여론조사(1946.08.13동아일보)에서도 남한의 77% 국민들이 우리가 이뤄야 할 나라는 “인민 공화국”이라고 응답했었다 (자본주의14%, 사회주의70%, 공산주의7%).

 

내 지인의 아버지는 일제 경찰에 붙잡혀 일어서지고 못하게 두들겨 맞고 갇혀있으면할아버지와 친척들이 재산을 헌납한뒤 들것에 실려 나왔다 한다. 내 지인의 어머니도 자주 잡혀가서 두들겨 맞았는데하시는 말씀은 “내가 지금 가슴이 이렇게 아픈것도 그때 그놈들 한테 맞아서 그래그때 구두발로 나를 차고 때렸던 놈들은 정작 일본놈들이 아니라 조선놈 앞잡이들이 었어” 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그 참담한 일제때 내 지인의 빨갱이 아버지가 태극기를 손수 그려 가슴에 품고 살았다는 사실은 그 때 그 태극기는 우리민족 우리국가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태극기라면 불령조선인이라고 죽이기까지 하며 갖은 고문을 해 대던 자들이, 해방되고 미국의 식민지하에서 다시 권력을 잡게 되자 태극기를 앞세우고독립운동했던 분들을 죽이고 어린애 노인들까지 죽이는 그 개쌍나라의 태극기는 같은 태극기인지 묻고 싶다.

 

그분이 그린 태극기는 종왜종미 매국노들의 극성스러운 반공 때문에 공포에 질려 지인의 가족들이 없애버렸다. 모든 흔적을 다 지워야 했기에….. 그 태극기그 태극기는 비록 그림은 같아도 박정희와 이명박이 경례하는 태극기가 아니었다.

 

지금 통진당을 태극기와 애국가로 종북몰이를 시작하고 그에 합세하여 종북몰이 마녀사냥 선동을 하고있는 유시민의 정체가 심히 의심되며그에 환호하며 동조 선동하는 다카키 무리들과 종미종왜 언론들은 일제때 일장기에 경례하며태극기를 가지고 있던 독립운동가들을 고문하고 죽이던 족속들이 그 뿌리이다적반하장도 유분수라 아니 할 수 없다.

 

민족자주 민주평등을 주장하는 자들을 철저히 죽여 없애고 싶은 자들은외세(미일)와 그에 빌붙어 똥빨아 먹는 매국노 개들이다.  왜냐하면 이 사악한 악마들에게 가장 방해가 되니까……그래서 이 매국노들이 통진당을 없애고자 하는 것이다.

 

일제가 물러난 조국에서 그 가족들은 더욱 참혹 했다. 일제 해방이 되자 사람들은 일제의 앞잡이들을 잡아 죽이려 했다. 그 때 지인의 아버지는 죽이지 못하게 했다. ‘세상이 바꿔졌으니 그들도 반성하고 새사람이 될 것’이라고‘생명은 하늘이 준 귀한 것’이라고.

 

보도연맹사건때 (인것같은데 _ 필자 추측내 지인을 업고 어머니가 창고에 불려 갔단다. 많은 사람들이 불려와 있었는데 내 지인이 악을 쓰며 울어대니일제해방때 아버지 때문에 살아난 자 중의 하나가 알아보고 “너무 시끄러워 밖에 잠간 대려 가서 애기를 달래고 오겠다”고 앞에 앉아있던 미군에게 말하고 어머니를 밖에 대리고 나왔다 한다그리고는 “아주머니여기 있는 사람들 다 죽습니다빨리 멀리 도망가세요” 하더란다그 길로 어머니는 도망해서 3일간을 길거리에서 산에서 헤맸다 한다.

 

해방되었다는 조국에서 지인의 아버지는 다시 쫓기고 쫓기는 몸이 되었고그 가족들의 고초는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어머님 표현을 옮기면 “징글징글한 세상이었지”란다어떻게 살아왔는지 기적같아“사람 목심이 쇠심줄이어…”라고 하신다.

야반도주는 예사였고고향 떠나 숫가락 하나 없이 이사하기를 몇차례길에서 산에서 며칠씩 숨죽여 있어야 했다.

 

한번은 내 지인이 숨이 끊겨 죽었다고 한다그래서 어머님은 지인을 나무 밑에 버리고 산 깊이 도망했는데 다음날 해질 무렵 돌아 올때 보니 다시 살아 있더란다그래서 내 지인을 보고 ‘죽었던 놈이 살았으니까 오래 살 것’이라고 했다.

 

어찌나 일제시대때 보다도 더 악랄했는지일제때 몇일씩 숨겨주던 친척들도 이제는 숨겨주는 것을 무서워해서 눈치보며 있을 수 없었다 한다. 지인의 어머님께서 돌아가시기 수십일 전부터 정신이 혼미해지시니까 과거의 맺혔던 기억이 자꾸 나오는 것 같았다.

 

심한 공포와 아픔으로 괴로와 하시다 돌아가셨다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정신이 오락가락 하실때 입에 손가락을 대고 “쉿조용히 해순사들이 엿보고 있어”라고 하시며 제발 조용히 하라는 두려움으로 애원하듯 얼굴 표정을 잔뜩 꾸기시던 모습에 가슴이 아팠었다.

 

지인이 힘이 없어라 하면어머님이 “내가 며칠씩 굶고 젖이 안 나와서 저놈이 너무 굶어서 저렇게 약해” “저놈이 너무 고생 많이 했어너무너무 불쌍해” 하시었다.

 

지인이 온 몸에 빨갛게 두드러기가 나자 “즈 애비를 따라 갔던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들이 와서 죽었다고 하는 데 무서워서 시체 찾으러 갈 생각도 못했어애들하고 살아야 하니까꿈에 그 시체에 벌떼들이 꽉 찾었어그래서 저놈이 두드러기가 잘 나나 봐즈 애비하고 생김새나 하는 짓이 똑 같거든즈 애비가 조금 더 잘 생겼지만. 하고 말씀하셨다.

 

그 후 줄곳 지인의 형제들은 반공에 미친나라 연좌제로 뜻을 펴고 살 수 없었고… 그들의 고통을 누가 알겠는가? 내 지인은 유년기 5년 동안을 고아원에서 지내야 했다. 그 형제들은 그 아버지를 “개새끼”라고 지금도 욕한다.

 

나는 지인의 아버지께 반문하고 싶다.

 

“아버님그 매국노 새끼들을 어쩌자고 살려 두셔서 이 민족이 이렇게 식민지 노예근성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게 하셨습니까? 프랑스처럼 싸그리 죽였더라면 이 민족의 정기가 바로 서지 않았겠읍니까? 아버님의 희생이 과연 누구를무엇을 위함입니까? 식구들이 겪은 그 한 많은 고통은 어떻게 누가 보상합니까?

 

자신의 모든 것생명까지 바친 십자가의 삶을 살은 이런 분들이 자랑이 아니라오히려 손자들에게까지 숨겨야 하는 비정한 땅, 박정희 같은 매국노 개잡놈과 화냥년 같은 그 놈의 딸년이 추앙 받는 이 개쌍나라가 과연 사람 사는 곳인가?

 

모든 사람이 자유와 평등 그리고 평화를 누리는 세상을 꿈꾸는 내 지인의 아버지 같은 사람들을, 종북이니 빨갱이니 매도하는 쥐박이 박똥 같은 개잡놈년들과 비교하는 것조차 언어 도단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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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쓰지않은 연좌제 관련 지인의 개인사 일부를 추가합니다. >

 

내 지인의 어머니는 본가를 떠나 황산에서 살다가또 누군가 염탐을 하여 다시 도망을 하고동산촌에서 좀 살다가또 경찰이 나타나서 삼례로이리(지금의 익산시)로… 도망이사를 다녔다전주 친정집에 잠시 있는데도 동생(지인의 외삼촌) “누님 때문에 우리도 죽겠다”는 말을 했다.

 

사정이 그러하니 내 지인 보다 10살이 많은 큰누나는 초등학교 3학년 중퇴를 했다큰누나는 성냥공장을 다니다가 은명기 목사님이 알선해 주셔서 남의 호적으로 취직을 할수 있었다그래서 후에 내 지인이 있던 선덕고아원이 다른 고아원과 합치는 것을 계기로 고아원을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은명기 목사님은 박정희가 구데타를 하자‘헌정파괴’라고 규탄하시고박정희가 ‘군복무에 다시 돌아가겠다’는 공약을“부뚜막에 올라가서 생선맛을 본 고양이가 다시 부뚜막에 올라가지 않겠는가? 라며 규탄하셨다당연히 감옥소에 끌려가셨다)

 

내 지인의 어머니가 그 고초를 이겨나갈 수 있었던 것은 모든 고통과 고난을 기독교 하나님에게 맡기고 이 하나님이 어린 자식들을 돌봐 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내 지인은 어려서부터 어머니가 “하나님이 호주가 되어 이 어린것들을 지켜 주십시요”라고 기도하시는 것을 귀가 닳도록 들었다 한다. 그러나 그 기독교 신자들 중에는 빨갱이 집이라고 대문을 발로 차고 가는 자들도 있었다한다그러면 가족들은 숨을 죽이고 떨곤하였는데하루는 성질급한 중3이었던 지인이 마루 밑에서 도끼를 꺼내들고 쫓아가려는 것을 식구들이 붙들어 말린 일이 있고 부터는 그런일이 없었다 한다그래서 지인은 “빨갱이(종북타령하는 놈년들은 한결같이 비열하고 떳떳하지 못해서도끼로 대갈통을 갈겨야 찍소리도 못한다”고 말한다.

 

내 지인이 막내아들이지만 먹고 사는 것이 급박한 터라 지인의 어머니는 아들이 소학교를 마치자 마자 철공소에 취직을 시키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러나 그 큰누님의 도움으로 중학교에 원서를 겨우 제출할 수 있었다학교에 다니면서도 논과 밭을 갈고 땔나무를 하러 다녀야 했고 농산물들을 리어카에 싣고 시장에 팔고 다녀야 했다그 어머니는 머리에 야채 광주리이고 시장에 나가 팔다가 단속하는 경찰에 발길세례를 받은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지인은 농사를 짓다 논에 농약을 살포하다가 몇번이나 쓰러졌었다 한다그는 남들이 하는 과외공부나 수학여행등은 엄두에도 낼 수 없었다.

 

힘들고 장래는 암담하여 고3때는 산에 들어가서 3일 동안을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죽으려고 했는데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너무 억울했다 한다그리고 도데체 신은 뭐하고 이 따위인지 성경을 좀 보자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다그리고는 성경을 읽었는데 로마서에서 은혜(?)를 받고 열렬기독교인이 되었다(지금은 야훼신을 유태인들이 믿는 종족신아프리카의 무당신과 같을 뿐이라고 생각한다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 4복음서를 빼고는 다 버려야 된다고 생각한다그 야훼신을 믿는 서구에 의하여 인류는 악마의 노예가 되었다 라고까지 생각한다).

 

내 지인이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어차피 군대는 가야하는 것이니일찍 갔다 와서 학업을 계속하여 사회로 이어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당시에 육군 지원제도가 없어졌기 때문에 해병대에 지원하였다 한다.

 

지능검사 적성검사 체력검사 모두 잘 마치고 모병관이 “이런 사람이 해병대에 오면 최고 좋지”라며 좋아했다 한다그런데 발표날이 지나고 며칠이 되어도 소식이 없어 병무청에 갔더니 그 모병관이 “빨갱이 새끼라 안돼”라고 했다“어차피 3년 썩어야 되기에 가는 것이지 해병대가 좋아서 지원한 것도 아닌데개소리들을 한다” 라고 생각하며“이따위에도 연좌제를 들씌운다면 아버지 사망신고를 하고 호적을 옳겨 버려야 되겠다”라고 결심하게 되었다 한다.

 

본적지 면사무소 앞에있는 대서소에 들려“아버지가 병들어 얼마전에 돌아가셨다”라고 했더니 그 대서소 사람이 웃으며 “내가 이분을 잘 알지지금 살아 계신다면 대통령도 하실 분인데…”라고 말하며 자기가 알아서 다 해주겠다고 했단다그리고 지나가는 사람을 불러 도장을 찍으라고 하자 그 사람이 “이게 뭔지 알아서 도장을 찍소? 라고 떨떠름하자 “내가 잘아는 훌륭한 분 이니까 찍어”라고 하고 또 한사람을 더 불러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증인을 만들고면사무소 직원에게 “아버지 이름도 다 빼고 호적을 만들어OO시로 이전 시켜달라고 했다 한다그렇게 본적지를 아버지 이름이 나오지 않도록하여 옮겼는데도 다른 곳에 기록물들이 또 있어 깊이 조사하면 또 들어난다고 한다.

 

당시 국립대학교는 한번 임용되면 정교수로 늙어 은퇴할 때 까지 쭉 보장되는 철밥통이었다. 내 지인이 국립대학교에 임용될 때다른 학과에서 같이 임용되는 두 사람은 한달도 않되어 임용을 받았는데내 지인은 신원조회가 되지 않아 3달이 넘도록 임용이 되지 않고있었다 한다무슨 이유인지 짐작하고 있기 때문에학과 교수들이 OO선생임용장 받았어? 라고 묻는 말이 그렇게도 착잡하고 난처했다 한다.

 

결국 지인을 아껴주는 학장님께 아버지 이야기를 했더니 그 학장의 사위가 중앙정보부에서 일하고 있는데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그리고 청와대 경호실에서 근무하던 대학동창에게 치안국을 부탁하고육군 군종 장교인 국민학교 동창 형에게 방첩대를 알아 봐달라고 부탁했다 한다그리고 도경 정보과에도 돈을 먹여서결국 이상 없는 것으로 신원조회를 만들어 발령을 받았다고 한다. 만일 아버지 사망신고가 없고 본적지를 바꿔버리지 않았더라면빽줄을 만들어도 명확히 쉬운 문건으로 나와 버리기 때문에 발령을 받을 수 없었을 것이라한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교수 임용제도가 생겨났다박정희에 대하여 비판적인 교수들은 줄줄이 재임용이 거부되고 대학교를 떠나야했다내 지인은 암담한 심정이었단다“재임용 때 마다 신원조회 그 고통을 당해야 하고언제나 잘 되리라는 보장도 없다이땅을 떠나자”라고 결심하게 되었다 한다.

 

미국에서 전액 장학금을 주겠다고하여 미국유학을 수속하는데 신원조회가 말썽이었다. 몇 달을 기다려도 여권이 나오지 않아 다시 전처럼 여기저기 부탁을 하여 결국 받아냈는데미대사관에서 비자를 받는데는 단 5분도 걸리지 않아 오히려 이상했다한다“내나라는 내 목을 조이고 있는데남의 나라는 돈 주면서 환영이라? 기가 막혔다 한다.

 

신원조회에서 또 다시 어떻게 문제가 불거질지 모르니까 하루라도 빨리 한국을 떠야겠다고 바로 비행기 표를 사고 출국 날자를 기다리는데 하루가 여삼추 초조했다 한다. 공항에서 어머니가 영영 이별하는 심정이 되어 울고 있는데도 본인은 중안정보부에서 나와 곧 잡아 갈 것 같은 심정이 들어 어머니 우는 것도 전혀 마음 쓸 여유가 없었다 한다.  비행기에 탑승하고도 그리고 활주로에 나갈 때 까지도 곧 바로 중정에서 출발을 못하게하고 자기를 끌어 갈 것 같은 생각으로 초조했는데 비행기가 이륙을 시작하자 모든 긴장이 풀리며 이젠 살았다 라는 마음이 들고 다시는 이 땅을 밟지 않겠다하고 결심했다한다.

 

(그러나 광주항쟁 대학살사건이 터지자 모든 것을 버리고 한국에 돌아가서 싸우겠다고 분노했었다버리고 싶어도 버려지지 않는 핏줄 같은 조국이라 하였다그리고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서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있는데 자기는 개인 욕심으로 공부만 하고있는 것이 몹시 부끄러웠다 한다그러나, “너가 한국에 돌아가면 간첩으로 몰아 다른 민주인사들까지 줄줄이 엮어 간첩단사건으로 조작하여 민주운동을 더 박살나게 될테니까미국에 그냥있어라”라는 단 한마디에 귀국을 포기했다.)

 

이 연좌제로 인한 고통은 이어져중학교 선생을 하는 형에게 정보부 요원들이 “빨갱이는 출국할 수 없는데 어떻게 이 빨갱이 새끼는 유학을 갈 수 있었느냐? 라며 공갈 협박을 시작한 것이다그리고는 월급날만 되면 정보부원들이 몽땅 몰려와 고급 요정에서 고기 술 색시 파티를 했다한다그러면 월급의 절반도 훌쩍 더 날라가는 것이 예사였다.

 

내 지인이 형과 국제전화를 하는데 형이“내가 죽겠다도저히 못 살겠다”라고 말하는것을 듣고 모든 식구들을 미국으로 이주시킬 결심을 했다 한다. 그리고 학과장께 형을 불러 주십사 요청했는데지인을 사랑한 학과장이 청을 들어 주어서 형이 미국에 오게 되었다 한다“아마도 미국 대학교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그렇게 엉뚱한 결정을 한 일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지인은 말하며 학과장님께 정말 정말 감사한다고 지금도 말한다.

 

형은 막노동으로 거의 40년을 살면서도 중학교 선생을 하던 한국에 대한 미련은 조금도없고 오히려 속편하다고 한다그리고 내 지인과 형은 한국에 단 한번도 가지 않았고 갈 마음도 전혀 없다고 한다. (가족들도 방문비자로 미국에 와서 눌러 앉아 지금은 모두 시민권자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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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면 이들의 삶을 일일히 쓰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것이 한이다. 나는 역사와 국체를 바로 잡기위하여 연좌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녘땅 매국노들이 빨갱이 사냥하는 연좌제 방식으로 매국노들과 관련된 자들을 모두처형을 한다면 최소 2천만은 죽여야 할 것이다. 생명을 사랑하는(ㅎㅎ나는 그 매국노들의 방식이 아니라 ‘선별한 연좌제’ 방식을 주장한다.

 

20세 이하는 그 부모가 어떠한 악질 외세의 앞잡이질을 했어도 불문에 부친다.

20세 이상이라도 그 부모의 잘못을 사과하고, 20세 이상 되어 혜택 받는 것을 거부한 사람은 양민과 조금도 다름없이 불문에 부친다. 20세 이상이 되어서도 매국노들과 그로부터 어떠한 형태로든지 혜택을 받은 자들은 연좌제로 처벌한다.

처벌 방법은매국노들은 즉결처형하고연좌제 관련자들은 실오라기 하나까지도 모조리 압수하고 발가 벗겨 통나무 하나씩 주어 각자 바다를 헤엄쳐 건너 그들의 종주국 - 왜국이나 미국으로 알아서 가라고 추방한다띵띵거리며 살아온 이 비열한 개들이 ‘죽기 아니면 까무라치기로 살아간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도록 하자는 것이다.

 

미국과 한국의 인권양아치들이 자신들의 범죄를 100% 북에 뒤집어 씌우는데 달인인것을 알지만 이런 연좌제까지도 뒤집어 씌우는 것에 분노한다. 범죄자들의 천국이 된 남녘 한국에서 매도당하는 빨갱이들이야 말로 선한 예수가 아니겠는가? 더러운 악마색끼들이 살인강도질을 하고 인권옹호를 떠들며 강도당한 사람이 흉악하다고 덮어 씌운다. 적반하장이라는 말도 무색하다.

 

<댓글에 추가>

내 지인이 박정희 3선개헌때 반대대모를하다가 경찰에 잡혀갔답니다잡혀온 대학생들이 300명도 넘을 것 같고총학생회에서 저녁식사로 빵을 사와서 나눠줄 정도로 당연시했던거였고통행금지시간이 지나자 열손가락 지문 찍고 인적사항을 적은 후에 집에 돌려보내주더랍니다적막한 밤거리를 1시간여 걸어서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가 하신 말씀입니다. “네가 그렇게 해봐야 늬 집안만 죽게된다아무도 너를 잘했다고 하지않는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없던 그 웬수(지인의 아버지)가 하루는 갑자기 나타나더니 한식경쯤 지나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사랑방에 같이 들었다저녁식사를 사랑방에 들이려고 방문앞에 갔다가 안에서 늬 아버지가 한탄하며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들에게 왜놈들을 몰아내고 독립해야한다고 말하면, ‘그래봤자 이게 양반나라이지 우리같은 사람들의 나라입니까?’라며 외면한다고  그 방문객에게 한탄했다너도 너만 죽을 멍청한짓 하지마라” 라고 하더랍니다.

 

당시는 그저 흘려들었었는데훗날 민족문제에 눈을 뜨기시작하면서 그 한마디 말의 의미가 여러가지로 기가막혔다고합니다.   양반들의 행패식민지에 대한 인식그래서 800만이 넘는 남녀들이 성노예와 노무자로 끌려가고쌀 한톨까지 솓단지까지 약탈당하게된 것…매국노와 독립운동… 사회체제…등등…

 

 마음을 울리는 항일독립투사:  북바로알기: 아홉 살의 항일열사 김금순 _(4.27시대 블로그  2019.03.25)  ..남쪽 일반인들에게 일제강점기 독립을 위해 싸운 여성들의 이름을 열 명쯤 대보라고 하면 열에 아홉이 ‘류관순’에서 더 이상 답하지 못할……...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427era&logNo=221496894671&....Page=1&from=postView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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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인숙(재미동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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