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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 주체사상의 진수, 사상적 알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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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0-05-19 09:12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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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체사상의 진수, 사상적 알맹이

 

 

 

김일성주석님은 길림감옥에서 7개월간의 감옥생활을 끝내고 1930 5월초에 출옥하였다. 그는 출옥하자마자 그의 옥바라지를 해준 손정도목사댁으로 향하였다. 거기서 감사인사를 건네고 그는 <돈화>로 향하였다. 손목사를 비롯해 아버님친구들이 그가 육문중학교를 계속 다니기를 바랐지만 조선인민이 자신과 동지들을 기다리고 있고 파괴된 조직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데 당면한 혁명을 외면하고 학업에만 열중할 수가 없었다. 그는 <돈화>에서 60리쯤 떨어진 <사도황구>라는 산간마을에 머물며 그의 항일운동을 다시 시작하였다.

 

그가 사도황구에 머무르는 기간 공청과 반제청년동맹의 지휘성원들인 김혁, 차광수, 계영춘, 김준, 채수항, 김중권 등 10여명의 동지들이 편지를 받고 찾아왔다. 그들은 최근 동만에서 일어난 <5.30폭동사태>를 비롯한 당시의 정세를 면밀히 분석하면서 <조선혁명의 노선상문제>를 장시간에 걸쳐 토론하였다. 이것이 바로 <사도황구회의>이다. 이 회의에서 그들은 어떻게 하면 조선의 혁명군중을 피바다속에서 구원해낼수 있겠는가, 어떻게 하면 조선의 <민족해방투쟁>을 역경에서 건져내고 승승장구하는 혁명에로 인도할 수 있겠는가 하는 심각한 문제를 토론하였다. 내외의 정세는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이 조국과 민족을 해방하기 위한 성전에서 전환을 일으킬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러한 전환이 없다면 우리 민족이 더 많은 유혈과 참화를 당할 수밖에 없었다.

 

김일성주석님은 전환의 돌파구를 열기위하여 1930 6월에 바로 이런 전환을 마련해야 한다는 결심을 가지고 머리속에 떠오르는 사색의 알맹이들을 수첩에 계속 정리해두었다.

 

그는 교통이 편리한 카륜에서 역사적인 회의를 준비하기위하여 미리 카륜으로 떠났다. 그는 카륜에 한달가량 머무는 동안 사도황구에서처럼 <조선혁명의 진로>를 두고 사색을 계속하였다. 한달간 사색하고 정리한 것을 종합여 [조선혁명의 진로]

라는 보고서를 작성하였다. 그가 이 보고서를 쓰게 된것은 우리 나라의 민족해방투쟁이 <새로운 지도이론>을 요구하고 있는 현실적 절박성을 뼈에 사무치도록 통감하였기때문이었다. 사실상 새로운 지도이론이 없이는 혁명을 한걸음도 전진시킬 수 없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조선혁명의 진로]라는 보고에는 당창건문제를 비롯하여 조선혁명의 성격과 임무, 조선 공산주의자들이 투쟁에서 견지해야 할 근본립장, 등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김일성주석님은 보고초안이 준비되자 그것을 곧 카륜회의에 참가하려고 여러 곳에서 미리 모여온 공청과 반제청년동맹 지도간부들의 토의에 붙이시었다.

 

우선 <조선혁명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하겠는가 하는 문제가 활발하게 토의되었다. 보고에서 밝힌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라는 규정을 두고 논의가 분분했다. 논쟁의 초점은 고전에도 없고 아직 그 어느 나라에서도 내놓은 적이 없는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라는 새로운 성격규정이 혁명의 보편적 원리나 합법칙성에 모순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김주석님은 자신이 조선혁명의 성격을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이라고 규정한 것은 우리 나라에 조성된 계급관계와 우리 혁명 앞에 제기된 과업으로부터 얻어낸 결론이었다고 밝히고 조선민족이 수행해야 할 가장 절박한 혁명임무는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고 우리 인민을 구속하고 있는 봉건적 관계를 청산하며 우리 나라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자세히 해설해주었다. 이런 내용으로 조선혁명의 성격을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으로 규정하게 된 취지를 설명하자 대표들은 이해를 표시하였을 뿐아니라 그것을 열렬히 지지해주었다. 이러한 핵심간부들의 토론을 거쳐 [조선혁명의 진로]라는 보고서가 완성되었다.

 

카륜회의가 정식으로 열린것은 1930 6 30일 밤이었다. 첫날 회의에서 김일성주석님은 [조선혁명의 진로]라는 역사적인 보고를 하였다. 첫날의 회의는 이 역사적인 보고를 청취하는 것으로 마치고 그 다음날부터는 농민들의 일손을 도우면서 강가나 버들숲에서 조단위로 혹은 대표전원이 모여서 보고에서 제기된 과업을 집행하기 위한 대책을 론의하였다. 대표들은 7 2일 밤 다시 모여 회의를 계속하였다. 그날 밤 분공안을 발표하고 회의를 결속하였다.

 

회의가 끝날무렵에 사회를 담당하고있던 차광수가 집행석에서 일어나 다음과 같이 감동적인 연설을 하였다.

 

“조선공산주의자들이 좌절을 당했다고 모두가 가슴치며 통탄하고있을 때 우리는 여기 카륜에서 조선혁명의 새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인 고고지성을 울리었다. 이 여명의 종소리와 함께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은 새로운 궤도를 따라 매진할것이다. 동무들, 즉각 무장을 잡고 일제와의 판가리싸움에 떨쳐나서자!”

 

김일성주석님을 <한별>로 따르며 뭉친 조선청년들이 카륜에서 이처럼 [조선혁명의 진로]를 선포할수 있었던 것은 길림시절에 이미 청년학생운동을 하는 과정을 통하여 조선혁명에 대한 주체적 입장과 태도를 확립하고 공산주의운동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왔기때문이었다. 김주석님은 투쟁의 나날에 심어지고 옥중에서 무르익힌 그 사상과 입장을 [조선혁명의 진로]라는 이름으로 발표하였을 뿐이라고 회고하고 있다. 이것이 곧 조선혁명의 노선으로 되고 지도사상으로 되었다. 이 보고서에 전개된 내용을 보면 모두가 <주체사상>을 핵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조선혁명의 진로]가 발표된 1930 630일을 주체사상의 창시일로 보고 있다. 물론 어떤 사상의 창시는 결코 그 누가 사상의 창시를 선포한다고 하여 되는 것도 아니며 그러한 개념이 언제부터 씌어졌느냐에 의하여 규정되는 것도 아니다. 사상의 창시는 사상의 진수로되는 <사상의 알맹이>가 언제 천명되었느냐에 따라 확정되며 <사상적 알맹이>가 이론적으로 전개되고 심화되며 체계화되는 과정 전체를 전일적 체계를 갖춘 학설로의 완성과정으로 보아야한다. 그런데 일부 이남의 학자들이주체라는 말이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느냐에 주안점을 두고 주체사상의 창시문제를 논하는 것은 유치한 처사이다. 주체사상의 진수를 이루는 사상적 알맹이, 즉 인민의 운명의 주인, 민족의 운명의 주인은 자기자신이라는 사상이 언제부터 천명되었으며 언제 혁명적 노선으로 선포되었느냐에 주안점을 두어 주체사상의 창시과정을 분석하여야 한다.

 

주체사상을 체계화하신 김정일위원장님은 그가 1982 331일에 쓴 논문 [주체사상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셨다.

 

“수령님께서는 고루한 민족주의자들과 행세식 마르크스주의자들, 사대주의자들과 교조주의자들을 반대하고 혁명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시는 투쟁과정에 주체사상의 진리를 발견하시었으며 마침내 1930 6월 카륜에서 진행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지도간부회에서 주체사상의 원리를 천명하시고 조선혁명의 주체적인 노선을 밝히시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주체사상의 창시와 주체의 혁명노선의 탄생을 선포한 역사적 사변이었습니다.”

 

김일성주석께서 카륜회의에서 한 보고 [조선혁명의 진로]에는 무엇보다도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지도사상의 진수로 되는 사상적 알맹이가 심도깊게 정식화되어 있다. 이 보고서는조선혁명의 주인은 조선인민이며 조선혁명은 어디까지나 조선인민 자체의 힘으로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수행하여야 한다는 확고한 입장과 태도를 가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인정합니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조선민족, 조선의 근로인민대중이 조선혁명의 <주인>이라는 놀라운 자각을 가지고 <자체의 힘>으로 조선의 <구체적 실정>에 맞게 혁명을 수행해야 한다는 입장과 태도는 마르크스-레닌주의와 근본적으로 다른 세계관적 입장과 태도이다.

 

< 생산양식>을 사회역사운동의 주재자로, 사회역사발전 과정을 생산양식의 교체에 따르는 자연사적 과정으로, 혁명의 원인과 추동력을 <생산력> <생산관계>의 모순으로 본 마르크스-레닌주의에서는 근로인민을 혁명의 주체로 볼 수 없었다. 그러므로 김일성주석님께서 카륜회의에서 발표하신 보고서에 밝혀진 혁명투쟁의 주체가 바로 근로인민대중이며 혁명투쟁을 추동하는 힘도 근로인민에게 있다는 사상의 세계관적 의미와 혁명적 의의는 사뭇 크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보고서는 혁명일꾼들이 어떻게 혁명활동을 벌려야하는 지를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혁명투쟁의 주인은 인민대중이며 인민대중이 조직동원되어야 혁명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운동지도자들은 응당 인민대중 속에 들어가 그들을 각성시킴으로써 대중자신이 주인이 되어 혁명투쟁을 전개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는 이 보고에서 조선혁명의 자주노선을 제시하면서 조선인민대중 자체의 힘으로 일본제국주의 침략자들을 타도하고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달성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참으로 [조선혁명의 진로]에 천명된 사상은 세계 인구와 영토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식민지, 반식민지 나라 혁명투쟁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오게한 새로운 사상이 아닐 수 없으며 기성의 마르크스-레닌주의 세계관과 혁명이론의 틀 안에서는 생각도 할 수 없고 전개될 수도 없는 독창적인 사상이라고 김정일위원장님은 강조하였다. [조선혁명의 진로]에는 일제하의 우리 나라 사회의 성격, 조선혁명의 성격과 기본임무, 전략전술적 방침들이 전면적으로 명시되고 체계화되어 있다.

 

이렇게 1930 630일 카륜에서 주체사상의 진수를 이루는 사상의 알맹이가 천명되고 자주노선이 확립됨으로써 그 창시가 선포된 후 오랜 기간의 혁명투쟁 경험을 일반화하는 과정을 통하여 주체사상은 심화발전되고 전일적인 체계를 갖춘 사상으로 완성되었다.

 

1970년 이후는 김정일위원장님께서 주체사상을 전면적으로 체계화하고 심화발전시키시었다. 김일성주석님께서는 김정일위원장님의 사상이론적 업적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하셨다.

 

“나는 우리 혁명의 요구와 새로운 자주시대 인민들의 지향을 반영하여 주체사상을 내놓고 그것을 지침으로 하여 혁명과 건설을 영도하여 왔으나 주체사상의 원리를 종합체계화하는 문제에 대하여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는 김정일동지에 의하여 빛나게 실현되었습니다. 그는 주체사상의 근본원리와 진수를 이루는 내용들을 깊이 연구한데 기초하여 우리 당의 지도사상을 주체의 사상, 이론, 방법의 전일적인 체계로 정식화하였습니다. 그리고 현시대와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새로운 원리와 내용들로 주체사상을 더욱 풍부화하고 전면적으로 심화발전시켰습니다. 말하자면 내가 우리 인민의 토양에 씨를 뿌리고 키워온 주체사상을 김정일동지가 무성한 숲으로 가꾸어 풍만한 열매를 거둘 수 있게 하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김일성, [사회주의 위업의 계승완성을 위하여], [근로자] 1996 4)

 

이처럼 김정일위원장님은 김일성주석님께서 창시하신 주체사상을 전면적으로 체계화, 정식화하고 내용을 새롭게 심화발전시키시었다.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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