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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 한기총의 전광훈 목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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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0-02-10 14:4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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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총의 전광훈 목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란?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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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가 펄럭이는 가운데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회장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제18 <문재인 퇴진 집회> 2020 2 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렸다. 전 목사는 문정권이 <동일노동 동일임금제>를 실시하려고 하는 것은 공산주의를 실현하려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3·1절 집회에 2000만 명을 동원해 무혈혁명을 이루자고 선동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재인 저 놈은 그냥 걸어 나올 놈이 아니다. 반드시 빨리 끌어내야 한다. 가만두면 계엄령 선포하고 사고 칠 것이다. 북한에 나라를 넘겨줄 수 없다. 29 3·1절 대회에서 끝장을 내야 한다"

 

전광훈 목사가 연설하는 동안 청중들은 소리치며 환호하였다.

 

나는 도대체 전광훈목사같은 기독교인들이 믿는 신이 어떤 신일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물론 기독교에도 여러 종파들이 있고 종파마다 약간씩 교리가 다르고 성경해석도 약간씩 차이가 있지만 모든 기독교 종파들이 다 유대교의<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일치하고 있다. 종파를 초월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이남의 기독교인들은 신을 믿지 않는 적그리스도의 나라 조선의 인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를 갈망하고 있다. 이들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조선을 기독교화하여 결국 조선을 개혁 개방으로 이끌어 사회주의체제를 붕괴시키려고 의도하고 있다.

 

그러기 위하여 지금 이남이나 미국에서 독단적인 시온주의 기독교인들과 복음주의적 기독교인들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조선에 선교를 하려고 힘쓰고 있다. 이들은 중국과 이남을 거점으로 하여 막대한 자금과 인적 자원을 동원하여 조선에 성경을 보내기도 하고 여러 통로를 통하여 선교사를 파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위에 예를 든 전광훈목사가 이끄는 <한기총>의 예를 보더라도 이러한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조선을 <적그리스도>로 보고 조선을 적대시하고 있다. 조선당국에서도 이러한 대조선 적대시 자세를 갖고 있는 도전적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침투를 막으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조선에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 조선에 적대적인 자세를 갖고 있지 않은 모든 종교인들을 조선은 환영하고 있다. 내가 아는 많은 기독교인들과 스님들이 조선을 돕기위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종교인들이 조국의 통일을 위하여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다. 조선은 조선에 친선적인 마음을 갖고 있는 종교인들과 조국통일에 헌신하는 모든 종교인들을 환영하고 있다. 그리고 조선은 조선을 방문하는 모든 외국인 기독교인들에게 일요일에 교회에 나가 예배를 보도록 배려하고 있다.

 

내가 그동안 조선을 방문하면서 관찰한 바로는 조선에서 기독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들의 선교가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조선의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의  <의식>에 대한 과학적인 견해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무모하게 선교를 시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조선의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에 의하면 모든 종교들이 믿는 < 초자연적인 신>은 결국 인간의 <뇌수(brain)>를 떠나 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인간뇌수의 기능, 작용>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독교인들이 믿는 <인격신> <여호아 하나님>도 주체사상에 의하면 인간 뇌수의 작용, 기능의 산물에 불과하다. 즉 주체사상에 의하면 인간들이 지금까지 믿어온 모든 신들은 인간뇌수가 만들어낸 창작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조선의 대다수의 젊은 청년들은 모두 그렇게 교육을 받고 자라났다주체사상이 새롭게 밝힌 인간의 <본질적 속성들> 중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의식성>이다. <의식성>을 올바로 이해해야  조선선교에 열중하고 있는 독단적인 시온주의 기독교인들과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제기하는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은 <물질>과의 관계 속에서 <의식>에 대한 이론을 전개하였다. 마르크스주의는 <의식> <물질의 반영>, <객관세계의 반영>이라고 규정하였다. 그러니까 마르크스주의는 <의식의 본질> <물질세계>, <객관세계>에서 찾았다. 이 경우 <의식의 원천><물질세계>, <객관세계>에 있게 된다. 물론 이 이론은 <의식>을 신비화하고 의식의 <물질적 기초>를 부정하고, 의식을 절대화하는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관념론>을 반대하는 데서는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의식>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의 이해에는 한계가 있었다.

 

우선 <의식>이란 인간만이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동물들도 <감각>, <지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개념> <판단>, <추리>라는 것을 동물에게서 찾아보기 힘들다. 동물의 감각, 지각은 의식발전의 낮은 단계를 표현할 뿐이다. <의식>이라고 말할 때는 감각으로 출발해서 개념, 판단, 추리에 이르기까지 전일적인 과정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의식>을 가진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의식의 본질>을 인간이 동물과 다른 인간이 <사회적 집단>을 이루고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며 활동하는 데서 찾아야 한다. <인간>을 고찰의 중심에 놓고 <의식의 본질>을 논해야 의식에 대한 보다 높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

 

물론 인간은 마르크스주의에서 강조하듯 <객관세계>를 정확히 <반영해> 가지고 객관세계의 특성에 맞게 활동해야만 행동에서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객관세계를 정확하게 반영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것은 인간행동의 성과를 거두기 위한 중요한 조건으로 된다. 그런데 인간은 <객관세계의 법칙>대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객관세계의 법칙의 작용도 자기에게 복종시키겠는가 하는 견지에서 활동한다. 인간은 객관세계를 복종시키기 위하여 객관세계를 자기의<요구> <이해관계>에 맞게 개조하기 위해서 활동한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세계를 지배하고 개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의 활동에서 <의식>이 노는 역할의 견지에서 볼 때<의식>이라는 현상을 단순히 객관세계를 <복사, 모사, 촬영하는 것>으로만 보아서는 의식의 현상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은 어디까지나 자기의 <요구> <이해관계>에 맞도록 활동한다. 인간은 <객관세계>가 하라는 대로만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고유한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객관세계를 자기에게 복무시키기 위하여 활동한다. 이 인간의 활동을 규정하고 지휘하는 것이 바로<의식>이다. 따라서 <의식의 본질>을 올바로 밝히자면 인간과의 관계, <사회관계>에서 의식의 본질을 찾아야 한다. 이점을 고려하여 주체사상은  다음과 같이 <의식성>을 정의하고 있다.

 

“의식성은 세계와 자기 자신을 파악하고 개변하기위한 모든 활동을 규제하는 사회적 인간의 속성이다.”

 

좀더 풀어 설명하면, <의식성>은 세계와 인간 자신을 우선 이해하고 세계를 개조하고 인간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기 위한 사회적 인간의 속성이다. 인간은 객관세계를 있는 그대로 기계적으로 복사해서 거기에 맞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요구> <이해관계>에 맞게 두뇌 속에 들어 온 형상도 목적의식적으로 개작하고 변형하여 앞으로 자기의 행동의 결과를 미리 예상하면서 행동의 목적을 세워 활동한다. 따라서 <의식의 본질>을 역시 <인간과의 관계>, <사회관계 속>에서 찾아야 한다. 마르크스가 주장했듯이 <의식> <물질세계의 반영>이라는 것은 맞지만, <의식의 본질>을 거기서 찾는 것은 일면적이다. 따라서 의식의 본질을 <객관세계의 반영>이라는 데서 보다도 사회적 집단을 이루고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며 활동하는 <사회적 인간> <생명의 중심><뇌수>가 인간의 활동을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것>으로 만드는 <기능>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니까 인간이 외부세계를 반영하는 것은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기초해서 외부세계에 대하여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작용하기 위해서이다. 결국<의식>이라는 것은 주체사상에 의하면 <인간의 뇌수가 인간의 활동을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것으로 만드는 기능>이다. 다시 말하면, 의식이란 인간의<사회적 속성>이다. 따라서 의식의 본질을 <객관세계>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속성>에서 찾아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주체사상에서는 의식을 <사물의 본질과 합법칙성을 반영한 의식형태> <인간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의식형태>로 구분하고 있다. 주체사상에서는 전자를 <지식>이라고 말하고, 후자를 <사상의식>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주체사상에서는 의식을 <지식으로서의 의식> <사상의식으로서의 의식>, 두 가지 의식형태로 구별하여 쓰고 있다.

 

여기서 인간의 행동과 활동에서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은 사람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한 의식형태인 <사상의식>이다. <사상의식>은 인간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기에 인간의 모든 행동과 활동을 조절통제하며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를 개조하고 인간의 운명을 개척하는 활동을 하게 하는<추동력>으로 된다. 그러기에 인간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기 위하여서는<인간> <사상>을 발동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시 해야 할 것은 주체사상에서 정의내리고 있는 <의식>이라는 것이 가장 발전된 물질적 존재인 인간, 인간의 몸 중에서도 가장 발전된 유기체인<뇌수(brain)><고급한 기능>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주체사상에 의하면 모든 종교들이 믿는 <초자연적 신>은 인간의 <두뇌>밖에 따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존재자>, <인격체>가 아니라, 가장 발전된 유기체인<인간뇌수의 고급한 기능>의 산물이다.

 

그러니까 독단적인 시온주의 기독교와 복음주의적 기독교를 비롯한 각종 종교에서 말하는<여호와>, <엘로힘>, <알라>, <삼신 상제님>, 등의<초자연적 신들>도 결국은 인간의 두뇌가 <가장 이상적인 존재, 즉 무소부재하고 전지전능한 존재>로 투사하여  만들어 놓은 고급한 기능의 산물에 불과하다. <의식>이 발전하지 못했던 옛날에 인간은 하늘 저 어디에선가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우리 인간의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그러한 흰 수염을 가진 <전지전능한 할아버지>같은<인격신>이 존재하는 것으로 믿고 거기에 예배하며 살아왔다. 인간들이 살고 있는 현실이 고통스러울수록 비록 현실에서는 누리지 못하지만 죽어서 내세에서라도 인간들은 황금보석으로 장식된<천당>에서 복락을 누리며 영생하기를 기원하고 그곳을 동경하며 살아왔다.

 

최근에 연구가 많이 되고 있는 <도마복음서>에는 <천당>에 대한 예수의 재미있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도마복음서3절에서 예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가 하늘에 왕국(the kingdom in heaven)이 있다고 말하면 너희가 천국(heaven)에 가기전에 새들(birds)이 먼저 갈것이고, 그것이 바다에 있다고 누가 말하면 물고기(fish)가 너희보다 먼저 갈것이다. 왕국은 너희 속과 너희 밖(within you\and outside you)에 있느니라.”

 

도마복음 113절에서 예수는아버지의 왕국이 지상에 널려 있다. 사람이 그것을 보지 못할 뿐이다.”(the kingdom of the Father is spread out on the earth\and men do not see it)라고 말했다.

 

초대기독교회가 생겨나기전의 역사적인 인간 예수도 천당이 저 하늘이나 바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 속에 있고 인간 밖의 지상에 널려있다고 보았다. 주체사상에 의하면이 천당이나 극락세계는 다 인간 두뇌의 고급한 기능의 산물인 이상촌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간이 불완전한 존재이고 한치 앞을 못보는 불안한 존재이기에 과학이 고도로 발전된 디지털 시대에 사는 많은 지성인들도 역시 자기 두뇌가 투사하여 만들어 놓은 전지전능한 <초자연적 신>에게 자기 운명을 맡기고 그 신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하다.

 

주체사상에 의하면 사람은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이다. 사람은 <초자연적 신>의 섭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본질적 특성인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내면에 지니고 있기 때문에 자연과 사회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자주적이며 창조적인 생활을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뇌수의 작용으로서의 <의식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여 그 어떤 일을 하든지 그것이 자기에게 이로운가 해로운가 하는 것을 먼저 판단한 기초 위에서 모든 활동을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벌여나간다. 동물과 달리 사람은 모든 활동을 아무런 착상도 하지 않고 무턱대고 하는 것이 아니라 뇌수 속에서 구상과 계획을 세우고 진행해나간다. 사람은 <의식성>으로 하여 세계의 본질과 그 운동발전의 합법칙성을 파악하며 자연과 사회를 자기의 요구와 이해관계에 맞게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해나간다. <의식성>에 의하여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이 담보되며 그 합목적적인 인식활동과 실천활동이 보장된다.

 

이와 같이 사람은 <초자연적인 신>의 간섭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하여 세계에서 가장 우월하고 힘있는 존재로 되며 세계를 숙명적으로가 아니라 혁명적으로, 수동적으로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대하고 세계를 맹목적으로가 아니라 목적의식적으로 개조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초자연적인 신이 아니라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람이 바로 세계의 유일한 지배자이며 유일한 개조자라는 사실을 모든 조선의 청녇들은 학교에서 배우고 있다. 그러니 조선의 청년들이 독단적인 복음주의 기독교인들과 시온주의 기독교인들이 선교하는 <여호와 하나님>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남과 미국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조선에 선교를 해보았자 성공할 확률이 거의 없으니 선교를 포기하고 서로의 다른 사상과 종교적 신념을 상호 존중하고 친선을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자기 종교에만 구원의 길이 있다고 생각하고 조선의 인민들을 단지 <선교의 대상>으로 삼고 무모하게 선교를 시도할 것이 아니라, 주체사상을 지도사상으로 받들고 살고 있는 조선인민들을 <인격체>로 대하고 그들이 믿고 있는 주체사상도 존중하고 서로 대화를 통하여 함께 성장 발전하는 포용적인 자세를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된다. 조선을 <적그리스도>로 보고 조선의 붕괴에 힘쓰고 있는 전광훈같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은 자기들이 믿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이 실제로 존재하는 <인격신>이 아니라 단지 <의식의 기능의 산물>이라는 주체사상의 독창적인 견해를 깊이 통찰하고 각성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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