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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2012년 지도자상과 씨저스 수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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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1-08-17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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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2012년 지도자상과 씨저스 수령관

김상일(전한신대학교 교수)

2012년과조선의 별

구태여 마야 역을 가지고 말하지 않더라도 2012년은 대 격동의 해이다.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한국의 국가 지도자들이 모두 바뀌는 해이다. 마야 역에 의하면 2012년은 태양이 은하수의 중심과 일렬로 나열되는 해로서 기원전 3113년을 기점으로 하여 5125년 만에 한 주기가 끝나는 해이기도 한 해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2012년은 김일성주석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로서 북조선은 강성대국 건설 원년으로 손꼽는 해이다.

월드 쇼크 2012에서 다니엘 핀치백(뉴욕 타임즈 논설가) 2012년에 나타나야 할 지도자상을 두고씨저의 마음예수의 영혼을 결합시킨 상이이어야 한다고 했다. 고대 로마의 황제 씨저 Caeser와 갈릴리의 청년 예수 Jesus를 결합하여 필자는 나름대로 이를 ´씨저스 Caejus´라고 신조어를 만들어 본다.

핀치백은 이어서 이러한 지도자는 다름 아닌 니체가 말한초인 Superman’ 과 같은 존재라고 한다. 이러한 초인은 온 것인가, 오고 있는 것인가, 올 것인가. 온다면 언제 어디에 올 것인가. 세계열강들이 2012년에 맞추어 적격의 자기들 지도자 선택하기에 골몰할 것이다.

교회 주일학교에서나 동화 같이 듣던 동방박사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들린다. 적어도 위대한 인물의 탄생은 우주자연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동화가 오늘날 가지고 있는 의미가 아닐까. 1920년 대 말 조선의 청년들이 불렀던조선의 별도 마야 역과 상관하여 상관해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어서 이 글을 쓴다.

씨저와 예수 제자들에게 무엇이 부족했나.

씨저나 예수 모두 그 역사적 배경이나 인물에 대하여서는 여기서 새삼스럽게 사족을 달 필요가 없을 정도로 유명하고 위대한 인물들이었다. 예수의 정신에 따라서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완전히 유무상통하는 공산주의식 생활방식을 채택하였다. 당시의 생활상을 누가라는 제자는사도행전에서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많은 신도가 다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서, 누구 하나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팔아서 그 판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고, 사도들은 각 사람에게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사도행전 4 32-35)

그러나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두 남녀의 사욕과 탐욕 때문에 초기 공동체의 이상은 좌절되고 말았다. 그 이후에도 초대 교회의 이상을 실현해 보려는 노력들이 기독교 교회사에 부단히 이어졌지만 성공적이지 못하였다. 종종 마르크스 사상을 기독교의 사생아적인 것으로 보든지 아니면 일란성 쌍둥이로 보는 이유는 바로 유대인으로서 마르크스가 예수의 이상향과 구약 예언자들의 평등 사회를 실현하려고 했다는 점에서는 이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꿈은 100 여 년 만인 1989년 구 소련의 붕궤와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들의 몰락과 함께 좌절되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소련의 경우 씨저 같은 스탈린은 있었어도 예수 같은 인물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루마니아의 챠우체스키 동독의 호네카 등등, 이들 지도자들에게는 씨저같은 강한 총칼의 힘은 있었지만 예수같은 인간애가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나름대로 생각해 본다.

다른 한 편 기독교 초기 공동체가 파손된 이유는 사도들에게 예수의 마음은 있었는지 몰라도 씨저 같은 군사 정치적 총대의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위의 사도행전의 글을 읽을 때에 신도들은 집과 땅을 팔아 그 돈을 사도들의 발 앞에 가져다 놓았고, 그러면 사도들은 그 돈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주먹구구식 재정 운영 방식이었다. 그것마저 사도들은 재정을 관리할 사람을 따로 뽑아 놓고 사도들은 복음 전도에만 전념하겠다고 한다. 불교식으로 말하는 사판 事判 자유방임 시켜 놓고 리판 理判 에 만 전념했다는 뜻이다.

기독교 초기 공동체가 무너진 이유가 분명해 졌다. 구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진 이유도 여기서 분명해졌다. 여기서 대안은 저절로 추리된다. 씨저 같은 정치 경제 군사적 총칼을 가진 지도력과 예수같은 종교 도덕적 영성을 지도력의 조건으로 한 몸에 지닌 지도자상이 2012년과 함께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핀치백이 글에서 주장하는 바 요점이다. 그러나 초인 혹은 고도 Gotto는 이미 온 것인가 올 것인가.

혁명적 의리가 부족했던 씨저

개선한 시저를 황제의 야심에 불타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그를 시해하려는 캐시어스와 그들의 음모에 정의감에 불타 가담한 브루터스가 3 15일 원로원 의사당에서 씨저 살해라는 거사에 돌입한다. 그러나 민심을 잃고 도주한 그는 캐시어스와 더불어 거병, 필리파이의 전투를 벌이나 반대 세력인 안토니우스, 옥타비우스, 레피더스 등에 의해 패하여 처절한 최후를 맞게 된다.

섹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의 참담한 결말은 어느 의미에서는 씨저의 의지와 브루터스의 의지와의 상극적인 충동이라고 볼 수 있다. 로마는 시저와 그의 용맹스런 장군들은 혁혁한 공적으로 방대한 영토를 그의 손아귀에 거머쥐었다. 그 광활한 영토를 평화롭고 질서 있게 통치하려면 오직 총명함과 영단력으로 다스리는 전제정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 이 씨저의 주장이며 사상이었다. 그러나 브루터스는 어디까지나 인간애와 민권주의적 자유사상의 신봉자이다.

이것이 시저와 브루터스를 정신적 그리고 이념적으로 갈라놓게 한 원인이었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신뢰하던 정치노선의 동반자이자 친구인 브루터스에게 배신 당 한 시저는 권력의 화신인가? 아니면 권력투쟁의 희생자인가? 또한 아버지처럼 존경하던 최고 권력자 시저의 숨을 끊는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린 브루터스는 정치적 이상주의자인가? 시저와 브루터스, 이 두 사람의 대립을 통해 밝혀지는 권력에 대한 인간의 무한대의 욕구를 통해 이 시대의 정치와 인생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이 두 사람 사이에는 정치적 혁명을 같이 이룩하기는 했으나 서로 간에 신뢰와 의리도 동지애도 없었다. 그래서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제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수의 제자들에게 한 가지 부족했던 것

여기서는 예수와 예수들의 제자들을 구별해 생각하려 한다. 예수의 경우에도 씨저와 같이 자기의 제자에게서 배반을 당한다. 유다라는 제자가 자기의 스승 예수를 은 30 달란트에 팔아넘긴다. 유다의 그러한 행위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브루터스같이 자기의 스승을 배반한 이유가 뚜렷하지는 않았지만 유다와 예수 사이에는 생사를 걸 만큼 심각한 균열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예수는 자기를 반대하는 자들을 향해 칼을 빼든 제자들을 향해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고 하면서 칼 집에 칼을 다시 꽂을 것을 권했다. 폭력에 대한 이러한 예수의 태도는 무저항주의와 평화주의의 화신으로 예수를 묘사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이러한 예수 전승의 기록이 얼마나 예수 자신의 말이고 행도이었는지는 논란이 있지만 기독교 교회역사는 예수의 이러한 태도에 일관성을 가질 수가 없었다. 아니 이 지구상에 나타난 기독교 국가들은 인류 역사상 그 유례가 없을 정도로 총검으로 인간들을 살상하고 재산을 약탈하고 다른 나라들을 침탈해 왔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세계 선교와 함께 기독교는 3M 정책을 구사하였다. 군대 military, 선교 mission, 장사 merchant가 그것이다. 선교사들은 자국의 군대와 장사꾼들의 배를 타고 선교를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총대 없는 복음이란 뼈 없는 무척추 동물과 같다는 사실을 기독교가 알았다는 것이다. 그 이전 중세기 동안에도 기독교는 기독교 복음에 반대되는 행위를 하거나 말 하는 자들을 가차 없이 처단하였다.

이슬람이란 종교는 아예 한 손에는 총검을 잡고 다른 한 손에는 코란을 들고 선교를 하였다. 차라리 기독교보다 솔직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평화를 가장한 기독교의 위선적 폭력 보다는 더 정직하고 솔직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총대와 복음은 분리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슬람이 더 정직하게 실천했다고 할 수 있다.

씨저도 실패 했고 기독교도 실패 했다. 씨저는 총검으로 천하를 정복하고 무자비한 전제 전제주의적 정치를 통해 세상을 지배하고 다스리려 했다. 그러나 그에게 부족했던 동지에 대한 신뢰와 사랑 때문에 그의 동지 브루터스의 손에 죽고 말았다. 씨저에게 결핍된 것은 예수와 같은 인간에 대한 따듯한 애정과 인간의 권리에 대한 존경심의 부족, 바로 그것이었다. 예수는 씨저의 부족한 한 단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유무상통하며 인간 상호간에 신뢰와 사랑에 바탕 한 것이었다. 그러나 개인적 인간 욕구의 조폭성과 조야성을 너무 가볍게 보았다. 그것을 어떤 때는 힘으로 다스리고 제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고 너무 단순하게 여기고 말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깨달은 기독교는 그 어느 종교보다 무섭게 십자가 군병의 이름으로 병기를 다른 손에 잡게 되었다.

앞으로 나타날 미래의 지도자상은 씨저와 예수 상을 결합한 씨저스이어야 할 이유가 분명해 졌다. 한 지도자가 한 몸에 이를 지니지 못할 때에 그 난폭성은 비참하고 처절하다고 할 수 있다. 로마의 결말과 기독교의 종말은 여기서 예견된 것이다.

초인은 이미 도래했다

자유, 평등, 박애는 프랑스 혁명의 3대 구호였고 그것이 기독교 정신에서 유래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지금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타산지석처럼 바라 볼 때에 지금 서양 제국들에는 자유도 없고, 평등도 없고, 박애도 없다.

지금 서양제국에서 자유 평등 박애가 소멸된 이유를 북조선의 주체사상은 이렇게 진단한다. “지난 시기 사람들이 자유와 평등을 이처럼 귀중히 여긴 것은 전적으로 옳은 것이었다. 그러나 그자유는 개인의 생명을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개인주의적 생명관에 기초한 것으로서 구속과 예속을 반대하는 데 주 목적을 두고 있었으며, ‘평등은 등가보상의 원칙이 작용하는 평등이었다. 이러한 평등은 사랑을 필수적인 것으로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인간을 이해타산에로 이끌었다”(임전, 주체의 혁명적 수령관 연구, 1992, 112)

이어서자유와 평등에 관한 주체사상의 독창성은 자유와 평등의 원리를 구속과 예속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데 국한시켜 보지 않고, 인간의 자주성을 옹호하는 원리로 제기하는 데 있다. 인간은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그 무엇, 그 누구에게도 예속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자주적인 존재이다.”

주체사상적 입장에서 프랑스 혁명을 비판한 것이다. 주체사상에서 말하는 박애 혹은 사랑은등가보상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사랑할 때에 서로 서로 대가를 서로 바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등가보상적이지 않다고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말하는 사랑의 논리는 등가보상적 give and take이다. 심지어는 구 시대의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나 주체사상은 말하기를 진정한 사랑은 등가보상적이지 않는 것이어야 하고 이러한 사랑을동지애라고 한다.

이러한 동지애로 하나의 유기체가 형성된 공동체를사회정치적 생명체라고 한다. 주체사상의 동지애가 기독교의 사랑과 다른 점은 후자가 개인의 덕성에 관한 것이라면, 전자는 그것이 사회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적 사랑은 프랑스 혁명에서 박애 정신으로 이어지지 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것이었다.

혁명적 의리와 동지애라는 두 원리

주체사상에 의하면 사회정치적 생명체에는 두 가지 원리가 있는 데 그 하나가 동지애이고 다른 하나는혁명적 의리이다. 씨저와 그의 동료들 사이에 아킬레스 건 같이 결핍돼 있었던 것이 바로 혁명적 의리이다. 서로 불신하고 서로 의심하면서 권력 쟁취에 혈안이 돼 있는 오늘날 서구 자본주의 국가의 정치판은 고대 로마의 그것과 하나 다른 것이 없다.

그러면서 이런 시각에서 북조선을 바라 볼 때에 권력 승계가 제대로 안 되어 망하고 궤멸될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측과 추측은 항상 빗나가고 말았다. 사회정치 생명체의 두 원리를 몰랐기 때문이다.

소위 3대 세습 운운하지만 북조선의 군부와 정치지도자들에게서대를 잇는 다는 말은혁명적 의리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 김일성 동지와 함께 혁명을 같이한 의리 때문에 천대 만대 이어져도 그것은 불변의 원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혁명 동지들 간에는 등가보상적 사랑이 아닌, 부모 자식의 관계 같은 동지애로 결속돼 있다는 것이다. 김일성 주석은 혁명의 동지인 동시에어버이 수령이다. 동지에 대한 의리와 부모 자식 관계 같은 동지애로 일심동체가 되어져 있는 사회가 바로 사회정치적 생명체인 것이다.

그가 바로 초인 씨저스였다.

사도행전을 다시 읽는다. “많은 신도들이 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서, 누구 하나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여기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초대 교회는 이러한 이상이 이루어지자면사회정치적 생명체로서의 공동체가 아니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혁명적 의리동지애로 결속된 공동체 안에서만 이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씨저같은 용맹성과 영명성을 지니고 예수같은 사랑으로 무장된 즉, 씨저스같은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에 로마도 기독교도 몰락의 길을 걷고 말았다. 예수가 총대를 부정한 것 같지만 그것을 부정한 것은 예수가 아니고 그가 세운 교회 지도자들이었다. 막상 예수는너희에게 평화를 주러 온 검을 주러 왔다고 했다.

드디어 1930년 대 백두산의 정기를 타고 동북아 일대의 산과 들을 말 타고 달리던 초인이 이미 우리 앞에 나타나 도래해 있었다. 그의 목에는 쌍안경이 항상 걸려 있었고, 그의 허리에는 그의 아버지가 물려준 권총 한 자루가 늘 채어져 있었다. 일행천리와 동격서성등 손자병법에도 없는 온갖 전술과 전략을 구사하며 일본제국주의 군대들을 추풍낙엽같이 쓸어 높였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면 누구나 그는 고대 로마제국의 씨저같이 용맹스럽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인민 대중을 계몽과 교육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인민들을 사랑하고 그들로부터 사랑을 받지 않고는 한 시도 살수 없는 것이 마치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는 9.18 사변 이후 인민대중을 보는 눈을 이렇게 정리한다. 인민 대중 속에 있어야 한다. 인민대중을 정치적이게 해야 한다. 인민대중을 혁명에로 무어내어야 한다. 이것이 김일성의 사회정치 생명체 관을 형성하는 배경이 된 것이다. 북조선이 오늘 까지 대를 이어 갈 수 있는 이유는 혁명적 의리 동지애를 하나로 결합 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이는 마야 연구학자들이 2012년에 도래하기를 기다리는 초인 씨저스이다.

그러한 초인이 있어서 우리 7천만 민족은 2012년을 아무런 두려움도 없이 낙관적인 희망을 가지고 맞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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