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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김대중 대통령 구출활동에 나섰던 선우학원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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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9-08-25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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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손세영 편집위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치루어지면서 고인의 85년 생애 가운데 그가 죽음의 고비를 여러 차례 겪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때 마다 재미동포들의 역할이 지대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의 구출운동에 직접 관여하고 주동역할을 한 인물 중 한 사람인 재미동포 통일운동 원로,  선우학원 박사(92)를 만나 김대중 선생의 구출운동과 관련하여 그의 민족민주운동 발자취들을 알아보았다.
선우학원 박사와의 대담은 22일 오후 코리아타운 한 식당에서 이뤄졌다.



선우학원 박사(왼쪽)가 민족통신 손세영 편집위원과 특별대담하늠 모습

[특별대담]김대중 대통령 구출활동에 나섰던 선우학원 박사

주로 재미동포들이 극한 상황에서 구명운동 전개



[로스엔젤레스=민족통신 손세영 편집위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치루어지면서 고인의 85년 생애 가운데 그가 죽음의 고비를 여러 차례 겪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 때 마다 재미동포들의 역할이 지대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의 구출운동에 직접 관여하고 주동역할을 한 인물 중 한 사람인 재미동포 통일운동 원로, 선우학원 박사(92)를 만?김대중 선생의 구출운동과 관련하여 그의 민족민주운동 발자취들을 알아보았다. 선우학원 박사와의 대담은 22일 오후 코리아타운 한 식당에서 이뤄졌다.

선우학원 박사
[손세영 민족통신 편집위원 질문]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가 한국에서 <국장>으로 치러져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박사님은 민주운동과 통일운동에 가담하게 된 계기가 김대중 전 대통령 구출운동과 관련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계기를 듣고 싶습니다.

선우학원: 70년대 초 김대중 납치사건 때라고 대답한다.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직후 고 임창영(전 유엔대사, 구출위원회 위원장), 이승만 (목사, 미국장로교회 총회회장, 미국교회협의회 회장역임, 구출위원회 총무)과 함께 김대중 구출운동 국제위원회를 만들어 내가 부위원장 직을 맡으면서 지금은 고인들이 된 미주서부지역의 김상돈, 차상달, 홍동근, 김정순 등과 함께 남한 민주화운 동에 본격적으로 가담했고 동시에 통일운동의 선두에 나서게 되었지요. 그 때 우리들은 김대중 선생의 구출운동을 위해 국제사면위원회를 포함하여 미국무성, 미국무성이 미국정보국과 일본 당국에 연락하여 박정희 정권의 중앙정보국 요원들이 벌인 납치사건을 저지하기 위하여 헬리콮터가 기동하는 등 대대적인 구출작전이 벌이지기도 하였지요. 김대중 선생은 한국정보요원에 의해 묶여서 바다에 쳐 넣을 운명에 직면한 상황에서 재미동포들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구출되었다고 볼 수 있어요. 그리고 19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문제로 주동자라로 낙인 찍혀 전두환 군부로부터 사형선고를 받고 죽음에 직면했을 때 역시 우리들은 하바드 대학의 코헨 교수를 움직여 한국의 감옥을 방문케 하여 구출여론을 불러 일으켰고, 지미 카터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사형선고를 면제해 달라는 호소문을 요청하여 죽음을 면한 일들도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김대중 선생의 구출운동은 재미동포 민족민주운동 진영 인사들에 의해 전개되었다고 회고됩니다.

[질문]박사님, 고 김대중 대통령님에 대한 평가는 그의 서거 후 더욱 빛나게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인에 대한 영결식과 관련하여 극도로 경색되었던 남북문제, 북미문제 및 국제사회 여론이 화해와 협력, 평화에 대한 이야기들로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박사님이 평가하는 고인은 어떤 분이신가요?

선우학원: 첫째로 김대중 선생은 유능한 정치가이자 애국자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분단이 후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어 내는데 북측의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주역이 된 것은 우리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입니다. 그것의 성과가 6.15남북공동선언의 선포였습니다. 그의 역할은 백범 김구 선생이나 몽양 여운형 선생과 같은 수준이라고 생각됩니다. 둘째로 고인은 통일운동이 민족을 살린다는 철학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의 통일에 관한 관심은 그 어느 남녘 정치인들에 비해 남달리 깊었습니다. 셋째로 고인은 정의감에 투철했고 진지했으며 백절불굴의 투쟁정신을 가진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고통과 고난의 벽을 뛰어 넘고 승리하는 삶을 살수 있었습니다.

[질문]박사님, 우리 해외 민족민주운동권이나 남녘 운동권에서 한 때 <선민주 후통일>, <선통일 후민주> 논쟁이 한창이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논쟁이 과거에 비해 수그러진 상태이지만 아직도 운동권 주변에는 색깔논쟁으로 운동을 2원화시키려는 움직임이 없지 않은데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선우학원 박사(왼쪽)가 민족통신 손세영 편집위원과 특별대담.
선우학원: 한국의 민주화 운동이나 남북 통일운동은 그 어떤 선후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운동과 통일운동은 시기와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강조할 때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어느 것을 먼저하고 어느 것을 나중에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올바른 운동자세라고 볼 수 없어요. 사실은 한국민주화 운동이나 남북통일운동은 함께 결합해서 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두 운동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같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한국민주화 운동은 곧 그 목표가 한국의 자주화운동, 즉 외세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운동이기 때문에 이것은 곧 통일운동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입니다.

[질문]박사님은 지난 시기에 한국민주화 운동 뿐만 아니라 조국통일운동, 이북과의 교류운동, 학자들 심포쥼 운동 등 다양한 운동을 전개하여 오셨는데 간단히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선우학원: 내가 통일운동을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나는 당시 대부분의 지성인들이 반 군사독재 민주화 운동에만 몰두할 때 통일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운동은 1979년 도꾜에서 열린 민족통일 심포쥼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되었지요. 이 행사가 80년에 다시 도꾜에서 열렸고 3회째 워싱턴 디씨에서 개최된 것도 그런 정신의 발로였지요. 그 당시 고 송석중 박사, 김동수 박사가 동조하였고 남한 외무부 장관과 천도교 교령을 지내던 고 최덕신 선생의 참여 등 60여명의 인사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반공세력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이 행사는 차질 없이 진행되었고 그후 로스엔젤레스에서 3차례, 그리고 다시 워싱턴 디씨에서 한차례 더 열려 미주 땅에서 진보적인 인사들이 주최하는 민족통일 심포쥼이 5번이나 지속될 수 있었고 유럽과 아시아지역에서 열린 행사들을 합치면 모두 15차례의 심포쥼 행사들이 성황리에 개최되어 왔습니다. 이 행사 주체들이 발행하는 논문집, <민족통일>은 매년 출판되어 해 내외 동포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켜 왔습니다. 이러한 통일운동은 그 이후 1990년 조국통일범민족연합 운동으로 발전하였고,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 이 후에 들어 와서는 6.15민족공동위원회 운동으로 도약하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사상과 이념, 신앙과 정견을 초월하여 같은 민족끼리 손을 잡고 통일을 이루자는 6.15시대, 10.4시대가 도래하였기 때문에 그 누구도 이를 거스를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사의 대세이기 때문입니다.

[질문]몇 년 전 박사님께서 노무현 정부기관 초청으로 서울에 가셔서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셨는데 그 때의 추억을 듣고 싶습니다.

선우학원: 2003년 9월23일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회장:박형규 목사) 초청으로 오랜만에 서울에 들어가 청와대를 방문하여 노무현 대통령도 만났고, 그 방문 기간에는 또 해외 외국인들(한국민주화운동 지원자들)과 함께 김대중 선생 댁을 방문하여 환담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나는 1960년대 초 코리아헤랄드(대한공론사) 영자신문 주필을 하던 시기에 이휘호 여사가 나를 찾아와 남편 김대중 선생을 위해 자문과 도움을 요청하여 내가 미국으로 돌아 와서 미국대학에서 특별강연을 하도록 추진하였는데 결국 그의 사정으로 이뤄지지 못한 일도 있었습니다. 2003년 김대중 선생과의 만남은 결국 구면인 셈이죠. 지금은 두 분 다 고인이 되어 한국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남북화해와 협력을 위해 모범을 보여 온 인물들이 2009년 들어와 3개월 사이에 모두 세상을 떠나 마음이 아픕니다.

[손세영 민족통신 편집위원]박사님, 오늘 22일 한인회관에 마련된 빈소에 조문을 하시기 위해 코리아 타운에 나오셔 감동받았습니다. 그리고 90대 고령에도 불구하고 민족통신의 재정후원회 상임고문을 맡아 지원해 주시면서 그 동안 북미관계에 대한 정세분석을 비롯하여 각종 옥고를 보내주시면서 집필활동을 하시는 모습을 보며 저희 해외동포들은 물론, 남과 북녘 동포들도 감동과 감명을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이 저희 후진들에게 가르침을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대담을 위해 시간을 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출처 : 민족통신 손세영 편집위원 2009-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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