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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이병태의 평양-백두산-묘향산-청천강 방북기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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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8-12-04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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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쉽다, 보현사『팔만대장경』보존고’

이병태 (남북치의학교류협회 상임대표, 수필가)

이 연재 글은 치과의사인 이병태 원장이 지난 9월 27일부터 30일까지 3박4일간 ‘평화3000’(이사장 신명자)이 주최한 북측 지원사업장 방문단 일원으로 참관했다가 쓴 방북기이다. 이 방북기는 평양-백두산-묘향산-청천강의 순서로 7회에 걸쳐 연재될 것이다. 현재 이병태 원장은 치과의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아울러 치의학 관련 남북교류사업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쓰고 있다. / 편집자 주

묘향산 공부 (6) 보현사를 뛰어다니다

   
▲ 보현사 경내 만세루에서 북측 학생들의 장기자랑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이병태]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벌서 많은 참배객들이 빼곡할 정도였다. 북측 교육제도는 자세히 모르겠으나 내 짐작으로 중3 정도로 보이는 학생들로 경내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었다. 만세루에서는 남녀 학생들이 장기 자랑을 하는 듯했다.

선생님이 사회를 보고 학생은 노래를 하고 끝나면 환호를 하며 박수를 쳤다. 옛 생각이 나는 장면이었다. 나는 그 학생들에게 몇 살? 몇 학년? 어디서 왔지? 등 묻고 싶었지만 시간에 쪼들려 그냥 지나쳤다.

   
▲ 북측 남녀 학생들이 성지순례를 하고있다. [사진-이병태]

우리 때문인지 대웅전 참배 직전의 남녀 학생들이 줄서서 대기 중이었다. 우리가 지나갈 때까지 줄서서 기다렸다. 그들을 뒤로 하고 뛰듯이 다니며 사진을 찍는 내가 우습게 느껴졌다.

확실했다. 우리 때문에 그 학생들의 참배가 중단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방북단에게 보현사를 건너뛰려던 것은 북측 청소년 학생들이 집체적으로 순례하기에 우리들과 혼성될까봐 조금은 꺼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정에 지장을 주지는 않았지만 버스에 제일 늦게 탄 사람은 나였다. 그러나 나는 어느 한 곳에서 넋을 놓고 있거나 앉아서 상념에 젖은 적도 없다. 제 아무리 전자장치라지만 디지털 카메라 셔터가 시간을 따라 주지 못했다.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더니 주마향산(走馬香山)이었다.

묘향산 공부 (7) 보현사 실체

   
▲ 서산대사 사명당 처영을 제사지내던 수충사. [사진-이병태]

고려 4대 광종19(968)년에 탐밀(探蜜)이 묘향산에 들어와 고려 8대 현종19(1028)년에 안심사를 짓고 불사했다. 그 후 제자 굉확이 고려 10대 정종8(1042)년에 안심사 동남쪽에 정사(精舍)를 짓고 보현사라고 했다.

조선조로 들어와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가 머물렀으며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는 이곳에서 승병을 일으켜 대항했고 여기서 입적했다. 평안북도에서 가장 큰 절이었으며 한 때는 3,000여 승려가 머물렀다.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에도 보현사는 크게 중창되었다.

조선조 14대 선조36(1603)년부터 16대 인조6(1628)년까지 25년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다. 역사적으로 참 큰일이었다. 지금 있는 보현사의 건축물은 조선왕조 21대 영조41(1765)년에 고쳐 세운 것이다.

묘향산 공부 (8) 보현사 여기저기

   
▲ 천왕문 좌측 4천왕. [사진-이병태]

   
▲ 천왕문 우측 4천왕. [사진-이병태]

   
▲ 만세루 앞의 다보탑. [사진-이병태]

   
▲ 대웅전 앞의 8각 13층 탑. [사진-이병태]

나는 미친 놈처럼 뛰었다. 바쁘게 이리저리 움직였다는 뜻이다. 사진을 찍어야겠는데 사람들에 가려서 기다리기가 일쑤였다. 사천왕문(四天王門), 만세루(萬歲樓), 8각 13층탑(일명 석가탑, 높이 8.58m), 대웅전을 돌았다.

묘향산 공부 (9) 『팔만대장경』 보존고

   
▲ 팔만대장경 보존고. [사진-이병태]

『팔만대장경』하면, 나는 치과의사학(齒科醫史學) 강의 때 꼭 불설주치경(佛說呪齒經)을 일러준다. 이(齒)가 아플 때 불경을 외고 기도해서 치통을 없애는 종교적 치과치료법이다.

이 『팔만대장경』을 처음으로 보고 만져본 것은 내가 중3 때 해인사에서였다. 그 후 나는 한 환자의 도움으로 『팔만대장경』 영인본을 구입해서 서가에 꽂아놓고 있다.

1983년 북측은 『팔만대장경』 보존고를 지어, 1251년에 완성한 『팔만대장경』 전질, 고려와 조선 때 경판 3,000여 점을 보관하고 있단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봤는데 오늘은 닫았군요.”
나를 어떻게 알았는지 나는 그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툭 던지듯 말했다. 흰색 신축건물이지만 기록에 남기고자 사진을 찍은 나에게 말이다.

그 때 보현사에 근무 중인 듯한 한 북측 젊은이가 그 건물로 가더니 쑥 들어갔다. 아쉬웠다.

‘어쩌면 관람이 순간적이라도 가능했겠는데...’
나이도 나이고 지역도 지역이어서 돌출행동을 할 수가 없어 꾹 참고 내려왔다.

묘향산 공부 (10) 유점사 종

   
▲ 보현사 경내에 있는 금강산 유점사종 [사진-이병태]

유점사(楡岾寺)는 금강산에 있는 절이다. 6.25 전쟁 때 폭격으로 불타버렸지만 유일하게 남은 유점사 종을 묘향산으로 옮겨 보현사 입구로 옮겨 보존하였다.

유점사 종은 1469년 2만 2천근의 구리와 주석을 녹여 만들었다. 높이 2.1m, 직경 4.1m, 무게 7.2t 이며 조선 종의 특징을 모두 갖추고 있다.

비석에 쓰인 설명에 따르면 범상치 않다.

종의 걸고리는 두 마리의 용틀임으로 하고 종 어깨에 복련무늬띠와 범자무늬를 돌렸으며 종 몸체에는 유곽과 보살상, 종명, 보상화 무늬띠를 새겼다. 유점사 종은 모양이 아름다우면서도 그 소리 또한 장중하다. 이 종은 높은 창조적 재능을 보여주는 역사유물이다.

금강산 외금강에 딸린 유점사는 표훈사, 장안사, 신계사와 함께 금강산 4대 사찰 중 하나였다. 6.25전쟁을 겪으면서 표훈사만 남아 있다. 2007년에 나는 내금강에 건재한 표훈사를 두 번이나 둘러보았다. 표훈사 대웅전은 그야말로 좋은 터에 고색창연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외금강에 있는 신계사 중창불사가 이뤄진 다음 5층탑 중수복원에 일조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인지 유점사 종은 남다른 애정이라고 할까, 역사의 향기에 취했다고 할까, 아주 친근하게 보였고 가슴에 와 닿았다.

나는 이 유점사 종 사진을 찍느라고 4호 버스에 제일 늦게 탔다. 6.25전쟁(지금은 휴전 중)이 끝나고 여러 가지 형편이 되면 유점사가 재건 중창될 것이다.

그때 묘향산 보현사 입구에 피난하고 있는 종이 본 자리로 옮겨지겠지.

내 생전이면 좋겠다.

   
▲ 보현사 경내에 있는 다리니석탑. [사진-이병태]

   
▲ 보현사 경내 상점에서 팔고 있는 탁본. [사진-이병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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