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이야기: < 저 하늘의 연> - 조명지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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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8-03-19 00:00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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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전국연합회의 웹사이트에 “저 하늘의 연” 이라는 영화가 동영상으로 올라와 있음을 보고서, 그리고 또한 이 영화가 지금 선군시대를 지향하는 북쪽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영화란 설명을 읽고선, “왜 인기가 있을까”하는 호기심에서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 영화는 북쪽에서 지금 “인간이 추구하는 참된 삶은 무엇을 말하는가” 라는 주제를 분명하게 한 여인의 삶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또한 이 영화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북쪽의 선군정치와 시대적인 상황을 이해하는 전제하에서 보아야 한다고 본다.
사물을 어떻게 보느냐는 어떤 각도에서 보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북쪽의 영화를 서구적인 가치나 시각으로 보아서는 그 전하는 진정한 내용이나 주제를 잃게 되고, 영화의 진정한 맛을 잃게 된다고 본다. 아직도 때묻지않은 가치, 지고한 이상, 우리들에게 영원히 사라지지않고 불타오르는, 숭고한 정신을 추구하고 있는 북쪽 사람들의 그 가치와 문화를 북쪽의 눈으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분명하게 우리들의 다른 한 쪽의 조국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삶”이 무엇이며, 사회전반적으로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분명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영화에선 상징적으로 어린이들이 푸른 하늘에 연을 날리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이것은 철없고 순진한 어린 날에 품은 꿈, 이상, 때묻지 않은 그리고 높은 바람과 희망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 이상과 꿈은, 하늘을 나르는 연과 같이, 높지만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은, 바람의 결을 따라 자유롭게 흔들리면서 나른다. 이 영화에선 한 여인의 삶을 통해서, 하늘을 날으는 연과 같은 그녀의 이상과 꿈이, 현실에서 어떤 형태로 실현되고 땅, 즉 삶에서 뿌리를 내리는 것은 참으로 다른 형태의 새로운 가치로 실현됨을 말한다. 어린 날의 대부분이 품는 꿈은 바로 나 개인의 성공과 희망이지만, 사회 속에서 사는 우리들에게서 이루어지는 그 꿈은 바로 나가 아닌 전체를 위한, 사회 속에서 새롭게 추구하는 가치로 변형되어, 인간의 가장 숭고한 이상과 가치를 추구하는 삶으로 바꾸게 됨을 이야기한다.
주인공 서연도 어린 날에 연을 날리면서 품은 꿈은 육상선수가 되어 성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릴때 단짝 ,영순이와 늘 함께 달리면서 영순이를 이겨야 하는 것이 자기의 성공을 이루는 첫 관문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경쟁을 한다. 꼭 이겨야 한다. 그래야만 나의 꿈이 이 이루어진다 라고 굳게 믿는다.
그런데 그 꿈은 다른 숭고한 가치를 위해서 참으로 엉뚱하게 변형되어, 자기의 성공과 이익이 아닌 다른 사람의 더 나은 삶과 더 나아가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 자기의 삶을 바치게 된다.
영화는 고향을 찾아가는 서연이 기찻칸에서 우연하게 만난 친구 옥경의 질문, “어떻게 된거냐?”,“왜 육상선수가 되지않고, 그동안 잠적했어?” 에 대한 대답으로 풀어 나가는 서연의 삶의 이야기다.
가슴에 아직도 남아있는 장면은 어릴 때 항상 달리기로 경쟁하던 단짝 친구 영순이, 마을에서 서연이의 꿈을 이루도록 돌격대로 떠나 보낼 때, 동구 밖까지 따라나와 자기가 산 새 신발을 신겨 주고 꼭 꿈을 이루도록 격려하며, 자기는 서연의 낡은 신발을 신고서 “등판”마을에 남아 그 마을을 살기 좋은 마을로 만들기 위해서 온 삶과 몸을 바치는 것이다. 검은 치마와 흰저고리를 입은 영순과 서연의 신발교환 장면은 참으로 잊어버린 아주 어릴때의 우리들의 아름다운 어린 날의 추억을 되살려준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그동안 까많게 잊어버렸지만, 그러나 가슴 속 깊이 숨어 있던, 약간 유치하게 느껴지지만, 그러나 따스한 어린 날의 우정을 되살렸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시골동네에서 나누었던 순진무구하던 정이 새삼 그리워졌다.
다른 한 장면은, 서연의 동네 “비서동무”가 서연의 다섯아이와 부부 일곱식구에게 자기의 넓은 집을 서연이 알지 못하게 바꾸어 주고, 서연이 이것을 알고 너무나 놀라와 하자, “집이 좁아 못살겠나? 마음이 좁아 못살지” 하는 말이 큰 여운을 나에게 남겼다. 구수한 평양도 억양으로, 그리고 넉넉한 웃음으로 자기보다는 서연의 가족을 먼저 배려하는 비서동지의 넉넉한 마음이 참으로 가슴에 와 닿았다. 참 사람은 이러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고 , 그래 사람이 마음이 좁아서 못사는 것이지… 라는 말이 내 가슴에 깊이 와 닿았다. 이러한 말과 마음은 우리가 잃어버린 풍성한 인간애를 되살리고, 사람이 서로를 아끼는 진정한 마음이 물씬하게 풍기는 장면이다.
또한 나의 마음에 깊이 와 닿은 장면은 , 서연이 달리기를 연습할 때 늘 격려하고 함께 버스로 날려주던 차장 언니의 죽음을 접하고, 그 아이들의 생일상을 차려 주었을 때, 그 두 아이들의 하던 말, “아지미, 우리 집에 꼭 있으라우” 라는 말이다. 이 말 때문에, 그 아이들의 간절한 소망이 이루어 지게 하기 위하여 서연의 삶은 극적인 반전을 하는 계기가 되고, 육상선수로서의 꿈이 바뀌어 아이들의 온전한 엄마로 살게 된다.
“아지미, 우리 집에 있으라우”, 생일 잔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서연의 등을 향해 아이들의 순진하고 간절한 그 말의 여운이 나에게도 강하게 남았다.
“왜 그랬어? 왜 육상선수의 꿈을 접어버렸어” 라는 친구 옥경에 대한 대답이 바로 이것이다.
“아지미, 우리 집에 꼭 있으라우” 서연은 이 아이들의 간절한 소망을 이루어 주기 위해서 바로 자기를 꿈을 접고 다른 사람의 꿈을 이루게 하기 위하여 자기를 버린다.
이 영화를 보면서 서양적인 사고로 충만한 나의 마음엔, 어떻게 아이들의 엄마가 되는 것이 그 아이들의 아버지인 한 남자의 아내가 되는데, 사랑이 개입되지 않고, 단지 아이들의 엄마가 되기 위해서 자기의 삶을 송두리채 바꿀 수 가 있는가 하는 나의 “여성의식” 이 되살아 났지만, 그것도 잠깐, 그것은 나의 서양적인 사고 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갈등을 깊이 되새겨보면 또한, 여자의 삶이 단지 남자에게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 속에서 주어진 환경에서 자기가 하여야 하는 것을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서연의 굳건한 마음이 가슴에 와 닿았다.
남여 간의 사랑보다도 더 숭고한 그 가치를 위해서 서연은 자기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나는 여자들의 희생이 강조되는 듯한 이러한 것에 대한 반감이 있다 이러한 나의 생각도 나의 서구적인 “여성 해방 의식” 때문임을 안다.
영화 전체의 주제, “이 시대에 가치있는 삶”을 보여주면서 처음에 보여주던 전제, 서연이 자기의 개인의 꿈과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하루도 쉬지않고 달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서연은 자기가 선택한 삶, 가치있는 삶을 위해서 끊임없이 전진하고 달려야만 한다.
아이의 바이올린을 구하기 위해서 달려야 하고, 이 아이가 실명이 되어 더 이상 서연의 집에 부담을 주지않기 위해서 집을 나가는 두아이를 붙잡기 위해서 또 달려야하고, 차장 언니의 아이, 만경대 우물에서 만난 두아이, 그리고 단짝 친구 영순의 아이까지 함께 기르는 다섯아이의 뒷치닥거리를 하기 위해서 친정엄마를 모셔오기 위해서 달려야 하고, 남편과 자기의 아이를 포기한다는 결심을 나누면서도 달려야하고, 그녀의 모든 삶은 달리고 달려야 하는 바쁘고 숨가쁜 삶이다.
서연은 이제 단지 남을 이기기 위하여, 자기의 성공을 위해서만 달리는 것이 아니라, 다섯아이의 엄마로서의 삶을 살아 가기위해서 달리고 또 달리는 삶을 살게 된다.
이 영화에서 이러한 이상적인 삶들이 그림처럼, 그리고 이상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서연의 삶을 통해서 인간이 선택한 가치가 있는 숭고한 이상을 실천한다는 것 자체가 피와 땀, 끊임없이 달려야 하는 고달픔, 그리고 때로는 갈등과 회의까지도 포함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서연이 자기의 단짝 친구 영순의 죽음을 접하고 영순의 딸을 보육원에서 데려와 기르게 되는데, “운이”에겐 늘 가슴에 자기의 엄마를 담고 산다. 이 아이를 잘 기르기위해서 매를 든 서연에게 “우리엄마도 아닌데 왜 때려요?” 라고 달려든다.
마음에 서운 함과 억울함, 그 섭섭함으로 상처를 입고 절망하여 우는 서연를 달래며 하는 딸과 엄마의 대화, “그래 내가 이 길을 나설때 뭐라고 하던가? 아이 엄마가 된다는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느냐?” 는 북쪽이나 남쪽이나 엄마는 다 같이 자기의 딸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고생없이 살기를 원하구나 하는 마음이 진하게 느껴졌다. 북쪽에서는 엄마의 이러한 본능적인 염원이 딸의 하는 일이 옳다고 생각되면 약간의 갈등을 겪지만 그래도 그 딸이 하는 일이 옳다고 믿고, 딸의 판단을 믿고서 순순히 따라준다는 것이다.
그 딸이 하는 일이 옳은 일이니, 함께 집안 일을 거들면서 아이들 뒷바라지를 함께 하고 있는 경험이 많은 엄마로선, 서연의 결심이 단지 이상에만 그친 아이디어로만 그친 것이냐고 다그친다. 푸른 하늘에 높이 나는 연으로만 그치고 말 것인가를 질문한다. 땅에 뿌리를 내린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줄 몰랐더냐 라는 딸에게 자기가 선택한 삶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그 길을 가는 것에 ,그것을 위해 치루어야 하는 아픔과 고통을 지금 너는 겪고 있는 것이다 라는 확인을 한다. 서연은 다시 자기의 위치, 자기가 선택한 엄마의 자리, 사회에 공헌하기 위한 선택, “부모가 없는 아이들”의 엄마의 자리로 돌아온다.
나중에 서연의 아이들은 모두가 국가에 헌신하기 위해서 대학을 포기하고, 자기의 장래를 잠깐 접어두고, 군인으로 나간다.
마지막 장면은 서연은 국가에서 영웅으로 칭송을 받고 각각 군대에 간 다섯명의 아이들은 엄마를 축하해 주려 모여드는 밝고 아름다운 영화이다.
복잡한 세계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가장 염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지금 무엇을 잃어 버리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 속에서 살 고 있는 나에게 이 영화는 그 대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삶이 복잡할 수록, 추구하는 가치가 희미 할 수록 언제나 가장 근본적인 것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가장 숭고한 뜻을 가지고 사회 속에서 자기가 당면한 역사적인 현장에서 그것에 답하며 사는 것이라는 분명한 멧세지가 전해진다.
[작성: 조명지 재미동포전국연합회 부회장, 평화를 사랑하는 여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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