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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 미 추수감사절에 숨겨진 비극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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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7-11-23 12:17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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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11월 넷째 주 목요일이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다. 미국의 학교, 관공서 또는 기업체에서는 추수감사절 전후의 수요일과 금요일을 휴일로 정하여 주말과 주일을 포함한 닷새 동안의 휴가에 들어간다. 이 때 사람들은 고향의 부모님을 찾아 가거나 가족들과 함께 모여 칠면조 고기와 다른 여러 음식들을 먹으며 명절을 지낸다. 우리나라의 추석과 비슷한 느낌이다.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1789년에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서 11월의 첫째 목요일을 기념일로 선포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주 단위로 열리는 축제에 불과했다. 그것을 국가 명절로 제정한 것은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이다. 

링컨 대통령은 남북전쟁이 치열하게 진행되던 1863년 11월의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정했다. 그 이듬해부터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해마다 추수감사절을 국가 명절로 선언하였다. 그러다가 추수감사절이 연방 정부에 의해 법적인 공휴일로 공표된 때는 1898년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추수감사절이 기독교 정신에 입각하여 신에 대한 감사와 다른 인종 또는 타문화에 대한 관용을 바탕으로 형성된 기독교 명절이라고 생각한다. 추수감사절에 대한 이와 같은 해석은 전통적인 것으로서 미국 주류의 생각을 반영하며, 미국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나 아동 도서들은 이러한 해석에 근거하여 '자랑스러운 미국 형성 초기의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

그러나 오늘 날 미국의 일부 교육자들과 학교에서는 추수감사절의 기원이나 미국 형성 과정 초기의 역사에 대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입장을 반영하여 보다 진실에 가까운 역사 해석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미국의 초기 역사는 유럽에서 건너 온 백인 이주자들과 우리가 흔히 인디언이라고 부르는 아메리카 원주민들과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그동안의 전통적인 역사 해석은 원주민들의 시각이나 해석이 배제된 채 유럽계 백인 이주민들의 입장만이 반영되어 왜곡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추수감사절의 기원과 관련한 미국 전통적인 해석을 먼저 살펴보자. 미국 추수감사절의 기원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17세기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102명으로 이루어진 영국의 청교도들이 1620년 9월 6일 영국의 플리머드를 출발하여 두 달간의 항해 끝에 11월 말에 미국의 매세추세츠 지방에 도착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종교적, 시민적 자유를 실현할 수 있는 '신이 예비하신 땅'에 도착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영국에서 미국 땅에 처음 도착하여 겨울을 맞은 청교도들은 추위와 식량 부족을 견디지 못하고 이듬 해 봄을 맞기도 전에 절반가량이 죽게 된다. 다행히 살아남은 사람들은 백인들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보인 왐파노악(Wampanoag)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곡식을 파종하여 여름에 대풍작을 거두게 된다. 
 
 
 
 
일부에서는 이와 같은 미국 주류의 전통적인 해석에 대하여 첫 번째 추수감사절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의 꾸며진 신화에 불과하다는 반박을 한다. 아메리카 원주민 소설가인 마이클 도리스(Michael Dorris)에 따르면, 첫 번째 추수감사절에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 제공했다고 하는 음식들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생산된 고유의 것으로서, 당시 유럽계 이주자들은 그런 음식들을 전혀 본 적이 없었을 것이라는 근거를 대고 있다.

제임스 로이웬(James W. Loewen)은 자신의 글(The truth about the first Thanksgiving)에서 전통적인 미국 사회 교과서에 나오는 첫 번째 추수감사절에 관한 삽화들이 그 이야기가 터무니없이 꾸며진 이야기라는 것을 스스로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추수감사절 그림에 나타나는 원주민들은 거의 옷을 벗고 있고 유럽계 백인들은 겨울옷을 입고 있는데, 같은 계절에 서로 전혀 다른 옷차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 또 왐파노악 원주민들이 머리에 수많은 깃털로 장식을 하고 있는데, 원래 그 부족은 깃털을 한 개만 꽂아 장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미국의 전통적인 해석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어떤 주장을 하고 있는가? 이들은 주로 아메리카 원주민의 입장에서 서서 유럽에서 건너 온 이주자들을 기독교 침략자로 규정하며 전통적인 해석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 

먼저 이들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원래 오랜 동안 추수감사절을 지켜 왔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일상에서 얻는 모든 것들에 대해 신에게 감사하였으며, 한 해에 여섯 차례의 추수감사 의식을 행했다고 한다. 원주민들이 추수감사절을 지켜왔었다는 사실을 생략하고 있는 전통적인 해석은 기독교 침략자들이 이 전통을 미국 원주민들에게 가르쳐 준 것이라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고 한다.

둘째, 그들은 대부분의 교과서에서 원주민들과 침략자들 간의 만남에 대해 사탕발림식의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전통적인 교과서에서, 스콴토(Squanto)와 같이, 원주민으로서 유럽계 이주자들을 위해 통역자로 활동하며 그들을 돕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을 유독 강조하는 것이 문제가 많다고 한다. 스콴토와 같은 일부 원주민들이 침략자들을 돕게 된 데에는, 이들이 어릴 때 납치당해 유럽에 강제 이주당하여 기독교 교육과 세례를 받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셋째로,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 첫 번째 추수감사절과 같은 이야기가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유럽계 이주자들 간의 우정과 평화적 관계를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 이면에 있는 이들 간의 전쟁과 유럽계 침략자들이 벌인 살육의 역사를 덮어버리고 있는 데서 심각한 역사적 왜곡을 야기한다.

왐파노악(Wampanoag)이라 불리던 원주민 부족은 처음에 유럽계 이주자들을 돕고 그들과 우호관계를 맺었으나 마사소이트(Massasoit)가 죽고 나서 대량살륙을 당하게 되어 그 씨가 마르게 된다. 마사소이트의 둘째 아들 메타콤(Metacom)이 토지문제로 인하여 유럽계 이주자들과 전쟁에 휘말리게 된 것이다. 메타콤의 영국식 이름은 필립이며, 이 전쟁은 흔히 '필립 왕의 전쟁'이라 불린다. 

메타콤은 유럽인들과의 전투에 들어가서 초기에는 유럽계 이주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될 정도로 전세를 유리하게 이끌었으나, 1년간의 전투 끝에 밀고자의 배신으로 피살당하게 된다. 그의 머리는 장대에 꽂힌 채 25년 동안이나 플리머드에 전시되었다고 한다.

넷째로 이들은 미국의 지도자들이 추수감사절을 국가적 명절로 제정한 이유가 아메리카 원주민들과의 우정을 기념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지적한다. 일례로, 링컨이 북부의 승리로 마감한 게티스버그 전투 뒤에 추수감사절을 제정한 까닭은 남북전쟁으로 인해 남북 간의 대립과 갈등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국가적 통합을 도모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그는 추수감사절 제정 후, 한 달 뒤에 38명의 다코타 족의 사형집행에 서명했다고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미국의 추수감사절의 기원에 관하여 미국 주류의 입장을 반영하는 전통적인 해석과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시각을 반영하는 비판론들은 서로 간에 접점을 찾기에 어려울 만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과연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 

분명한 것은 그 옛날 유럽계 이주자들에게 살육을 당하여 인종 말살의 단계에까지 이르렀던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잊혀졌던 목소리가 점차 조금씩이나마 되살아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들의 목소리가 미국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국가 형성 과정에서 저지른 '원죄'를 인정하게 하고 미국의 전통적인 역사 해석을 바꾸기에는 너무도 미약하다.
 
덧붙이는 글 | 흔히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인디언'이라는 이름으로, 유럽계 이주자들은 '개척자' 또는 '백인'들로 불리지만 필자는 이들 용어가 유럽계 중심의 편견이 내포된 것이라는 판단 아래 의도적으로 그 용어들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이 아닌 이야기를 많이 알기보다는 차라리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편이 낫다. (Felix Okoye)

미국 추수감사절 기원에 관한 비판론자들의 주장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이들의 주장이 맞는다면 미국의 전통이 사실이 아닌 신화 위에 자리잡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진실이 아닌 신화 위에 미국의 전통이 세워졌을 때, 미래 세대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하는 일련의 질문들은 간단히 지나칠 문제들이 아니다.

아메리카 원주민 태생으로 원주민 역사학자이자 캐나다 공립학교의 사회과 교사이기도 했던 처크 라슨(Chuck Larsen)은 미국 추수감사절 기원에 관한 진실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는 다른 누구보다도 미국의 전통적인 해석과 미국의 사회와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하여 그만의 독특한 처방을 제시해 주고 있다.

처크 라슨에 따르면, 교사들이 역사적 왜곡이나 인종적 문화적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서 미국 추수감사절 이슈를 다루기는 상당히 어렵다. 그 이유는, 추수감사절의 기원과 관련된 이야기에 역사적 사실과 신화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는 신화를 넘어서서 역사적 진실을 추적하는 작업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첫 추수감사절 이야기에는 일부만이 역사적 사실이며 많은 부분 과장되고 미화된 측면들이 들어 있다고 말한다. 그는 영국의 청교도 운동과 미국에 건너온 청교도들의 행태를 서로 비교해 볼 때, 당시의 역사적 진실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고 한다. 다음은 그가 추수감사절 기원과 관련 재고해 보아야 할 사항들이다.

아메리카 건너온 청교도들은 정부전복 꾀했던 정치 혁명가들

첫째, 당시 청교도들은 단순히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왕에게 핍박을 당하다가 미국으로 건너 온 사람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처크에 따르면 '종교적 박해를 피해서 신의 손에 의탁한 채 신세계를 찾아 온 피난자들'이라고 하는 청교도들에 관한 이미지는 다분히 포장된 것이다. 이러한 이미지가 청교도들의 행위 전반을 미화하고, 아메리카 원주민들에 대한 살육과 전쟁마저도 야만인을 문명화하는 것으로 합리화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한다.

청교도들은 왕권 중심의 영국정부를 전복하고자 했던 정치 혁명가들이며 이들은 1643년에 그것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청교도들은 요한 계시록에 기록된 내용에 근거하여, 유럽에 아마겟돈 전쟁이 임박했다고 믿으며 성서에 예언된 하나님의 나라를 새로운 땅에서 세우기를 희망하였다.

이들은 왕이나 의회가 전복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되자 수백 척의 배로 나누어 타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왔으며, 아메리카 원주민들로부터 땅을 빼앗아 '거룩한 나라'를 세우고자 하였다. 따라서 처음부터 두 세력간에 토지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은 예견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둘째, 당시 미국에 이주해 온 청교도들은 종교적인 측면에서 매우 편협한 외골수들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영국 국교회가 로마교회로부터 독립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영국 국교회로부터 따로 떨어져 나온 '분리주의자'(Separatist)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사탄에 대항하여 거룩한 전쟁을 벌이는 사람들로 인식했으며, 자신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적으로 간주하였다.

마서 장로(Mather the Elder)라는 사람은 1623년에 행한 어느 설교에서, 자신들의 은인이었던 왐파노악 부족들의 대다수가 유럽인들의 이주로 인한 역병에 의해 죽임을 당하자, 이것을 두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특별한 감사를 드리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들에 의해 기독교 근본주의가 미국에 뿌리내리기 시작하였고, 이로써 미국이 유럽에 비해 훨씬 종교적으로 보수성을 띠게 된다.

셋째, 왐파노악 원주민들은 유럽계 이주자들에게 '우호적인 야만인'들이 아니었으며, 유럽 이주자들도 인종을 넘어서서 우정을 나누기 위해 원주민들을 초대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왐파노악 원주민들은 유럽계 이주자들과 대항하기 위하여 다른 원주민 부족들과 함께 델라웨어 동맹을 체결하고 있었고, 유럽인들의 힘을 두려워하고 있어서 그들을 전적으로 신뢰한 것도 아니라고 한다.

원주민 가운데 유일하게 백인들에게 교육받고 세례 받아 기독교인으로 개종했던 스콴토만이 유럽인들의 이용물이 되었을 뿐이다. 당시 왐파노악 부족들은 유럽인들이 거주하던 플리머드 지역을 보호해주는 협약을 맺기 위해 찾아왔으며, 이들은 식량이 부족한 유럽계 이주자들의 사정을 알고서 자선의 의미로 여러 마리의 사슴과 칠면조 등을 가져왔다고 한다.

왐파노악 부족의 왕 마사소이트가 살아 있는 동안은 크고 작은 마찰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유럽인들과 원주민들 간에 겉으로나마 평화적인 관계가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서로 같은 땅을 둘러싸고 경쟁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서 평화로운 관계가 오래 유지될 수 없었음은 자명한 일이다. 한 세대가 지나고 유럽계 이주자들의 세력이 커지면서 힘의 균형이 깨어지자,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유럽계 이주자들 간의 전쟁이 벌어졌다. 토지를 둘러 싼 갈등이 격화되어 이른 바 '필립 왕의 전쟁'(1675∼76년)으로 불리는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이 전쟁 후에 대부분의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몰살당하고, 일부는 캐나다 지역에 사는 프랑스인들에게 피난처를 구하거나 유럽인들에 의해 노예로 팔려가게 된다. 프랑스인들은 원주민들로부터 사들인 모피를 유럽에 팔았으므로, 원주민들에게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 또한 당시 인디언 노예 무역은 성공적이어서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보스턴의 일부 상선 소유자들은 아프리카 상아해안의 흑인들을 매매 대상으로 하는 노예무역에 나서게 된다.

원주민 살육한 뒤에 만들어진 미국의 '추수감사절'

첫 추수감사절 이야기는 터무니없는 사실로만 꾸며진 이야기는 아니다. 영국의 청교도들이 미국 땅에 처음 들어 왔을 당시 그들의 처지는 매우 열악했으며 스콴토와 왐파노악 원주민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들의 생존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에 더 많은 사람들이 영국으로부터 이주해 오면서 두 세력 사이에 힘의 변화가 생기자,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이주민들에 의해 제거된 것이다.

신화와 역사적 사실이 뒤범벅이 된 '최초의 추수감사절' 이야기는 1890대와 1900년대 초에 발달하게 된다. 당시는 미국이 여러 인종들의 집합 장소가 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합해야 할 필요가 생기게 되었다. 당시의 교육자들이나 저술가들은 미국의 전통이 될만한 역사를 기록해야 할 필요를 절실하게 의식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이 시기는 사회진화론이라는 이론에 근거하여 미국에 들어온 다양한 인종과 민족들이 들여온 문화들이 '용광로'(Melting Pot)에 들어가 용해되어 미국의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내던 시대였고 공교육은 사회 통합을 위한 주요 수단이었다. 이것을 염두에 두고 연방 정부는 1898년에 추수감사절을 법정 휴일로 공표하기에 이른다.

처크 라슨에게서 추수감사절의 기원에 관한 바람직한 교육방법을 들어본다. 그는 미국의 첫 추수감사절이 역사적으로 존재했었지만 추수감사절은 3만여 년 전인 석기 시대부터 있어온 온 인류의 오래된 전통이라는 것을 학생들에게 주지시켜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뉴잉글랜드 지역에 첫 추수감사절 3일 동안에 미국 원주민과 유럽 이주자들 간의 평화와 우정이 존재했었지만 오래 가지 않았었다는 것을 알리며 학생들로 하여금 더 깊은 시각으로 역사를 볼 수 있기를 격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아메리카 원주민 태생의 교육자인 필 자스트로우(Phil Zastrow)는 자신들을 아메리카의 '첫 번째 사람들'(The first people)이라 칭했다. 또한 자신들을 더욱 더 소외시키는 신화들을 더 이상 만들어내지 말고, 유럽계 이주자들이 대륙을 소유하는 과정에서 행해진 폭력의 역사를 덮어버리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미국이 살육의 역사를 덮어 버린 채, 다른 나라의 정치적 문제에 개입하여 인권을 논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닌가 라고 반문한다.
 
덧붙이는 글 | Chuck Larsen 및 다른 저자들이 함께 저술한 Teaching Thanksgiving이라는 책을 참조하였습니다.
 
[출처: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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