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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비전향 장기수 3명과 평양서 특별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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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08-03-03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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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인, 김선명, 리경찬 선생의 현주소







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과 대담하는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


비전향 장기수 3명과 평양서 특별대담


고광인, 김선명, 리경찬 선생의 현주소


[평양=민족통신 노길남 특파원]세계에서 최장기수(45년)로 알려졌던 김선명 선생(83)을 포함 고광인 선생(73), 리경찬 선생(73) 3명과 고려호텔 회의실에서 특별대담을 갖고 평양생활을 포함하여 그 동안의 활동들에 대하여 알아 보았다. 질문과 답변 형식으로 진행한 내용을 여기에 전재한다.

특별대담 질의서


-질문(1):

민족통신이 세분 선생님들과 특별대담을 하게 되어 기쁩니다. 선생님들이 북부조국에 오신지 벌써 7년 6개월로 접어 들고 있습니다. 우선 그 동안 생활하신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 어디에서 누구하고 사시는지 근황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남녘에 아시는 분들이 궁금하게 생각할 것 같아 질문 드립니다. 세분이 차례로 답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광인 선생
-답변: 고광인입니다. 저는 장군님 품에 안겨 세상 사람들이 상상을 초월한 생활을 하여 왔다고 생각합니다. 72평짜리의 살림집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가지는 남녘 서울 일산에 거주하는 97세 아버지가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내가 7년 전 남녘을 떠나 주체조국에 올 때 내 막내 동생(고판연)이 내가 장남인데 10년 동안 결혼 않코 있다고 하면서 이북에 가면 꼭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라고 간청했습니다. 2001년 2월8일 36세 난 작가 정은옥을 아내로 맞고 결혼하여 잘 살고 있습니다. 내 처는 피바다 극단 작가실 실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식의주 문제에서는 위대한 김정일 장군님의 특별배려로 공급 받아 왔습니다. 34년의 감옥생활을 돌이켜 볼 때 마다 장군님의 은혜를 한층 더 느낍니다. 이곳에서의 하루 하루가 뜻 깊은 나날이었습니다. 나라에서 우리 비전향장기수 모두를 내세워주셔서 한 없는 행복감을 갖습니다. 각계 각층 근로자들과 청소년들과의 상봉모임, 서클 공연 등으로 바쁜 생활을 지냈습니다. 우리는 또 높은 문화수준으로 발달된 주체사회주의의 각종 예술공연과 활동 등을 감상하고 참여하면서 사람다운 삶을 살며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신념의 한길 끝까지 가리> 노래 곡 하나도 작곡했습니다.

최장기수(45년 감옥생활) 김선명 선생
-답변: 김선명입니다. 장군님의 위력으로 그립던 공화국(이북을 의미)에 오게 되었고 그리고 온지 몇 개월 안된 2000년 12월 결혼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제 아내는 항일유격대 투사였던 류은덕 선생 외손녀 조정숙(48)입니다. 아내는 요리사로 일하고 있고, 평촌구역 안산에 72평짜리 살림집에서 아내가 낳아 길러 온 22살짜리 아들(김일성 종합대학 1학년 물리학부)과 함께 단란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 동안 나와 관련한 영화 <내 살림의 닻을 내는 곳>이 나와 작년 공화국에 있는 대사들, 외국인들이 문화회관에서 관람(감상)하고 영화가 잘 되었다고 높이 평가하면서 영화에 나타난 뜨거운 ‘동지애’에 탄복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작년에 또 27분짜리 영화 <신념과 의리를 지킨 45년>이 나왔습니다. 소설 ‘조국의 아들’ (장편소설, 270쪽)도 2003년에 발행되었고, 금년에는 장편수기 45년을 출판 할 예정입니다. 장시 <철창 속에 본 백두산> 등 10여 편을 썼습니다. 그 동안의 행복한 생활을 일일이 열거하기도 벅찹니다. 나는 작년에 백두산에 갔는데 또 다시 격정의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습니다. 백두의 3대장군(김일성 주석, 김정일 국방위원장, 김정숙 항일여성투사를 뜻함)에 대한 감사함을…<그는 잠시 말을 잊지 못하고 목이 메였고 눈시울을 적신다.>


리경찬 선생
-답변: 리경찬입니다. 한마디로 장군님의 사랑을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조국에 와 보니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나는 여기서 결혼하고 남녘에 간 사람으로 돌이켜 보면 결혼한지도 60년이 되어 갑니다. 남쪽에 가지 전 두 딸과 아들이 있었는데 큰 딸(리명실)은 의사되어 활동하고 있고 작은 딸(옥실)은 보위부에서 일하고 있고, 작은 아들은 함흥의학대학을 나와 군대 나가 복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집은 크고 넓습니다. 지금은 외손자 외손녀 모두가 잘 성장하여 대학생들이 되었습니다. 나는 조선미술가동맹중앙위원회 회원으로 참가하여 그림 작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나는 2002년 2월16일 나의 생명의 은인이시며 민족의 구심이신 김정일 장군님에게 송학평풍(12폭 6메터 높이 2메터16)을 60돌 탄생 선물로 올렸습니다. 그리고 ‘백두산 호랑이’를 그려서 당창건55돌 기념일에 올렸고, 장수를 의미하는 ‘송학’을 그려서 장군님께 올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매해 국가 전시회에 출품하여 왔습니다. 그 중에 12점이 입선 하였고 이중 <호랑이> 그림은 국가 보존위에 국보로 등록되어 보관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 3점은 또 국가 사적관에 보존하도록 채택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40만 청소년 군중과 만나 서로 대화하여 그 동안 살아온 삶을 나누는 한편 장군님 두리에 굳게 뭉치도록 교양하는데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질문(2):

선생님들은 세계에서도 드문 최장기수로, 잔혹한 고문탄압을 견디고 출감한 분들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김선명 선생님은 45년, 고광인 선생님은 34년, 리경찬 선생님은 35년의 장기수 생활을 하고 전향서를 쓰지 않고 만기일을 마치고 출감하셨습니다. 그러한 힘의 원천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듣고 싶습니다.

[답변]: 저(고광인)는 73세이고, 전북고창이 태어난 곳이고 징역생활 34년을 복역하였는데 참을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세계관, 인생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12살 때 신탁통치 찬반토론이 거 세었고, 당시에는 짚신 신고 다니던 시절이었습니다. 김일성 수령님을 신출괴물로 보던 때였습니다. 광복후 수령님 따르는 세력이 많았습니다, 백부님(큰아버지)이 그 당시 “인민공화국이 와야 산다.”라고 지적해 주며 ‘항일투쟁소식’을 전해주던 것들이 생각납니다. 전쟁시기 소년빨치산으로 행동하던 21살에 잡혔습니다. 그래도 34년 감옥살이 하면서 몽둥이로 맞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인생입니다. 감옥에서는 간수들이 죽게 때리고 군화발로 협박하고 위협하던 때였습니다. 감옥생활이 혹독하고 몸서리칠 정도로 괴로웠지만 조국을 위한 신념과 결의는 강해지기만 했습니다. 여기에 살아 남을 확률은 150대 1 (한 명만 살아남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로지 위대한 수령님만 생각하며 고통을 견디었습니다. 1968년이던가요. 그 때 대전감옥에 있을 때 김일성 수령님이 우리 애국투사를 구출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을 전해 들었습니다. 저는 수령님에게 의리, 도리를 생각하며 그의 전사답게 살다 죽어야 한다는 신념에 불탔습니다. 전사답게 산다는 그 신념 때문에 1980년 5월 광주항쟁 이후 18일 동안 감옥 안에서 식음을 전폐하고 단식을 한적도 있었습니다. 이들이 나에게 가한 고문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고문을 당하면 당할수록 더 굳어졌습니다. 이러한 힘의 원천은 위대한 수령님 때문이었습니다.


[답변]: 저(김선명)는 83세이고, 경기 양평이 고향인데 반세기에 가까운세월 45년(1951.1015-95.8.15)을 감옥에서 지냈습니다. 그 힘의 원천은 한마디로 수령님과 조선로동당의 위력이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여운형 선생 집안과 가깝게 살았습니다. 서울에 갔다 오시면 친척 얘기 하시고 정세얘기를 하곤 하였습니다. 겨울 같은데 할머니와 얘기하는 것을 이불 속에서 자는 척 하며 정세 얘기를 엿듣기도 했습니다. 위대한 김일성 수령님께서 백두산에서 투쟁하신 이야기, 보천보 전투에서 승리한 이야기 등을 들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일본에게 나라 빼앗긴 이야기를 하며 수령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랄 때 일본 놈에 대한 적개심 증오심은 불타 올랐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수령님에 대한 흠모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공장에서 일하던 몇 노동자들로부터 사회주의가 어떤 것인가, 공산주의가 어떤 것인가를 질문하고 답변을 들으며 그 참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8.15해방이 되어 소용돌이 속에 주변의 우봉수 동지가 체포되어 살해되는 것을 보고, 분단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뼈저리게 통감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남녘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되었습니다. 애국이 죄였습니다. 나는 그 때도 수령님에 대한 영상을 그리면서 백두산에서 비바람 맞으며 조국을 찾아 주셨는데 내가 감옥에서 견디지 못하겠는가 라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고통을 이겨냈습니다. 1974년 박정희 군사통치 시기에는 전향서를 쓰라고 죽도록 맞은 적이 있었습니다. 참다 참다가 몽둥이로 패는 깡패 간수의 불알을 잡고 늘어졌습니다. 이놈이 소리치며 질겁을 했습니다. 그자가 바로 이돈웅이라고 하는 깡패 간수였습니다. 놈들은 그 뒤로부터는 전향서 요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
[답변]: 저(리경찬)는 73세이고, 개성 장풍이 고향인데 35년 장기수로 철창에 갇혀있었습니다. 장기수로서 생존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곧 수령님과 장군님이 계시기에 반드시 승리한다는 신심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식 주체사회주의 조국이 튼튼히 있기에 장군님이 영도하는 조국이 있기에 마음 든든하게 감옥에서 견딜 수 있었습니다. 알다시피 항일대전에서도 승리했고, 대미대결에서도 승리해온 공화국이 아니었습니까. 저는 견디기 힘든 어려움도 많았지만 수령님과 장군님에 대한 의리, 동지애로 그 어떤 유혹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강한 동지애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 힘의 원천은 <줏대를 세우고 수령님과 장군님을 따르면 성공한다>는 신념 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죽어도 영광, 살아도 영광이라는 하나의 굳은 마음으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질문(3):

국제사회는 조선을 가리켜 <일심단결>의 나라라고 말합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평가가 나온다고 생각하십니까?

[김선명]: 수령, 장군, 당이 위대하기 때문에 인민들 스스로 원자폭탄보다 더 강하게 뭉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심단결>의 위력은 그 누구도 깰 수 없습니다. 장군님은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은 장군님을 믿고 따르기 때문에 우리는 똘똘 뭉쳐 있습니다. 절대로 <일심단결>은 거저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광인]: 수령님과 장군님의 지도력이며 주체사상과 선군정치의 결과로 <일심단결>이 이루어졌습니다. 이러한 단결은 그냥 이루어 지는 게 아닙니다. 어느 지도자가 직접적으로 인민들 속에 들어가 생사고락을 같이 하며 인민의 마음을 읽고 인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지도자가 인류역사에 몇 사람이나 되겠습니까.

[리경찬]: 항일투쟁에서 그리고 주체조국을 건설하기 위하여 온 힘을 다 바쳐 오신 수령님과 장군님의 <인민을 위한 정치>, <사랑의 정치>, <인덕정치>의 결과라고 확신합니다. 노예가 되느냐, 아니냐의 기로에서 나라를 구원하셨고, 인민의 주권을 지키시기 위해 헌신해 오신 수령님과 장군님의 영도력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민들은 고난의 행군을 경험하면서도 절대적인 자세로 지도자를 따랐습니다. 단결은 절대로 거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는 지도자들도 많지만 우리 수령님과 장군님처럼 인민들 속에 들어가 인민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오로지 인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지도자가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대담에 참가한 3명의 비젼향장기수는 이번 2.16명절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건강을 위한 ‘청혈 은반지’를 선물로 주셨다고 자랑하며 그 반지를 보여준다. 옥돌 같은 보석류 장식이 부착된 이 은반지는 피를 맑게 하고 건강을 유지 시켜 준다고 한다.>


질문(4):

남녘에 생각나는 지인들이 많을 줄로 압니다. 특별히 안부를 전하고 싶은분들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민족통신을 보고 전달될 줄 압니다.

[답변]

[고광인]: 먼저 연로하신 95세 아버님이 제가 행복하게 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루 속히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고 평화통일이 이뤄져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마음대로 만날 수 있는 날이 오도록 다 같이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동안 제 결혼 사진도 보냈습니다. 아버지께서 기뻐하실 겁니다. 그리고 임방규, 권낙기, 노진민 등과 민가협 여러분들과 이천재, 김근태 등 여러분들에게 안부 전하고 싶습니다.

[김선명]: 95년 나와서 밑에 동생과 제수 등 친척들을 5년 동안 못 만나 보아 늘 그들이 보고 싶었습니다. 친척들은 나 때문에 중앙정보부 압력을 받아서 아무 죄 없이 고통을 받았기 때문에 출옥한 나를 만ご?것도 두려워 하였을 겁니다. 푸른 영상 김동원, 누이 동생들인 선길, 선일, 선옥 모두 제가 잘 있다고 전해지면 고맙겠습니다. 민가협 어머니들이 아직도 수고를 많이 하고 계실 겁니다. 오종렬 선생, 이우재 선생, 한상렬 목사, 김혜경 선생 등 모두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6.15선언과 10.4 선언에 입각해 통일의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낙성대 만남의 집에 계신 장기수들에게도 안부 전합니다. 민가협의 임기란, 권오헌, 남규선, 임종석 어머니(김경숙) 등에게도 안부를 전합니다. 이분들은 내가 있는 감옥소 앞에 와서 농성도 하고 단식도 했던 분들입니다. 그리고 대전감옥소에서 최장기수로서 복역 중일 때 국제사면위원회 관계자들과 미국의 램지 클라크 등 국제민주법률가 협회(ICPRK=International committee for Peace and Reunification of Korea) 관계자들, 그리고 국제적인 운동을 벌인 정기열 조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국제연대위원회 사무국장 등 많은 분들에게도 안부의 말도 전하고 싶습니다.

[리경찬]: 양희철 동지를 비롯하여 오종렬, 한상렬, 권호헌, 박용길, 김양무 선생 부인 양은찬 선생, 강화의 안학섭 선생, 한총련, 범청학련 청년학생들 비롯 청년들 안부 전하고 싶고, 광주 이명자 김명자 선생, 남녘 지식인들에 민족적 양심 갖고 통일사업 앞장서 달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남녘에 엄청난 군사비로 얼마나 낭비하고 있습니까. 남북 모두 군사비를 줄이고 우리민족끼리 통일할 수 있도록 지식인들에게 널리 알려주기 바랍니다.

<대담을 끝내고 재미동포 최장길, 이흥노 선생이 만난 우용각 선생과 김동기 선생 그리고 민족통신 편집인이 만난 김선명, 리경찬, 고광인 선 생 등 5명이 한자리에 앉아 단고기를 나누며 정담을 나누기도 했다. 장기수 선생들은 모두 건강했고 활기에 넘쳐 있었다.>

우용각 선생과 김동기 선생은 재미동포 최장길, 이흥노 선생과 우정에 넘친 대화를 나눴다.

대담을 마치고 5인의 비전향장기수 선생님들과 재미동포들이 함께 오찬을 나눴다.



[출처 : 노길남 대외협력위원장 2008-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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