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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추억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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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1-08-08 00:0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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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추억하리
북한 김일성 상 계관 연극작품에 대한 소개와 평가
한성 기자
기사입력: 2011/08/05 [19:51]  최종편집: ⓒ 자주민보
 
 
▲ 발전소건설현장에 붙어있는 북한의 선전 포스터.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 라는 이 말은 고난의 행군시기에 나왔던 웃으며 가자라는 말처럼 내일을 위해 오늘을 힘있게 낙관적으로 살자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이를 ´내일의 인생관´이라고 명명하고 있기도 하다/ 인터넷 ´통일방송´에서 캡쳐(이하 같음)    © 자주민보

<오늘을 추억하리>
이것은 북한 국립연극단이 최근에 내놓은 연극작품의 이름이다.

지난 7월 14일 조선일보와 통일뉴스를 비롯한 여러 신문 그리고 sbs를 필두로 하는 방송 등 한국의 많은 언론들은 북한의 이 연극과 관련된 보도를 앞 다투어 내보냈다.
이어 연합뉴스는 7월 19일자 보도에서 <오늘을 추억하리>가 <김일성 상>을 수여했다고 보도했다.

<오늘을 추억하리>는 ‘고난의 행군’시기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내용은 중소형 발전소 건설을 통해 고난 극복의 돌파구를 열어야한다는 당의 방침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산간마을 사람들이 군인들과 함께 보여주는 불굴의 정신력이다.
주인공은 산간마을 사람들이다. 특히 중년의 여성으로 발전소건설을 총지휘하는 군행정경제위원장, 그녀의 딸인 송희, 발전소건설 기사 석태, 광천부위원장 그리고 군당책임비서 등이다.

인터넷 모사이트에서 동영상자료로 올려놓고 있는 이 작품을 보게 되면 ‘고난의 행군’이 생기게 된 배경은 세 가지이다.
‘민족의 국상’을 당하자 제국주의자들은 북한을 붕괴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아 그 어느 때보다도 악랄한 고강도의 고립압살정책을 펼쳤다. 여기에 수십년 만에 최악의 자연재해가 겹쳤다. 더구나 동유럽사회주의 몰락으로 대외시장이 없어진 상황이었다.

“사회주의 종말은 조선에서 보게 될 것이다”
당시 서방에서 수도 없이 나온 말이었다. 한국사회변혁운동진영의 일부에서도 북 붕괴설이 나왔던 시기였다.

▲ 송희. 이 어여쁜 여중생 송희는 아사하게 된다.
북한에서는 고난의 행군시기 식량난 발생의 원인을 동유럽사회주의가 몰락되어 북한의 대외 경제협력시장이 없어진데다가 100여년만의 큰 자연재해를 당한 조건에서 미국의 전방위적인 대북고립압살책동이 극에 달한 것과 관련짓고 있다.  © 자주민보


1.많은 사람들이 고통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극복하고자 고난의 행군은 시작된다.

우선 식량난으로 힘들어한다.
중학생인 송희는 간부의 자식이면서도 내내 비틀거리기 일쑤이다. 영양실조이다. 사람들은 산과 들로 나가 참나물, 곰취, 풀뿌리 등 먹을 수 있는 것은 죄다 찾아낸다. 육체적인 힘을 필요로 하는 건설현장 사정도 다를 것이 없다. 발전소 건설현장의 기사인 석태는 배의 허기를 달래고자 그리고 그것이 티가 나는 것을 감추고자 복대까지 하고 다닌다.

고난의 행군은 기어코 송희의 죽음을 불러온다. 송희의 죽음은 식량난 때문이기도 하지만 군행정경제위원장(이하, 위원장으로 표기)이 식량난 극복을 포함하는 고난의 행군을 지휘하느라 자식을 제때 제대로 돌보지 못한 것 때문이기도 한 것이었다.

“산에 들에 풀뿌리가 없어 이 에미를 떠나가느냐”
위원장은 죽은 송희를 묻으며 그렇게 울부짖었다.
위원장의 이 독백은 ‘보리 고개’를 겪었던 우리들 모든 어머니들의 가슴을 에인다.
작품은 이처럼 고난의 행군 시기 북한이 처했던 식량난의 실상을 가히, 거침없이 드러내놓고 보여준다.

작품은 식량난이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주는 것인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 고통을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과정을 잘 형상화하고 있다. 어려울수록 서로 돕는 우리 민족 고유의 인정미가 여러 주인공을 통해서 잘 표현되었다.
송희가 발전소 건설장의 비상식량인 강냉이를 훔치다시피한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식량난으로 학교에 나오지 못하는 친구들을 위해서였다. 배가 고플때면 콩깍지 하나라도 나눠먹는다는 우리에겐 익숙해져있는 말을 상기시켜주는 대목이다.
송희는 마지막 순간에 엄마한테서 받았던 쌀 한주머니를 석태아저씨에게 전해달라는 말을 유언처럼 남기고는 죽어간다.

▲ 고난의 행군에 나서는 수많은 고통들 앞에서 괴로워하고 있는  군행정경제위원장.
그러나 난관들 앞에서는 그녀는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 자주민보


2.고난의 행군 앞에 나서는 ´내부의 난관´을 ´대중적 방식´으로 타개하다.

자식을 자신보다 앞세우는 것은 그리고 그것이 자신이 자식을 잘 돌보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하는 것은 위원장에게 감내하기 쉽지 않은 고통이다. 그러나 위원장에게는 이에 못지 않는 고통과 난관이 끝없이 차려진다.
열악한 조건에서 발전소건설 공정상에서 나오는 어려움은 말할 것도 없는 기본이었다.

보다 큰 난관은 다른 데에서 즉, 내부에서 생겨난다.
발전소의 댐을 쌓고 고압선 철탑을 이전하는 공사가 힘에 부치게 되자 몇몇 간부들에게서 이색적인 흐름들이 나오게 된 것이다.
발전소건설을 통해 마을의 어려움을 타개하기 보다는 관광사업으로 마을 발전 방향을 돌려야한다는 주장이 그것이었다.
공사를 지속한다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실태보고서까지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그 이색적인 조류를 끌어들인 간부는 광천부위원장이었다. 광천부위원장은 위원장이 40여년 전에 헤어졌다가 머지않아 만나게 될 남동생이다.

관광사업 주장은 당장에는 마을 사람들이 발전소건설에 힘을 모으는데 치명적으로 해를 끼친다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위원장에게나 군당 책임비서에게는 심각한 사태였다. 사업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맞딱뜨리는 난관과 시련을 정면으로 맞받아 칠 대신에 그것에 굴복하고 피해가는 것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볼만한 것이다. 이른바, 북한에서 말하는 ‘사상적 병집’에 다름 없는 것이었다.

새롭게 나서는 난관 앞에 힘들어하는 위원장에게 군당책임비서는 “한마을을 돌보는 일꾼도 힘든데 온 나라의 가정을 돌보시면서 불꺼진 거리와 숨죽인 공장들 그리고 허기져 쓰러지는 인민들을 보시며 철령을 넘으시는 장군님의 심중이야 오죽하시겠소”라고 말한 뒤 일화하나를 소개한다.

“초도를 찾을 때의 일이었소. 군함을 삼켜버릴 정도의 파도가 일어서 초도를 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상황이었죠. 수행원들이 만류를 했지만 장군님께서는 받아들이지 않으셨소. 5분이면 갈 길을 50분에 걸려 그것도 자그마한 쾌속정으로 사선의 파도를 헤쳤습니다. 세찬 파도와 바람으로 카메라 렌즈가 깨져 장군님의 사생결단의 장면을 찍지도 못했답니다. 초도의 지휘관들은 빳빳하게 얼은 장군님의 야전복 자락을 붙잡으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병사들은 ‘다시는 이런 뱃길에 오르지 말아주십시오. 우리는 장군님만 계시면 이깁니다’ 라고 장군님 품안에 안겨 울부짖었다고 합니다”

▲ 건설현장에 펄럭이는 ´붉 은기´ .
이 붉은 기를 완성된 발전소 정상에 펄럭이게 하는 것이 마을 사람들의 목표이다.    © 자주민보

관광지사업으로 마을발전방향을 잡으려는 잘못된 흐름과 관련하여 군당책임비서는 군중토론을 조직한다.

군당책임비서는, 김일성 주석이 해방직후부터 중소형발전소를 대대적으로 건설할 것을 당정책으로 내세웠다는 것을 마을사람의 발언을 통해 상기시키는 것으로 토론의 중심과 방향을 잡아낸다.

“닷새면 갈 길을 100여일 동안 걸어야했다. 모진 추위와 굶주림, 적들의 끈질긴 추격, 집요한 회유, 그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자신을 이겨내기 위한 투쟁이었다”
1930년대의 고난의 행군에 대해 군당책임비서는 그렇게 말하며 지금의 고난의 행군에서도 자신과의 투쟁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발전소건설에서 나타난 이색적인 흐름은 외국에 나갔다가 돌아온 젊은 청년의 ‘조국수호’결의를 통해 그 위험한 본질적 문제성이 마을사람들에게 확인되게 되고 결국엔 공사장 한켠에 펄럭이고 있는 ‘붉은 기´에 이르러서는 마침내 완전하게 청산되게 된다.

“수령님의 한생이 어려 있는 저 붉은 기를 완성된 언제 위에 펄펄 휘날리게 하자”
토론의 끝 즈음에 참석한 위원장이 마지막에 외치는 대사이다. 

 

3.´내부의 난관´이 생기는 원천에 직접적으로 달라붙어 설득과 감동을 통해 난관을 해결하다.

대중적 방식을 통해 관광사업문제는 해결되었지만 그러나 그 관광사업문제를 산생케했던 ‘사상적 병집’은 여전히 남아있어 다른 형태로 표출된다.
광천부위원장은 난관에 부딪힌 철탑이전문제와 관련하여 상부에 보고하여 해결하자는 입장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위원장은 ‘광천위원장의 방’에서 직접적인 토론을 벌인다.

<장군님의 부담을 왜 생각치 않는가?>
원칙적인 입장을 곧게 세우는 것으로부터 토론은 시작된다.

<너 같은 일꾼들 때문에 지난날 수령님은 더 험한 길을 더 많이 걸으셨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 장군님께서 차디찬 눈비를 더 많이 맞으신거야!>
어려운 일을 상부에 의거하여 풀어나가려는 것은 일을 쉽게 하자는 것이라면서 위원장은 그것을 공명심과 개인주의적인 관점에서 나온 것이라고 준열하게 꾸짖는다.

이어 위원장은 광천부위원장에게 외친다.
<인민을 보라!>
난관을 정면에서 맞받아칠 수 있는 지혜 특히 힘은 오직 ‘인민대중’에게서 찾아야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위원장이 광천부위원장과 토론을 벌이는 ‘광천부위원장의 방’은 생사조차 몰랐다가 40여년 만에 이루어진 동생과의 상봉 자리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북한 ‘일꾼’의 한 전형을 확인하게 된다. 40여년만의 상봉을 위원장은 단순하게 혹은 감정적으로 처리하는 방식으로 맞이하지 않는다.
40여년만의 눈물겨운 상봉을 현재 ‘과업’을 진행하는 지점에 위치시켜놓고서는 ‘과업’을 풀어가는 방식에 직접적으로 맞물려 놓고 있는 것이다.
그를 위해 행정위원장이 그 이전에 그 얼마나 깊은 사색을 했을 것인지는 위원장의 단호함 그리고 절절함과 눈물에서 금방 읽혀진다.

위원장은 40년만의 상봉이 이루어진 곳이자 토론을 벌인 곳인 ‘광천부위원장의 방’에 대해서 선명하게 규정을 내려준다.
개인의 공명을 쌓는 음습한 방이 아니라 오늘의 고난의 행군을 맨 앞에서 지휘해야할 최전방 지휘소라는 것이다.

▲ 팔엔 토시를 하고 목에는 땀 닦는 수건을 두르고 있는 작업복 차림의 위원장.
군행정경제위원장이라는 높은 직책이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자리가 아니라 일반사람들보다 몇배는 더 땀흘리고 고생하는 자리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 자주민보

위원장은 급기야 ‘광천부위원장의 방’에서 광천부위원장에게 눈물로 심장으로 ‘인민의 심판’을 주문한다.
광천부위원장의 ‘사상병집’을 없애줄 것이 대중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토론이 끝난 후 광천부위원장은 누나인 위원장이 오랫동안 써서 낡고 너덜거리는 장갑을 군당책임비서로부터 전해 받게 되며 결국, 발전소건설에서 난관을 헤치는 ‘최결전’에 목숨을 걸고 돌진하는 모습을 보이며 거듭나게 된다. 

 

4.고난의 행군 앞에 나서는 최대의 난관을 ‘혁명적 군인정신’으로 분쇄해버리다.

산간마을 사람들은 발전소건설과정에서 최대의 난관 앞에 봉착하게 된다.
갑작스러운 폭우였다. 폭우는 1시간 안에 고압철탑을 물에 잠길 수있게 하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되면 일대 화학공장 등 대규모 기업소들의 전력공급이 끊겨 작은 산간마을의 중소형발전소 하나 건설하는 것보다 몇 배나 되는 막대한 국가적 손해를 초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굶주리면서도 애써 쌓은 발전소 제방을 폭파하는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위원장은 그 순간 제방도 살리고 철탑도 높이기 위해 목숨을 건 모험을 결심한다. 바로 제방 물높이를 낮추기 위해 물이 자동으로 넘어가게 만든 무너미제방의 깎아서 낮추어 수위가 급격히 오르는 것을 막으면서 동시에 자키로 철탑을 떠 올려 물에 잠기는 것을 막게 하자는 것이었다.
하여 위원장과 주민들은 결사조를 바로 조직하여 제방과 철탑으로 달려든다. 위원장이 급류에 휩쓸려 죽을 수도 있는 가장 위험한 무너미 제방을 낮추는 일을 하기 위해 불도저를 몰고 제방으로 달려간다. 그때 그 불도저를 가로막아 세우고 운전대를 대신 잡은 이가 동생 광천 부위원장이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나서면 못해낼 것이 어디 있으랴”

▲ 발전소건설에서 최악의 난관을 극복하고 난 뒤 손을 잡는 군인과 위원장
북한에서 강조하는 ‘군민일치’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 자주민보

그렇게 마을 사람들이 난관에 덤벼드는 결정적인 순간, ‘인민군’이 돌진하듯 나타나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나선다.
수륙양용장갑차가 무너미둑 앞으로 에워싸 수압을 낮추어 불도저를 보호하면서 함께 무너미제방 높이를 낮추는 일에 뛰어든다. 그 때 철탑돌격조가 자키로 철탑을 들어올려 안전한 곳으로 옮긴다. 물론 옮기는 순간에도 전기를 공급되고 있는 상황이어서 주변 대규모 공장은 정상가동을 할 수 있었다.

‘인민’들에게 어려움이 나서게 되면 ‘인민군’이 그 전선의 맨 앞에 선다는 전형을 이 작품은 그대로 보여준다.
작품에서 보여지는 북한에서 말하는 ‘군민일치’라는 그 전형은 그러나 결코 단순한 것은 아니었다.
‘인민군’은 무조건 혹은 아무 때나 나서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인민’들이 가장 위험지경에 이르렀을 때 그리고 ‘인민들이 그 위험을 자체의 지혜 그리고 힘을 발동하여 극복하려는 태세를 진행하고 있는 조건에서 ’인민군‘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선다는 것이다.
가장 어려운 시기, 시련을 맞받아 나가는 환경 속에서 사람들의 열의와 결기가 최고조로 이르른 순간에 ‘인민군’과 ‘인민’이 하나가 되고 ´군´과 ´민´은 그렇게 함께 소통한다는 것이다. 그렇듯 작품이 보여준 것은 군민일치의 본질적인 모습이었다.


난관을 물리치고 난 뒤 위원장은 발전소 건설이 마침내 완공단계에 들어섰다고 선포한다. 이어 그 가공할 감동의 순간에 위원장은 입을 뗀다.

“돌이켜보면 힘겨운 나날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린 장군님께서 안겨주신 혁명적 군인정신이 있어 흙짐을 져도 내일을 생각하고 굶어 쓰러지면서도 내일을 그리고 모진 마음속 고통을 겪으면서도 내일의 승리만을 믿으며 불사신처럼 일떠섰습니다.
우린 장군님만을 믿고 끝까지 따라가면 최후의 승리자가 된다는 것을 뼈 속 깊이 새겨 안게 되었습니다.
그처럼 간고한 이 고난의 행군이 낙원의 행군으로 이어지게 되는 그날에는 우리, 장군님 따라 헤쳐 온 오늘을 긍지높이 추억하게 될 것입니다” 

▲발전소건설의 최고난관을 뚫어낸 뒤 투쟁승리를 선언하고 있는 군경제행정위원장
고난의 행군은 설사 우리가 가는 길에 지뢰밭이 있다하여도 곧 바로만 가야하는 신념과 의지의 행군입니다 라고 했던 말을 행동으로 옯겨놓고 장면이다.      © 자주민보


 5. <오늘을 추억하리>에 아쉬운 점이 보인다.

작품 <오늘을 추억하리>는 예술작품으로 접근하게 되면,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목표를 설정해 그 목표를 집단적으로 실현해나가는 서사적인 과정을 그리고 있는 것으로서 예술작품에서 경험할 수 있는 고전적인 감동을 매우 높은 수준에서 불러일으켜주고 있는 뛰어난 연극작품이다.
물론 세세하게 접근해보면 아쉬운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작품 구성에서의 완결성에서 그 아쉬움이 확인된다.

작품을 구성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발전소건설 현장의 한 켠에 나부끼는 ‘붉은 기’가 완공된 발전소의 댐 정상에 꽂혀져 휘날리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는 작품으로 볼 수도 있다.
그 붉은 기는 발전소 건설을 결정하고 시작하면서 마을사람들이 꽂은 기였다.
발전소건설 과정에 닥쳐온 수많은 어려움들은 그 깃발을 그 자리에서 내려지게 할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저 붉은 기는 수령님의 한생이 어려 있는 깃발이다”
이는 주인공이 어떤 난관이 와도 신념과 의지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면서 한 대사이다. 마을 사람들은 발전소건설투쟁의 승리를 ‘언제에 저 붉은 기가 휘날리게 하는 것’이라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이 작품은 발전소 건설의 완성과정을 그리고 있지만 그 깃발이 완공된 발전소 정상에 휘날리는 모습은 형상화하고 있지는 않다.
작품전체를 휘감고 있는 주제를 그 ´붉은 기´에 맞춘다면 이 작품이 구조적인 측면에서 아쉬운 측면이 바로 이것이다.


 
6.<오늘을 추억하리>에 대해 북한은 선군시대 문학예술의 기념비적 걸작으로 평가하다.

북한에서는 연극을 비롯하여 영화 등 모든 예술에 대해 ‘사상적 무기’로 그 의의와 본질적 사명을 분명하게 규정을 짓고 있다. ‘사회의 모든 성원을 주체형의 혁명가로 키우고 온 사회를 주체사상의 요구에 맞게 개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는 것이다.

<오늘을 추억하리>에 대해 연합뉴스 7월 19일자 보도만큼이나 상세하게 알려주고 있는 언론보도는 아직 없다.

<주체적 연극이론을 창작실천에 철저히 구현하여 선군시대의 미감에 맞게 창조해낸 사상예술성이 완벽한 훌륭한 연극>
<슬픔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신념과 의지에 대한 추억을 철학적으로 깊이 있게 해명한 명작중의 명작>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오늘을 추억하리>에 내놓은 평가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평가는 “사상성은 물론 모든 형상요소들이 최상의 경지에 이른 연극”이라며 매우 구체적인 데에까지 미치고 있다. 특히 인간관계 설정으로부터 극작술, 무대미술, 효과음악, 연기형상에 이르기까지 손색 없는 작품이라고 지적을 하기도 했다.

<선군시대 문학예술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기념비적 걸작>
이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이 작품에 대해 내린 최종적인 평가이다.

‘기념비적 걸작’이라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극찬은 관람자들의 반향에서도 그대로 확인된다.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시기 우리 인민이 과연 무엇을 힘으로 하여 억척같이 일떠섰는가 하는 것을 감명 깊게 보여주는 공연을 보면서 내일을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바친 인간은 오늘을 값 높이 추억하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인간들에게는 쓰라린 후회밖에 남을 것이 없다는 혁명적 인생의 진리를 다시금 깊이 새겨 안았으며 주인공들의 그 정신, 그 기백으로 강성대국건설위업 실현에 한 몸 다 바쳐갈 불타는 결의를 다지였다”는 것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이 연극작품을 선군시대 인간들의 가슴마다에 혁명적 인생관, 미래관을 새겨주는 훌륭한 교재로 될 수 있다고 지적함으로써 장기 공연에 들어갈 것임을 예고해주고 있다.
최근 경희극 ‘산울림’이 그러했듯이 평양은 물론이고 지방에서도 절찬리에 공연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평양 소재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고 있는 평양의 젊은 여성들.
젊은 여성들의 밝고 맑은 모습에, 고난의 행군시기 죽어갔던 송희의 얼굴이 오버랩 된다.  사진자료 인터넷블로그에서 펌  ©자주민보


 
7.북한 김일성 상 계관작품 연극,<오늘을 추억하리>는 주인공인 위원장의 독백으로 끝을 맺는다.

그렇다. 내일. 이 나라 사람들에 단 하나, 목숨이었고 삶이었고 투쟁이었던 내일, 그 내일을 우리 장군님 혁명적 군인정신으로 천만군민의 가슴 속에 억척같이 심어주셨으니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
아! 잊지 못할 그 시련의 언덕에서 내일의 인생관으로 조국과 혁명을 구원하신 절세의 애국영장 김정일 장군님의 만고의 업적 후손만대에 길이 전하며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우리는 승리의 한길 만을 가고 가리라■

▲ 평양의 야경
´오늘을 추억하리´에서 말하는  ‘내일’이 이런 것이었을까?  사진자료 합동뉴스에서 펌     © 자주민보

[출처: 자주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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