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기(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원)
2009년 11월 30일 단행한 북한의 화폐개혁이 실패했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2월 11일, <YTN>을 비롯한 국내언론 다수는 일제히 최룡해 북한 황해북도당 책임비서가 1월 10일에서 15일 사이의 시점에서 열린 도당책임비서회의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화폐개혁 뒤 인민생활이 처참하다고 직언하였다고 보도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일보>는 이것을 “화폐개혁 수습 출구전략 카드”라고 보도하기도 하였다.
<동아일보>와 <서울신문>은 이를 바탕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화폐개혁의 실패를 인정했다고 보도하였다. <서울신문>은 애초 북한의 화폐개혁은 1월 중순경에 시작될 예정이었는데 관련 정보가 새나가는 바람에 일정을 앞당겨 11월 30일에 전격 단행하였지만 그로 인해 상당한 부작용이 초래되고 말았다고 인용하였다.
2월 12일이 되자 <연합뉴스>와 <세계일보> 등은 북한 국경지역에서는 시장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으며 이미 중국의 위안화가 공용화폐로 되다시피 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조선일보>는 이를 ‘위아나이제이션’이라 표현하였다. 북한 화폐개혁이 실패한 결과, 북한주민들이 북한신권을 외면하고 중국의 위안화를 중시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2월 17일, <동아일보>는 북한 김영일 내각 총리가 2월16일 중앙보고대회 주석단에서 빠졌는데 그 이유가 화폐개혁 실패 때문이라고 보도하였다. 남측 언론은 이미 박남기 조선노동당 계획재정부장이 지난 1월 화폐개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전격 해임되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나아가 <조선일보>는 2월 11일자 1면 머리기사에서 “2월 10일, 김영일 내각총리는 평양시에서 수천명의 인민반장(한국의 동장)을 모아놓고 화폐개혁 실패에 대해 사과하였다”고 대서특필하였다.
언론들은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인민생활 관련 현지지도가 부쩍 늘어난 것도 화폐개혁의 실패를 수습하기 위한 행보라고 분석하며 2월 8일 발표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인민보안성, 국가안전보위부 연합성명’도 화폐개혁 실패로 인한 내부반발을 탄압하기 위한 주민협박용이라고 분석한다.
한국언론의 보도를 보면 북한의 화폐개혁은 대실패하였으며 그로 인해 북한체제는 상당히 위태롭다는 결론에 이르고 만다.
보도의 근거는 무엇인가
2월 11일부터 진행된 ‘북한 화폐개혁 실패’ 정보의 출처는 과연 어디일까? 흔히들 미국의 CIA나 한국의 국가정보원과 같은 고급정보기관의 분석정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놀랄만한 사실은 이 모든 정보들이 ‘열린북한방송’, ‘좋은벗들’ 등 반북성향 단체의 보도내용을 그대로 짜깁기한 보도라는 점이다. 이들은 그들만의 ‘대북소식통’이 있다고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한국언론 상당수가 반북단체들이 보유하고 있다는 대북소식통의 전언을 아무런 여과 없이 옮겨대고 있는 것이다.
다수의 대북소식통을 거느린다는 이들은 어떠한 단체인가. 일례로 ‘열린북한방송’은 2005년 12월에 개국한 대북방송중계사업자로 2006년에는 미국 국무부가 주는 대북방송지원 예산 가운데 첫해 분 100만 달러의 공동수혜자 세 곳 가운데 한 곳으로 선정된 기관이다. ‘열린북한방송’의 대표는 하태경 씨로 이 사람은 1990년대 초반에는 전대협에 몸담았지만 이후 뉴라이트로 전향하였다. 하태경 씨는 2007년 11월, 뉴라이트 지식인 100인 선언에 동참하였으며 2008년, 북한인권캠페인을 개최하였고 2008년 자유주의 연대에서 개최한 토론회에도 뉴라이트 핵심인물들인 김영환, 홍진표, 최홍재 등과 나란히 참석한 바 있다. ‘좋은벗들’ 역시 한나라당 원희룡 의원이 이사를 맡고 있는 반북단체로 워싱턴 백악관 옆에 미국지부를 두고 있다.
2006년 9월 당시 <동아일보>는 ‘열린북한방송’을 정식 직원 4명의 자그마한 방송국이라 보도하였다. 4년도 채 되지 않은 오늘날, ‘열린북한방송’이 얼마나 많은 대북소식통을 거느리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명박 정권 집권 이후 이들 보수단체들이 벼락출세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이들의 보도수준은 신빙성이 매우 낮다. 일례로 ‘북한총리 사과보도’는 <조선일보>측은 시점이 2월 10일이라고 주장하였지만 ‘좋은벗들’은 2월 9일 이전이라고 보도하였다. 날짜가 다르면 그들의 ‘대북소식통’에게 다시금 확인이라도 해야 정상이겠지만 이들에게서 그런 정정보도는 찾아볼 수도 없다.
명백한 사실은 과거 학생운동에서 변절한 뉴라이트 활동가들이 앞장서서 미 국무부의 자금지원을 약속받은 단체를 이용, 북한 화폐개혁이 실패하였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국내언론들이 이에 대해 아무런 검토 없이 방송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은 무엇일까
그렇다면 화폐개혁의 영향은 현재 북한사회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서는 뉴라이트의 주장과 함께 북한 당국의 입장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북한은 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연일 ‘경제강국건설’을 독려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노동신문>의 표현이다. 북한은 1월 20일자 “승리자의 기세 드높이 대고조 속도를 최대로 높이자”라는 제목의 <노동신문> 사설에서 “당의 영도 밑에 전 인민적인 총결사전이 벌어지는 속에서 강성대국의 대문을 두드리는 놀라운 사변들이 일어나고 인민의 이상이 실현되는 희한한 현실이 펼쳐졌다”고 주장하였다. 이어 2월 1일 <노동신문> 정론 “우리는 승리를 굳게 믿는다”에서는 “인민생활 향상에서 큰 변이 터져 우리의 거리와 집집마다에 기쁨과 웃음을 안겨주고 당의 은덕이 더 큰 행복을 꽃피울 그날이 속속히 다가오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노동신문>은 북한당국의 공식입장이며 2,400만 명에 달하는 북한주민들이 <노동신문>을 빠짐없이 읽는다는 것 역시 명백한 사실이다.
‘인민의 이상이 이루어지는 희한한 현실이 펼쳐진다’는 <노동신문> 사설의 보도시점은 1월 20일이다. ‘열린북한방송’ 측은 1월 15일 전에 이미 최룡해 비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화폐개혁 뒤 인민생활이 처참하다고 직언하였다는데 이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5일 후의 “희한한 현실이 펼쳐졌다”는 노동신문의 사설은 오히려 북한주민들에게 당에 대한 반감을 심어놓고 말 것이다. 또한 내각총리가 사과를 한들 그 사과를 진심으로 받아들일 북한주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북한당국은 사설과 정론을 그대로 보도하였다.
특히나 1월 23일 재일 <조선신보>는 북한 사회과학원 경제연구소 김철준 소장의 견해를 인용하면서 “경제강국 건설전망은 밝다”고 주장하였다. 기사는 전망이 밝은 이유가 과학적 타산에 기초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는데 이것 역시 뉴라이트의 화폐개혁 대실패 주장과 정반대의 견해이다. 화폐개혁이 실패한 마당에 과학적 타산을 언급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이 화폐개혁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북한언론은 연일 경제발전의 성과를 내세우고 주민들을 고무하기 바쁜 반면 뉴라이트를 비롯한 반북세력들은 북한의 화폐개혁이 실패하였다고 주장하며 국민들에게 북한체제가 흔들린다는 것을 주지시키기 바쁘다는 것이다.
논리를 상실한 뉴라이트에 놀아나는 한국언론
실제 북한의 인민보안성과 국가안전보위부는 2월 8일, 연합성명을 발표하였다. 보수세력들은 이 연합성명도 화폐개혁 실패 이후 동요하는 북한주민을 위협하기 위한 강경책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의 존엄 높은 체제와 나라의 안전을 해치려는 반공화국 광신자들을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릴 것이다’라는 제목의 연합성명은 서두에서 성명의 대상이 북한주민이 아니라 “남조선당국의 반공화국체제 전복시도”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성명에서 북한 당국은 NLL 고수를 노리는 남한군부집단, 날로 심각해지는 반공화국 빠라살포행위, 국정원, 기무사 등 정탐기관들의 정탐활동 등을 “체제전복시도”로 규정하였다.
이것은 ‘연합성명’이 화폐개혁 실패 후 주민을 통제하기 위한 방편이라는 반북단체들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다. 오히려 북한당국의 연합성명은 다름 아닌 뉴라이트 등의 반북보도를 타격하기 위한 것이라 보는 것이 맞다. 한국언론들이 ‘연합성명’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뉴라이트의 분석을 베낀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열린북한방송’의 화폐개혁 실패 주장은 한국언론을 타고 무차별적으로 유포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한국언론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이구동성으로 뉴라이트 등 반북성향 단체들의 주장에 보조를 맞추고 있다.
검증 안 된 반북성향 단체들의 막말을 언론이 계속해서 그대로 받아 적고 만다면 남북 간의 갈등은 더욱 커져갈 수밖에 없다. 북한 입장에서는 이러한 반북적 편파보도를 이명박 정권의 언론통제 결과로 볼 수도 있으며, 이것이 남북정상회담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언론들이 제대로 기사를 작성한다면 최소한의 객관적 증거를 언급하며 기사를 작성하거나 그도 아니라면 북한경제와 관련한 북측 주장을 함께 보도하면서 중립적 입장을 지키고 판단은 국민들의 몫으로 돌리기라도 해야 할 것이다.
[출처: 한국민권연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