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상봉이야기2] 미국에 있는 이산가족은 어떻게 만날까? > 새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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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 | [가족상봉이야기2] 미국에 있는 이산가족은 어떻게 만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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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1-04 03:4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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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여름 북을 방문하여 헤어진 형님 가족을 만나고 돌아온 이형식 재미동포의 가족상봉이야기를 소개한다. 필자는 <재미동포전국연합회>의 도움으로 70년 분단 조국의 저 편에서 월북한 형님의 유족을 눈물과 회한의 상봉을 하고 왔다고 한다. 필자는 북조선의 <해외동포원호위원회>와 미국의 <재미동포전국연합회>관계자들에게 진심으로 무한한 감사를 올린다고 하면서 수십만 재미동포들중 나와 같은 처지에서 흩어진 가족, 친척을 북조선에서 찾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용기와 신뢰를 가지고 <재미동포전국연합회>를 찾아주기를 간절히 부탁드린다고 당부의 말을 잊지 않았다.

그의 가족상봉이야기를 연재로 소개한다.

 


[가족상봉이야기 2]

 

 

미국에 있는 이산가족은 어떻게 만날까?

 

이 형 식(재미동포)

 

 

     재미동포의 한 사람인 나는 해방된 우리 조국이 둘로 갈라지던 비극의 시기에 '월북'의 추측을 낳고 행방불명되어 지금까지 근 70년간 이산가족으로 남았던 형님의 유족들을 조국의 저 편에서 기적처럼 찾았다. 우리 가족은 형님의 생사와 행방에 관해 근 70년간 암흑 속에 묻혀 있었으나 <재미동포전국연합>의 인도주의적 '이산가족찾기 및 상봉' 사업의 혜택을 받아 형님을 북조선에서 찾아보았다. 비록 찾고 있던 형님은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기적처럼 그의 유족들을 찾는 광명을 맛보게 되어, 나는 2015년 여름에 평양에 가서 생면부지의 그들을 만나고 돌아왔다. 만나본 조카들이 내게 가져다 준 형님의 ‘리력서’란 이름의 자서전을 통해 그의 월북경위를 포함한 전생애의 기록을 접하게 되었다. 열흘간으로 계획된 나의 평양방문에서는 조카들과의 상봉에 이어 많은 사적지들 및 기념물들과 문화적 유산들을 돌아보면서 다시 하나가 될 통일조국을 가슴으로 느끼는 꿈같은 체험을 하게 되었다. 아직까지도 나와 같은 ‘이산가족’의 불행을 겪고 있을 많은 재미동포들에게 나의 이 체험을 소개함으로써 혹시 북조선에 있을지 모르는 이산가족, 특히 월북가족이나 친척들을 찾을 수 있는 길을 열어 가길 바라며, 통일조국을 희망하는 모든 동포들에게 하나 된 조국의 꿈을 더 해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글을 쓴다.

 

 

2.  참혹한 ‘이산가족’의 실태와 실망스런 ‘남북이산가족상봉’의 역사

 

때때로 신문지상에 보도된 우리 조국의 이산가족 실태는 이러했다. 해방 후부터 전쟁시기까지 약 29만 명이 남으로 부터 월북하였거나 납북되었으며, 약 45-65만 명이 북으로 부터 월남하였다. 물론 이러한 통계들은 나의 형님처럼 행방이 불명하지만 분명히 가족과 헤어진 분단의 희생자들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남북이산가족’ 외에, 같은 남한 땅에 살면서도 서로 행방을 알 수 없는 이산가족들도 부지기수다. 이것은 1983년 남한의 KBS가 <이산가족찾기> 방송 프로그람을 통해서 남한내에 행방불명으로 흩어져 있던 수 많은 이산가족들을 찾아주고 만나게 해 주었던 사례로써 여실히 증명되었다. 그 뿐만이 아니다. 지난 수십년간 간헐적으로 신문지상에 보도된 바와 같이 남한의 여러 지역들에서 전쟁전후에 미군이나 아국의 군경들에 의해 자행된 각종 학살사건의 희생자들, 예를 들어 <노근리학살사건>, <대전형무소학살사건>의 희생자들이 집단매장된 시체들로 발견되었는데, 숫자 미상의 이와 같은 피학살자들 또한 가족들과의 이산에 대한 분명한 기록이 없이 사라져간 인구들이다. 아닌게 아니라, 이런한 역사적 사실로 하여 나의 부모들은 혹여 나의 형님 또한 이런 부류의 희생자들중에 하나가 되지 않았는가 하는 막연한 걱정도 하고 계셨었다. 

 

분단이 고착된 우리 조국에서 남, 북의 정권들이 최초로 합의하여 도합 100명의 이산가족들을 만나게 한 것은 1985년에 있었던 <서울-평양간 고향방문단과 예술공연> 행사를 통해서 였다. 분단 40년만의 이 첫 행사는 비록 단 100명만이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고 만날 수 있었던, 극히 작은 규모의 이산가족 상봉이 었지만, 그것은 분명 모든 남, 북 이산가족들에게 앞으로의 상봉에 대한 꿈과 민족통일의 희망을 샘솟게 한 역사적 사변이었다. 이 첫번째의 이산가족 상봉을 효시로 하여 2000년부터 2014년 까지의 사이에 19차례의 ‘남북이산가족상봉’ 행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 진 것은, 그 하나 하나가  참으로 이산가족의 상봉이라는 인도적 과제뿐만이 아니라 우리 민족 모두에게 궁극적인 조국통일의 희망을 심어주고 통일의식을 일깨워 주는 중요 행사들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행사들은 지난 30년간 어쩌다가 가물에 콩나듯 있었을 뿐, 남북간에 그칠줄 모르고 반복되는 정치적, 군사적 긴장상태로 지속적으로 발전하지 못하여 절대다수의 이산가족들에게는 지금까지도 막연한 꿈으로 남아 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꿈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노령으로 이 세상을 하직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남, 북이 지난  해 8월에 전쟁접경에 이르렀던 위기상황을 극복하고 10월에 제20차의 ‘남북이산가족상봉’ 행사를 치룬 것은, 이것이 앞으로 또 얼마 동안이나 하나의 안타까운 역사적 단막극으로 될 것인지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산가족 상봉 모습

 

이렇게 이산가족 상봉의 역사가 간헐적으로 이어져 왔던 지난 30년의 역사는 우리 가족에게도 없어진 형님을 찾을 수 있을까하는 희망을 조금이나마 갖게 하였다. 하지만, 우리 가족 그 누구도 형님을 찾아 나설 여건이 돼 있지 않았고, 나에겐 막연히도 언젠가 내가 죽기전에 조국이 통일 되면 그 때엔 찾아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다. 우선 우리의 부모님들은 이 이산가족상봉의 역사가 시작될 무렵을 전후하여 서울에서 돌아가셨으니 말할 것도 없거니와, 우리 남매들은 모두가 미국에서 이민자들로 살고 있다 보니 조국에서 벌어졌던 그간의 ‘남북이산가족상봉’ 행사의 기회들 조차도 엿보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혹시나 무리를 해서 알아보려고 해도 우리의 사정은 남한정부가 규정하는 이산가족상봉 신청요건인 ‘월남가족’이나 ‘납북자가족’에 해당이 안되는 것이 문제였다. 이런 이유들로 인하여 우리 남매들은 매번 있은 조국의 ‘남북이산가족상봉’ 행사에 그저 안타까운 마음을 더할 뿐, 무슨 방도를 모르는 채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아마도 우리와 같은 입장에 처해 있는 사람들이 남한과 해외에 무수히 많이 있으리란 것이 나의 추측이다. 우리 재미한인동포사회에도 물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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