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기억 속에 살아계시는 선우학원 박사님 > 회원마당

본문 바로가기
회원마당

나의 기억 속에 살아계시는 선우학원 박사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조명지 작성일15-05-24 18:18 댓글0건

본문

 

나의 기억 속에 살아계시는 선우학원 박사님

 

 

조명지(재미동포전국연합회 중남부 회장)

 

 

나는 네 번에 걸쳐서 선우학원 박사님을 만나 뵐 수가 있었다. 박사님은 내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어른이셨다. 멀리 살았기 때문에 항상 만나 뵙고 친분을 쌓았던 그런 분은 아니었지만, 재미동포연합회의 고문으로서 우리와 뜻을 같이하고 통일운동을 함께 하는 동지적인 연대를 가지신 분이었다. 나는 선우학원 박사님을 만날 때마다 박사님과 같은 훌륭한 분과 함께 통일운동을 한다는 것에 자긍심을 가졌다. 그래서 박사님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던 시간은 늘 귀하고 감사했다.

 

내가 처음 박사님을 만날 수 있었던 때는 20004년이었던 것 같다. 그때 선우 박사님은 LA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미국위원회주최 포럼에 강사로 오셨다. 박사님은 사모님이셨던 소니아 여사와 큰 아들 정민과 함께 오셨다. 사모님은 그때 이미 몸이 아주 쇠약해있었다. 사모님은 그 이후 곧 돌아가신 것으로 안다.

 

처음 만났을 때 선우박사님에 대한 나의 기억이다. 준수한 용모에 고귀한 영혼이 살아있는 분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절제된 생활습관이 몸에 베어서 그러한지 진지하고 엄격하게 보였다. 무엇보다도 가장 인상에 남았던 것은 형형하게 살아있는 눈빛이었다. 그때 나는 영혼이 살아있는 얼굴을 가진 분을 만났구나. 참 영혼이 맑은 분이구나라고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선우박사님은 미주통일역사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통일심포지움을 열고 국제적인 회의을 주선하기 위해서 개인의 주머니를 털어서 그 경비를 부담하였던 이야기도 해주셨다. 그때 하신 말씀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런 말이었다. “통일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가 있어야 한다. 통일 운동에는 언제나 자본이 필요하다. 우리는 자본주의 속에서 살면서 자본주의에 대해서 철저한 비판을 하여야 하지만 또한 자본주의를 이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설립한 <선우평화재단>은 통일운동을 하는 단체나 개인에게만 재정적인 지원을 한다고 하셨다. 자신의 재산을 개인의 욕망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으시고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통일운동을  돕는 일에 사용하시고 계시는 선구자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음을 다시 깨달았다.

 

그 이후로 LA 6.15실천위원회가 마련한 선우학원 박사님의 90세 생신 축하자리에서 만나 뵐 수가 있었지만, 그때는 먼빛으로 만나 뵙고 많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하였다. 실제로 선우학원 박사님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었던 것은 2010년 평양에서 열린 4월 명절 때였다. 박사님이 93세이었지만 정말 건강하셨다. 박사님은 통일운동에 대한 신념이 투철하셨으며, 우리에게 통일운동에 얽힌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이때 두 아드님, 정민, 정국, 그리고 며느리 백은숙 선생과 함께 오셨다. 우리 재미동포축하단은 모두 고려호텔에 머물렀는데, 일주일간의 행사 기간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가 있었다. 그때 인상깊었던 것은, 부인이신 쇼니아 여사가 세상을 떠난 후 몇 년을 여행을 삼가면서 추모의 시간을 가졌다가 처음으로 온 여행이라고 하신 것이었다. 참 진실하고 충실한 분이구나 생각되었다.

 

그때  박사님은 나에게 같은 동연배인 여성으로서 며느리 백은숙 여사를 통일운동에 끌어들일 것을 진지하게 부탁 하셨다. 백은숙여사는 감리교단체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한 적이 있으며, 남북이 동시에 유엔에 가입했을 때 그 감격으로 인공기와 태극기를 들고 뉴욕에 있는 유엔건물 앞에서 남편 선우정민과 함께 환영의 뜻을 전했던 활동가이다. 그때 나는 나와 동갑인 백은숙 여사와 친구가 되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백은숙 여사를 통해서 선우 박사님의 생활철학과 삶의 원칙에 대해서 들을 수가 있었다. 그것을 나는 이렇게 노트에 기록하여 두었다. 선우학원 박사님이 건강하신 비결은: 1. 철저히 절제하면서 자신을 단련함. 2. 집중해서 일을 함. 3. 건강한 음식을 드는 습관을 가지심. 4. 목적의식이 분명함. 4. 대단한 결단력이다.                                                                                                                                       

이러한 철저한 정신력을 가지고 생활하시기에 93세이신데도 왕성한 활동(집필과 강연)을 할 수가 있다고 했다. 덧붙여서 선우학원 박사님은 명석한 두뇌와 비상한 기억력을 가지고 계신다고 했다. 나는 박사님의 고귀한 정신과 민족통일에 대한 확고한 자세를 경험하고 또 이야기로 전해 들으면 경탄과 존경의 마음을 금치 못하였다.

 

마지막으로 박사님을 만날 수 있었던 때는 2012년 김일성주석 탄생 100주년 행사에서였다. 선우학원 박사님도 미주대표로 이 행사에 참석하셨다. 박사님은 이미 95세이셨다. 거동이 약간 불편해서 작은 아들 정국이 휠체어를 밀고 우리와 함께 행사에 참여하였다. 두 분 선우 박사님과 아버지의 모습을 똑 닮은 아들이 동행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다. 그때 휠체어를 밀고 다니던 아들 정국이 아버지가 아직도 여전히 건강하시고 왕성한 활동을 하신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이때 선우박사님은 작은 아드님 정국과 2명의 손자와 손녀와 함께 참석하셨다. 당시 100주년 행사가 성대하게 치루어졌기 때문에 중요한 행사가 많았다. 박사님은 모든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시면서 경제발전에 매진하고 있는 북쪽에 대한 경외감과 북에 대한 사랑과 이들이 지키고자 하는 자주성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북미관계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해 4월은 몹씨도 추웠다. 95세이신 박사님은 굳건하게 추위를 견디면서 모든 행사를 다 참가하였다. 김일성광장에서 2시간 이상 서서 기다려서 김정은원수가 하시던 첫 연설도 함께 들었던 기억이 난다. 추위 때문에 창백해진 박사님이 김정은원수의 첫 연설을 듣고 기뻐하시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이때는 미국에서 온 분들은 모두 함께 초대소에 있었다. 선우 박사님은 작은아들 정국과  함께 우리가 머문 옆집에 계셔서 더 가까이서 뵐 수가 있었다. 나는 이번이 박사님을 북에서 만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것이라는 예감에서 선우학원 박사님에게 특별면담을 요청하여 인터뷰했다. “통일운동을 하는 후배들에게 무슨 말을 남기고 싶은가?” 라는 나의 질문에 우리들이 마음에 새겨야 하는 중요한 말씀을 해 주셨다. “통일운동은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향해서 꾸준히 나아가야 한다. 중간에 좌절하여 그만두면 안 된다. 그리고 함께 일을 하는 사람들과 서로 신뢰를 쌓고 동지적인 관계를 형성하여야 한다”

 

 그때 나는 이런 질문도 하였다. “현재 통일운동을 하는 분들 중에 박사님이 가장 신뢰하는 사람은 누구세요? “박사님은 빙그레 웃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현재 통일운동하는 사람 중에 가장 신뢰하면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이러하다. 즉 끝까지 신심을 가지고 민족통일문제를 안고 씨름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이 일을 통하여 개인의 욕심을 부리지 않고 오직 대의를 위하여 자기를 바칠 줄 아는 사람들이다. 언제나 마음이 한결같다. 일을 하다 보면 때로는 의견의 차이가 있지만 언제나 신뢰와 믿음으로 다시 한마음이 될 수 있는 한결같은 마음을 가지 사람들이다.” 본인이 믿고 신뢰하는 사람은 한결같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이분들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시면서  나에게 이렇게  당부하셨다. “이러한  사람들은 믿고 신뢰할 수가 있으니 동지로 믿고 잘 따르라” 고 하셨다. 나 또한 개인적으로 이러한 분들을 신뢰하고 이들의 헌신하는 모습에 늘 감동하고 있었기 때문에 박사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을 하였다.

 

이 기간에 같은 차로 움직이는 우리는 식당에서 가족을 면담하고 나오셔서 차를 기다리고 있는 선우 박사 가족들을 모두 볼 수가 있었다. 모두들 금방보아도 선우학원 박사님 가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비슷했다. 그때 아주 인상적이고 감동적인  장면을 목격하기도 했다. 박사님이 북쪽의 가족 중 아마도 사촌 동생뻘 되는 한분에게 여행길에 입고 오셨던 겨울 코트를 벗어서 직접 입혀주고 계셨다. 처음에 사양하던 동생 분은 박사님의 온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따뜻한 코트를 입자 몹씨도 흡족하고 고마와하였다. 그때 두 분 다 눈물을 글썽이며 서로 바라보고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분단으로 헤어져서 자유롭게 만나지 못하는 이산의 아픔과 안타까움, 그 절박함이 서로 나누고 있는 따뜻한 정과 사랑 속에서 깊이 묻어났다. 그때 나는 이 장면에 깊이 감동받았다. 그러면서 혼자서 다짐했다. 나도 다음에 올 때는 꼭 두꺼운 겨울코트를 입고 와서 이곳에 사시는 분에게 전해주고 가야겠다. 그래서 다음에 나는 실제로 두껴운 새 코트를 입고 와서 집으로 돌아올 때 그 코트를 벗어주고 왔다.

 

박사님에 대한 새삼스럽게 놀랐던 기억이 또 있다. 2012년 그해, 평양에서 서울로 들어가는 나에게 박사님이 손수 쓰신  통일에 관한 논문원고와 함께 본인의 쓰신 소설 원고를 지인 한분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나는 그 두 원고를 들고 서울로 들어갔다. 나는 박사님이 쓰신  통일에 관한 논문도 중요하게 생각했지만, 박사님이 손수 쓰신 소설에 대해서 무척 궁금하게 여겼다. 그래서 시간을 내어 그 소설을  단숨에 다 읽어 보았다.

 

박사님이 젊은 날 유럽에서 공부할 적에 파리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쓴 자전적인 소설이었다. 나라를 잃고 울분에 쌓여있던 파리에 사는 조선의 젊은 엘리트들의 이야기였다. 그들의 활동과 인간관계, 그리고 그 속에서 펼쳐졌던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는 소설이었다. 민족해방문제, 사상문제, 예술을 향한 열정, 그리고 한 여인을 둘러싼 낭만적인 사랑이야기였다. 물론 이 소설은 출판되지 못했다. 나는 박사님이 연애 소설을 쓰셨다는 것에 놀랐다.

 

선우 박사님의 풍부한 정서와 감수성, 그리고 문학적인 소양에 감동하였다. 박사님의 이러한 풍부한 감수성이 통일운동에 온 생을 불태울 수 있는 열정의 근원이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또한 이 글을 읽으면서 선우학원 박사님의 젊은 날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하고 상상해보았다. 열정과 이상, 꿈, 사랑, 낭만, 민족애, 나라잃은 울분, 민족해방에 대한 염원, 등 젊은 날의  박사님의 열정과 고뇌도 그려보았다. 

 

이것이 내가 10년 동안에 가진 선우학원 박사님과의 친분이었고 기억이다. 내가 처음 만났을 때의 선우학원 박사님은 이미 90이 가까운 80대 후반이셨다.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4번 정도로 만났다. 그리고 선우 박사님의 생의 마지막 여정을 지켜볼 수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경험한 선우학 박사님이야말로 진정한 양심 있는 지성인이었다. 그리고 시대정신을 갖고 산 역사의 증인이었다. 선우박사님은 인간적인 풍모는 엄격하게 보일 정도로 진지하고 고상함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그리고 열정적이시며 동시에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이셨다. 그래서 나는 이분에게 특별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선우박원 박사님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충만하고 충실한 삶을 살았다. 나는 박사님의 마지막 삶을 예수님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말로 요약하고 싶다. “모든 것을 끝마쳤다: It’s Finished.” 예수님이 하신 마지막 말은 에수님이 이루고자 하는 하늘의 뜻을 본인으로서는 다 끝내었다는 말이다. 이제는 다음 세대 그의 제자들의 과제로 남긴다는 의미심장한 말이다.

 

박사님은 하늘의 뜻인 민족통일문제를 안고 온 삶을 바쳤다. 갈등과 고뇌, 외로움, 때로는 불신과 의혹 등, 인간적인 고통을 당하시기도 하신 분이다. 그러나 단 한 번도 변하지 않고 한길을 꾸준하게 걸어오셨다. 분단된 민족문제를  온 몸으로 껴안고 민족통일을 위해서 달려갈 길을 다 달려가셨다. 선우학원 박사님은 빛나는 지성과 행동하는 양심, 고귀한 인품, 진지함, 절제된 엄격함 이러한 모습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계신다.

 

우리는 선우학원 박사님이 이루고자 하신 일, 민족통일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본주의에서 개인적인 욕망을 위해서 사는 삶을 거부하고 공동체적인 삶, 전체적인 공동의 선을 추구하는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절제된 삶, 살아있는 정신으로 이 세상을 직시하고 세상에 물들지 않고 굳건하게 살아야 한다. 특별히 미국이라는 자본주의와 개인주의에 젖어서 사는 우리가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깨어있는 정신으로,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민족통일이라는 대 과제를 안고서 살아가야 하는 게, 생을 끝마친 선우학원 박사님을 기리는 우리들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박사님과의 만남을 회상해보면서, 우리가 어떻게 박사님이 남기신 과제를 이룰까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것을 향해서 전진하겠다고 다짐한다.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있는 정신으로 다시 찾아오시는 박사님에게 무한한 감사와 존경을 보내드린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5-05-24 18:31:09 새 소식에서 복사 됨]

추천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인기게시물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새형의 600mm방사포차성능검증을 위한 시험사격을 보시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핵무기연구소와 무기급핵물질생산기지를 현지지도하시였다
[KCTV 조선중앙텔레비죤 보도] 9월 15일 (일)
우리는 눈부신 번영의 내일을 굳게 믿는다
[동영상]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조선인민군 특수작전무력훈련기지를 현지시찰하시였다 외 4
[세계생물권보호구] 구월산지구
[양의 탈을 쓴 이리의 평화론] 이리의 얼굴을 한 이리나 양의 얼굴을 한 이리나
최근게시물
《여기가 우리 사는 마을입니다》
《지역안보유지》가 아니라 패권유지를 위한 것이다
방위비분담금협상에 비낀 미한동맹의 현주소
조선 외무성 중대성명/주권사수,안전수호의 방아쇠는 주저없이 당겨질것이다
조선로동당창건 79돐을 경축하여 향도의 당을 따라 모든 영광을 맞이할 인민의 락관 온 나라가 뜻깊게 경축
조선로동당창건 79돐을 경축하여 청년학생들의 야회 및 축포발사 진행
[사진으로 보는 로동신문] 10월 11일 (금)
김정은 위원장 담화 /일군들은 창당의 리념과 정신을 체질화한 공산주의혁명가가 되여야 한다
조선로동당창건 79돐 경축공연 성대히 진행
조선로동당창건 79돐 경축연회 진행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위원장의 동상에 일군들과 근로자들, 인민군장병들과 청소년학생들 꽃바구니 진정
조선로동당창건 79돐에 즈음하여 당중앙지도기관 성원들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숭고한 경의 표시
Copyright ⓒ 2000-2024 KANCC(Korean American National Coordinating Council). All rights reserved.
E-mail:  :  webmaster@kancc.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