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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163] 미국의 티파티(Tea Party)를 모방한 박근혜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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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태영 작성일15-03-14 23:23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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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163] 제3세계의 눈으로 식민지 한국을 파헤친다.

 

             

미국의 티파티(Tea Party)를 모방한 박근혜 정권

                  

티파티에 납치된 미국을 맹종하는 박근혜

 

 

유태영(재미동포전국연합회 고문)

 

 

미국의 티파티(Tea Party)가 처음 등장한 것은 1773년이었다.  미국 신대륙이 영국의 식민지이었던 시절에 대영제국은 미국 신대륙 식민지에 과대한 세금을 부과하고 있었다.

 

미국 신대륙에 사는 사람들은 영국에서 비싼 물건들을 수입해야만 했는데 영국은

갈수록 과도한 세금을 부과하여 미국 식민지 주민들이 심각한 위협을 느끼게 됐다.

영국 정부는 미국 식민지 사람들이 제일 많이 소비하는 <홍차>에 대한 판매권을 박탈하고 정부가 판매권을 독점할 뿐만 아니라 폭력적으로 세금을 올리고 있었다.

 

영국에서 홍차를 수입하던 식민지 미국 상인들은 홍차에 대한 영국 정부의 독점권으로 인하여 상업이 중단될 뿐만 아니라 또 홍차에 대한 과도한 세금을 식민지 미국인들에게 부과함으로써 영국 정부에 대하여 분노가 쌓이다가 드디어 폭발했다.

 

영국의 홍차 무역선 2척이 보스턴 항구에 들어오자 인디언으로 변장한 식민지 미국인들이 영국 정부의 홍차 무역선을 습격하여 342개의 홍차 상자를 바다에 던져버리는 큰 반란사건을 일으켰다.

 

보스턴 홍차 사건은 영국의 세금압박에 대항하여 식민지 미국인들이 영국에 항거

한 반정부 저항운동의 시작이었으며 역사적으로<Boston Tea Party >사건이라는 명칭으로 기록되어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이른바 보스턴 티파티(Boston Tea Party) 사건은 1773년의 사건이었다.  그런데 3년

후에 보스턴 티파티 (Boston Tea Party) 사건은 미국 독립운동의 불씨가 되었다. 1776년에 미국이 영국에서 분리되어 독립국이 되었다. 그러므로 1773년에 발생한 <Boston Tea Party> 사건은 미국 독립 초창기의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되고 있다. 

 

1. 레이건-부시로 연결되는 네오콘 암흑정치 30년

 

레이건 대통령은 육군 소령 출신이며 영화배우로 25년 동안 B급 영화 50편에 출

연했으며 한국전쟁을 소재로 하는 <전쟁포로>에 출연하여 반공주의를 선전했다. 그뿐만 아니라 레이건은 영화배우협회 회장으로서 정치활동을 했는데 FBI에 일일히 영화계의 비밀정보를 밀고하여 정권에 아부하는 반공주의 정치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 후에 레이건은 정치가로 변신하여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되어 정치적 경력의 바

탕을 튼튼히 마련했으며 레이건은 1979년에 공화당 대통령후보자로 등장했다.

 

공화당의 대통령 후보자 레이건은 지미 카터 현직 대통령의 재선을 물리치고 당선

되어 미국의 제40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1984년에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자 먼데일을 압승으로 물리치고 재선에 승리하여 8년의 집권 동안에 공화당을 더욱더 강경한 보수주의로 이끌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후임자로  Herbert W. Bush를 당선시키고 1989에 퇴임했다.

 

<B급 영화배우> 출신인 레이건 대통령이 주장한 Neo-con 정치와 그리고 레이건 대통령의 후임자인 Herbert Bush 대통령 (아버지)과  George Bush (아들 ) 대통령이 등장하여 30년 동안 계속된 강력한 보수주의 정치는 훗날 미국에서 <무브 온, Move On> 운동이 발생하도록 하는 근원적인 원인이 되었다.

 

미국에서 왜 어찌하여 정치적 <무브 온, Move On> 운동이 발생했는가를 살펴본다.

 

ㄱ)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정책은 <신자유주의>라는 유명한 말로 시작했다.  하지만 레이건의 신자유주의는 국가 부채가 법정한도 15조 원을 초과하여 디폴트 상황을 일으킴으로써 미국이 과연 선진국인가를 의심하게 했다. 미국의 부채가 이전에는 9,000억 달러였는데 레이건 정권하에서 2조 9천억 달러로 급증했다.

 

레이건의 <레이거노믹스> 경제정책은 부유층을 위주로 하는 경제정책이며 부익부

빈익빈으로 부자들의 소득을 증가시키면서도 세금을 감소함으로써 빈부의 격차를 더욱 더 확대함로 미국 사희에 극심한 양극화를 초래했다.

 

ㄴ) 레이건 대통령은 소련과의 군비경쟁에 몰두하여 국방비를 한없이 증가함으로

정부의 부채가 급증할 수밖에 없었다. 레이건의 스타워즈(SDI) 계획에 들어가는 비용의 낭비는 국민의 냉혹한 비판을 받았다. 레이건 정권의 <쌍둥이 적자>는 무역적자와 재정수지적자로 악명이 높았다. 레이건 대퉁령 임기말에 일본이 미국을 앞지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정책은 악화되고 실패했다.

 

ㄷ) 레이건 대통령의 악명은 이른바 <이란-콘트라> 비밀사건의 폭로로 인하여 미

국의 국민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비인도적 정치가로 수치를 당했으며 많은

욕을 먹었다.

 

<이란-콘트라> 사건은 레이건 대통령이 불법적으로 무기를 이란에 판매하고 그 이익금 검은돈을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정부를 축출하는 악당 반군들에게 비밀로 제공해주는 음모사건이었다. 이러한 레이건의 이중적 음모는 임기 말까지 계속됬다.

 

영화배우 출신인  레이건 대통령은 무제한 군비경쟁으로 막대한 재정적자를 기록

했으며 극단적 대기업 위주의 정책으로 도덕적 치명상을 남겼다. 그는 말년에 알츠하이머 병으로 극심한 치매 증상을 일으켜 비극이 계속되다가 사망했다.

 

 

ㄹ)  그러면 레이건 대통령의 후임으로 등장한 Herbert Bush (아버지) 대통령의 집권 (1981-1989) 은 또 어떠했는가? 

 

부시 대통령은 파나마 운하의 이권을 확보하기 위하여 1989년에 파나마를 불법적으로 무력침공을 감행하였으며 파나마 대통령 노리에가를 마약 퇴치의 명분으로 체포하여 미국으로 압송하였으며 재판으로 30년 징역형을 선고하는 폭행을 했다.

 

 노리에가는  22년 만에 파나마로 돌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교도소에 수감 되었으며 2012년에 뇌졸증으로 병원으로 옮겨져 인생의 마지막 비극적 운명에 처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부시 대통령은 1991년 1월 16일에 <사막의 폭풍> 작전명령을 선포하였다.  <사막의 폭풍>의 이유는 미국이 쿠웨이트의 무진장 석유를 욕심내어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추방하는 작전이었다.  전쟁을 일으킨 후 불과 42일 만에 전쟁을 끝내고 1991년 2월 28에 종전을 선언했으며 쿠웨이트 석유를 미국이 독차지했다.

 

부시 대통령의 정책과 통치수단은 전임 레이건 대통령의 통치방법을 그대로 모방

하고 되풀이하였다. 왜냐하면, 부시는 레이건 대통령의 정권하에서의 CIA 부장

출신이었다. 그러므로 레이건처럼 비밀모략 정치수단의 명수로 알려져 있었다.

 

ㅁ)  George Bush 대통령(아들)은 2001~2009년에 또 다시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  

 

2004년의 미국 대통령 선거전에서 전국의 국민투표 선거전에서는 민주당 대통령 후보자인 알버트 고어가 분명히 압도적으로 숭리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미국의 독특한 선거제도에는 이른바 <선거인단 투표 제도>가 있는데 이 <선거인단

투표>에서 공화당의 Bush가 271대266 (5표 차이)로 간신히 아슬아슬하게 민주당

대통령 후보자 알버트 고어를 누르고 부시가 재선에 승리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선거인단 투표>에서 텍사스를 비롯하여 남쪽 지방의 극단적 보수주의 세력을 총동원하여 현직 대통령 부시에게 몰표작전을 하여 기형적으로 민주당 고어를 낙선

시키는 조작정치로 Bush가 대통령으로 재선되어 8년간 (2001-2009) 집권했다.

 

George Bush 대통령은 네오콘( Neo- Conservation) 정치인으로 특히 유명하다.  전례가 없는 진기한 기현상과 억지의 방법으로 대통령이 된 부시 대통령은 네오콘 통치

방법을 주장했다. 부시의 네오콘 통치행태는 도대체 어떠했는가?

 

첫째, 미국은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미국의 주도권으로 전 세계를 지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식 가치와 정치제도는 세계를 지배하는 제일 최선의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만일 제3세계 나라들이 미국을 반대하면 <불량 국가>로 규정하고 선제공격하여 새로운 국제질서를 확립한다는 것이 부시의 네오콘 정치 방법 이다.

 

둘째, 부시 대통령은 세계를 친미와 반미로 나눈다. 만일 친미우방 국가라 해도 미국이 하는 노선에 전적으로 따르지 않으면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의

이러한 정치행태는 현대판 ‘십자군 질서’라고 평가되었다.

 

부시의 네오콘 정치는 <공개적 진리>와 <진정한 진리>로 구분한다. 공개적 진리는 대중을 세뇌하고 선동하여 통치를 한다. 하지만 엘리트에 대해서는 <진정한 진리>라고 강조하면서 습득하게 하여 유산계급 엘리트주의 통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러한 미국식 이념을 주장하여 미국을 양분할 뿐만 아니라 또 세계

를 강대국과 빈곤한 나라들과의 빈부의 격차를 조성하여 네오콘 통치를 강했다.

 

셋째,  부시 대통령은 아프카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다. 부시 대통령은 유럽이 무조건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 동참하고 협력하도록 강요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는 <부시의 푸들>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미국이 일으킨 불법적 전쟁에 무조건 참전해야만 했다.

 

부시 대통령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불법적 침략전쟁에서 하루에 30억 달러를 퍼붓는 데 대하여 미국인들은 쓸모없는 비도덕적 전쟁에 달러를 낭비한다고 반대 했다. 부시 대통령의 국제적 외교정책은 완전한 실패로 미국에 대한 불신임을 초래했다.

 

부시 대통령은 네오콘의 무모한 침략전쟁으로 미국의 금융위기를 초래한 데 대하여 책임추궁을 당했으며 특히 국내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엄청난 자연재난에 대하여 정부의 책임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함으로써 부시는 실패한 대통령이 되고 말았다.

 

네째,  9.11 사건 이후 부시 대통령의 통치에 대한 미국인들의 평가는 최하로 추락했으며 부시 대통령에 대하여 미국인들은 <믿을 수 없는 허무한 대통령>이라고 단정했다.

 

특히 9.11 사건의 보고서 823쪽 가운데 28쪽은 <절대 비밀>로 공개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부시의 비밀공작정치에 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령은 2000년 국정연설에서 이란과 이라크 그

리고 북한에 대하여 <악의 축>이라고 주장하여 악담했다. 부시 대통령이 주장하는 미국의 가치는 최하로 추락했다. 미국인들이 눈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라고 부시 대통령의 최악의 통치행태를 비난했다. 

 

다섯째, 부시 대통령의 9.11사건의 의혹 등 집권 초기부터 매사에 의혹과 불신으로 가득 차 있음으로 네오콘 통치행태에 대하여 정치철학적 측면에서 <혹세무인> 의

암흑 지경에 빠뜨림으로써 미국인들을 한탄하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령은 <기독교 신앙>에 귀의한다고 억지주장을 했다.

 

부시대통령은 <매일 아침 성경을 읽으며 찬송을 좋아하고 교회를 사랑한다>라고

미국의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부시 대통령은 극단 보수우월주의적 미국의 네오콘 정치의 모순을 <기독교 신앙>으로 미화하여 국내문제를 해결하고 또 미국식 가치관을 전 세계에 확산시키려고 했다.  이러한 부시 대통령의 위선은 <백악관 국가 조찬기도회>의 종교적 외피를 띠는 정치적 술책이다. 오죽하면 남미 나라들이 부시의 방문을 거절했을까?   

 

이와같이 미국의 네오콘 정치행태는 레이건-부시로 연결되는 30년(1979-2009) 동안의 암흑정치가 계속됐다. 그러므로 미국의 <무브 온, Move On> 시민운동이 왜 어떻게 발생했는가에 대하여 근원적 이유와 원인을 가히 이해할 수 있다.

 

         2. 오바마를 미국의 대통령으로 당선시킨 <무브 온, Move On>

 

1979년에 공화당의 레이건 대통령이 당선되어 네오콘 정치를 처음 시작하였으며 Herbert  Bush (1989-1993, 41대)와 George Bush (2001-2009, 43대)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어 모두 30년 동안 네오콘(Neo- con)의 암흑정치가 계속됐다.

 

특히 2004년에 시행된 대통령 선거에서 George Bush가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부시는 현직 대통령이라고 하는 특권을 악용하여 불법적으로 재선에 성공한 사건

은 미국의 전체 국민들에게 더욱 더 큰 실망을 안겨 주었다.

 

부시 대통령에 대한 반미운동은 중동에서뿐만 아니라 남미의 모든 나라에서 확산 되어 부시 대통령에 대한 반대시위가 계속됐으며 암살의 위기를 당면하고 있었다.

 

30년 동안이나 계속된 암흑의Neo-con 정치에 대하여 지칠 대로 지친 미국 시민들은 절망으로 좌절하고 있었다. 이러한 미국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찬성하고 가담

함으로서 탄생된 것이 바로 <무브 온, Move On> 시민운동인 것이다.

 

그러므로 <무브 온,Move On> 운동은 미국 정치에 실망한 시민들이 막다른 골목에서

새로운 빛을 찾아 일어선 운동이며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가담하는 조직체이다.

 

부시 대통령이 <선거인단 투표제도>를 악용하여 비도덕적인 몰표작전으로 민주당의 고어를 물리치고 재선에 당선된 과정을 지켜본 미국의 민중들은 부시 대령의 파렴치한 정치적 부정행위와 끝없는 정권 욕심에 대하여 분노한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무브 온, Move On > 시민운동을 시작하고 열성적으로 활약했다.

 

<무브 온, Move On> 시민운동에 가담한 사람들은 <인종차별>과 <사희적 빈부귀천>을 초월한 모든 사람이 특히 정상적인 직업을 가진 바쁜 사람들의 조직이다. 무브 온 운동에 직접 가담한 사람은 처음 500만 명으로 시작됐다. 하지만 숫자는 계속하여 증가했다. 무브 온이 활동하는 방법은 Inter-Net과 이메일(e-mail) 이다. 

 

이메일을 통해서 민중들이 원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상호 연락하고 파악하며 또 필요한 정보를 그들에게 제공해 준다.

 

무브 온(Move On) 운동은 미국의 진보주의 성향의 사람들이 즉각적이며 적극적으로 반응을 통하여 조직화하여 실천함으로 정치적 변화의 방향을 작성하고 제시한다.

 

무브 온(Move On)운동은 여성문제, 환경문제, 노동문제 그리고 모든 차원의 정치와 경제문제에 대하여 상호 간의 연결된 문제로 인식하고 다양한 주제들과 민중들 간에 관계를 생활화하고 실천을 통하여 정서적으로 연합하도록 역할 하는 운동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더 중요한 핵심은 미국인들이 현실적으로 무엇을 원하고 또 어떠한 변화를 원하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실천하는데 중요한 초점이 있는 것이었다.

 

2008년에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자로 힐러리와 오바마가 둥장했다. 무브 온이 처음에는 힐러리 클린턴에게 무게중심을 두었던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결과는 오바마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보수적인 정치활동가들이 미국의 변화를 외치고 있지만 워싱톤 DC의 울타리 안에서 판단할 뿐이다. 이와는 정반

대로 무브 온(Move On)은 지역적으로 미국 전체의 조직망에 밀착되어 활약했다.

 

오바마의 당선을 위한 무브 온의 선거운동 방법은 노조, 시민 단체들, 환경

단체들 그리고 모든 전문성을 가진 단체들의 능력을 총동원하는 방법으로 파트너

쉽을 형성하는 것이 무브 온의 기본적인 선거운동 방법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은 미국의 무브 온 풀뿌리 시민운동에 있어서 새로운 선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08년에 공화당의 존 매케인을  물리치고 승리하여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을 취임했으며 2012년에는 밋 롬니를 누르고 압도적 승리하고 재선에 취임하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7년 1월까지 집권할 것으로 확정되어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무브 온, Move On의 지원을 받아 흑인으로서 미국의 대통령이 됐으며 또 재선으로 8년 동안 미국을 통치하는 것은 미국 건국 이후 오늘날까지 미국

정치에서 처음 있는 크고 놀라운 변혁이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8년 동안 통치에는 명확히 노출된 <명암의 양면성>으로

가득 차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통치 양면성과 무브 온, Move On과 연관된 문제들을 살펴봄으로써 미국의 뿌리 깊은 최악의 보수주의 한계점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1994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최초로 넬손 만델라 흑인 대통령과 백인 부통령이 집권했는데 14년 후에 미국에서도 흑인 대통령과 백인 부통령이 등장했다.

흑인 오바마 대통령과 백인 바이든이 부통령으로 집권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미국의 건국 이후에 처음 있는 놀라운 역사적 변혁이다. 이것은 분명한 역사적 기적으로서 <무브 온, Move On> 운동의 승리로 기록되었다.

 

미국의 232년 동안 계속된 백인들의 뿌리 깊은 야만적인 인종주의 정치제도가 처음으로 유권자의 투표에 의하여 흑인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것은 미국의 야만적 침략의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 이 깨지는 놀라운 역사적 변혁이었다.

 

둘째, 미국의 인종주의적 야만성을 극복한 미국의 흑인 오바마 대통령의 등장으로 인하여 미국의 국제적인 대외정치와 외교정책에 있어서 그동안 상처받은 지구촌의 많은 나라들에 절망과 고통의 멍에를 제거해 주어야 할 막대한 책임과 사명이 오바마 대통령에게 지워졌으며 오바마 대통령에게 바라는 민중의 요구도 막대하다.

 

제3세계 나라들 사이에 쌓여 있는 국제적 정치와 경제문제와 그리고 문화종교 등에 대하여 미국이 수백 년 동안 강요한 네오콘의 정치적 과오를 오바마 대통령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국제적 기다림이 크고 시급한 것 이었다.

 

셋째,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하늘만큼 높은 기대감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하여 기대감도 크고 또 의문도 큰 것이 사실이다.

 

레이건-부시-부시 대통령 통치 30년 동안의 암흑정치를 끝장내고 치료해야 할 오바마 대통령의 카리스마에 대한 무브 온Move On 의 기대는 기필코 실현돼야만 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무브 온Mover On의 기대들을 전혀 충족시키지 못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네오콘의 뿌리깊은 정치적 장해물들을 통치능력으로 물리치지 못하고 오히려 무브 온 Move On 정신을 역행하고 있을 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오히려 중동에서 이라크, 이란, 시리아와 IS 문제들에 대하여 그 어느 면에서 과감한 정책과 평화를 위한 전진을 제시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미국은 방황을 계속하고 있으면서 진전이 아니라 퇴보하고 있을 뿐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이래 <북미관계>와 <북남관계>에 있어서 오히려 점점 더 악화시키는 고강도 적대정책 만을 계속하고 있다. 북한이 핵과 경제발전의 병진노선

을 추구하는 것은 <전쟁일변도>가 아닌 실질적으로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은 2015년 새해 국정연설에서 조선과의 관계개선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을 뿐만 아니라 2015년 업무개시에서는 오히려 조선에 대하여 강력한 제제만을 강조하고 있었다.  

 

넷째, 오바마 대통령이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정책은 <부자 증세>와 <빈자 감세>

그리고 <오바마 케어>와 일자리 창출 등 이전에 역대 정권들이 꿈도 꾸지 못했던

Move On 의 정책을 오바마 대통령이 중요한 과제로 여기고 주장하기는 했다.

 

미국의 1%에 해당하는 최고최대의 부자들에게 증세를 강행하여 죽어가는 중산층을 살리며 또 저소득층에게 임금인상 정책을 실현함으로써 오바마 대통령의 빈곤한 민중을 위한 원대한 정치적 성취를 달성하려는 의지표명은 분명히 했다.

 

하지만 2014년 11월의 미국 중간 선거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참패하여 상하 양원을 공화당에 내주는 실패를 했다. 그러므로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 2기에 들어서서 의회의 주도권을 상실했음으로 양팔이 잘리는 수모를 면치 못하게 됐다. 

 

오바마 대통령의 <부자 증세>와 <빈자 구제>를 위한 선거공약은 그림의 떡이 될 위기에 처해 있으며 오히려 오바마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만 가속화 되는 것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것이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 대통령의 집권 2기의 현실이다.

 

다섯째,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와 국교를 53년 만에 정상화를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쿠바와의 정상외교를 발표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오바마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쿠바 정상화 발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오바마 대통령의 중동정책과 우크라이나 문제, 중남미 관계와 특히 북한에 대한 정

책들이 부시 대통령의 정책보다 오히려 더 퇴보되고 우경화 일변도로 치닫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 정상화를 돌발적으로 발표한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첫째로 2014년 11월 중간선거에서 여소야대가 된 오바마 대통령의 추락한 지도력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돌발행동>이라고 해석한다.  하지만 쿠바 카스트로 대통령은 TV 연설에서 쿠바와 오바마 정권 사이에는 아직도 주권문제와 대외 정책에 있어서 해결되지 않은 큰 문제들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다고 주장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돌발행동에 있어서 두 번째 이유는 미국의 2016년 차기 대선을 위

하여 미국에 불법적으로 거주하는 쿠바인들을 포함한 500만 명을 사면함으로써 그들을 민주당에 흡수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해석한다.

 

Georg Bush 대통령의 동생인 전 플로리다 주지사 Jeb Bush 가 2016년 대통령 선거에 공화당 대통령 후보자로 출마하여 공화당의 New-Neo-con 돌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예견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바마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쿠바와 국교 정상화를 발표한 이면에는 공화당의 Jeb Bush 의2016년도의 선거 열풍을 미리 차단하는

수단이라는 해석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여소야대의 비극에 처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집권 제2기에 있어서 오바마 대통령이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주장하는 두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첫째, 과감한 <이민법 개혁>이며 둘째는 폭넓고 깊은 <오바마 케어>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부자 증세>와 < 빈자 감세>를 통하여 <오바마 케어>만은 끝까지

고집스럽게 주장하여 반드시 법 제도를 확립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무브 온, Move on이 맺은 인연과 관계는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어야만 하는 것이 미국의 정치적 원리이며 오바마 대통령의 도의적 책임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여러ㅍ가지 실패한 정치에 대하여 무브 온, Move On이 크게 실망하여 오바마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고 반대하는 현상이 한때 노출되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과 무브온, Move On이 맺은 정치적 인연과 연대는 절대로 단절되지 않고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3. 티 파티 보수주의에 납치당한 미국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집중공격을 목적으로 하여 2009년에 시작된 공화당의 정치적 공격이 이른바 티 파티,Tea Party운동이다. 1776년에 Boston에서 발생했던 영국 홍차 사건, Boston Tea Party과는 전혀 관계가 없으며 명칭만 티 파티이다.

 

오늘 공화당의 강경 보수주의 자들이 주장하는 <티파티, Tea Party>는 오바마 대통령이 강행하는 부자 증세> 와 오바마 케어를 결사반대하기 위하여 보수주의 집단이 주장하는 현대판 티 파티 Tea Party이다.

 

티 파티의 공식명칭은 영어로 ‘Taxed Enough Already, TEA’이다. 그러므로 공화당이 주장하는 티 파티(TEA Party)는 오바마 대통령이 주장하는 부자 증세를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원천봉쇄하여 오바마 케어 정책을 무력화하기 위한 투쟁이다.   

 

오바마 대통령 정권이 강행하는 부자 증세와 오바마 케어를 반대하기 위하여 공화당의 극우파 보수주의 세력들이 집결하여 조직한 정치적 운동단체의 명칭이 바로 TEA Party인 것이다.

 

다시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2009년에 시작한 공화당의 티파티는 백인 보수세력

을 주축으로 하여 오바마 정권을 타도할 목적으로 시작된 정치적 조직 운동이 바로  티 파티Tea Party운동이다. 티 파티는 오바마 대통령의 발목을 잡는 집단이다.

 

빈곤층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 의료비 보조, 모든 국민의 의로보험 가입, 불법 이민자 사면, 합법적 낙태 허용,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등 다양한 오바마 케어를

(Affordable Care Act)를 티 파티가 결사반대하며 중요한 이유는 <부자 증세>이다.   

 

공화당 티 파티 주동자들 중에는 2008년 대선에서 공화당 대통령 후보자로 출마를

했다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패배한 매케인- 페일린이 선봉에서 활약하고 있다. 그리고 티 파티 운동이 표면으로는 미국의 가치회복이라는 미명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

만 티파티의 속셈은 보수 남부지역의 <유색인 인종차별>이 주된 목적이다.

 

티 파티에 대한 지지는 2009년에 30%에서 51%로 상승하였으며 계속 상승하여 미국 의회의 상하 양원을 지배하는 정치세력으로 발전하였다.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의 오바마 케어를 비판하여 “나치를 기쁘게하는 것이다”라고 악평하고 있다. 

 

오늘 미국의 정치권은 공화당의 보수세력이 상하 양원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차기 대권을 향한 티 파티에 대하여 어떤 평가를 내릴지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티 파티의 이념 농도는 공통으로 과격 보수, 극우 색깔론이다.

 

미국의 티 파티 운동을 지지하는 자들의 종교적 성향과 사회적 가치관은 보수주의적 정치관과 매우 흡사하다. 이것은 종교인들과 비종교인들 모두 다 티 파티 운동을 지지한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백악관에 240년 만에 최초로 입성한 흑인 대통령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오늘 오히려 미국의 위험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티 파티는 백악관의 권위를 다시 재건하기 위해서는 보수주의 색깔을 더욱 강화시

켜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며 보수 이념의 깃발 아래로 모이기를 주장한다.

 

티 파티의 중요한 주장은 정부의 재정의 적자와 부채를 축소하기 위하여 오바마 대통령이 주장하는 오바마 케어, Affordable Care Act를 결사반대하면서 빈곤한 저소득층을 위한 웰페어 제도, 푸드 스탬프, 실업자 수단, 메디케이드 정책 등에 대하

여 시스템의 축소와 오히려 취소까지를 주장하고 있다.

 

티 파티의 이와 같은 주장의 주된 이유는 오바마 대통령의 부자 증세를 반대하기 위함이다. 공화당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하원에서 오바마 케어를 폐기시키려는 시도와 대결이 지금까지 40번이나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시도와 대결은 공화당이 포기하지 않고 아직도 계속하고 있다.

 

보수주의가 지배하는 남부지역 20개 주에서는 오바마 케어 시행명령이 시달됐는데도 불구하고 수용과 시행을 거부당하고 있는 오늘의 실정이다.

 

공화당은 2016년에 있을 대선 에비후보자들이 경쟁적으로 오바마 케어를 극렬히 반대하여 대선후보자 경선의 선두를 차지하려고 서로 경쟁하고 있다. 티 파티는 오바마 대통령을 하나의 경쟁자로 여기고 미워하는 정도가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을 인종주의적인 적으로 여기고 있으며 증오심으로 가득 차 있다.

 

티 파티는 백인들의 웃는 얼굴로 포장한 소위 ‘신사적’이라는 가면을 쓰고 유색인 오바마 대통령을 증오하고 있다.

 

티 파티의 인종주의는 어느 정도인가? 티 파티 회의장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는 기막힌

소리다. “케냐사람 집으로 돌아가라, Kenyan Go Home”이라는 소리이다. 뿐만 아니라 티 파티의 외치는 소리는 “동물원에는 아프리카 사자가 있고 백악관에는 아프리카 흑인 거짓말쟁이가 있다” 라고 노골적으로 인종차별 구호를 소리친다.

 

이것은 오바마 대통령을 모욕할 뿐만 아니라 무브 온 Move On에 대한 모욕이다.

티 파티는 주로 백인 중산층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미국 주류사회에서 정치문화와 경제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미국 민주주의에 긍정적이 아니라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티 파티, Tea Party는 주장하기를 무브 온 Move On은 좌익운동단체이며 미국을 어지럽게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말 미국을 어지럽게 하는 것은 티 파티이다.

 

미국인들 대다수가 합법적인 대선을 통하여 선출한 오바마 대통령을 무조건 반대하고 인종주의를 주장하는 극단적인 우파정치세력이 바로 미국을 어지럽게 하고 있다. 적반하장이란 말은 바로 미국의 티 피티를 두고 하는 말이다.

 

티 파티 운동에 가담하고 있는 사람 중에서 자기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

는 사람들이 대다수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난한 민중을 섬기는 것이 기독교의 정신이며 명령이다. 사회정의는 기독교인들의 기본적 의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 파티의 자유방임주의적 인종차별 행위는 기독교의 교훈과 완전히 어긋난다.

 

                        4. 티 파티에 납치된 미국을 맹종하는 박근혜

 

제2차대전이 끝난 후 미국의 경제원조와 구제물자에 손을 내밀지 않은 나라는 없을 정도로 서방의 모든 빈곤한 나라들이 미국의 원조와 차관을 의지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한국의 생명줄은 버로 미국의 원조와 차관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원조와 차관은 미국의 이익을 위한 속임수의 지원이라는 사실을 대부분의  3세계 나라들은 뒤늦게 깨달았으며 원조와 차관 후에는 반드시 코카콜라와 맥도널드 햄버거를 강압적으로 수출하여 판매했다는 사실에 대하여 경각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냉전 시대에 있어서 미국의 방패막이로 6.25전쟁을 겪으면서 동족상잔의 비극에 처한 한국은 군부의 독재와 민주화 투쟁이 계속되는 혼란 속에서 코카콜라와 햄버거를 강제로 판매하는 미국에 대하여 경각심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에 굴복하여 맹종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국은 제3세계 나라 중에서 미국에 굴복하고 추종하는 데 있어서 모범적 역활을 하며 미국을 위하여 본보기 역활만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2013년 6월 26일)에서 중국에 요청하기를 “북 핵 포기가 실질적으로 실현돼야 한다.” 라고 하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완전히 다른 의미의 말로 응답을 하여 박근혜에게 동문서답으로 정치적 충고와 교훈적 응답을 했던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말하기를 “북의 핵 포기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보다 실질적으로 남과 북이 공동으로 동등하게 비핵화가 돼야한다.”라고 응답했다. 이것이 중국 시진핑의 기본적 응답이었다.

 

시진핑 주석은 박근혜의 한미동맹에 대한 맹종을 실질적으로 명확하게 지적하는 의미깊은 응답을 했던 것이다.

 

박근혜는 이명박의 ‘비핵개방3000’ 수준으로 굴러떨어져 있다. 그러므로 박근혜

대통령은 중국의 시진핑 주석에게 꼼짝도 못 할 엄한 교훈의 말에 유구무언이었다.

 

오늘 한국에는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키 리졸브, 독수리, 을지 프리덤 가디언, 마

춤형 전략 등으로 한미합동 핵전쟁 위협으로 치닫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는 미국과 중국을 비롯하여 세계 여러 나라을 미친 듯 돌아다니면서 북핵페기, 신뢰프로세스, 통일구상, 통일 대박론을 떠벌이고 있다.

 

이와 같은 박근혜 대통령의 참혹한 언행들의 근원이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능력이 오직 무조건 미국을 의존하고 추종하는 맹종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티 피티에 납치된 미국을 맹종하면서 반통일과 반민족적인 궤변과 색깔론을 주장하고 민족의 존엄과 나리의 주권을 미국에 헐값에 팔아넘기고 있다.

 

최악의 대통령 박근혜의 종미 종속주의적 정치행태에 대하여 치명적인 요점들을 간추려서 살펴본다.

 

 ㄱ) 박근혜는 자유민주주의를 들먹이면서도 대화와 소통이 없는 무지한 탄압만을 감행하고 있다. 박근혜는 자유민주주의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는 무지막지한 종미주의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가 눈으로 보고 아는 것은 박정희 아버지의 청와대 안가의 강압적인 비밀공작정치 행태에 관한 것 뿐이다. 이후락의 모략과 김형욱, 김재규의 처단 방식 등을 박근혜는 친히 목격하고 배웠다.

 

이석기 의원을 투옥하고 통진당을 해체하는 것은 헌정사상 유례가 없는 사건이다.

이석기 의원을 북한 지령과 내란음모설로 정죄하고 재판하는 데 대하여 노회찬과 권영길은 법정에서 “북한 지령을 주장하는 것은 모욕이다.”라고 항의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하수인격인 한국 법원은 통진당 해산과 이석기기 의원 구속을 강행했다.

 

ㄴ. 자주민보 폐간, 황선 구속 그리고 신은미의 강제 출국을 박근혜 정권은 강행했다.

박근혜는 기자회견에서 색깔론을 방패로 삼고 언론탄압을 변명하고 정당화했다.

 

박근혜는 “북한은 아직도 우리를 위협하고 있으며 남북이 대치상황에 있는데 한국을 무시하면서 북한을 추종하고 있으니 이러한 행동을 용납할 수 없다.”라고 했다.  

 

박근혜의 기자회견에서의 망언은 미국의 티 파티 극우세력을 모방하여 매카시즘을 한국에서 재연출하게 한다. 박근혜는 한국판 매카시즘의 주역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생각되는 것은 ‘박정희의 인혁당 사건’과 ‘박근혜의 통진당 사건’은 분명히 동질의 모략극 연속이라고 판단된다.

 

박근혜는 미국 티 파티 사고방식을 맹목적으로 추종하여 의도적으로 동족에 대한 무조건적인 탄압과 구속을 하면서 자주민보 폐간과 추방 등을 감행하고 있다.

 

ㄷ.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의 피격사건에 대하여 시종 법대로 조사하고 법대로 판결하고 법대로 처리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진실규명과 김기종 씨에 대한 응당한 법적 조치와 처벌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어찌하여 전국적으로 보수주의 언론들과 보수주의 종교인들 그리고 여당의

국회의원들까지 벌떼처럼 덤벼들 뿐만 아니라 청와대와 정부는 사건을 확대하고 한편으로 몰아세우려고 소동을 부리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이 세상에 이런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을 것이다.

 

기독교인들, 무용수, 국회 의원, 수십 명의 장구 부대 또 개고기를 들고 대사 병 문안

등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 없다. 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와 행동은 미안하고 송구스럽다, 석고대죄, 단식, 너무 죄송하다 등이며 또 구호판을 들고 데모 행진까지 하는 진퐁경도 나타나고 있으니 정말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 없다.

 

하지만 오히려 미국의 반응은 차분하고 또 장본인 리퍼트 대사는 “한 정신병적인 극단주의자에 의하여 발생한 사건이며 한미동맹에는 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수

있으니 같이 갑시다.” 라고 했다.

 

그런데 언론의 보도에 의하면 정말 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 없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

이 깜짝 문병에서 리퍼트 대사에게 “한미 양국 영원히 같이 가자”고 했다. 이겻이 나라의 대통령이 할 말인가?

 

 전시작전권을 미국에 팔아넘긴 박근혜의 입에서 미국과 같이 영원히 분단체제

를 끌고 같이 가자는 말이 나온 것이다. 박근혜가 자가 자신의 본색을 그대로 폭로하고 들어내는 말이다.  

 

김기종 씨 자택에서 검찰이 확보한 책들과 문건들은 한국의 정상적인 지성인들의 집에서 얼마든지 발견되는 책들과 문건들이며 연구 논문들이다.  누구든지 구매하고 대출할 수 있는 북한의 정치와 김일성 주석에 관한 자료들이라고 한다. 

 

김기종씨의 <우리마당> 후원금 3,000만 원의 출처도 명확히 밝혀졌다고 한다.

 

김기종 씨의 북한방문을 문제 삼을 수 없다. 왜냐하면, 기종 씨보다 더 많이 북한을 방

문한 사람들이 한국에 수백 수천 명이 있다. 그리고 김기종 씨의 북한 방문은 자발적인 방문이며 북한의 비밀 초청으로 방북한 것 절대로 아니며 또 북한의 고위급 인사들과 어떤 비밀 접촉도 별도로 한 것이 전혀 없는 것도 사실대로 밝혀졌다.

 

사실에 있어서 북한 방문을 문제 삼아야 할 사람은 바로 박근혜이다.  박근혜는 비밀로 북한의 초청을 받았으며, 북한에서 최고 고위급 간부들과 수없이 많은 비밀회담을 했으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의 고위급 간부들과 지도자를 극진히 찬양하는 발언들을 수없이 많이 했다. 

 

북한에 거액의 달러를 주었다는 것도 확실하다.  박근혜가 돌아올 때 판문점을 통해 왔으므로 그것은 군사분계선의 원칙을 위반했다. 그러므로 한국 검찰이 김기종 씨의 북한 방문을 문제 삼아 이번 사건과 연계를 시도하는 것은 오히려 검찰이 위법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김기종 씨의 리퍼트 대사에 대한 돌발사건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극렬적

공격행동일 뿐이다. 미국이 한국을 70년 동안이나 강점하고 있는 데 대한 민족적 적개심이 김기종 씨의 개인행동을 통하여 폭발한 극히 당연한 돌발사건이다.

 

리포트 대사의 말처럼 “한 정신병적인 극단주의자의 행동”으로서 그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권은 여름 가뭄에 단비를 기뻐하는 것처럼 김기종 씨 사건을 기뻐하면서 정권의 안전을 위하여 이념적 사건으로 확대하여 종북몰이로 이용하고 있다. 

 

ㄹ. 낯뜨거운 한국의 2015년 제46차 조찬기도회가 3월 12일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하여3,000명의 기독교인이 참석하여 진행됐다.

 

Inter-Net 댓글 부정선거로 만들어진 박근혜의 불법정권을 축복하기 위한 조찬기도회이기 때문에 조찬기도회의 설교자로 초청된 목사도 역시 부정직한 목회자로 유명한 두 명 형제 목사인 김선도-김홍도 형제 목사 중에 형이 되는 김선도 목사를

선정했다.

 

김선도-김홍도 형제 목사는 대형교회 목사로 유명할 뿐만 아니라 공금횡령, 간음죄 그리고 세습문제 등으로도 형제 목사 모두 다 유명하다.  

 

조찬기도회에 참석한3,000명 중에는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참석했는데 심지어 탈북자들의 조직 대표자도 초청됐다. 하지만 세월호 가족회의 대표자들이

초청받아 참석했다는 말은 전혀 없다. 박정희 대통령을 축복하기 위하여 시작된 한국의 조찬기도회는 미국 백악관 조찬기도회를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설교자 김선도 목사는 국가의 도덕성 회복과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촉구하는 내용의 설교의 말은 일언반구도 없고 오직 박근혜 대통령을 추켜세우고 축복만을 기원하면서 전형적 권력에 아부하는 낯뜨거운 설교를 했다. 

 

김선도 목사는 대한민국을 위해서 설교했다. 하나님이 박근혜 정권을 축복하고 인

도하여 평화와 번영을 성취히기를 역설했다. 그리고 김선도 목사는 북한에 대하여 설교하기를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능력으로 북한의 변화가 발생하여 정권이 무너지고 통일이 속히 될 것을 역설하는 설교를 했다.

 

한국의 기독교는 미국의 티파티의 기독교를 그대로 모방하고 있다.

 

이 글을 끝맺으며,

 

무엇을 다시 말하겠는가?  터무니없는 조작으로 통진당 내란음모설, 자주민보 폐간 그리고 황선 대표를 체포하는 등 끝이 없다. 

 

박근혜 패당정권이 여름 가뭄에 물 만난 고기처럼 김기종 씨의 순전히 개인적인 정의감과 의분의 행동에 대하여 중세기적 마녀사냥을 연상하게 하는 종북몰이를 요란스럽게 펼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박근혜의 종북몰이의 근원이 미국을 맹종하는 종미주의에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티 파티 Tea Party( Taxed Enough Already)는 부자들의 증세

를 극렬히 반대하는 극단적인 우파주의적 정치 조직이다. 박근혜가 추종하는 미국은 바로 이 티 파티 Tea Party 에 매수된 미국인 것이다.

 

그러므로 박근혜의 근본문제는 종북이 있기 전에 먼저 종미가 먼저 있다는 사

실이 큰 문제이다. 

 

박근혜의 종미주의 경제정책은 미국을 위해서라면 손해 봐도 괜찮다고 하는 경제정책이다. 그러기 때문에 박근혜는 미국식 종미경제제도를100% 추종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에서뿐만 아니라 박근혜의 종미주의는 군사적인 면에서 더욱 그러

하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핵 첨단 장거리미사일에 대하여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미국은 북 핵이 본토를 겨냥하고 있는 데 대하여 초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는 종미주의를 추종하고 매달리는데 만족하고 있으면서 철부지 정치를 하고 있다.

 

박근혜는 종미주의에 마비되여 있으면서 철없는 유치원생 모양으로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여라 종미주의 우리는 제일 좋아”를 목청 높이 부르고 있다. 끝.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5-03-14 23:24:16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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