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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161] 프랑스 파리 총격사건에10만 애도 물결의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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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태영 작성일15-02-01 19:0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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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161] 제3세계의 눈으로 식민지 한국을 파헤친다

 

 

 

유태영(재미동포전국연합회 고문)

             

 

프랑스 파리 총격사건에10만 애도 물결의 위선

         서방이 하면 기독교 문화, 아랍이 하면 이슬람교 테러

        한국에서 바라본 프랑스, 영국, 미국의 모슬렘 박해  

 

2015년 1월 7일에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총격 사건이 발생하여 12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을 당했다.

 

총격을 당한 프랑스의 <샤틀리 에브도>는 어떤 단체인가? 샤를리 에브도는 풍자 만화 주간지이며 2011-2012년에 계속하여 이슬람의 선지자 무함마드를 깎아내리는 악의적 풍자만화를 통하여 이슬람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언론이다. 그러므로 샤를리 에브도는 이슬람주의자들의 분노와 총격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이슬람교는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를 그림으로 나타내는 것을 금기시하는 엄격한 전통이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샤를리 에브도 풍자만화 주간지는 1월 7일에 또 다시 이슬람국의 지도자인 아브 바그다디를 비방하고 모략하는 만화를 트위터에 올렸다.

 

이것은 뿌리 깊은 프랑스인들의 반이슬람국가(Islamic State, IS)에 대한 정치적인 멸시와 모욕이며 상습적인 범죄행위의 표현인 것이다.

 

프랑스는 유럽 군사 강국으로 샤를리 에브도의 풍자만화에 대하여 <표현의 자유>라고 옹호하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과 독일 그리고 미국은 세계 가는 곳마다 위선적 민주주의를 강요하면서 제3세계를 침략하고 지배한다.  그러면서 서방언론에 대하여 <표현의 자유>라고 변호한다.

 

하지만 아랍 나라들이 이슬람교의 역사적 전통을 지키기 위한 이슬람의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서는 서방의 강국들이 주장하기를 그것은 <극단주의 만행>이라고악평을 하면서 탄압하고 있다. 

 

2015년 1월 7일에 프랑스에서 발생한 풍자 만화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이슬람의 총격은 절대로 <테러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샤를리 에브도가 스스로 자청한 불행한 총격 사건이었다.

 

그것은 프랑스의 <지배적 위선 행위>에 대항하여 이슬람의 <방위적 진실의 행위>

일 뿐이었다. 프랑스의 악의에 대하여 이슬람의 불가피한 경고성 행위이었다.

 

서구문명의 언론은 기독교 나라 프랑스-영국-독일-미국이 주도하는 <나토>의 폭격으로 인하여 수만 명이 죽임을 당하는 만행에 대하여서는 말이 없고 침묵하고 있다.

 

하지만 서구의 언론들은 이슬람의 내재하는 불의에 대한 불가피한 반격적인 무력 행위에 대하여서는 일제히 비난의 포문을 열어 극단주의적 이슬람의 테러와 폭행이라고 전 세계를 향하여 악선전 보도를 한다.

 

이슬람이 서구의 불의한 정치적 폭력에 대항하여 반격하는 것은 결코 테러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이슬람의 정체와 가치를 수호하기 위하여 불가피한 고상한 종교적 사명이며 이슬람 민족의 생존을 지키기 위한 정당한 방위적 행위이다.

 

                  

1. 프랑스의 이슬람에 대한 침략적 야욕과 위선

 

 

2015년 1월 7일에 발생한 프랑스 샤를리 에브도 풍자만화 주간지에 대한 총격으로 12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부상당한 사건에 대하여 파리에서 밤새 10만 명이 모여 희생자를 추모한 것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을 포함하여 3백만 명이 프랑스 총격 사건에대하여 한목소리로 알카에다와 이슬람을 비난했다.

 

밤새 추모 촛불을 밝힌 10만 프랑스인들은 이슬람을 모욕하는 풍자만화에 대하여 <표현의 자유>를 주장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프랑스인들의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시위를 지지하여 <미국은 가능한 모든 것으로 프랑스를 지원한다> 라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까지도 프랑스 샤를리 에브도 총격 사건에 대하여 IS, 알카에다의 테러행위라고 비난했다. 이와같이 서구의 모든 나라와 언론은 프랑스 샤를리 에브도 총격 사건을 IS, 알카에다의 테러행위로 단정하고 결국 이슬람 나라를 악마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풍자만화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서 발생한 총격 사건의 원인에 대하여서는  일절 말이 없다.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과 미국을 비롯하여 서구 우익 나라들은 오직

왜곡된 해석과 은근슬쩍 IS, 알카에다 이슬람에 총격의 책임을 몽땅 뒤집어 씌우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

 

프랑스 샤를리 에브도 풍자만화 주간지에 대한  총격 사건의 진실을 외면하고 프랑스와 서구 언론들이 위선적으로 보도하고 있는 데 대하여 한국의 민족분단 70년의 역사적 시각으로 프랑스 총격 사건에 대한 내막을 살펴본다.

 

이번 프랑스  총격 사건은 단순히 프랑스 국내 백인들의 인종차별로 인하여 발생한 프랑스의 국내의 인종분규의 문제인 것 뿐이다. 결코, IS, 알카에다 국제적 테러가 아니다. 

 

총격 사건을 일으키고 사살된 범인 3명은 모두 다 프랑스에서 출생하고 프랑스에서 교육받은 프랑스 시민권자들이며 프랑스 국민으로서 모슬렘 2세들이다. 현재 프랑스에는 전체 인구 11% 가 흑인과 모슬렘 1세와  2세들로서 시민권자들이다. 그 중에 8%에 해당하는 약 500만 명이 이슬람 종교의 신실한 신자들이다. 

 

프랑스에 이렇게 많은 흑인과 모슬렘 이민자들이 사는 원인이 무엇인가?

 

그것은 프랑스가 식민제국 (1604-1960 )으로서 아프리카와 중동지역 그리고 태평양  인도차이나 등 수없이 많은 지역에서 수 백 년 동안 30개 이상의 나라들과 지역에서 가혹한 식민지 통치를 해왔기 때문에 필연적인 역사적 결과의 산물인 것이다.

 

특별히 프랑스는 1830년에 군인 37,000명을 투입하여 알제리를 점령하고 125년간 식민지 통치를 했다. 그런데 알제리 민중은 둘로 양분되어 <친프랑스파>와 <반프랑스파>로 서로 대립하여 싸우는 이중의 비운에 처해 있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프랑스는 <친프랑스파>에게 모든 특권을 부여하여 식민지 통치수단으로 유리하게 분열 정책을 역활용했다.  이들 친프랑스파를 <하르키>라고 불렀다. 하르키들은 약 150만 명으로 추산한다. 하르키들은 알제리의 귀족처럼 행세하면서 프랑스 문화에 적응하여 평안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되어 제3 세계 나라들이 독립하게 되어 알제리도 독립을 쟁취했다.  그런데 독립을 쟁취한 알제리 신생국은 150만 명 악질 <하르키>를 처형했으며 약 3만 명의 하르키들이 구사일생으로 프랑스로 도망하였다. 프랑스는 할 수 없이 친프랑스3만 명 알제리 하르키에게 <합법적 프랑스 주거 신분증>을 줄 수밖에 없었다.

 

프랑스의 <합법적 주거신분증>을 소유한 하르키들 1세와 2세들은 다행히 죽음은 면했지만, 프랑스의 골칫덩어리가 되어 지금도 도시 주변 외곽에 있는 빈민굴에서 비참한 집단생활을 하고 있다.  하르키들은 프랑스 사회에서 완전히 불청객으로 버림받고 소외된 3-4등급의 천민 계급에 속하는 집단이 되고 있다. 이것이 오늘 프랑스의 사회적 구조이다.

 

2015년 1월 7일에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샤를리 에브도 풍자만화 주간지에 대한 총격 사건에 대하여 프랑스 올랑드 대통령과 미국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서방의 언론들이 무조건 <아랍의 테러>라고 규정하고 진실을 감추고 왜곡하고 있다.

 

프랑스의 총격ㅠ사건은 순전히 프랑스 내부의11% 이슬람 인종갈등으로 인하여  발생한 프랑스의 300년 식민정책의 후과로 인한 프랑스 국내의 인종 문제다.

 

그러므로 프랑스의 총격 사건은 절대로 <이슬람 알카에다>와 연결할 테러가 아니다.  그것은 순전히 프랑스 내부에서 <그들의 행동>이 있는 곳에서 자연반사적으로 <저들의 행동>이 발생한 것 뿐이다. 

 

프랑스 샤를리 에브도 풍자만화 주간지에 대한 총격 사건을 동양식으로 표현하면 프랑스 백인 우월주의를 대항하여 11%의 아프리카와 아랍인들 이민 공동체의 <장군: 명군> 충돌이 발생한 것 뿐이며 순전히 프랑스 내부의 인종 갈둥 사건이다.

 

                       2. 예멘을 남북으로 분열 시킨 영국과 미국

 

예멘은 고대의 오랜 왕조시대가 끝나고 7세기에 이르러 이슬람 시대의 문호를 열기 시작했다. 그 후에 예멘의 라지드 왕조는 1872년에 패망하고 오스만 투르크의 지배를 받게 되는 큰 변동기가 또 다시 시작됐다.

 

영국은 예멘의 변동기를 악용하여 재빠르게 행동하여 예멘의 중요한 남부 요충지대인 아덴 항구를 투르크의 지배체제에서 분리하여 영국의 소유로 탈취했다. 이것이 바로 예멘이 남과 북으로 분단되는 비극적 역사의 시발점이 됐던 것이다.  이것은 한국이 남북으로 분단된 것과 동질의 비극적인 예멘 분단의 시작이었다.

 

예민을 지배하던 오스만 투르크는 제1차 세계대전에 패하여 50년 통치를 끝내고 예멘에서 철수했으며 예멘은 1904년에 옛날 라지드 왕정으로 복귀하여 독립했다.

 

하지만 이게 웬 말인가?  영국은 절대로 예멘에서 철수하지 않고 오히려 예멘 남부 점령을 강화하여 영구분단을 공고히 했다. 두말할 필요 없이 북부 예멘에서는 친미 쿠데타가 연발하여 “병 주고 약 주는 미국”의 침략에 의하여 북쪽은 영구적으로 미에 예속된 친미정권이 통치했다.

 

한편 그 후에 남부 예멘에서는 영국의 식민통치가 97년 동안이나 계속하여 오다가 드디어 영국으로부터 해방되어 1969년에 남쪽 <예멘 사회주의 국가>로 독립했다.

 

북예멘은 오랫동안 친미정권이 통치하고 있으며 남예멘은 사회주의 정권이 창설됐던 것이다. 그 후에 <북예멘>과 <남예멘>은 20년 동안 통일 논의를 계속했다.

 

20년 동안의 길고 긴 예멘의 통일논의는 1990년 5월 22일에 분단된 예멘은 드디어 <제도 통합>을 합의하였다. 북쪽의 살례 대통령이 <통합예멘>의 대통령이 되고 남예멘의 알베이도 총리가 <통합예멘>의 부통령이 되어 통합된 예멘 정권을 창설하는데 일단 극적으로 성공했다.

 

그런데 20년 동안 통일논의 끝에 겨우 힘들게 성공한 <통합 예멘>은 불과 4년 후인 1994년 4월에 예멘의 내전이 시작되었다. 내전이 시작되어 두 달 만에5000명이 사망하는 치열한 동족 상쟁의 내전이었다. 내전은 두 달 만에 끝났지만, 예멘은 또 다시 친미적 북예멘의 살레 대통령이 승리자가 되어 장기집권을 계속했다. 

 

2011년에 발생한 <아랍의 봄> 영향으로 살레 대통령은 33년의 친미 장기집권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 후에 예멘은 또 다시 미국의 지원을 받는 수니파 하디 대 통령이 집권하였다. 하디 대통령은 남쪽 출신이지만 정권을 잡은 후에 친미 대통령이 되었음으로 남예멘 민중들이 거부하여 반정부 운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런데 2015년 1월 20일에 남쪽의 시아파 후티가 주동하는 쿠데타가 성공하였다.

 

2015년 1월 20일에 남예멘 시아파 후티가 주동한 쿠데타가 성공하여 수니파 하디 대통령은 쫓겨났다. 쫓겨난 하디 대통령은 수니파이며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지원을 받으면서 친서방 막강한 정권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러므로 미국과 유엔은 예멘의 후티가 주동한 무혈쿠데타가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긴급회의를 소집하여 아직은 쫓겨난 하디 대통령 정권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모순된 성명을 2015년 1월 25일에 발표했다. 

 

미국과 유엔이 염려하는 이유는 만일 남쪽의 시아파 후티의 무혈 쿠데타가 성공하여 후티가 정권을 잡게 되면 이란과 손을 잡게 될 것이 분명하고 또 레바논의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와도 연대하게 될 것을 크게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3. 한국에서 바라보는 <예멘통합>의 이모저모

 

 

예멘의 <남북통합>이 출발한 지4년 만에 삐거덕거리면서 내전이 발생한 이유가 무엇인가?   특히 남예멘은 영국의 식민지 97년 동안의 노예에서 해방되어 분단의 비극을 끝장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 그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운 기회인가?

 

하지만 예멘의 역사는 <통일의 씨앗>이 또 다시 < 분열의 씨앗>이 되어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동굴을 달려가고 있다. 

 

남과 북이 분열되여 70년이 된 한국에서 바라보는 <예멘통합>의 이모저모를 살펴보고 한 치의 앞을 알 수 없는 소용돌이의 출구가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본다.

 

ㄱ. <예멘 통합>의 물꼬가 터지는 기회와 속도가 부적절했다.  소련 고르바초프가 미국에 굴복하는 상황에서 남예멘은 위기돌파의 급선무로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부적절하게 제도권의 <체제통합>을 강행하였다.

 

통일이라는 구호가 아주 일상의 구호가 됐다. 하지만 예멘통합은 정치인들이 권력 나누어

먹기식으로  50 : 50 권력을 배분하는 차원에서 1990년 5월 22일에 예멘의 <체제통합>을 선포했다. 체제통합을 급조한 정권 안에서 <남부출신>과 <북부출신> 정치인들은 제각기 따로따로 뭉치면서 서로 쉽게 섞이지 못했다.

 

ㄴ. 예멘 통합의 문제는 남북의 군인들이 군복을 그대로 입은 채 남북이 통합했다. 예멘의 <체제통합> 후에 가장 큰 문제는 <군대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체제통합 후에도 남과 북의 군인들은 통합이전의 군복을 그대로 고집하여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정치인들에 대한 암살이 잇달아 발생했다.  통합이전의 정치인들에 대한 증오심 때문이었다.

 

ㄷ. 예멘의 북쪽 인구는 1,100만이고 남쪽의 인구는 250만이다. 남과 북의 통합 후에 남예멘 사람들은 북예멘에 박탈당하는 위기감을 가지게 됐다.

 

이러한 긴박한 상황에서 제도권의 <체제통합> 이후 20년이 된 남예멘은 다시 분단을 요구하는 기막힌 현실이 전개되고 있었다.

 

ㄹ. 정치인들의 이권에 의한 형식적인 <제도권 통합>은 예멘의 순진한 민중들에는  허망한 꿈이 되고 말았다. 남이든 북이든 민중을 위한, 민중에 의한 민족통일이 반드시 성사되어야 한다. 

 

<우리 민족 끼리> 라는 <통일 대전제>가 빠진 예멘의 <체제통합>은 오히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친 서방 강대국들의 지배가 강화되고 계속되고 있을 뿐이다.

 

 

이 글을 끝맺으며,

 

 

 예멘이 통일됐다가 다시 분단의 위기에 처해 있는 원인을 보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국의 70년 분단의 비극의 역사와 비교하여 서로 같은 점과 또 서로 다른 점이 있는 것이다.

 

같은 것은 외세의 무거운 짐을 지고 있으면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점은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라는 7.4 공동성명, 6.15 공동성명 그리고 10.4 공동성명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주장하고 전 세계에 밝히는 데 다른 점이 있다.

 

예멘은 통일을 한 때 성취했지만 실패한 역사를 남겨 놓았다. 서투른 통일, 완벽하지 못한 통일은 악질적 외세의 복수에 직면하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예멘에서 중요한 교훈을 깨닫는다.

 

어쨌든 최근  2015년 1월 20일에 발생한 남예멘 후티의 성공한 쿠데타는 불행한 예멘의 과거사를 청산하고 자주화 독립은 물론  중동의 질서를 바꾸어 놓는 역사적 <아랍의 봄>을 다시 불러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끝.   (1/3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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