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땅, 북을 방문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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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조명지 작성일14-05-22 00:08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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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땅, 북을 방문하고
조명지(재미동포중남부지역연합회 회장)
또 하나의 조국 북을 방문하는 것은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에서든 분단의 장벽을 뛰어넘어가는 민족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한 행위이다. 나에게서 북 방문은 언제나 북에 대해서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많은 것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나는 북을 다녀올 때마다 그곳에서 무엇을 느끼고 또 배우고 왔는가를 질문해 왔다
20시간 넘게 비행기를 타고 서울과 심양을 거쳐 평양 순안공항에 내리는 순간 내가 사는 미국은 아득하게 먼 나라, 마치 꿈속에 존재하는 나라로 느껴진다. 자본주의에서 매일 더 가져야 안심되는 욕망과 불안은 사라지고 그런 강박관념에서 자유로운 무공해 지역으로 와 있는 것 같다.
이곳 사람들은 물질적인 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이상과 도덕, 더 나은 사회를 향한 혁명 정신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이곳에 있으면 자본주의 나라에서 강조하는 개인의 소유, 이익, 돈을 추구하면서 남보다 더 잘 살고 싶은 욕심은 사라지고 나라 전체가 뿜어내는 숭고한 이념, 민족의식, 역사의식, 민족통일에 대한 가치를 숨쉬고 마시게 된다. 나는 이곳에 발을 내딛는 순간 혁명정신이 온몸에 퍼지는 것 같았다. 마치 우리가 뒤에 두고 온 미국이라는 자본주의 나라, 그 욕망의 허상은 아득히 먼 꿈속의 나라로 희미해지고 지금 이 땅에 울려 퍼지는 “자주, 주체, 평화통일만이 살 길”이라는 이 구호 소리가 나의 현실이 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나는 온 인민이 이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고난을 겪고 있음을 본다. 이것이 내가 북쪽에 도착하는 순간 나의 현실이 되어 나를 사로잡는다.
북을 방문할 때마다 신기한 것은 어떻게 이렇게 작은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강한 미국과 대결해서 당당하게 싸우고 있는지, 어떻게 이 나라가 미국 자본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주적인 노선을 지키고 있는지다. 그리고 그 힘의 근원은 무엇일까에 대해 늘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이번 방문에서 나는 바로 그 해답을 찾았다고 생각한다. 그 힘은 바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 나라가 가지고 있는 개인과 국가가 한몸이 되는결집력, 그 응집력에서 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깨달았다. 개인과 국가가 혼연일치를 이루어 나가는 이 단결력이야말로 세상의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강력한 힘의 원천인 것을 이 나라에서 숨 쉬면서 깊이 느꼈다.
이 나라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존재한다. 즉 이 사회는 국가가 추구하는 가치와 이상을 개인이 공유하고 그것을 향해서 한마음과 한뜻으로 나아가는 강한 믿음과 신뢰의 공동체이다. 혁명정신, 주체사상, 자주국방, 민족대단결, 평화통일, 이러한 것을 제일 우선의 정책으로 삼고 이것을 향해서 모두가 하나가 되어 나아간다. 나는 이러한 투철한 정신적인 단결력, 응집력이 우리 민족을 살리는 길이며 , 이것 때문에 이 나라는 우리들에게 밝은 희망이 됨을 본다. 이 나라에서 수고하는 모든 인민은 바로 이 희망을 만들고 그것을 이루어내기 위해서 고난의 길을 자발적으로 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곳에서는 민족평화통일, 자주국방, 이러한 가치를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고 북쪽은 이제 밝은 희망의 시대를 열었고 그것을 실천하면서 전진하고 있다. 개인과 사회가 동시에 혁명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늘 깨어 있다.
2012년 김일성주석 탄생 100주년을 향해서, 선군정치와 동시에 경제 대국을 향해 전진했기 때문에 북쪽은 경제적으로 변화발전을 해 왔다는 것이 눈으로 확연하게 느껴졌다. 평양에 자리 잡은 북쪽의 관문인 순안공항은 새 건물이었고 그 안은 넓게 확장되어 새롭게 단장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입국 수속도 편안하게 할 수가 있었다. 그동안 손전화기는 공항에 보관하고 나갔는데, 이번에는 카메라 겸용 전화기도 보관하지 않고 가지고 나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짐 조사도 거의 하지 않았다. 중국 심양 그리고 북경에서 왕래하는 비행기 수도 많아졌으며 일 주일에 두 번 혹은 세 번으로 왕래하고 있었다.
이번 여행길에서 많은 사람이 북을 왕래하고 있음을 보았다. 공항에 도착한 사람 중에는 영국에서 그리고 캐나다에서 온 젊은 사람 그룹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면서 이들이 이 나라를 찾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이 나라에서 무엇을 배우고 싶어 할까 궁금했다. 나는 이들이 이 나라에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미국과 당당하게 겨루고 있는 국민의 힘과 혁명정신을 배워갔으면 하고 바랐다.
자본주의에서 온 사람들은 정신적인 가치를 강조하는 북쪽 사회를 보고 이질감을 느끼고 이곳 사람들의 국가에 대한 신뢰, 그리고 일체감을 보고서 놀란다. 모든 것을 자본의 가치로 판단하는 것에 익숙한 우리에게 자본과 소유,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높은 도덕적 가치와 이념을 앞세우는 북쪽을 신기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북 사람들이 과연 얼마만큼 개인의 자유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가진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 추구하고 있는 국가와 개인이 하나가 된다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이들이 강조하는 혁명정신과 주체사상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나도 그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아무리 자주 방문을 하여도 잘 알 수 없는게 북이기도 하다. 나에게 이 사회는 아주 특이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내가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은 북은 세상에서 도덕을 추구하고 인간이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이상을 실현하는 마지막 나라라는 것이다. 또한, 북은 자주성과 주체성, 그리고 인간성 회복을 중시하는 나라이다. 그래서 북은 미국의 압살정책, 악마화 등 어떠한 압박에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자긍심을 지키면서 세계 속에서 우뚝 서 있는 것이다. 이것으로 하여 내가 북에서 희망을 본다. 나는 빛나는 이 정신을 배우려고 북을 방문한다. 그리고 북이 지켜내고자 하는 자주 주체의 가치가 꼭 지켜지기를 염원하며 반드시 승리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기독교인인 나에게 이번 방문은 예수님이 고난을 겪으신 수난절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특별한 의미를 가졌다. 수난 주간에 북의 고난의 현장에 와 있다는 것 자체가 예수님의 수난에 동참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북이 지켜내고자 하는 혁명정신과 자주국방, 민족의 평화통일 문제들이 반드시 부활의 승리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북이 겪는 수난의 길이 바로 부활로 가는 여정임을 새삼느꼈다.
일요일에는 봉수 교회에서 평양에 사는 북의 교인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다. 북에서 번역한 성경책을 읽고 귀에 익숙한 찬송가를 함께 부르면서 우리를 향해서 화해와 평화를 외치시는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젊은 손호철 목사님이 설교하셨다. 설교 본문은 누가복음 중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죽음의 길, 예루살렘 입성에 대한 말씀이었다. 이날 설교 제목은 <승리자의 자세>였다. 목사님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죽음을 향한 여정이었지만 그것은 바로 부활로 연결되는 당당하고 확신과 신념에 찬 승리의 길이며, 이 길을 가시는 예수님의 자세는 바로 우리가 따라야 하는 승리의 자세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믿는 자들은 바로 승리자의 길을 가는 것이며 북이 가는 길은 바로 승리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서 전하는 복음은 철저하게 인민들의 생활과 깊이 연결되는 주체와 평화통일을 강조하는 희망의 메시지였다.
평양거리의 사람들의 발걸음은 활발하고 힘차 보였다. 그들은 국가를 신뢰하고 국가가 절대 개인을 배반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아직 힘든 길을 걷고 있지만 이 길이 승리를 가져다주는 길임을 확신하고 있다. ”이젠 꺼뜩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있습니다”라고 그들은 말한다. 그러면서 “그땐 참 힘들었습니다. 나라 전체가 정말 견디기 힘든 시기를 잘 견뎌내었습니다.” 라며 고난의 행군시기를 회상하면서 이젠 한시름 놓았다는 안도감과 국가에 대한 신뢰로 그들은 삶의 여유를 보였다. 삶이 여유가 생기고 윤택해져 보이는 것은 젊은 여성들의 옷차림에서 가장 잘 나타났다.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여성들의 옷차림은 서구식으로 세련되어 있었고 많은 여성이 하이힐 구두를 신고 다녔다. 젊은 여성들의 고운 얼굴에서도 여유 속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나라 전체가 젊어진 것 같았다. 젊은 영도자는 인민들에게 새 변화를 불어 일으키고 있었다. 김정은 제1비서가 공식 석상에 부인 이설주 여사를 대동하고 나와서 많은 인민에게 젊은 기운과 새 바람을 불어넣었다. 나의 어깨를 치료해준 젊은 여의사는 이렇게 표현했다. “요새는 말입니다. 영도자님이 나오실 때마다 부인님이 나오시는가 아닌가 하고 신경이 많이 쓰인다 말입니다. 그리고 이젠 부인님과 함께 나오는 게 당연하게 생각된다는 말입니다.”라면서 그 변화를 환영하고 기쁘게 받아드렸다.
여성들의 가정생활도 점차 변화를 겪고 있었다. 나의 어깨 통증을 치료한 여의사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즐겁게 말했다. “요새는 딸이 더 좋습니다. 시어머니와 살기보다는 친정어머니와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무래도 세대 차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한 집에 옛날식의 시어머니와 젊은 며느리가 사는 것에는 늘 갈등이 있지요. 나도 친정 오빠가 권해서 친정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원래 오빠 가족이 어머니와 살았는데 이제 나가서 따로 살고, 대신에 내가 친정어머니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시어머니와 살 때보다 편하고 좋습니다.” 그동안 내가 생각해오던 북여성은 사회적으로는 해방되었지만, 가정에 돌아가면 아직도 봉건의 옛 풍습이 그대로 남아있다는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이곳에서 가장 눈에 띄게 변화된 모습은 우리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손전화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2년 전 방문에서 이 변화에 놀랐는데 이제는 그때보다 가격도 내려서 보편화되어 있었다. 이집트 전화 회사가 이 사업을 맡고 있었다. 우리가 만난 안내원 동무, 운전기사, 정부 관료, 병원 의사까지도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를 받고 통화를 하면서 일상의 삶의 세세한 부분을 공유하고 있었다. 통신연락이 이전보다 메우 자유로워진 것 같았다. 거리에는 차들의 왕래가 분주하고 주유소도 보이고 자동차 부품 판매소도 보였다. 북 자체로 생산하는 휘파람 자동차도 많이 보였다. 평양에서 유명했던 여성 교통경찰의 아름다운 모습은 신호등이 대신하는 곳이 많이 생겼다. 거리를 가로지르는 육교도 보이고 육교 위로 사람들이 많이 지나가고 있었다. 교통과 통신이 많이 편리해진 듯하였다.
북에서는 <병진 노선>을 천명하고 이제는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경제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창전거리에 즐비하게 들어선 현대식 살림집을 보고 그 위상에 놀랐다. 그리고 그곳에 돈 많은 부자가 들어가 사는 게 아니라 노동자, 건설자 등 국가 공로자들이 산다는 것에 더욱 놀랐다. 자본으로 사람들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말이 설득력 있게 들렸다. 인민극장은 온 전체가 유리로 뒤덮인 유리 빌딩이었다. 이 건물이 햇빛을 반사하면서 번쩍번쩍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겉단장을 마치고 화려한 위상을 뿜내고 우똑 솟아 있는 백 층이 넘는 류경호텔이었다. 평양의 거리 풍경 전체가 현대적으로 변모하고 있었다.
분단의 장벽을 넘어 또 하나의 조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일주일 간의 북 여행을 되돌아보면서 무엇을 마음에 담아가고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배웠는가를 곰곰히 생각했다. 무엇 보다도 나는 북에서 계속해서 강조하는 혁명정신으로 내가 깨어나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북의 그 고상한 정신을 나의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며 평소 자주 잊고 사는 분단된 조국이 나의 현실임을 다시 깨달았다. 그리고 이 현실에 어떻게 참여할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물질과 자본 위주의 가치가 아닌 인간중심의 가치를 되새기며 주체의 정신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울을 거치기 위해서 심양에서 갈아탄 KAL 비행기 안에서 우연히 펼쳐본 남쪽 신문은 온통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채워져 있었고 억울하게 죽은 고등학생들과 그 유족들의 비통함을 전하고 있었다. 사람의 생명보다 돈과 이익만 쫒고 있는 또 하나의 조국 남쪽의 비참한 현실을 뼈아프게 보았다.
나의 두 개의 조국은 참으로 극명하게 다른 세계를 나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자주를 지켜내기 위해서 고난의 길을 걷는 나라인 북과, 미국의 자본의 노예가 되어 오직 성공과 물질의 풍요만 최고로 여기면서 온 나라 전체가 총체적인 부패와 거짓과 부정으로 얼룩져있는 남, 양쪽이 다 나의 조국이다. 나는 이렇게 선명하게 대조적으로 보여주는 둘 중에서 과연 어느 쪽이 우리에게 희망과 자긍심을 주는 것일까? 하고 깊이 생각해 보았다.
분명하게 말하건대 북은 우리들의 희망이며 자존심이다. 북에 사는 사람들은 분단의 현실을 받아들이고 이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는 부활의 백성들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북을 방문하고 이들이 지켜내고자 하는 가치를 배우고 돈에, 자본에 지배되지 않는 혁명정신을 배우고 그들을 지키기를 원한다. 나는 늘 깨어 있기 위하여 북을 다시 방문할 것이다. 그것은 고상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 고생하는 나의 반쪽 조국에 대한 인간적인 예의를 위해서, 희망의 현장에 가서 그들의 삶을 배우고 그 가치를 생활화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나의 한 조국의 형제자매를 다시 나의 가슴에 항상 품기 위해서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4-05-22 15:07:36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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