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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145] 제3세계의 눈으로 식민지 한국을 파헤친다
전통보수에 갇힌 한국교회, 해방은 가능한가
| 유태영 목사( 재미동포전국연합회 고문) |
오늘 한국 교회 무엇이 문제인가?
이 질문은 외형적 문제에 대한 가상적 비판을 위한 물음이 아니라 하나의 절실한 실질적 한국 교회의 내부적 당면한 문제에 대한 명제로서의 물음이다. 교회에 대한 질문의 초점은 <진리에 대한 물음>과 함께 <정의에 대한 물음>이 되어야 한다.
교회의 사명은 종교적으로 신학적 사명과 사회적으로 도덕적 사명으로 양면성을 중요시해야 한다. 이 양면성은 신뢰성과 적합성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교회는 신앙의 자유와 진리의 해방의 양면성을 조화하고 극복하여 보다 성숙한 한국 교회를 세워나갈 수 있다.
하지만 오늘 한국교회는 종교적 진실성과 교회의 사회적 윤리성 사이에 높고 높은 장벽이 가로 막혀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어찌하여 교회의 진실성과 사회적 윤리성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가?
그것은 교회가 크리스천으로서의 교회가 아니라 교회가 교권과 제도권 교회로 변질되고 타락했기 때문이다.
어찌하여 교회가 교권과 제도권으로서의 교회로 변질되였는가?
그것은 동서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친미와 반공주의적 교회이여야만 나라와 민족을 위한 정당한 교회의 사명이라고 잘못 이해했기 때문이다.
냉전시대가 없어졌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냉전의 유산인 남북의 분열을 70년 동안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 오늘 한국 교회는 냉전시대의 유산인 친미와 반공주의적 교회의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 이유는 한국 교회가 친미와 반공주의적인 독재정권과 친밀하게 야합하여 정치와 종교가 상부상조하는 관계 속에서 부패하였으며 결과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막강한 불의한 자본주의적 부자교회가 되어 지옥에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낡은 전통보수주의와 귀족적 교권으로 인하여 신성한 크리스천으로서 교회의 사명을 완전히 망각한 한국 교회는 교회의 정체성을 상실하여 지옥에 떨어진 부자처럼 되고 말았다. <나를 긍휼이 여겨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누가 16:24)>라고 간구하는 부자의 비참한 지경에 오늘 한국 교회는 이르고 있는 것이다.
오늘 한국 교회는 신학적 진리와 영성의 청빈의 참된 뜻을 왜곡하여 물질적 부여함과 출세를 유일한 목회의 수단과 방법으로 삼고 있으며 제도화된 교회의 성공을 추구하고 있다. 성경적인 신성한 영성이 아니라 무당종교에서 볼 수 있는 미신적인 영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정치적으로 반공주의적 독재정권과 야합하여 극히 상업적 시장원리를 구체화한 목회방법을 이른바 제도화된 성공적인 목회방법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오늘 한국 교회는 종교적으로 정당한 교회가 아니며 기독교의 순수한 복음으로 무장된 교회들이 절대로 아니다. 그 많은 교회들이 각자가 만든 자본주의적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단지 다른 것은 목회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희귀하고 괴상망측한 비리사건들이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성공주의를 우상으로 삼고 있는 교회일수록 나라와 민족을 위한 교회의 사명은 멀리하고 있다. 나라와 민족의 운명은 70동안 분열의 비극으로 골수에 사무쳤는데 한국 교회는 이러한 망국적 비애를 모른 척 하고 있을 뿐이다.
교리와 교권에 갇힌 한국 교회를 해방시켜라
한국 교회는 1945년 8.15 해방 후 70년 동안이나 보수주의 신앙과 반공주의 정치노선을 맹종하면서 히틀러식 독재주의 반민족적 정권에 대하여 무비판적으로 유착하여 독재정권의 끄나풀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요직에는 기독교인이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골고루 침투되어 있다.
그러나 그 많은 기독교인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무엇을 했는가?
나라가 갈라지고, 사상으로 갈라지고, 교파로 갈라지고, 빈부의 격차로 갈라지게 하는 역할만 하고 있을 뿐이며 자본주의와 상업주의적 이해관계에 감염된 사회에서 기독교 정신은 가시밭 속에 떨어진 씨앗이 되고 있을 뿐이다.
한국 기독교가 외형적으로 번영하는 틈을 타고 거짓된 교회 지도자들이 양산됨으로 인하여 교회의 본질과 형태는 주객이 바뀌고 말았다. 기독교의 본질을 상실한 한국 교회는 형태만 화려하고 알맹이 없는 비본질적 교회들이 되고 있다.
미국의 지미 카터 대통령 때의 실화이다. 카터 대통령은 주한 미군의 감군과 또는 완전 철수를 실질적으로 고려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계를 골고루 대표하는 유명한 목사 9명이 백악관을 방문하여 카터 대통령에게 미군 철수를 반대하는 탄원서를 제출하였다.
그 탄원서의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한국의 전 국민 기독교 복음화가 눈앞에 가까이 왔다. 한국의 군, 면, 리마다 교회를 세우면 전 국민 복음화가 될 것이고 그 때는 한국의 남북통일의 성취는 자연히 성공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중요한 시점에서 미군 감군과 철수를 보류하기 바란다.>
그런데 오늘 한국은 그 때 유명한 목사 9명이 카터 대통령에게 말한 바 그대로 한국의 군, 면, 리에는 교회가 없는 곳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시골 면 리 마다 각종 교파들이 경쟁적으로 교회들을 둘 셋씩 세우고 있다.
한국은 전국 방방곡곡에 교회들로 넘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사회적 부패는 교회 때문에 조장되고 있으며 또 교회 때문에 사회적 이분법으로 유신론과 무신론적 대립과 친미와 반미의 대립 그리고 통일과 반통일 대립의 장벽을 높이 쌓아 놓고 고착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교회가 제아무리 교리와 제도를 주장하고 강화한다 할지라도 그것이 나라와 민족을 위한 복음의 진수를 가추지 못하면 빛 좋은 개살구가 되고 만다.
참된 기독교 복음의 진수란 무엇인가?
참된 교회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갇힌 자에게 해방을, 눈 먼 자에게 눈 뜨임을, 눌린 자에게 자유를 그리하여 정의로운 역사를 사회에 도입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 교회는 어떠한가? 한국 교회는 정권과 야합한 교회, 교리로 회칠한 무덤처럼 장식한 교회 그리고 교권주의로 부패하여 부귀영화로 과대망상증에 갈린 병든 교회이다.
오늘 한국 교회의 당면 문제는 젊은 세대와 지성인들이 <교회가기가 싫습니다.>라는 사회적 반응이 도시와 농촌에서 파도처럼 퍼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교리와 교권으로 무장된 한국 교회는 오히려 기성세대를 향하여 교회는 <천국행 열차를 기다리는 대합실>이라고 설교가 아닌 선전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보수주의 교회들은 교세확장을 위하여 연중행사로 부흥회를 푸닥거리 식으로 강행하면서 될 소리 안 될 소리를 요란하게 외치면서 <예수 믿으면 이 세상에서 잘 되고 출세하며 안전보장을 획득하고 죽어서는 낙원에서 영생복락을 누림으로 꿩 먹고 알 먹는다>라고 설교를 하고 있다.
하지만 참된 교회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행동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교회의 본질과 사명은 역사적 현재적 현실에서 출발하여 불우한 이웃을 섬기는 것을 교회의 본직으로 삼음으로서 <사회적 망각> 증상과 절실한 투쟁을 벌여 나가야 하겠다.
이와 같은 역사의식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 교회의 미래는 생존할 능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다.
3천-5천년 전에 기록한 고전적 구약 성경에 대하여 한국 보수주의 기독교인들은 구약 성경에 대하여 이른바 <성경 무오설>을 주장하면서 하나의 문구라도 의심하지 않고 몽땅 그대로 믿는다. 그래야만 진실된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항거하여 김일성 유격대가 만주와 백두산 밀림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70년-90년 전의 생생한 역사적 기록에 대하여 한국 보수주의 기독교인들은 그것을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가짜 김일성 유격대>라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한국 교회가 어찌하여 이렇게 되었는가?
한국이 특이한 보수주의 기독교 왕국이 된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미국 선교사들이 이교도 인디언들을 무차별 학살을 했으며 흑인 노예들을 수백만을 잡아서 미국을 발전시킨 수치스러운 미국 역사를 감추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일본의 비인도적 침략행위도 문제 삼지 말고 기독교정신으로 모두 다 용서하고 원수도 사랑하라는 식으로 선교를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에서 처음부터 교회다운 교회를 창설하지 못했으며 민족의 미래를 책임지는 교회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만사가 허무하고 유한적이기 때문에 오직 내세지향적인 순수 복음주의 신앙만을 강조하여 망국적인 선교를 하면서 심령부흥운동을 위주로 하는 선교를 했다. 그리하여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대하여 항의하는 것을 종교적으로 죄악시하여 비 신앙적인 세속적 사고방식이라고 비난하는 어처구니없는 미국 선교사들이었다.
조국 분단 70년의 비극 속에서 한국 기독교가 민족통일의 과제를 방기하고 교회의 사명을 잃어버리고 있으면서 오직 반공주의 이념에 안주하고 있는 모습과 그 원인은 초대 교회의 잘못된 기독교 신앙의 씨앗 때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세계화를 부르짖는 오늘에 있어서 한국 교회가 오직 구시대의 유산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한국 교회는 구시대의 유산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부패한 정권과 유착되어 교권주의를 주장하면서 사회정의와 기독교의 본래 사명을 무시하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다.
교권주의자들은 관념적 입으로는 하나님을 주장하고 있으나 뒷전에서는 지신들의 이익추구를 위하여 세속적인 정치세력과 결탁하여 교권을 악용하는 왜곡된 교회 지도자들이 되고 있다.
이와 같은 교권주의의 대표적인 이야기가 바로 <청와대 조찬기도회>를 위하여 교계의 유능한 목사들이 경쟁적으로 주도권 경쟁을 하면서 무신론적이며 반통일주의적 대통령을 위하여 축복기도를 하고 있는 수치스러운 모습이다.
한국 교회가 극단적 보수주의 신앙에 사로잡혀 있으며 교권주의에 갇혀 있는 현실을 터파하고 참된 교회로 회복하고 신앙 공동체가 되도록 교회해방운동을 전개해야 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이다.
보수적 잘못된 교리와 교권의 아집에 갇혀있는 하나님 인식의 위기에 처해있는 한국 교회 지도자들의 인격적 변화와 향상이 오늘 난관에 처해 있는 한국 교회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시급한 요구이다.
왜곡된 친미-반공주의에 갇힌 교회를 해방시키자
한국 교회가 당면한 과제는 맹목적으로 <친미-반공주의>에 갇혀 있는 교회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인들의 입에 발린 말은 친미-반공주의적 교인이 되는 것이며 이것이 필생 기독교인의 삶으로 여기고 있다. 나라와 민족보다는 자기의 마음의 평화와 개인구원 신앙을 존중히 여기는데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한국 기독교인들의 독특한 신앙형태를 배타주의적 신앙이라고 말한다. 이 배타주의적 신앙 형태는 어떻게 형성됐는가?
그것은 일본의 침략에 대하여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인들을 설득시켜 주장하기를 <일본인들을 바라보지 말고 상대하지도 말고 오직 예수를 믿어야 천당 간다>라고 하는 철두철미한 <배타주의>적 어처구니없는 신앙형태를 한국 기독교인의 품성에 뿌리 깊게 주입시켰다.
언젠가는 일본을 대신하여 한반도를 지배하려는 미국은 우리 민족을 그렇게 무비판적 순응적인 존재로 만드는데 교회를 이용한 것이다.
이와 같은 신앙형태가 8.15해방(1945)후에 한국에서 친미-반공주의로 표출됐으며 무조건적인 배타주의와 반공주의 그리고 반북주의가 기독교인들을 지배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승만은 이러한 기독교인들의 배타주의적 반공주의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남쪽에서 단독정부수립을 쉽게 했다.
그 결과 한국 역사는 님북 대결과 남쪽에서는 단체들끼리 남남갈등에 지역주의 등 배타주의적 혼란이 표출되게 되었던 것이다.
해방 직후 한국을 통치하던 미 군정은 백범 김구 선생을 비롯하여 상해임시정부의 요인들은 정부 대표가 아니라 오직 개인의 자격으로서만 입국이 허용됐다.
이런 미국의 비호를 받은 이승만 정권은 기독교세력과 부르주아 지주들 그리고 일본 침략에 협력한 친일파 관료들과 경찰세력을 끌어들여 남한만의 단독정부를 수립했다.
이와 같은 배경으로 인하여 한국 정부 한국 기독교는 친미- 반북반공주의적 체제로 굳혀지게 됬으며 반통일적인 기복주의 신앙적 토양이 70년 동안 촉적되고 있는 것이다.
1945년에 8.15 해방과 동시에 한국에 재입국하여 다시 돌아온 미국 선교사들은 막강한 재정지원을 통하여 분단된 한국에서 반공반통일적 선교활동을 계속했다. 한국 교회는 민족통일을 위한 예언자적 교회가 되기보다는 분단고착을 위한 방관적 교회가 되도록 미국 선교사들이 적극적으로 획책하였다.
7.4 남북공동성명(1972)과 6.15 공동성명(2000년)은 남북관계에서 획기적인 통일의 주춧돌 역할을 하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사건이었다. 민족통일을 자주적, 연방제통일방안을 설정했다.
그런데 반공주의와 교권주의적 교회 지도자들은 오직 친미 우호적 관계에만 사로잡혀 있으면서 한국의 통일문제에 대하여는 깡그리 무시하고 <한국의 영구분단>과 <하나님 나라 도래>를 동일시하고 있었다. 한국의 보수주의적 기독교는 오직 교리와 교권에 갇힌 상태에서 21세기 황금만능주의와 미국을 우상으로 섬기고 있다.
기독교국이라고 선전하는 미국은 첫째가 자본주의이고 둘째가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한국의 기독교도 역시 첫째가 미국이고 둘째가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둘째로 여기는 미국과 한국의 기독교는 사실에 있어서 물질적 자본주의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최고의 대중운동인 야구경기장에서 <God Bless America>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고 미국은 하나님을 믿는 나라라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그것은 미국이 제3세계를 침략하는 역사적 죄악을 숨기기위한 정치적 고등수단일 뿐이다.
한국의 극단적인 보수주의 교회들이 반공주의 사상에 갇혀 있으면서 반민족반통일적 신앙형태에 대하여 무지몽매하게도 만사를 <하나님의 뜻>으로 돌리는 것은 미국의 기독교를 모방하고 있는 사대주의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한국 교회를 친미-반공주의에서 부터 해방시켜야 하겠다.
이 글을 맺으며...
하지만 우리는 그래도 한국 교회에 대하여 절망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
필자는 그 이유를 박정희 유신정권 하에서 민족과 사회정의를 위해 싸우다가 긴급조치로 구속된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3분의 1이상이 목사들과 기독교의 지성인들이었다는 데서 찾고 있다.
오는 박근혜 정권 하에서 구속되고 탄압을 받고 있는 현대판 긴급조치에 의하여 고생하는 사람들도 역시 대부분 기독교 지성인들이며 문익환 목사의 뜻과 신앙을 따르는 애국적인 민중들이기 때문이다.
김일성 주석과 문익환 목사는 분단 50년을 넘기지 말고 조국통일을 성취하자고 약속했지만 성취하지 못했다.
하지만 2014년 오늘에는 분단 70년을 넘기지 말고 분명히 반드시 조국통일을 성취할하자고 북의 김정일 제1위원장이 남측 박근혜 정부에 조건 없는 통큰대화를 제의했다.
그럼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멀고 먼 태평양 건너 워싱턴을 바라보고 의지하려고 어리석게 생각하지 말고 아주 가까이 있는 평양과 화친한 관계를 창조적으로 개척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남한의 경제력이 우수하고 북도 세계 어떤 나라도 건들 수 없는 정치군사적인 힘을 갖게 되었다.
특히 중국이라는 큰 시장이 옆에 있기에 미국을 추종하지 않고 북과 평화적으로 통일하고 자주적으로 새로운 길을 개척해가려고 결의만 다진다면 얼마든지 자주적이고 존엄높은 통일조국을 건설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한편 놀라운 소식은 프란치스코 로마 교황이 8월 14일부터 18일까지 한국을 방문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남미에서 제3세계 민중해방운동 선두에서 투쟁한 서민을 위한 목자로서 교황이 되었으며 아시아 순방국 중 첫번째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한 것은 분단국 한국에 대한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 된다.
뿐만 아니라 한국 카돌릭 교회 박창신 신부님과 함세웅 신부님을 비롯하여 한국 카돌릭 교회는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위하여 개신교와 기타 타종교들보다 앞장서서 투쟁하고 있는 이 때에 로마 교황의 한국방문은 보다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 끝. (유태영, 4/18/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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