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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138] 한국기독교 이대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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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4-01-16 03:05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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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3세계의 눈으로 한국을 파헤친다.

 

 

한국기독교 이대로는 안된다

역사의식과 사회윤리에 무관심하고 타락한 교회는 헐어버려라

왜 지성인들이 교회 가기가 싫은가?

 

유태영 박사(재미동포전국연합회 고문)

기원전 15세기경의 기록에 의하면 이집트인들은 자연을 신성한 것으로 간주하여 자연을 숭배하는 전통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이집트인들은 자연을 숭배할 뿐만 아니라 동물과 곤충에 이르기까지 종교적으로 신성시하여 숭배를 했다. 

이집트인들은 원숭이, 하마, 암소, 사자와 면양, 매와 개구리, 늑대와 악어 심지어 고양이까지 숭배했다. 그들은 고양이를 신성시하여 고양이 머리 모양으로 여신의 머리를 만들어 놓고 제사를 드렸다. 고양이를 숭배하는 이유는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음으로써 사람에게 유익을 주기 때문에 고양이를 하늘 높이 숭배했던 것이다. 

전쟁의 용사를 상징하여 남자의 형상에 사나운 새매의 머리와 깃털을 달아 만들어 놓고 숭배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자연의 물체와 동물과 곤충까지 숭배하는 고대 이집트인들의 극단적인 이기주의적 사고방식에 대하여 현대인들은 그것을 <자연 숭배사상> 이라는 말로 비판한다. 

그런데 미국은 1782년에 건국의 상징으로 흰머리 독수리를 <미국을 지키는 새>로 제정했다. 1973년에는 미국 48개주에 단지 4백 쌍 만이 남아 있는 흰머리 독수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특별법을 재정했다. 

오늘 미국인들이 <God Bless America>를 제아무리 크게 외친다 해도 사실 미국인들은 옛날 이집트인들이 가지고 있던 이기주의적인 <자연 숭배사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자연을 이용한 <자연과학사상>을 숭상하는 날쌔고 사나운 흰머리 독수리를 상징하는 미국의 최첨단 우주항공기를 미국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라고 미국인들은 굳게 믿고 있다. 

구약 성경 이집트 탈출기 7-11장에 보면 그 때 당시 유대인들이 이집트의 노예에서 탈출하는 신화적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이집트 탈출기는 기원전 10-5세기경의 기록이다. 이른바 <10 가지 재앙>을 통하여 고대 이집트의 <자연숭배신화>전통을 근본적으로 타파하여 <비신화>하고 <탈숭배>하는 과정에 대한 신화적인 이야기의 기록인 것이다. 

이집트 탈출기 <10 가지재앙>의 기록에서 <탈신비화>의 과정을 살펴본다. 

첫째 재앙, 나일강 물이 피로 변했다. 이집트인들이 나일강을 신격화(Hapi)하는 자연숭배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피 재앙을 통하여 신화를 <탈신화> 했다. 

둘째 재앙, 개구리들이 차고 넘쳐 큰 소동이 났다. 이집트인들은 개구리를 신성시하여 (Heka)숭배했는데 개구리가 큰 장해물이 되고 있음으로 <탈숭배물>이 됐다. 

셋째 재앙은 이 재앙이다. 이집들은 이, 모기, 벼룩 등 (Geb)에 해당되는 곤충들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었는데 이 곤충들이 번창하여 삶에 고통을 주는 장해물이 되였기 때문에 <자연숭배 사상>을 타파하는 계기가 됐다. 

넷째 재앙은 파리재앙이다. 파리는 (khopri) 형상으로 신을 상상하는 그림으로써 이집트 묘지에서 발견된다. 파리 재앙도 역시 <탈미신>을 주장하는 계기가 됐다. 

다섯째 재앙은 가축에 대한 재앙인데 동물숭배를 포기하는 <탈동물숭배>가 됐다. 

여섯째 재앙은 악성 종기 재앙이다. 악성 종기재앙은 이집트인들이 섬기는 여신 (Neith)에게 도전하는 재앙으로서 남신과 여신 우상들을 타파하라는 재앙이 됐다. 

일곱째 재앙은 우박재앙이다. 우박재앙은 공중의 신 (Isis, Nut, Shu)들에게 도전하는 <우상타파>를 뜻하는 재앙이다. 

여덟째 재앙은 메뚜기 재앙인데 이 재앙은 이집트인들이 섬기는 곤충신들에 대한 도전이며 농업을 보호해 주는 자연신 숭상에 대한 <탈숭상>을 뜻한다. 

아홉째 재앙은 흑암의 재앙으로 이집트 전국이 어둠속에 잠겼다. 이 재앙은 태양신 (Karnak) 에 대한 도전을 뜻한다. 

열 번째 재앙은 장자의 죽음의 재앙이다. 이집트인들이 섬기는 사람의 머리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Ptah)에 대한 마지막으로 도전하는 재앙이 되고 있었다. 열 번째 재앙은 이집트인들의 뿌리 깊은 <우상숭배>를 타파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이와 같은 10가지 재앙에 대하여 다시 말하자면 이집트인의 모든 역사가 신화로 되여 있는 미신적인 종교적 전통을 근본적으로 배격하고 타파하여 <자연신><물욕우상순배>을 완전히 거부하고 배격하여 <탈신화화>하여 해방된 삶의 길을 찾았다는 것을 뜻한다. 

이와 같은 열 가지 재앙을 소재로 하여 전개되고 있는 이집트인들에 대한 신화적인 이야기와 <비신화화>의 전설에 대하여 제3세계의 눈으로 유심히 살펴보았다. 이집트인의 10가지 재앙을 제3세계의 눈으로 살펴보면서 배운 교훈은 무엇인가?

 

그것은 옛날 이집트처럼 오늘 한국도 미국의 식민지 지배 하에서 민족분단의 재앙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미국은 우리 민족에게 민주주의와 기독교로 포장한 10가지 재앙을 가지고 왔다는 사실도 배우고 깨닫게 됐다. 

1945815일은 해방의 날이 아니라 미국이 우리 민족에게 <10 가지 재앙>을 가지고 한반도에 도착한 날이었다. 이런 사실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살펴본다. 

첫째 재앙, 1945815일은 해방의 날이 아니라 미국군이 점령군으로 상륙했으며 우리 민족의 독립은 근본적으로 관심이 없을 뿐만 아니라 미국은 38선으로 나라를 둘로 분열시켰다.

 

둘째 재앙, 이승만 대통령은 초대 대통령의 권위를 과시하면서 미국을 종주국으로 삼는 반민족적인 정치적 전통을 처음 확립시켰다. 

셋째 재앙, 친일파 세력이 이승만과 미국과 일본을 등에 업고 건국 초기부터 정치적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친일파는 오늘도 국가 경제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 

넷째 재앙, 친일파 박정희는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미국의 승인을 받았다. 박정희는 반공주의 정치적 노선을 확립하여 군부의 영구분단 정치체제를 굳건히 했다. 

다섯째 재앙, 5.18 광주항쟁에 대한 전두환의 군부개입과 집단적 살인 만행은 민중의 민주화 운동의 씨앗을 완전히 고갈시켰다. 미국의 개입으로 인하여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은 무식한 대통령으로 유명한 기록을 남겨 놓았다.

여섯째 재앙, 노태우는 보통사람 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전두환의 악명을 이용하여 기회주의적 대통령이 되였는데 미국의 빈틈없는 짜임에 의하여 집권을 했다. 

일곱째 재앙, 감영삼은 경상도-전라도 지방색 정치제도인 동서로 분열되는 망국적인 친미주의 정치풍토를 조성하여 민주화 운동을 후퇴시킨 위선적 정치인으로 낙인이 찍혔다.

여덟째 재앙, 이명박은 뼛속까지 친일파 대통령이 되였으며 기독교 장로라고 하는 명분으로 기독교 보수주의 교회들을 강화시키고 등에 업고 자주화 민주주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위선적인 기독교인 대통령이 되고 있었다. 

아홉째 재앙, 국정원 불법선거개입으로 박정희 딸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재앙 중에서 가장 큰 재앙이다. 하지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것은 박근혜 자신에게 있어서 더 큰 재앙이 되어 비참한 운명의 여자가 될 것이 분명하다. 

열째 재앙, 미국이 핵무기로 한반도에 군사기지를 구축하여 70년 가까이 되도록 휴전협정을 고집하고 있으며 오늘 미국은 핵무기로 북미대결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한국은 미국에 의하여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으로 재앙국이 되고 있다. 

기원전 10 세기경의 이집트 탈출기는 <탈자연숭배> <탈정치화>를 통하여 이집트를 탈출한 기록을 전해주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 21세기에 있어서 미국의 침략으로 부터의 탈출은 어떠한 탈출이 되여야 하겠는가를 살펴본다. 

그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탈미국숭배>이다. 미국을 우상화하는 막강한 군사력으로 부터 한국의 탈출은 <탈제국주의>이다. 또 미국의 막강한 경제적 착취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탈출은 <탈식민지>일 수밖에 없다.

 

이집트 탈출의 전제조건과 탈출의 방법은 오직 두 가지 뿐이었다. <탈신비화><탈숭배> 이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21세기 오늘 한국이 미국의 침략으로 부터 탈출하는 방법도 역시 오직 두 가지 뿐이다. 그것은 <탈자본주의-우리민족끼리><탈외세-우리민족끼리>이다. 

남과 북, 북과 남의 온 겨레가 참다운 애국심의 기치 아래와 우리민족끼리의 사상과 이념으로 굳게 단합하여 민족통일을 위한 거족적인 투쟁을 더욱 힘차게 벌려 나아가는 갑오년 2014년이 되어야 하겠다. 

1. 젊은 층과 지성인들이 교회를 떠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한국 교회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하고 한탄하는 비명의 소리가 요란하다. 한국 교회에 대하여 또 무슨 끔찍한 소리가 들려오는가 하고 불안하기 짝이 없다. 

한국의 초대형 교회의 C목사가 교회 돈 수천억 원을 횡령했다는 사건이 요란하다. 이제는 비밀이 아니라 internet에서 누구나 볼 수 있다. C목사뿐만 아니라 목사의 아들도 수백억 원을 횡령했다고 한다. 

서울 어느 교회 G목사의 승용차가 한국에 100대뿐인데 30만 불 되는 밴틀리 쿠페 최고급 호화로운 차이다. 자동차가 너무 좋아서 G목사는 운전수에게 맡기기가 아까워서 운전기사 없이 자기가 직접 운전 한다고 자랑한다. 

그런데 G목사가 너무 호화로운 차를 소유했다고 비판하는데 대하여 G목사는 막말로 대답을 했다. <차는 장로님이 선물로 준 것이다. 그 장로 바보인 줄 아느냐. 당신들 보다 똑똑하다. 자꾸 비판의 눈으로 보면 죄가 된다.> 

또 어느 대형교회 K목사의 개인 별장의 땅 값이 24억 원이라는 사실이 비밀이 아니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K목사의 많고 많은 부정부패에 대한 이야기들은 지면상 제한 때문에 이만 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오늘 한국에 수없이 많은 대형교회들이 지향하고 있는 성공적인 목회 방법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들의 공통된 목회방법이 도대체 무엇인가? 

첫째, 부자가 되기 위한 축복주의적인 설교를 주일 예배에 강조해야만 한다.

둘째, 가난한 자에 대한 설교를 하면 사회주의자로 오해를 받을 위험이 있다. 목회자의 설교에서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나타내면 교회 부흥에 방해가 된다. 그럼으로 설교에서 <가난의 문제>를 말하여 사회주의라는 오해를 받아서는 안된다.

셋째, 교회는 오직 천국행 열차를 기다리는 <대합실> 역할만 하는 것이 성공적인 목회의 방법이다. 

이명박 장로님의 돈세탁 문제와 이명박 장로가 속해 있는 교회의 돈 문제가 새로 폭로되어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보도는 새 발의 피뿐이고 오히려 이명박의 거창한 비리들을 감추어 주는 역할을 박근혜 정권이 담당하고 있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망언시리즈>가 항상 계속되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 교회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교회의 희망은 대형 교회들 때문에 감소되고 있다. 

한국 교회의 상층부가 부패의 최고도에 이르러 목회자들이 극도로 교만해짐으로서 자기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대형 교회의 목회자들이 주일 예배 설교에서 어떤 말을 하고 있는가? 막말설교들일 뿐이다. 

<우리 교회가 너희 교회보다 부자교회이다. 까불지 말라> 라고 큰소리로 설교를 하고 있다. 자기 교회와 교파만이 대한민국에 필요한 교회이며 보수주의와 반공주의로 굳세게 무장된 교회만이 국가의 필요한 교회라고 권위를 자랑하고 있다. 

돈과 명예를 함께 가질 수 있는 것이 진정으로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설교를 하는 교회에 대하여 <교회 가기가 싫습니다.>라고 한국의 젊은 세대와 지성인들이 외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한국 보수주의 일변도의 교회는 항상 차고 넘치고 있다. 그 이유는 심리적으로 보수주의 교회가 물질적인 축복에 대한 요구를 채워주기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이 정도로 심리적 어둠에 빠져 있는데 대하여 우선 간략하게 그 이유를 몇 가지 생각해 본다. 

첫째, 사회문제에 무관심하는 것이 신앙의 바른 길이라는 오해가 심리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일본 식민지하에서 미국의 선교사들이 선교의 유일한 목적은 오직 한국인들을 복음화시키는데 있었으며 복음화된 교인들은 일본의 침략행위에 대하여서는 되도록 무관심하도록 선교정책을 세웠다. 사회참여를 죄악시하는 선교정책의 전통을 세워놓고 선교를 일본 신민지하에서 시작했던 것이다. 

그럼으로 일본의 침략에 대하여 사회적 관심을 가지는 것은 <순수신앙>에 방해가 된다고 미국 선교사들이 신앙훈련과 심리적 세뇌교육을 시켰던 것이다. 이것이 오늘 한국 교회가 민족통일 문제에 관여하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는 근거이다. 

둘째, 한국 교회는 편견적인 신앙으로 무장되어 있다. 편견은 어떤 경우에는 심리적으로 맹목적이 될 수 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맹목적으로 자녀를 사랑하면 자녀의 실상을 모를 수도 있다. 이러한 부모는 자녀의 단점까지도 귀엽게만 보일 뿐이며 자녀의 앞날을 망치는 경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가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적 신앙운동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 기독교는 3.1운동의 실패 후에 민족문제와 국제적 안목에 있어서 극도로 비관적이며 실패로 인하여 편견적인 신앙형태로 자리매김을 하여 오로지 일방통행적인 내세 지향적이며 개인구원의 신앙 노선만을 중요시하는 편협한 독선적 교회가 3.1운동 실패 후부터 뿌리를 내렸다. 

일방통행적 신앙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현세를 체념하고 오직 내세 지향적인 개인구원 신앙운동을 미국 선교사들이 집중적으로 선교정책으로 세운 것을 뜻한다. 

그리고 미국 선교사들이 이와 같은 선교정책을 세우게 된 배후에는 반드시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자들과 결탁하여 선교사들에게 강압적으로 정치적인 작용을 했다. 

나라가 망하고 또 나라의 분단이 영구화 된다 할지라도 미국만이 우방국이며 미국 선교사들이 전해준 기독교 복음만이 참된 교회라고 생각하는 편견적인 신앙이 한국 교회를 극단적으로 보수주의의 노예적 교회가 되도록 작용했던 것이다. 

한국 교회의 보수주의 교회들의 연합체인 한국기독교 연합총회 <한기총>이 있다. 그런데 <한기총>에 속해 있는 막강한 교세와 교권을 과시하고 있는 보수주의적 교회들이 주장하기를 <한기총>만이 유일한 참된 반공주의적 하느님의 교회라고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한기총>은 세계 기독교 협의회 <WCC>를 배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기총은 WCC에 속해있는 한국의 NCC도 배격하고 있다. WCCNCC를 우리말로 <에큐메니안>이라고 부른다. 

<한기총>이 어찌하여 한국의 에큐메니안 교회들을 배격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냉전으로 동서가 대립하고 있었는데 그때 유럽의 WCC 교회들이 소련의 교회들과 연결하여 복음화 운동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유럽 WCC 교회들의 동향에 대하여 한국의 반공주의 <한기총> 계열 교회들은 이승만 정부에 건의하여 한국의 에큐메니안 교회들은 <용공주의 교회>들이라고 모략적으로 <교리 싸움>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승만 자유당의 권력을 이용하여 한국의 반공주의적 정치적 대세를 악용하면서 <한기총>NCC 교회를 용공주의 교회라고 규정하고 <교리논쟁>을 일으켰다.

이러한 <교리논쟁>이 힘을 얻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미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승만 정권과 유착하여 교세확장에 유리한 기회로 삼고 있었다. 

그럼으로 한국 교회의 분열은 이승만 때부터 이와 같이 터무니없는 이유를 이용하여 교리적 사상론쟁을 전개하고 발전하여 결국 반북-반통일주의가 교세확장과 교권 장악을 위하여 최고의 수단과 방법이 되고 있었다. 

그 후부터 보수주의 대형교회 연합체 <한기총>은 해마다 청와대 새해 조찬기도회를 주관했으며 미국 백악관의 새해 조찬기도회에도 빠짐없이 참가하고 있다. 

한국 보수주의 교회들의 이와 같은 반공주의 편견적인 신앙행태는 세계에서 제일 낙오되고 있는 분단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반공주의 편견적인 신앙행태를 오히려 자랑하여 부끄러움을 영광으로 삼는 후진국의 편견적인 교회가 되고 있다. 

셋째, 한국 기독교는 성경을 학문적인 면에서 무지한 것을 오히려 참된 신앙으로 곡해하고 있다. 사회와 역사에 대하여 무지한 것이 참된 신앙이라고 생각한다. 

보수주의로 세뇌된 한국 기독교인들은 보수주의 교회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으며 또 성경이 증언하는 교회의 사명이 무엇인지 모르거나 혹 잘못 이해하고 있다. 

구약 성경이 말하는 창조설에 따르면 지구의 나이는 기원전 4,000년에 창조가 이루어 졌다고 가르쳐 왔다. 하지만 과학적 증거에 의하면 지구의 나이는 기원전 25,000 내지 50,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날 지질학적 증거에 의하면 지구의 기원은 약 40억 년 내지 50억 년쯤 될 것으로 여기고 있다. 원시적인 생명체가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 것이 약 45천만 년으로 본다. 그리고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것은 아마도 동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어디에선가에서 약 50만 년 내지 200만 년 전 경 일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유대교-기독교가 말하는 아브라함을 기점으로 하여 시작된 우주창조에 대한 역사적 지식은 기원전 19세기에 해당된다. 그리고 아브라함 이전 시대에 대한 이야기와 아브라함 동시대에 대한 역사 이야기는 기원전 800-900년 동안 야영지의 화톳불 주변에서 대를 물려가면서 구전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 이야기들이 성경의 유일한 역사적 재료들이 되고 있다. 

성경학자들의 일치된 학설에 의하면 아브라함 이전에 천지창조설 등을 포함한 구약 성경이 최초로 문자화된 것은 대략 다윗 왕이 죽은 후 기원전 960년경이라고 판단한다. 모세 이후 시대에 관한 <모세5>12 예언서들에 대한 구약 성경에 대한 고찰은 지면상 제한으로 여기서 그친다. 

제아무리 고대인들의 기억력이 현대인들 보다 월등하다 할지라도 오직 구전으로 대를 이어 수 천년동안 전해 내려온 이야기들에 대하여 기록한 성경이기 때문에 틀린 것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신성한 기록이기 때문에 틀린 것이 전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고집불통의 <성경무오설>을 끝까지 맹신하고 있는 한국 보수주의 교회들은 분명히 종교적인 무지의 소유자들이다. 

종교적 무지의 소산을 오히려 반공주의로 미화하는 것이 한국의 극렬적인 보수주의 일변도의 사고방식이다. 이와 같은 사고방식이 기독교 신앙으로 둔갑하는 것은 더욱 더 비참하다. 

2. 교권에 갇힌 교회를 헐어버려라 

2014년 갑오년 새해를 맞이하여 한국 기독교는 조국분단이 70년 가까이에 이르고 있는 비극적인 민족사에 대하여 교회의 책임을 절감하고 있다. 부정선거로 인하여 오늘 민족이 당면한 문제에 대하여 교회에 맡겨진 사명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대처해 나서야할 사명을 절감한다. 

금년은 갑오경장이 일어나고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또한 황해도 소래에서 자생적 한국 교회가 생긴지 13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갑오년 새해벽두에 발생한 고이남종 열사의 숭고한 분신의 사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꽉 막혀 있는 민족통일의 길을 개척하는 정의로운 자아희생자로서 오늘의 <작은 예수>로 우리들에게 임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이남종 열사의 죽음에 대하여 두 가지 놀라운 사실이 전해진다. 

첫째는 박근혜 정권은 고이남종의 분신의 숭고한 정신을 모독하고 왜곡하고 있다.

박근혜는 정권을 유지하려는 야욕에 눈이 어두워 <이남종은 개인의 부채에 대한 고민과 비관으로 추락사했다>라고 주장하여 천인 공로할 망국적 행태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 이러한 박근혜 정권은 곧 붕괴되고 박근혜는 반드시 사퇴해야 한다. 

둘째는 고이남종의 애국적 분신에 대하여 주요 언론들은 못 본 척하고 보도를 하지 않았다. 특히 고이남종 열사의 영결식에는 KBS, MBC, SBS 등 주요 언론들이 일절 취재를 거부했다. 이러한 제도권 어용언론은 민중의 적이며 정의로운 사회에서 사망선고를 받고 있다. 

셋째는 한국의 보수주의 대형 교회들이 고이남종 열사의 분신에 대하여 추모의 기도가 전혀 없다. 만사에 기도를 주장하는 대형 보수주의 교회들이 아닌가?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이남종 열사의 명복을 기원하는 기도 소리가 일절 들리지 않으며 그런 보도도 전혀 없다. 이러한 회칠한 무덤같은 타락한 보수주의 대형 교회들은 민중들의 의분과 또 예수의 정의로운 채찍으로 헐어버려야 한다. 

오늘 한국의 젊은 세대와 지성인들이 왜 교회 가기가 싫은가? 

한국의 보수주의 교회의 특색은 큰 교회일수록 순진한 교인들을 황홀경에 들어가도록 인도하여 무당종교의 특색과 샤머니즘에 빠지고 있다. 

기독교가 무당종교로 변질되는 이유는 제도적인 기능으로 반공주의 정권과 야합하여 경제적으로 부자가 되려는 기복신앙으로 전향하여 변질되기 때문이다. 

교회부흥을 일으키는 수단과 방법으로 감성적인 부흥운동을 일으켜 죄 문제를 부각시킨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죄 문제에 대하여 심리적 반응을 일으킨다. 성경이 말해주는 예배의 본뜻이 인간의 전인적인 자기표현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주의 교회의 예배는 역사적인 공동체적 삶에 참여하는 결단 같은 것은 전무하다. 오직 값싼 축복을 개인적으로 받기 위하여 <예배 보려> 교회에 가고 있다. 그러니까 목사의 설교도 십자가 정신과는 거리가 멀뿐이고 십자가 정신이 전혀 없는 오직 개인을 위한 기복적인 설교가 있을 뿐이다. 보수주의적 교회의 목회방법이 돈(헌금)과 직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의 보수주의 교회의 문제점은 교회가 사회문제와 민족문제에 대하여 양극화가 되여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의 초대형 교회들의 공통적인 성공적인 목회철학은 무엇인가? 

만일 목회자가 사회구원 문제와 민족통일을 지향하는 신앙을 주장하면 보수주의에 세뇌된 교인들이 즉시 반응을 일으켜 <우리 교회에 공산주의가 침입할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라고 주장하면서 목회를 반대하고 목회에 큰 위험이 된다. 

그럼으로 오늘 한국의 대형 보수주의 교회들은 가난한 자와 약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하느님을 섬기는 교회들이 절대로 될 수가 없다. 

오늘 한국의 대형교회들은 반공주의 도그마의 노예가 되여 무신론자 박정희를 비롯하여 전두환과 노태우등 전형적인 무신론자 대통령들을 지지했다. 그런데 한국의 보수주의 교회들은 김대중 가톨릭 교인과 감리교의 진실한 대통령 부인을 반대하여 오히려 반정부 노선을 주장했다. 

오늘 박근혜도 절대로 기독교인이 아니다. 한국의 보수주의 순복음 신앙 노선을 주장하는 교파와 교단들은 그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모두 다 종교의 탈을 쓰고 거짓말을 하고 있는 무신론자들이다. 

종교로 출세하고 종교로 사회와 민족을 다스린다고 자처하던 예루살렘의 그 유명하고 권위적 종교지도자들의 손으로 예수를 극악한 십자가 형틀에 매달아 죽였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 한국 기독교 복음을 독차지하고 있으며 최대의 종교적 권위를 과시하고 있는 순복음을 주장하는 많은 보수주의 대형 교회들이 반공주의 우상을 섬기면서 오늘 21세기의 <한국예수>를 십자기에 못 박아 죽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이 가야할 길과 교회를 해방시켜야할 우리의 사명에 대하여 아직 지불하지 못한 계산서가 남아 있다고 생각되어 마음속에서 불안해하고 있는 가난한 민중을 위하여 고심하는 민중교회의 <사회복음 전도자>들이 <한국예수>를 위하여 오늘도 힘차게 싸우고 있다. 

그렇다면 쓸모없는 타락한 교회들은 헐어버리고 신앙과 현실이 대처해야만 할 참된 교회가 지불하지 못한 계산서는 어느 것인가? 

첫째, 우리는 가난한 자들과 억압당하는 자들을 우리와 동일시하는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구약 예언자들과 예수의 삶의 자체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삶의 원리를 어떻게 구체화 시키는가 하는 과제에 대하여 우리의 잠자는 의식을 깨워야 한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부지런히 역사를 공부하여 정당한 판단력을 현실 사회에서 생활을 발휘해야한다. 신앙적 양심으로 성경을 배우고 기도로 하늘의 뜻을 체득해야 한다.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의식화는 곧 참여를 뜻한다. 사회 참여정신이야 말로 예수의 이름으로 민중들이 나라와 민족에게 파문을 일으킬 수 있다. 

둘째, <교회중심주의>는 초보적 단계를 지나 <사회중심주의>로 발전해야 한다.

참된 신앙생활이란 인간생활 전역에서 표출되는 모든 윤리적 다양성에 적용되는 삶의 가치를 신앙과 연결되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해석과 적용이 두 문제가 아니라 하나이다. 기독교 신앙생활이란 상황에 대한 반성이며 전인적 삶을 뜻한다. 기독교 신앙생활의 외형적 문제는 긴장과 갈등, 불확실과 희망, 성공과 실패가 하나로 종합된 수준에서 비판과 선표가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 신앙의 내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유기적 발달, 사회를 위한 고통이 따르는 봉사의 기쁨, 신앙적 청지기의 사명의 향상을 통하여 고전 분투하는 동안에 교회 안에서 성취하는 기쁨은 이루 말로 다 형언할 수 없다. 

셋째, 기독교 신앙을 실천함에 있어서 당연히 사회학, 경제학 그리고 정치학 등을 입력하는 것이 필요한 것을 무조건 부인해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기독교 복음은 이러한 학문들을 무조건 무시해도 되는 그러한 단순한 복음이 아니기 때문 이다. 

한동안 남미의 백인 기독교인들이 <한 손으로 하느님께 봉헌하고 다른 손으로는 가난한 자들을 착취했다>라고 전해지고 있다. 이것은 무엇은 말하는가? 

참된 기독교 신앙이란 매일 매일의 삶속에서 사회적 측면과 경제적 측면 그리고 정치적 측면에서 정의로운 삶의 도리를 균형 있게 따라야 하는 것을 말한다. 

가난한 자들의 숨 막히는 빈곤을 뻔히 알면서도 강자들은 자기의 이익만 추하는 폭행정치를 무조건 지지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교회는 정의롭고 영광스러운 민중을 위한 미래를 꿈꾸면서 오늘 우리가 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예수 정신을 사회에서 실천하는 이른바 <사회 복음>의 사명이다. 

3. 올바른 목민의 길을 위하여 

박근혜 정권의 정체성이 위기를 맞고 있다. 국정원과 국가기관들이 불법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것이 명확하게 들어 났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을 유지하려고 또 다른 불법을 행하고 있기 때문에 박근혜 정권이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이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처럼, 박근혜 정권 못지않게 한국 교회도 역시 교회 <정체성>의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교회들을 비판하는 것은 많은 마음의 아픔이 따른다. 

하지만 대형교회들이 복음에서 탈선하고 돈의 탐욕에 이끌려서 불의한 정권과 정치적으로 야합하여 부자들만을 위한 교회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교회 들은 교회의 정체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기독교의 교회들이 절대로 아니다. 이런 교회들은 예수 정신에 의하여 헐어버려야 한다. 

예수 정신을 따르는 교회는 사회에서 억압당하는 자들과 동일시해야 한다. 성경에서 볼 수 있는 예수의 설교는 그 당시 로마제국의 통치하에서 가난한자, 고난에 신음하는 자, 사회적으로 미천한 자들을 위한 설교들로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예수 정신을 따르는 교회는 <사회 의식화>를 중요시 한다. 신앙의 사회 의식화는 사회와 떨어져 있지 않고 사회의 윤리적 요구에 담당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회의 윤리적 요구에 담당하는 것은 우리가 <예수와 연합한 행위>를 실천하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삶에 있어서 전인적-전영역에 적용되는 삶의 정신을 뜻한다. 

이러한 예수의 근본정신을 따르지 않고 예수의 교훈을 완전히 외면하고 왜곡하여 정반대로 물욕을 채우는 수단과 방법으로 예수의 이름을 상품화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른바 기득권 친미적인 보수주의 대형교회들이다. 이런 교회들은 이미 교회가 아니다. 이런 교회들은 예수의 정신에 의하여 헐어버려야 한다. 

2000년 전 예수 생존 시에 로마제국에 이용되어 있던 예루살렘의 화려한 대형 교회 건물을 향하여 예수는 <이 교회를 헐어버려라. 내가 3일 만에 다시 세우겠다.>라고 책망했다. 

부패한 한국 대형 교회의 잘못을 보고 일방적으로 절망하고 앉아 있으면 안된다.

 

왜냐하면 예수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하여 사회 어두운 곳에서 예수의 명령을 실천하고 (Praxis) 있는 <사회복음 전도자>들이 밤낮 쉬지 않고 사역하고 있는 눈물겨운 사건들을 우리는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사회복음 전도자>들이 박정희 정권 때는 <달빛 동네> <판잣집 동네> 선교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복음 전도자>들이 오늘에 있어서는 이명박근혜 정권하에서 더욱 더 깊고 높은 사명감을 가지고 고전분투를 하고 있다. 

<하느님 안녕하지 못하다> 라고 하는 오늘의 시대적인 사명을 실천하기 위하여 박근혜 정권으로 부터 <종북 기독교인들>이라고 하는 악의저인 모략을 당하면서도 역사의식으로 무장된 가톨릭 성직자들과 개신교 목사들이 쉬지 않고 이명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위하여 오늘도 악전고투로 싸우고 있다. 

이들을 <해방신학자> 혹은 <민중신학자>라 불러도 이들은 명칭에는 아무 관심이 없이 오직 사명에만 충성하고 있을 뿐이다. 

이와 같은 <사회복음 전도자>들은 신학을 전공하고 높은 수준의 학식과 학위를 보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교회의 목회자가 되여 많은 봉급을 받고 출세하는 길을 용감히 물리치고 아랑곳하지 않고 항상 <나에게 나의 이웃은 과연 누구인가?>를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대형 교회들이 신앙을 다만 추상적인 분야에만 머물러 있게 하고 있다. 그럼으로 이런 교회의 말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있다. 행함은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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