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내 마음의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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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준무 작성일13-11-25 15:25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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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교향곡


책을 내면서
우륵교향악단 지휘자이며 단장인 리준무선생은 미국땅 한복판에서 처음으로 《김정일장군의 노래》를 지휘하여 북과 남, 해외동포들속에 널리 알려진 재능있는 재미동포음악가이다.
리준무선생은 여러차례에 걸쳐 조국을 방문하여 인민대중이 요구하고 시대발전을 추동하는 진정한 음악예술이 어떤것인가 하는것을 깊이 느끼게 되였다. 하여 선생은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진행되는 음악회들에서 공화국의 노래들을 재치있는 음악형상에 담아 소리높이 구가하였다.
또한 선생은 조국통일에 이바지하려는 애국의 일념을 안고 그 나날에 느낀 소감을 글로 옮겨 인터네트신문 《민족통신》에 기고하였다.
리준무선생은 자기의 글들에서 조선의 노래에는 나라와 민족을 성공에로 이끄는 령도자의 정치철학과 애국애족의 정신이 깃들어있으며 령도자의 두리에 뭉쳐 통일되고 부강번영하는 나라를 일떠세우려는 근로대중의 굳은 의지가 담겨있다고 피력하였다.
리준무선생의 글들은 조선민족의 한 성원으로서 그리고 민족의 참다운 음악을 위해 투신하는 지성인으로서의 정의와 량심의 토로이고 조국의 통일을 이루고 민족의 슬기와 존엄을 떨치는데 기여하려는 힘있는 교향곡이기도 하다.
편집부는 리준무선생의 음악활동과 집필활동이 민족의 대단결을 이룩하여 조국의 통일을 이룩하는데 크게 기여하리라는것을 기대하면서 선생이 2011년 10월까지 《민족통신》에 련재한 글들을 묶어 도서로 내놓는다.
차 례
1. 위인송가
송가는 위인을 찬양하여 인민들이 심장으로 터치는 노래이다. 인민은 심장으로 매혹되는 위인에게만 노래를 드린다. 하기에 송가를 일러 《위인을 보는 거울》, 《노래이기 전에 매혹된 넋》이라고 하는것이다.
인류사를 돌이켜볼 때 북조선인민들처럼 그처럼 많은 송가를 지어 자기 수령, 자기 령도자를 노래한 민족이나 인민은 없었다.
김일성주석께서는 10대에 벌써 캄캄한 밤하늘에 솟아 삼천리강산을 밝게도 비치는 새별이라는 위인칭송의 송가를 받으시였고 쌓으신 업적과 더불어 인민이 드리는 수많은 송가를 받으시였다.
김일성주석의 혁명위업을 그대로 계승해나가신 김정일국방위원장도 젊디젊은 년세에 노을이 피여나는 이른 아침이면 인자하신 그 미소를 생각한다는 인민의 다함없는 존경의 마음이 담긴 위인칭송의 첫 송가와 함께 조국과 겨레가 드리는 많고많은 위인칭송의 송가를 받으시였다.
업적에서 위대하고 그 덕망에서 숭고한 김일성주석님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한평생이 반영되여있는 수많은 송가들은 민족의 태양, 절세의 애국자를 칭송하여 민족이 드리고 인류가 드린 태양찬가이다.
태양찬가!
내 일생에서 가장 큰 행운이 있다면 그 첫번째는 김일성주석님에 대한 송가를 접한것이였고 두번째 큰 행운은 새 세기의 태양찬가를 또다시 받아안은것이였다.
내가 유년시절에 받아안은 《김일성장군의 노래》도, 인생의 50대에 받아안은 《김정일장군의 노래》도 우리 민족사와 더불어 아니 전인류사에 길이 남아 세세년년 영원히 울려퍼질 태양찬가이다.
태양이 영원하듯이 태양찬가도 영원하다.
세기를 이어 부르는 태양찬가속에 겨레의 밝은 앞날, 인류의 창창한 미래가 있다.
우리 민족이 가고 인류가 가는 앞길에 태양찬가는 천만년 길이길이 높이 울려퍼지리라!
음악과 더불어 영생하는 김일성주석
음악에 반영된 위인적풍모
나는 《민족통신》이 련재로 다룬 《툭하면 이북을 씹는 버릇 좀 그만두자》와 《입은 삐뚤어도 말은 바로하자》의 글들을 통해 해외의 일반동포대중들이 미국언론, 일본언론, 남녘수구언론들에 의하여 영향을 받은 나머지 이북의 사정을 너무 모른다는 내용들을 접하게 되였다. 그래서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북을 여러차례 방문하면서 그때마다 이북의 음악인들을 통하여 많은것을 배웠고 동시에 이북사회에 대한 이모저모를 리해하게 되였다. 나는 북의 음악예술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북의 음악은 행진곡풍으로 박력은 있지만 경직되여있고 서정성은 없으며 사상성에만 매달려서 예술적순수함이 결여되였다.》고 하면서 자신들의 선입견을 말하는 경우들을 많이 보았다.
나는 1989년 5월 뉴욕에서 《남북가곡의 밤》공연을 준비하면서 북의 노래를 찾을수가 없어서 애를 태우고있다가 우연히 링컨쎈터의 도서실에서 《봄노래》와 《산으로 바다로 가자》, 《밭갈이노래》 등 몇곡의 북조선노래를 찾아내고 혼자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었다. 곡조도 아름다웠고 가사도 이보다 순수할수가 없었다.
그 당시 이 노래를 찾아냈을 때 나의 기쁨은 《남북가곡의 밤》공연장을 가득 메운 청중들의 열화같은 환호성속에서 증명되였다. 민중의 아낌없는 사랑을 받고있는 바로 이러한 곡이 명곡이라는것을.
북조선의 음악예술은 한마디로 민중을 위해서 태여나서 존재하는 친민중적예술이라고 볼수 있다. 인민을 위한 음악, 인민을 위한 예술을 떠나서 북조선의 음악예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김일성주석은 이북의 음악방향에 대해 《우리의 음악은 반드시 조선적인것이 바탕으로 되여야 하며 우리 인민의 감정에 맞아야 합니다. 조선사람의 감정과는 거리가 먼 순수한 서양음악은 우리 인민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정립하시였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은 명곡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하시였다.
《명곡이란 들을수록 좋고 새길수록 뜻이 깊어지며 부를수록 더 부르고싶은 노래입니다. 다시말하여 명곡이란 생활이 있고 사상이 깊으며 정서가 풍부한 노래, 선률이 아름답고 유순하여 들을수록 좋고 부를수록 더 부르고싶은 노래입니다.》
비록 오래전에 창작된 음악일지라도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시 들어도 처음처럼 좋고 민중의 열렬한 사랑을 받을 때 그 음악은 마땅히 명곡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나는 1981년부터 매년 뉴욕을 중심으로 4∼5회씩 관현악공연활동을 벌려오고있는데 1989년부터는 서양음악으로부터 점차 북조선음악을 공연종목에 증가해왔다. 이것은 인위적인 조정이 아니라 청중들의 요구에 따라 그렇게 한것이다.
이북에서 민요 《아리랑》,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등으로 편곡한 관현악곡은 예술성이나 기교편성, 민족악기의 배합 등이 우수하게 구성되여있으며 꽹과리, 새납, 저대 등의 삽입으로 민족악기가 전체 관현악을 압도하고있다. 직접 연주를 할 때는 통쾌함도 맛보게 된다.
나는 우륵교향악단에서 지휘자로 활동하며 특히 《아리랑》과 《청산벌에 풍년이 왔네》 등 이북 관현악을 연주하고 이 공연이 끝날 때마다 우뢰와 같은 박수가 쏟아져나오는것을 경험하며 우리 악단의 연주성과만이 아님을 잘 알고있다. 다른 세계명곡의 연주가 아무리 잘되였다고 해도 이러한 청중들의 열광은 경험해본적이 없기때문이다.
이러한 감동에는 민족과 민족의 구별이 없다. 우리 동포나 미국인이나 어떤 다른 민족에게도 감격과 열광은 하나이다. 열광하는 청중들의 가슴속에 오래오래 남아있을 그 감동을 지금도 나는 추억하고있다.
세계의 적지 않은 음악예술인들도 처음에는 북조선의 음악예술에 대해 선입견을 가지고있었지만 막상 북조선을 방문한 다음에는 북의 음악예술을 다시 평가한다. 뉴욕필하모니 연주가들이 력사적인 평양공연을 하고 북의 음악예술인들의 련습모습을 보고 또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나서는 북조선의 음악예술수준이 대단히 높다고 말하였듯이 이북의 음악예술수준은 실제로 대단히 높은것으로 인정되고있다. 특히 이북은 민족음악발전에서도 놀랄만 한 성과를 보여주고있다.
나는 오늘날 이북이 예술강국으로서도 세계에 우뚝 설수 있은 원동력은 이북의 지도자들이 펼쳐온 옳바른 예술정책에서 비롯되였다고 생각한다.
1995년 8월 15일 조국해방 50돐 경축행사에 참가하기 위하여 조국을 방문하였을 때였다.
조국방문기간에 기록영화를 감상하게 되였는데 거기에서 김일성주석이 《사향가》를 부르는 영상을 보게 되였다.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나의 어머니
문앞에서 눈물 흘리며 잘 다녀오라
하시던 말씀 아 귀에 쟁쟁해
우리 집에서 멀지 않게 조금 나가면
작은 시내 돌돌 흐르고 어린 동생들
뛰노는 모양 아 눈에 삼삼해
대동강물 아름다운 만경대의 봄
꿈결에도 잊을수 없네 그리운 산천
광복의 그날 아 돌아가리라
이 노래는 김일성주석이 직접 작사, 작곡한 노래로서 북에서는 불후의 고전적명작으로 숭엄하고도 친근하게 대하고있다.
원래 노래는 가사를 통해 사상과 감정 등을 소상히 느낄수 있게 되며 노래가락속에서 훈훈한 정서와 그 인간적풍모를 느낄수 있다.
노래 《사향가》에는 부모님께 드리는 효성, 형제들에 대한 사랑, 나라에 대한 절절한 애국심이 어려있고 곡전체에 흐르는 너그러움과 자애로움은 그분의 위인적풍모를 흠뻑 느끼게 한다. 노래에서 풍기는 조국에 대한 사랑, 인민에 대한 사랑, 가정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가슴에 뜨겁게 다가와 인민을 하늘처럼 받드셨다는 그분의 이민위천의 좌우명이 선명하게 부각되여온다. 소박한 노래의 소재에서 주는 감동이 이처럼 컸던것은 노래에 그분의 위대한 인간애와 심오한 철학적사상이 깃들어있기때문일것이다.
《사향가》는 단순한 음악작품이 아니라 자기 민족, 자기 인민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인민의 생활감정을 체현한 인민의 수령만이 창작할수 있는 인민송가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김일성주석이 직접 지으신 노래는 《사향가》외에 《조선의 노래》, 《피바다가》, 《꽃파는 처녀》, 《반일전가》, 《조국광복회10대강령가》, 《조선인민혁명군》 등이 있다.
《피바다가》는 후에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세심한 지도밑에 교향곡 《피바다》, 협주곡 《피바다》 등 여러 형태로 창작되여 인민을 교양하고 나라를 지키려면 어떠한 품성을 지녀야 하는가를 명확하게 제시해주었다.
우리 민족과 세계의 진보적인민들은 오늘도 김일성주석이 초기혁명활동시기에 친히 불후의 고전적명작 《꽃파는 처녀》를 창작하시던 력사의 그날을 되돌아보면서 끝없는 민족애와 위대한 애국심으로 인민대중을 이끌어갔던 그분의 위인적천품을 다시한번 우러러보게 된다.
김일성주석은 중국 만주일대의 광활한 농촌지역을 혁명화하고 반일의 기치아래 인민들을 하나로 뭉치게 하여 항일혁명투쟁의 대중적지반을 튼튼히 다져나가면서 근로대중들을 혁명적으로 각성시키기 위한 정치사업의 하나로 혁명적문예활동을 활발하게 벌려나갔다.
그분이 친히 지으신 고전적명작들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신음하는 동포들에게 조국해방의 신심을 주고 나라찾는 싸움에로 불러일으키는데서 참으로 커다란 공헌을 하였다.
《압록강의 노래》는 김일성주석이 열네살 어린 나이에 고향 만경대를 떠나 나라를 찾고서야 조국에 돌아오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다짐하면서 압록강을 건느실 때 부르신 노래이다.
김일성주석께서는 노래로 혁명활동을 시작하시였으며 그로 하여 피바다속에서 조선의 참다운 예술은 태동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과연 그 나이에 어데서 무엇을 하였던가를 생각해보며 그분이 얼마나 우리 민족의 위대한 태양이신가를 절실히 알게 되였다.
그러면 이렇게 위대한 수령을 모신 인민들은 수령을 위해 무슨 심정을 노래하였는가가 아주 흥미롭고 당장이라도 수령에게로 향한 인민들의 간절한 마음을 알아보고싶은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였다.
인민을 하늘처럼 받들었던 그 인민의 위대한 어버이 김일성주석을 조국의 인민들은 물론이고 해외동포들도 민족의 친근한 어버이이시며 태양이라고 부른다. 그 태양을 우러르며 따르는 해내외의 7천만 우리 민족을 자랑스러운 김일성민족이라고 부른다.
김일성주석의 위인적풍모를 노래한 《조선의 별》에는 망국의 암흑속에서 참다운 령도자(구세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조선인민들의 마음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그려져있다.
김일성주석께서는 혁명의 길에 나서신 10대의 나이에 《조선의 별》이라는 송가를 받으신다. 혁명시인 김혁이 지은 노래이다.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 삼천리강산을 밝게도 비치네/
그이의 가까운 혁명동지들이 새별을 먼저 알아보고 암흑속에서 태양을 맞이하는 벅찬 심정으로 조국해방을 안아올 그분을 바라보며 희망을 노래하였다.
류행가에도 시대상이 깃들어있고 민족의 애환이 아롱져있다고 말들을 하는데 하물며 일제식민지하에서 민족의 운명을 건져줄 구세주를 기다리는 인민들이 그분께 드리는 송가에는 얼마나 절절한 마음들이 깃들어있겠는가.
절망과 고통으로 신음하던 때 그렇게 갈망하던 조선의 밤하늘에 새별이 솟아오른것이다.
그 새별은 다름아닌 한별! 김성주이시다.
조선의 독립을 고대하던 인민들은 세차게 박동치는 심장의 격정을 억누르며 목이 터지게 이 노래를 불렀을것이다.
그 노래속에 조국해방이 왔고 해방의 만세소리 높이 울리는 속에 그이께서는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받으신다. 노래에는 항일투쟁의 간고한 력사가 피눈물처럼 어려있다.
시인 리찬은 조국해방의 감격과 노예처럼 갈 곳 몰라 방황하던 근로대중에게 김일성장군이 해방의 은인으로 오셨다는 소식을 한시라도 빨리 큰소리로 전하고싶어 민주의 새 조선에 민족의 위대한 태양을 모신 긍지를 거창한 시대적화폭에 담아 작사하였고 김원균은 이러한 인민들의 간절한 소망을 담아 영생불멸의 혁명송가를 작곡하였다. 오늘도 이 노래는 우리들의 가슴을 깊은 감동속에 설레이게 하여주고있다.
영상자료들을 보면 김일성주석이 한평생 인민을 위해 험한 길을 수많이 걸으시였다는것을 알게 된다.
나라의 최고지도자의 지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통일군들보다 몇배나 현장에 나가계시며 진척되여가는 공사현장들을 몸소 돌아보시는가 하면 근로자와 친근한 대화를 나누시면서 환하게 웃으며 만족해하시는 그분의 영상을 볼 때면 인민들의 행복한 일상생활을 직접 보는듯 하다.
어린이들을 누구보다도 사랑하신 주석님께서 어느 화창한 봄날 어느 한 학교를 방문하시여 어린아이들의 교복입은 모습을 보아주시며 사진을 찍어주시는 인자한 모습, 어느 평범한 가정을 찾으시여 살림살이형편을 몸소 살펴보시는 친근한 어버이의 모습, 그모습에서 인민들을 잘 먹이고 좋은 집에서 살게 하며 비단옷을 입히고싶어하셨다는 주석님의 념원이 방불히 안겨온다. 그 념원이 선군시대에 들어와 여기저기에 아름답게 꽃펴나고있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일찍부터 김일성주석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김일성대원수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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