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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으로 김광수박사 이메일 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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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1-02-09 13:05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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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으로 김광수박사 이메일 털렸다.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이후 조국통일방침분석과 민간통일운동의 진로]라는 주제로 2021년 2월 6일에 <6.15 공동선언실천 미국위원회>의 주최로 동포 강연회가 있었다. 나도 그 강연에 참석하여 들었다. 내가 평소에 존경하는 김광수 박사가 강연을 하였다. 그는 같은날 저녁(서울 시긴 2월 7일 저녁 7시 6분)에 자신의 페북에 올린 글을 소개하여 청취자들을 놀라게 했다. 강연 이틀전인 2월 5일, 부산시 경찰청 안보수사과로부터 <국가보안법 내사종결>이라는 등기우편을 받았는데 그 내용이란 김광수 박사가 지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5년 동안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본인의 모든 이메일이 "털렸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하여 김박사는 이번 강연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솔직히 토로하였다. 김박사는 강연 후 페북에서 다음과 같이 결심한 내용을 적고 있다.

 

"국가보안법에 굴종하고, 그 힘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국가보안법 없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는데 다시한번 미력하나마 힘을 더 보태는 쪽으로 마음을 굳혀본다.”

그는 계속하여 다음과 같이 그의 앞으로의 결심을 쓰고 있다.

“늘 그러해왔듯이 난 앞으로도 계속해서 국가보안법을 인정하지 않고, 국가보안법 없는 세상 만들기 위해 혼신의 투쟁도 다해 낼 것이며, 굴하지 않고 대북전문가이자 실천활동가 답게 내재적 접근을 통한 북 바로알기도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 관점에서 조국의 완전한 자주적 통일을 향한 진전은 계속 될 것이다. 김광수라는 이름 석자를 분명 그렇게 새겨낼 것이다. 함께하는 동지들이 있는 한. 그것을 난(김광수는) 그날(2월 7일)의 강연교훈으로 분명 남겨 놓는다.”

 

나는 국가보안법이 엄연히 존재하는 이남 사회에서 조선을 올바로 알리기 위하여 투쟁하는 김광수박사같은 학자들을 아주 존경해 왔다. 잘 알겠지만 국가보안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을 불법 정치집단으로 규정하고 그 붕괴를 목적으로 한 악법이다. 이 법은 1948년 제정된 이래 지금까지 대중을 우매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해왔으며 학문의 자유, 언론자유, 표현의 자유를 제약해왔다. 최근에 김누리 중앙대 교수를 비롯하여 이남의 진보적 학자들과 언론인들의 좋은 대담을 유튜브를 통하여 보고 있는데 모두 강연을 하면서 항상 <자기 검열>을 하고 있다는 고백을 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했다. 이번 김광수박사의 강연을 들으면서 강연이 매끄럽지 못한 것을 느꼈는데 국가보안법을 의식하여 그랬다는 사실을 알게 되니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내가 1975년 미국에 유학와서 제일로 좋았던 것은 미국에는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이 없기때문에 최소한 학문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허용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시카고 대학의 극동도서관에서 처음으로 <사회주의>에 대한 책과 조선의 <주체사상>에 관한 책을 비롯해 무슨 책이든지 마음껏 볼수 있었다. 온갖 잡지들과 신문들도 다 자유스럽게 읽을 수 있었다. 요사이는 이남에서도 마르크스주의 책들과 일부 조선의 책들도 읽을 수 있으나 내가 대학을 다니던 1960년대와 내가 직장생활을 하던 1970년대 초만해도 사회주의에 대한 책들과 조선에서 나온 책들을 들고다니다 경찰에 들키면 체포되었다.

 

나는 동족을 적으로 간주하는 국가보안법이야말로 인간을 우매하게 만드는 악법중 악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남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다녔고 고등학교와 전문대학에서 가르쳤지만 <사회주의>에 대한 책을 접해본 적이 없었다. 나와 한 시대에 대학을 다녔던 이철, 윤한봉, 정화영씨 등은 민청학련사건에 관련되어 투옥생활을 하였는데 그들은 지하에서 일본어로 된 마르크스주의와 조선과 관련된 책들을 읽었다고 했다.

 

내가 미국으로 유학와서 처음으로 마르크스주의에 접했을 때 그 감격이라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나는 시카고대학에서 철학강좌로 <마르크스주의>를 택하여 한학기 연구도 했다. 나는 시카고대학이 있는 하이드 팍에서 5년간 <해방신학>, <유물변증법>과 <유물사관>을 배웠다. 그리고 일본과 유럽의 통일운동가들과 접촉하면서 조금씩 조선을 알게되었다. 1980년도 중반에 유럽에서 <북과 해외학자들과의 대화>에 참석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조선의 지도사상인 <주체사상>에 대하여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1989년 청년축전때 처음으로 조선을 방문하기 시작하여 자주 조선을 방문하면서 나는 본격적으로 조선의 학자들과 <주체사상>에 대한 토론을 시작하였다. 내가 처음으로 주체사상에 접했을 때 나는 마르크스주의에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주체사상이 또 하나의 <관념론>으로 인식되었다. 나는 조선을 방문할 때마다 조선의 학자들과 많은 질의 응답시간을 가졌다. 나는 주로 마르크스주의와 주체사상과의 관계에 대하여 질문하고 조선학자들이 거기에 대하여 답해주었다. 그 내용들을 정리하여 나는 [질의 응답을 통해 알아본 주체사상의 올바른 이해]라는 제목으로 박사논문을 조선의 사회과학원에 제출하였다. 그 논문이 1998년에 책으로 출판되었고 1999년에 국가박사학위를 받았다. 김광수박사도 이 책을 읽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국가보안법이 없는 미국에 유학와서 자유스럽게 학문을 연구할 수 있었고 조선을 마음대로 다닐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책의 출판이 가능했고 조선에서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코로나19로 집콕시대를 살면서 조용히 과거를 회상하면서 만약 내가 미국에 오지 않고 이남에 살았다면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상상해본다. 나는 이남에 살았다면 <사회과학적 안목>을 전혀 키울 수 없었을 것이며 더구나 사회주의에 대하여, 그리고 주체사회주의 나라인 조선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돈벌이나 하면서 적당히 소시민으로 살았을 것이라 생각된다. 기껏해야 <자유주의 기독교인>으로, 혹은 <실존주의자>로 <관념론적인 세계관>과 <기독교의 구속사관>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았을 것이다. 내가 이남에 살았다면 <유물변증법적 세계관>과 <유물사관>, <주체철학적 세계관>과 <주체사관>에 대하여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전혀 통일운동에도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고 국가보안법이나 눈치보며 소시민으로 살았을 것이다.

 

김광수박사같은 애국적인 학자를 예속하고 사찰하는 국가보안법의 남용을 보면서 같은 동족을 적으로 간주하는 국가보안법을 속히 폐지시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나는 이남에서 나이 30이 되도록 내 조국 조선을 적으로 생각했고 조선에 대한 왜곡된 영상을 갖고 있었다. 다행이 미국 유학을 통하여 조선에 대한 올바른 시각을 갖게 되었다. 내 개인 경험으로 보아도 사람을 우매하게 만드는 이 국가보안법을 하루 속히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난 많은 학자들 중에 조선에 대해 올바른 시각을 가진 분들을 만나기가 참으로 힘들었다. 잘나가는 학자라는 사람들도 대화를 해보면 조선에 대해서만은 무엇인가 왜곡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오래동안 국가보안법의 영향하에서 조선에 대한 왜곡된 영상을 갖게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조선은 문재인정권에게 남북관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무엇부터 할 것인가? 금강산관광재개, 개성공단 재개, 철도연결, 등도 다 좋지만 우선 인간을 옥죄는 국가보안법부터 폐지하여 조선적대시 정책을 버려야는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남정권에 대하여 잘못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물론 조선을 수없이 방문하여 그곳 가족들과 학자들, 일꾼들을 만났고 조선을 올바로 소개하려고 많은 글을 썼고 강연도 했으니 국가보안법을 어겼지만 나는 미국시민이다. 노무현정권때 나는 5년간 비자를 받고 이남에 사는 가족들을 만나러 자주 방문했다. 남과 북, 해외 3자가 공동으로 이남에서 개최하는 6.15행사에 미국대표로 참석하기도 했다. 그러다 이명박정권으로 바뀌자 나는 인천공항에서 국외추방을 당했다. 그러다 박근혜정권은 내가 대한항공을 타고 인천을 거쳐 심양에 가는 것도 못하게 하였다. 나같은 국가보안법을 어기는 자들은 환승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이 치사한 법이다. 국가보안법은 김광수박사같은 진보적인 학자들의 이메일까지 터는 무서운 법이다.

 

문재인정권이 들어서면 나을까하여 미국여권을 들고 여기 엘에이 영사관에 가서 여러번 물어보았지만 나는 국가보안법때문에 비자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장남으로써 아버님과 어머님 장례식에도 갈 수가 없었다.

 

코로나 19로 집콕을 하면서 나는 김일성주석님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다시 열심히 읽고 감상문을 쓰고 있다. 또한 [노자]와 [중용]을 열심히 읽었다. 그리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작품들을 다시 본격적으로 읽고 있다. 마르크스가 1844년에 쓴 <소외론>과 1848년에 쓴 [공산당선언], [독일 이데올로기], 등에 대해 다시 읽으며 많은 감동을 받고 있다. 코로나19가 나에게 준 선물이다.

 

인간은 최소한도 자기가 원하는 책을 마음대로 읽을 수 있어야하고 마음대로 자유스럽게 표현할 수 있는 사상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뜻이 같은 사람들끼리 집회결사를 할 수 있는 자유가 혀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인간의 기본적인 권한을 금지시키고 있는 국가보안법은 당장 폐지되어야한다. 문정권의 결단을 촉구한다. 김광수박사님, 용기내세요.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이 게시물은 편집국님에 의해 2021-02-09 13:06:13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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