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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철수를 말하지 않는 청와대와 여의도는 없애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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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20-05-23 10:4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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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철폐 주한미군철수를 말하지 않는 청와대와 여의도는 없애 버려라

 

ㅡ 살 가치도 없는 개돼지가 아니라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임을 보여라 ㅡ 




 

2012년도 통진당 행사에서 <혁명동지가>를 부른 3사람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2020.05.14에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유죄 선고로 시의원직도 박탈당했다.

 

이 노래는 1991년도에 노래패 가수 백자가 한국외국어대학교 2학년 재학때에 제작하여 한국의 운동권에서 흔히 불렀던 노래다.  1990년대 민주화운동에서 널리 불렸던 민중가요를 불렀다고민주운동했다는 문재인 정권하에서 국보법으로 정죄하다니 말이되는가?  

 

무죄가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석기 의원이 지금도 감옥소에 갇혀있으며통진당을 강제해산한 불법에 대해서 사과 조차도 없는 나라이다.

 

김호가 통일되었을 때를 대비하여첨예하게 경쟁하는 전자기술시대 준비하려고국정원의 허락하에 중국에서 북의 기술자들과 안면인식 기술을 토론하고돌아와서 모든 것을 국정원에 보고하였었는데도문제인 정권의 국정원이 국보법으로 입건기소했다왜 이런 모순된 일이 일어나는가?


12 조선식당종업원들을 유괴 납치해와서 지금도 외부접촉 마저 차단하고 있는 한국의 국가법죄 국정원은 사형감이고모른척하는 이 정권은 무어라 말해도 무법양아치 조폭들이라는 말이다.  

 

왜 이런 황당한 일들이 촛불정권이라는 문제인 시대에도 일어날까?  내가 아는한 문재인은 공약으로 내세웠던 것들을 단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앞뒤 말 다르고 행동 다른 사람으로 나에게는 각인되어있다.  

 

문제인은 미국의 ‘착한개’노릇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영유하기위하여 미국의 식민지한국통치법인 “국가보안법”은 폐기하지 않을 것이며공수처 설치 엄청난 여론몰이 등과 함께이완용이 일제 귀족 작위를 받고 띵가띵가하던 삶을 즐기고 싶어하는 것 같다.

 

더하여 한국을 빅 브러더 “신세계 질서”를 이루고자 하는 ‘어둠세력’의 전위부대 ‘표본국가’로 만들어가고 있다.

 

문재인도 “새로운 세계 질서를 준비하겠습니다"라고 공언하지 않았던가!

모든 사람들이 ID전자칩 백신을 맞아야한다고 주장하는 빌 게이츠를 이태리 국회에서는 “범죄자”로 “체포하라”는 말로 비난하는데도문제인은 빌 게이츠와 궁짝을 맞추며 백신을 한국인들에게 맞도록하겠다고 한다문재인이 전자칩 백신 5G가 무슨 의미인지를 모를리가 없지 않은가?  

 


▲사진빌 게이츠의 백신 범죄 

 

한국이 최전방에서 “신세계 질서”를 본보기로 만들어 가는 것은 남녘민족 파멸의 끔찍한 일이며모두가 반대하고 감시해야 할 것이다. ‘모든’ 인민이 빨갱이 사냥 연좌제 보다도 훨씬 더 혹독한 체제 속에서 숨 죽이며 공포속에서 살게 될것이다.

 

<참고>로 조지 오웰의 1984 “빅 브라더” 이야기의 전초에 해당하는 - ‘국가보안법’ 사회의 한 단면 실화로 내 지인의 가족사를 밑에 이야기하겠습니다.

 

 

국가보안법과 국정원 폐기는 민족문제 해결의 첫걸음   http://blog.daum.net/win/81 

 

내 지인의 가족이  겪은 고통과  가슴앓이는 일견 그 가족뿐만 아니라 ,  아직도 무수한 사람들이  당한   억울하고 피맺힌  고통이기에   내 지인의  가족사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려 한다.  

         .. <생략> ..

남과 북은 근본 부터가 다르니 죄의 잣대 마저도 달라도 너무 다르다북부조국은 ‘우리민족’ ‘이웃을 위한 희생’ ‘자존심’ ‘자주’ 라는 것이 무엇보다 선행되지만, 남부조국은 ‘나’ ‘아부아첨’ ‘자존심이 밥먹여주냐? 가 무엇보다 먼저 앞서는 잣대이다.

 

남녘에서는 무조건 강한 힘에 기생하여 온갖 영화를 누리면서 나만 배부르면 된다는 “개 돼지” 주의이다. 이들에게 공의 진리 양심 정의를 말하는 것은 멍멍이와 꿀꿀이에게 말하는 것과 별반다르지 않다.

 

일제의 하수인에서 미국의 하수인으로 바뀐 남녘땅 매국노들은 양심과 정의와 사랑이 충만한 항일독립투사들을 무차별적으로 잔인하게 죽였다빨갱이라고 낙인을 찍으면서 말이다.

 

미국과 그 식민지 매국노들의 가장 무서운 적들이 바로 자주 정신이 가장 강한 독립투사들이기 때문에 이들에 관하여서는 철저히 없애야 했기 때문이다.

 

일제독립투쟁혁명가들은 조선이 일제의 손아귀에서 미국의 손아귀로 넘어가는 그 순간에도 조국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일제치하에서의 투쟁을 그대로 이어 나갔다일제시대에 불량불순분자라고 매도했던 표딱지가 미국시대에는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애비 맥아더의 치하에서 필리핀의 민간인들이 80만명(20~150만 추정민간인 학살은 정확한 숫자를 알기가 어렵다)이 학살 당하였고, 아들 맥아더의 통치하에서 그리고 미국의 고문관 정치(총독정치)에 의해서 남녘땅에서는 민간인들이 대략 100만명이 학살당하였다.

(한국전쟁에서는 민간인들 527만명 희생<정대화 박사님>)

그 살인마 맥아더를 존경하여 동상을 만들고 영화로 왜곡 선전하는 한국이 제 정신일까? 미국의 전쟁광들이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보다도 더 쉽게 죽여버리는데그에 기생하여 생존하는 식민지 매국노들의 잔인함은 말하여 무엇하겠는가?

 

브루스 커밍스의 The\origins of The Korean War”이란 책에만주의 항일공산혁명군들 때문에 일본 제일의 관동군들이 묶여 수렁에 빠진 꼴이 되었고결국 일제패망 원인들 중의 하나라고 했다.

 

이 항일독립운동 공산주의자들을 오카모도 미노루(박정희가 처음 개명을한 이름 다카키 마사오는 조선냄새가 난다하여 또 다시 개명을 함)와 백선엽들은 “공비들”(공산 도적놈들)이라 불렀고 그에 협조하는 조선인들을 없앤다고 견벽청야 전술이랍시고 만주의 우리동포 마을들을 싸그리 죽이고 불태웠다.

 

8.15이후에도 일제에 “견마지로를 다하여 멸사봉공”하겠다고 왜왕에게 혈서로 맹세한 박정희 같은 매국노 관동군 출신들 백선엽 등에 의하여 민간인들이 대학살 당하였다. (지리산 함양군 추모공원 - 이곳은1951년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시 11사단 9연대 3대대가 상부에서 내려온 견벽청야라는 작전으로 민간인들 700여명을 몰살한 곳이다.<한국농정2011.03.14>)

 

이 매국노들이 일제가 우리 어린 처녀들을 유괴납치하여 왜군들의 성욕대상 성노예 “위안부”를 만들었던과 똑 같은 ‘위안부 대기소’를 만들고 미군들의 성욕을 풀도록 한 더러운 犬韓蠻國이다.

 

조국을 사랑하고 정의와 양심이 투철하다는 이유로 수많은 애국자들이 죽임을 당하고 남은 그의 가족들이 한 많은 세상을 눈물과 한숨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무수히 많지만하나의 예로 내 지인 가족의 생활사를 한 부분만이라도 말하고자 한다.

 

내 지인의 아버지는 소위 지금 유행되는 말로 하자면 금수저 집안에서 태어나 온갖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는 여건이었건만 동학혁명으로 초토화된 그 어머니(지인의 친할머니)집안의 반골 기질을 가지고 태어난 탓인지 모든 부귀와 영화를 버리고 일제시대에는 항일투쟁으로 갖은 고문을 당하였고,  8.15후에도 외세와 매국노들에 쫓기었으며매국노들이 무서워 가족들이 시신을 찾으러 가는 것 조차도 포기하였다.

 

다음은 2012.06.17 한토마에 이석기 김재연을 종북이라고 마녀사냥하는 것에 분개하여 올렸던글 중에서 연좌제에 관련된 부분만을 발췌한 것이다.

 

--------

 

내 지인의 아버지는 악질적인 집안에서 어머니(지인의 할머니) 40세 즈음 약간은 늦동이로 태어나셨다지인의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자기가 시집 간지 얼마 안되어 어떤 사람을 잡아다가 멍석말이로 때려 죽였는데도 아무탈도 아무일도 없었던 것 처럼 넘어갔다고 했다그리고 그 마을 앞을 말 타고 지나가면 감히 고귀한 양반댁 마을을 말에서 내려서 지나가야지 버릇없다고 붙잡아 두들겨 패서 보냈다고 한다지인 어머니 말씀은 “그렇게 악질이라 벌 받느라고 다 망해먹고 너희가 이렇게 살지”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런 집안의 종손 두째 늦동이 아들이니 얼마나 기가 팡팡 살아 모두를 눈 아래로 보고 살았겠는가?

 

그런 그분의 삶에 큰 영향을 준 분은 그분의 외삼촌이었던 것 같다. 그분의 외갓집은 서당 훈장이었는데 동학혁명란에 가담하여 왜놈들에게 패하고 역적으로 대 학살이 일어 날때그분의 어머니가 자기 때문에 시집까지 몰살 될까 봐 우물에 뛰어 내렸는데 풍덩 소리에 마을 사람들이 달려나와 살렸으나 그 뒤로 한쪽 팔을 잘 쓰지 못하고 떤다고 했다.

 

그 어머니의 오빠는 의병나가서 죽고 큰 동생은 목포에서 일본으로 우리나라 쌀을 실어가지 못해게 사보타지 하고 화순탄광에서 사보타지하다 쫓겨 결국 왜놈 경찰손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친구 할머니는 13(14?)세에 시집와서 친정이 개박살 나고그 화가 시집까지 미칠까봐 평생을 죽은 듯이 살았다한다친정집안이 박살났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어린 동생은 누나 시집에와서 성장하여 결혼까지하게 되었는데눈치보며 살아서인지 말이 전혀없고 기가 죽은 듯했다한다.  한자를 줄줄 읽으시고 중국 고사들을 재미있게 줄줄 말씀하시던 그 할머니의 가슴에는 무슨 한이 또 얼마나 많으셨을까?

 

그 외삼촌의 영향으로 내 지인의 아버지는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전환하게 된 것 같다.

 

지인이 국민학생때 학교가 끝나면, “나라를 잘 다스리는 이승만 박사… 이승만 박사를 잘 받드실 이기붕 의장…”이라는 자유당 선거노래를 부르면서 줄을 지어 교문까지 나가야했다이것이 싫었던 지인은 급우들에게 “가련다 떠나련다해공 선생 뒤를 따라…민주당에 비가 오내 자유당에 꽃이피내”라는 이승만에 반발하는 노래를 부르도록했다학교가 난리가 났고 지인의 집에 담임선생이 방문하고 지인은 3일동안 정학 처분을 받았다

 

가족들은 경찰이 오면 도망갈 준비를 하고 3일을 꼬박 밖의 눈치만 살폈다지인의 어머니는 “꼭 생김새도 즤 애비 빼다박은 것이 하는 짓도 똑같다즤 애비가 못되처먹어서 선생한테 대들고 싸워 학교를 퇴학맞아 충청도로 한학공부하러 떠났었다.”라고 지인을 욕해댔다지인이 고등학생때 가출하여 서울에 가서 큰아버지를 만나 아버지를 욕하며 아버지가 퇴학맞아 충청도로 간 이야기를하자큰아버지가 “광주학생사건이 터지자 당시 10살이었던 늬 아버지가 동맹휴학을 주도하여 퇴학을 맞았고그래서 충청도로 한학공부를 보냈었다”라고 설명했다당시 지인은, “겨우 10살이 뭘 알아서…지 동생이라고 역상들고있네…”라고 속으로 생각했었다그러다가 번득 지인 자신의 10살때 일이 생각나서 입을 벌리고 헛웃음이 나왔다고한다.

 

기고 만장했던 그분이 멍석말이로 죽었던 집에 찿아가 논밭을 주고자기 몫의 땅들을 짓던 소작인들에게 나누어 주고술집여자들에게도 깍듯이 존대 말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문중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라고 난리들이었다고 한다.덕분에 지인 어머니는 죄인이 되어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았다 한다“그 왠수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도 없다가 한번씩 나타나서 애만 하나씩 만들어 놓고 갔지” 라고 지인의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1930,40년대에는 자칭 민족주의자들이 전향하여 일제의 앞잡이로 일제를 찬양하고 학도병과 정신대에 나가라고 설쳐댔으며박정희 같은 종왜 매국노 개들은 독립군을 때려잡는 관동군 정보장교가 되었으며상징적으로 상해에서 소수의 몇 분이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처럼 계셨고실제로 일제와 맞서 싸운 분들은 국내 국외 공산주의자들이었다.

 

그래서 해방되고 이승만이 귀국하여 처음 한 소리가 공산주의자들을 칭찬해서 “악독한 왜적의 압박하에서 지하공작으로 백절 불굴하고 배일 항전한 투사임을 높이 평가한다. (45.11.23서울신문)고 말했고 (후에 자기가 정권을 잡기위해 정반대로 일제 매국노들과 결탁하고 공산주의자들을 무참하게 짖밟았지만), 미군정청의 여론조사(1946.08.13동아일보)에서도 남한의 77% 국민들이 우리가 이뤄야 할 나라는 “인민 공화국”이라고 응답했었다 (자본주의14%, 사회주의70%, 공산주의7%).

 

내 지인의 아버지는 일제 경찰에 붙잡혀 일어서지고 못하게 두들겨 맞고 갇혀있으면할아버지와 친척들이 재산을 헌납한뒤 들것에 실려 나왔다 한다. 내 지인의 어머니도 자주 잡혀가서 두들겨 맞았는데하시는 말씀은 “내가 지금 가슴이 이렇게 아픈것도 그때 그놈들 한테 맞아서 그래그때 구두발로 나를 차고 때렸던 놈들은 정작 일본놈들이 아니라 조선놈 앞잡이들이 었어” 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그 참담한 일제때 내 지인의 빨갱이 아버지가 태극기를 손수 그려 가슴에 품고 살았다는 사실은 그 때 그 태극기는 우리민족 우리국가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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