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김정일주의 세계관의 정당성과 생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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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9-07-04 12:44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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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김정일주의 세계관의 정당성과 생활력
-김일성주석 서거 25돌에 바치는 글-
이러한 생사를 넘나드는 오랜 기간의 빨치산투쟁을 통하여 김일성주석에게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사람중심의 <철학적 원리>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믿을 것은 오직 사람밖에 없던 깊은 산 속에서 투쟁하는 가운데 부대원 하나하나가 나이, 피부색갈, 학력, 재산의 유무에 상관없이 역사의 주인이고 참으로 귀중한 존재라고 김주석은 사색하곤 했다.
<철학적 원리>란 세계를 어떻게 보느냐하는 <세계관>의 기초에 놓여 있는 근본이치를 말한다. <철학적 원리>가 어떠한가에 따라 해당 사상의 <철학적 세계관>이 결정되며 사상의 <혁명성>, <과학성>이 좌우된다. 사상의 위대성을 결정하는 <철학적 원리>는 사람을 중심으로 하여 철학의 근본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해답을 주는 사람중심의 철학적 원리이다. 그것은 사람중심의 철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혁명사상만이 사람이 사는 세계의 본질과 그 변화발전의 합법칙성을 명확히 밝히고 인민대중의 <운명개척>을 위한 가장 정확한 투쟁방법을 제시하는 혁명사상으로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것은 바로 사람이 이 세상에서 차지하는<지위>를 나타내고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표현한다. 주체사상의 <철학적 원리>는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문제를 <철학의 근본문제>로 제기하고 그에 해답을 준 사람중심의 철학적 원리이다. 주체사상은 사람중심의 철학적 원리를 기초로 하고 있음으로 하여 가장 과학적이며 혁명적인 세계관을 밝히게 되었으며 우리 시대의 위대한 혁명사상으로 되었다.
그러면 김일성-김정일주의의 기초인 사람중심의 철학적 원리인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내용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자.
첫째로,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의미에 대하여 알아보자.
김주석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것은 사람이 세계를 지배하는 주인의 지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자주적인 존재이므로 주위세계에 예속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를 지배하면서 삽니다.”([김일성 저작집] 제36권, 280페이지)
위에서 김주석이 지적한 바와 같이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것은 사람이 세계와 자기 운명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세계의 주인이라는 것은 사람이 세계를 지배하는 <지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독교를 비롯한 여러 종교들은 세상만물의 창조자, 지배자가<신>,
<하느님>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에 존재하는 사람 이외의 다른 모든 생명물질들도 세계의 지배자로 될 수 없다. 세계에 존재하는 무생명 물질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사람 이외의 다른 모든 생명물질들은 자연에 의하여 전적으로 지배되고 있다. 사람은 주위 세계에 종속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를 지배하면서 자기에게 복무하도록 만들어나가는 유일한 <자주적 존재>이다. 사람들은 짐승들을 길들이고 있으며 홍수와 가뭄 피해도 없애고 있다. 현시기에 와서 사람들은 신비한 세계로만 알던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며 달나라 여행을 하고 우주공장, 우주발전소, 우주도시의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사람은 사회제도도 자기에게 유리하게 개조 변혁해나가고 있다. 인간을 신분적 예속에 몰아넣고 착취하던 봉건제도가 자본주의제도로, 사람들을 돈, 자본의 노예로 만드는 자본주의 제도가 사회주의 제도로 교체되어나가는 인류역사의 발전과정이 이것을 잘 실증해 주고 있다. 사람의 활동을 떠난 사회의 형성과 변화발전이란 있을 수 없다. 사람은 주위 세계에 종속되어 사는 것이 아니라 주위 세계를 지배하면서 사는 존재이므로 세계의 유일한 주인으로 된다.
사람은 또한 자기 운명의 주인이다. 운명문제는 생사존망과 생활처지에 관한 문제이다. 사람의 삶과 죽음에 관한 문제와 사람이 어떤 사회적 처지에 놓이게 되고 어떤 생활을 누리게 되는가 하는 것은 종교가 주장하는 것치럼 신에 의하여 미리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는 사람 이외에 사람의 운명을 책임지며 그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그 어떤 존재도 없다. 도올 김용옥선생은 어떤 “존재”로서의 신, 하느님이라는 것은 더 이상 ‘No Thank You!’”라고 말하면서 아직도 저 하늘 어딘가 존재하는 <인격신>을 믿는 사람들이 있느냐며 반문한다. 도올선생은 [도마복음]을 강의하면서 마지막 83강에서 “나라(하늘나라)가 너희 속에 있는데 어디 다른 데서 나라(하늘나라)를 찾느냐”고 예수가 도우(제자)들에게 꾸짖는 말로 결론을 내면서 예수도 자기(인간) 밖의 어떤 다른 신(여호와)을 믿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사람의 생활은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진행되는 것만큼 사람이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되는가, 사람이 사회에서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며 어떤 생활을 누리게 되는가 하는 것은 자연과 사회를 얼마나 자기를 위하여 복무하도록 만드는가에 따라서 좌우된다. 사람의 운명의 지배자는 인간 밖의 어떤 신이 아니라 오직 사람 자신이다. 사람은 제손으로만 자기의 운명을 개척해나갈 수 있으며 또 그러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람은 결코 태어날 때 작은 주먹에 미리 정해진 운명을 쥐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며 보이지 않는 그 어떤 신비로운 신에 이끌려가는 존재도 아니다. 사람은 자기 운명을 자기 손에 틀어쥐고 있으며 사람이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도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
다음으로,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의미를 생각해 보자.
김주석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사람이 세계를 개조하고 변혁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은 창조적인 존재이므로 주위 세계에 순응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변혁하면서 삽니다.”([김일성 저작집] 제36권, 280~281페이지)
<사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은 사람이 세계를 개조변혁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세계를 개조 변혁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은 세계를 개조 변혁하는 데 작용하는 요인들 가운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는 데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작용한다. 예를 들어 농사를 짓는 데서 기후조건이나 토양조건, 기계수단 등은 무시할 수 없는 요인으로 된다.
그러나 그러한 객관적 조건들과 물질적 수단들이 아무리 좋다고 하여도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기 위한 사업이 저절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객관적 조건을 주동적으로 마련하고 유리하게 이용하며 생산도구와 무기를 만들고 다루는 것은 사람이다. 사람이 어떻게 활동하는가에 따라서 객관적 조건을 올바로 이용하는가 못하는가 하는 것이 좌우되며 또 위력한 도구와 무기가 생산되는가 안되는가, 그것이 효과적으로 이용되는가 못되는가가 결정된다.
지난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 조선 인민들이 남들 같으면 영영 쓰러져 다시 일어서지 못할 엄혹한 난관과 시련에 처하여 있으면서도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인<혁명적 군인정신>으로 혁명과 건설에서 사람들을 놀래게 하는 기적과 혁신을 일으킨 것도 객관적 조건이 아니라 사람의 정신력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는 것을 뚜렷이 실증해 주고 있다.
사람은 또한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 사람의 운명은 세계를 개조 변혁해나가는 과정을 통하여 개척된다. 사람은 세계의 개조 발전에서 결정적 역할을 함으로써 자기 운명을 개척하는 데서 결정적 역할을 한다. 사람의 운명은 사람 자신이 세계의 개조 변혁을 어떻게 해나가는가 하는데 따라 좌우된다.
이와 같이 사람은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하는 세계의 유일한 지배자이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김일성-김정일주의의 <철학적 원리>에는 사람이 자기 운명의 주인으로서 자기 운명을 자기 손에 틀어쥐고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나가야 한다는 인간의 운명개척의 근본방도가 명시되어 있다.
그러면 어떻게 인간은 세계의 주인으로서 특별한 <지위>와 <역할>을 갖게 되는가? 그것은 사람이 자주성과 창조성, 의식성을 가진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하여 정확히 설명하는 것은 세계에서 사람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을 밝히는 데서 출발점으로 된다. 지난 시기의 모든 철학들은 사람에 관한 문제를 대부분 사회적 관계를 떠나 <순수 인간>에 대하여서만 논의하였다. 사람을 주로 <정신적인 존재>로 보거나 <자연적, 생물학적 존재>로 본 것이 사람에 대한 지난 시기의 견해였다.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사람의 본질적 특성을 사람이 <사회적 존재>라는 데서부터 출발하여 밝혔다. 여기서 사람이 <사회적 존재>라는 말은 사람이 단순히 <사회적 관계>에 의하여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주동적으로 사회적 관계를 맺고 생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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