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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은 과연 개혁.개방으로 나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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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8-07-17 13:56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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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은 과연 개혁.개방으로 나올 것인가?

 

김현환(재미자주사상연구소 소장)
 


지금 세계는 과연 이북이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개혁.개방정책을 쓸 것인지 모든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북이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중국식 모델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베트남 식의 모델을 택할 것인지도 모두 궁금해 하고 있다. 최근에 연합뉴스를 포함하여 여러 곳에서 세미나를 열고 이북이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혁.개방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현재 동국대학교 북한학 연구소 소장이며 청화대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인 고유환 동국대 교수도 2018년 6월29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적대관계 해소를 통한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북한은 이제 개혁.개방의 길로 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최근 열린 철도.도로협력 남북분과 회담에 참석한 이남의 한 당국자도 “북한이 개혁.개방을 해나갈 것이고 개혁.개방에 대한 김정은 위원장의 입장은 과거보다 더 확고하다”고 평가했다. 핵개발 완성을 선포한 이북이 이제 경제를 발전시키는데 집중하겠다고 선포했으니 <시장경제>를 택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과연 이북은 개혁.개방의 길을 택할까? 이북의 노동신문은 2018년 6월16일자에 발표한 [자본주의에는 미래가 없다]라는 논설을 통하여 이북은 개혁.개방도 하지 않을 것이며 자본주의 경제를 도입하지도 않을 것임을 명백하게 밝혔다. 동구와 소련이 붕되된 후 이들 나라들에서는 <생산수단>이 “특권자, 투기업자를 비롯한 소수 착취자들”에게 집중되었으며 짧은 기간에 “백만장자들이 생겨나고 경제는 파국상태에 빠져들어 절대다수의 근로민중은 “실업과 빈궁에서 헤매이게 된”현실을 지적하면서 “지배와 예속관계, 강한자가 약한자를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생활방식이 사회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에는 인류의 미래가 없다고 이 논설은 지적하였다.

이 논설은 계속하여 “대독점자본가들과 그 사환군들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참다운 민주주의”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통치배들은 그들의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근로인민대중의 자유를 구속하고” “정보기관들을 동원하여 개인과 단체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자료들을 수집하며 자유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인민들을 탄압하고” 있기에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와 민주주의가 있다면 그것은 돈있는 자들과 소수 착취계급이 누릴수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극소수 특권층이 사회적 재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반면에 광범한 근로민중은 항상 “일자리 걱정, 치료받을 걱정, 집걱정, 먹고 살 걱정, 자식들을 공부시킬 걱정”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한편, 부자들은 “사치하고 부화방탕한 생활”에 막대한 재부를 탕진하고 있다고 위 논설은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자본주의 사회는 “돈많은 부자들에게는 천당이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썩고 병든 사회”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물질적 번영”을 자랑하는 자본주의의 참모습이기에 자본주의 사회는 결코 인류가 바라는 “이상사회”가 될수 없다는 것이다.

한편, 이북 민중들은 근로민중이 모든 것의 주인으로 되고 모든 것이 근로민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수령, 당, 군대, 대중이 일심 단결된 이북식의 독특한 주체 사회주의 사회에서 오래 동안 살아 왔다. 극소수의 재벌들이 아니라 대다수의 근로민중이 정치, 경제, 문화생활에서 자주적 권리를 가지고 그것을 충분히 행사하면서 주인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사회의 모든 것이 근로민중의 자주적인 요구를 실현하는 데 복무하고 창조적 능력을 발양시키는 데 이바지하는 것은 민중 중심의 이북식 주체 사회주의의 본질적 특성과 우월성이기에 이북 민중들이 이러한 주체 사회주의 제도를 포기하고 개혁.개방의 길을 택한 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면 이북식 주체 사회주의가 가장 우월한 사람, 민중 중심의 사회주의로 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이북의 주체 사회주의가 사람의 <본성적 요구>를 전면적으로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주성>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 사회적 존재로서 온갖 예속에서 벗어나 자주적으로 살며 발전할 것을 요구한다. <자주성>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귀중한 생명이다. 사람에게 있어서 자주성이 생명이라고 할 때 그것은 <사회정치적 생명>을 의미한다. 사람은 육체적 생명과 함께 <사회정치적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사회정치적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데 사람의 본질적 특성이 있다. 인간의 권리는 무엇보다도 사회정치적 권리이며 인간의 존엄은 사회정치적 자주성에 의하여 담보된다. 사회정치적 자주성을 실현하는 것은 사람의 모든 본성적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선결 조건으로 된다. 

또한, 이북의 주체 사회주의는 근로민중에게 사회정치적 자주성을 철저히 보장해주고 있다. 이북에는 민중의 사회정치적 자주성을 구속하는 그 어떤 사회 경제적 조건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북에서는 민중이 국가와 사회의 주인이 되어 국가와 사회를 관리하는 사업에 자유롭게 참가하고 있으며 누구나 일정한 사회정치 조직에 가입하여 정치생활을 하면서 사회정치적 생명의 요구를 실현해 나가고 있다. 

다음으로, 이북의 주체 사회주의는 창조적인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의 본성적 요구를 훌륭히 구현하고 있다. 사람은 <창조성>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 사회적 존재인 것만큼 창조적으로 살며 발전할 것을 요구한다. 사람은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자기 운명을 개척하기 위한 창조적 활동을 끊임없이 벌리며 자기 자신의 창조적 능력을 끊임없이 키워 나간다. 이북의 주체 사회주의는 민중에게 보람찬 창조적 생활을 보장하여 주고 있다. 이북에서는 당과 국가가 책임지고 근로민중에게 보람찬 창조적 생활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직장을 보장해 주고 있다. 여기에 이북의 주체 사회주의가 사람의 창조적 본성에 맞는 사회주의로 되는 중요한 근거가 있다. 이북에서는 누구나 다 일할 권리를 가지고 자기의 소질과 능력에 따라 일자리를 선택하고 사회와 민중을 위한 창조적 활동에 참가하여 자기의 지혜와 재능을 마음껏 키우고 있으며 자신의 창조적 능력을 전면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고 있다. 

이북의 주체 사회주의는 민중에게 창조적 생활을 보장해주는 데서 뿐 아니라 그들의 창조적 활동을 추동하는 방법에서도 사람의 본성적 요구를 훌륭히 구현하고 있다. 이북에서는 사람의 본성적 요구에 맞게 모든 사업에 정치사업을 앞세워 근로민중들의 높은 <변혁적 열의>와 <창조적 적극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을 사람을 발동하는 기본방식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리하여 민중이 변혁의 주인된 높은 자각을 하고 사회와 집단과 자기 자신을 위하여 몸바쳐 일하고 있다. 

또한, 이북의 주체 사회주의는 의식적인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의 <의식성>을 가장 높이 발양시키고 있다. 의식성은 사람의 모든 활동을 규제하는 본질적 특성이며 <사상의식>은 사람의 모든 인식활동과 실천활동에서 결정적 작용을 한다. 사회제도의 생명력은 그 제도가 사람의 의식성을 어떻게 발양시키는가 하는 데 달려있다. 이북의 주체 사회주의의 커다란 우월성과 생명력의 중요한 원천은 바로 사람의 의식성을 가장 높이 발양시키는 사회제도라는 데 있다. 

이북에서는 사회주의 변혁이 철저히 수행됨으로써 낡은 사상을 낳는 사회 경제적 기초가 없어졌다. 이북에는 사람들에게 사상적 양식을 줄 수 있는 우월한 사상, 현시대의 가장 변혁적인 사상인 주체사상이 있으며 변혁적인 사상교양 체계가 있다. 그리하여 사회의 모든 성원이 주체사상을 유일한 신념으로 삼고 수령과 당의 두리에 굳게 뭉쳐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몸바쳐 투쟁하는 숭고한 정치 사상적 풍모가 온 사회에 넘치고 있다. 이것은 이북식 주체 사회주의의 커다란 우월성과 생활력의 원천으로 되고 있다. 이북 민중은 숭고한 변혁사상과 불굴의 투쟁정신을 지니었기에 제국주의자들의 온갖 도전과 고립압살 정책을 극복하고 주체 사회주의를 고수할 수 있었으며 주체 사회주의 위업을 빛나게 완수해 나가고 있다. 

위에 지적한 6월16일자 논설에서 자본주의 사회는 “개인주의에 기초하고 있고 적대적인 계급”으로 갈라져 있기에 “완전한 평등”이 보장될 수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수단과 방법을 다하여 “개인의 이익을 옹호하고 실현하는 것이 최고의 목적”으로 되고 있기때문에 “갈등과 상호 견제, 지배와 예속, 착취와 압박관계가 항시적으로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이북의 주체 사회주의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의 <집단주의적 요구>를 훌륭히 구현하고 있다. 사람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사회적 집단 속에서 살며 활동하는 사회적 존재인 것만큼 사회적 집단과 운명을 함께하면서 서로 협력하며 살려는 <집단주의>를 본성적 요구로 하고 있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은 사회적 집단 속에서만 자기 운명을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 나갈 수 있다. 집단주의는 사람이 사회적 집단의 한 성원으로서 보람있게 살기 위한 근본요구이다.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의 본성적 요구인 집단주의는 이북에서 가장 훌륭히 구현되고 있다. 이북에서는 사회의 모든 성원 속에서 집단주의 교양을 강화함으로써 온 사회에 집단주의가 높이 발양되고 있다. 이북에서는 <집단의 이익>이 철저히 옹호되는 기초 위에서 <개인의 이익>도 존중되고 있다. 집단의 발전과 번영 속에서 매 개인들이 발전하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고 있다는 데 이북의 주체 사회주의의 본질적 우월성이 있다. 

이처럼 주체 사회주의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사람의 본성적 요구를 전면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사회인 것으로 하여 민중이 모든 것의 주인으로 되고 모든 것이 민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민중 중심의 사회주의, 수령과 당, 군대, 대중이 일심 단결된 불패의 사회주의로 되고 있다. 

돈, 자본이 지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와 사람, 민중 중심의 주체 사회주의 사회의 차이점을 잘 이해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는 이북 민중들이 개혁.개방을 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위의 6월16일자 논설에서 잘 지적되었듯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독점자본가들은 사람들을 “자본의 노예로, 주어진 운명에 순종하는 노동도구”로 만들기 위해 사람들의 “자주의식을 의도적으로 마비시키고” 있다. 그들은 사람들의 “정신문화생활을 발전시키는데 투자를 하지 않으며 오히려 막대한 돈을 들여 반동적인 사상과 썩어빠진 부르죠아 생활양식’을 퍼뜨리고 있다. 이때문에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성이 말살되고” 있다. “돈을 위해서는 부모처자도 모르고 범죄의 길에 서슴없이 뛰어드는 인간추물, 인간 오작품들”이 늘어나고 있다. 사람들이 “무지몽매해지고 동물화, 야수화되고” 있다.

이북 민중들은 “약육강식의 생활방식”이 사회적 풍조로 되고 패륜패덕과 사기협잡, 폭력범죄와 같은 각종 사회악이 판을 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잘 알고 있다. 이웃들간에 “칼부림이 벌어지고 부자간, 형제간에도 서로 죽일내기”를 하고 있기에 이러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고상한 사회적 풍조”는 찾아볼 수 없고 “동물세계와 같은 말세기적인 생활풍조”만이 지배하고있다는 사실도 이북 민중들은 잘 파악하고 있다..

이북 민중들이 아무리 경제발전이 중요하고 급하더라도 이러한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제도를 택할 리가 없다. 이북은 개혁.개방도 아니고 시장경제도 아니라 주체 사회주의 체제를 계속 유지할 것이다. 중국식이나 베트남식이 아니라 자력자강에 의한 이북식의 독특한 경제발전 모델을 택할 것이라 판단된다. 이북은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와 압박을 없애고 다 같이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목적의식적으로 살려는 근로민중의 <본성적 요구>를 구현해나가고 있는 주체 사회주의의 집단경제 체제를 지속해 나갈 것이다. 이북은 근로민중의 자주적 요구와 근본이익에 맞게 주체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하여 당을 조직 사상적으로 강화하고 혁명과 건설에 대한 당의 영도를 확고히 보장하며 사회주의 정권의 기능과 역할을 계속 높이며 <사회주의적 소유>를 고수하고 발전시켜 나가며 제국주의를 반대하여 계속해서 투쟁해나갈 것이다. 이북은 이 주체 사회주의의 <혁명적 원칙>을 추호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주체 사회주의를 건설해 나가는 과정에 혁명투쟁의 환경과 조건이 변화되는 것만큼 그것에 맞게 노선과 정책을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위에 언급한 혁명적 원칙, 노동자 계급을 비롯한 근로민중의 선에서 추호도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혁명투쟁의 환경과 조건은 달라질 수 있어도 사회주의의 근본이념과 요구는 달라질 수 없다.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하는 투쟁에서 <혁명적 원칙>을 버리는 것은 곧 투항과 변절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북은 지금 주체 사회주의 혁명을 계속 추진하고 있는 전략적 국가이다!

[이 게시물은 편집국님에 의해 2018-07-17 13:56:47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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