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북에 대화를 제의했다. 우리 정부도 함께였다. 그러나 한미양당국의 대화제의에 대해 북은 사실상 거부하는 반응을 보였다. 그 과정에 무자비하다 싶을 정도로 심한 공격이 동반되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북은 미국에게 대화의 조건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북이 주문한 ‘대화를 위한 실천적 조치 세 가지’를 만일 미국이 받아들인다면 북미대결전은 돌이킬 수 없는 대화의 국면으로 완전하게 진입해들어가게 된다. 그렇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대화는 없을 것이고 대결국면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1.미국은 왜 대화를 하자는 것일까?-진정성은 언제라도 중요한 것
대화제의는 미국에서 먼저 나왔다.
12일 방한한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이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회담을 마치고 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은 대화를 하는 것이다. 6자든 양자든 실질적인 미래를 위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은 비핵화 또 궁극적으로 한반도 통일, 평화롭고 핵이 없는 한반도에 대한 미래"라고 했을 때 기자회견장은 크게 술렁였다. 전례 없는 초강경으로 이어지던 미국의 대북 '무력시위'가 마침내 일반적인 수준으로 내려앉게 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발언이었던 것이다.
양자회담이 언급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미국의 대북대화제의는 상당히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특사파견에 대한 언급은 당연히 돋보였다. 케리 장관은 한.중.일 순방에 동행한 기자에게 미국이 북과 접촉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적절한 순간과 적절한 상황이 필요하다”고 말하고는 “특사파견을 통해 북·미 접촉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미국의 대북대화제의에 대해 정세분석가들은 그러나 약간은 혼란스러워 했다.
“당신들은 왜? 혹은 무슨 일이 있었길래? 대결에서 대화로 넘어가려는 거지?” 북미 간에 조성되어 있는 긴장을 누구러뜨려야 된다는 필요성은 물론, 곳곳에서 그리고 수도 없이 제기되었었다. 하지만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것을 가능케 하는 동인이 무엇인지 확인된 것이 아직까지는 없다. 대화를 하게 되는 특별한 모멘텀이 마련된 것 또한 없어 보인다. 이른바 비밀접촉 등 물밑작업이라도 있었던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들 만도 했다.
대화국면으로 이동될 명분이나 특히 계기가 현실적으로 확인되지 않는 한 미국의 대북대화제의는 미국이 북의 초강경적인 대미공세에 굴복한 모양새로 비추어질 가능성까지 있다.
미국이 제의하고 있는 대화의 성격을 밝히는 것이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대화제의의 성격을 명확히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미국의 대화제의가 어떤 정세규정력을 갖게 될지를 밝히는 작업이다.
미국의 대화제의를 두고 미국이 압박을 접고 대화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미국의 대화제의에는 현실성이나 진정성이 확인되는 것이 없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알맹이가 될 만한 것이 없어 보이는 것이다. 제스쳐일 뿐이라는 지적이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한·미 외교장관회담 이후 내놓은 공동성명이 “2005년 6자회담 9·19공동성명에 따른 공약을 이행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힌 점을 보아도 이는 잘 확인된다. 9.19공동성명에 대한 언급은 사실상 생뚱맞은 감이 없지가 않다. 뒷북을 치는 듯한 인상까지도 곁들여져있어 보인다. 9.19공동성명은 지금, 현실적으로 사라지고 없다. 9·19공동성명에 따른 프로세스는 이미 오래 전에 실패했다. 9·19공동성명에 따른 단계별 이행계획인 2·13, 10·3 합의는 무산되고 말았던 것이다.
9.19공동성명이 실패로 된 데에는 북의 태도도 결정적으로 한몫을 보탰다. 북의 2·12 3차 핵실험은 9·19공동성명의 사망을 선고한 것이었다. 북은 9.19공동성명은 죽었다고 직접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9.19공동성명에 대한 언급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것은 현 정세는 6자회담이 진행되던 과거 시기와는 질적으로 다른 단계에 이르러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화제의에 독수리연습 등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해서 별다른 언급이 없었다는 것 또한 대북대화제의의 진정성 문제를 곧바로 제기시킨다. 한미연합군사훈련에 대한 전향적 언급이 없는 상태에서의 대화제의는 무엇보다도 대결과 대화가 동시에 가능하다는 것에 기초해있다. 대결과 대화는 양립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른바 압박과 대화를 동시에 구사한다는 투트랙 운용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정부 역시도 그런 말을 줄곧 해왔다.
이것들은 미국의 대북제의에 없는 것은 진정성이고 있는 것은 북미간의 대결분위기만이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눅잦혀놓고 보자는 정치적 의도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최고조로 긴장되어있는 북미간의 대결분위기를 어떻게 해서든지 눅잦혀놓고 보자는 의도만 가지고 대화제의에 접근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 어떤 성과도 내오지 못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북이 미사일을 발사하게 되는 일은 북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북이 중거리 탄도미사일인 무수단 발사를 한다하더라도 한반도가 다시 제재 국면으로 진입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대륙간탄도미사일이 아닌 중거리 미사일에 대한 대북제재는 한반도를 위기에 몰아넣을 정도의 내용을 갖고 있지 않다.
만일 북이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게 된다면 그만한 이유가 분명이 있어야한다. 북미대결전이라는 대결구도에 대한 역사성 그리고 현 시기 정세의 성격을 과학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정세분석가들은 미국이 독수리훈련을 중지시키는 등, 파격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북은 미국의 대화제의에 응하지 않는 것은 물론 미사일 발사를 중단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전망들을 하고 있다.
개성공단 중단과 관련하여 제기된 우리정부의 대화제의 역시 내용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개성공단은 화해와 협력의 상징이다. 그런데 보수언론들이 나서서 개성공단은 북의 달러박스이어서 북이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조롱했다. 군부에서는 사태악화 시 개성공단에 우리국민들이 ‘억류’ 되는 것이며 그럴 때 ‘인질구출작전’을 펼칠 것이라고 했다. 군부가 말을 앞세워 북을 자극하는 모양새였다. 오지도 않은 상황을 미리 상정한 것이고 하지 말아야할 말을 의도적으로 한 것이다. 북에서 보면 심한 악담이다.
우리정부의 대화제의에는 북이 원할 법한 사과는 아예 빠졌다. 정치적인 의도가 작용했을 터였다. 우리정부의 대화제의가 내용은 없고 단순히 대화를 제의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이유이다.
2.미국의 대북대화제의에 대한 북의 공격- 무자비할 정도였다.
북이 좋아할 리가 없다. 정세를 보거나 북미간의 치열하게 전개되는 대결양상을 보아도 대화와 압박이라는 투트랙이 유지되는 한 북은 대화제의에 응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이 원하는 것은 양자택일이다. 대화라고 한다면 더 이상은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인’ 대화국면을 바랄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정세분석가들은 북을 잘 모르면 안된다. 북을 현실적으로 잘 모르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북과 관련된 모든 사안에 대한 분석은 틀릴 수밖에 없다. 정세분석가들은 현 시기 북미대결전의 성격을 과학적으로 알아야한다. 현 시기 북미대결전 정세의 성격을 과학적으로 진단하지 못하고 이루어지는 정세분석 역시 아무짝에도 쓸 모 없는 추정에 불과하다. 과학성과 객관성을 담보하고 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분석들이 언론에서 자주 취급되는 것은 이를테면 반북의식을 고양시키려는 정치적 목적이 작동해서일 것이다.
대북 인도적 지원 등이 개성공단 문제를 풀기 위한 남북대화와 국면 전환의 촉매제가 될 수 있을 것이란 분석은 그 하나의 예라 할 수 있다. 그 분석에는 북은 남으로부터 지원을 얻으려 하고 있다는 대북폄하 관점이 그 기저에 깔려 있다.
결국, 미국의 대화제의는 14일 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을 통해 ‘교활한 술책’이라고 격렬하게 비난을 받았다. 이어 15일 북의 인민군 최고사령부의 ‘최후통첩’에 의해서는 강력하게 배격까지 당해야했다.
미국의 대북대화제의 전반에 대한 북의 대응은 단순한 거부나 반발이 아니었다. 공격의 모양새를 띠었다. 무자비할 정도라고 해도 과하지 않았다. 외무성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16일 외무성 담화는 "미국이 대조선적대시정책과 핵위협공갈을 포기하지 않는 한 진정한 대화는 오직 우리가 미국의 핵전쟁 위협을 막을 수 있는 핵억제력을 충분히 갖춘 단계에 가서야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3. 대화의 전제조건들의 대격돌-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대화인가 아니면 대북적대정책의 폐기를 전제로 하는 대화인가
미국의 대북대화제의에 대한 북의 보다 정교하게 정돈된 입장은 18일 국방위원회 정책국의 성명을 통해 확인된다. 정책국 성명도 미국의 대화제의에 대해 공격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북은 미국이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비핵화를 삼은 것에 특히 그 공격의 날을 세웠다. 북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 군대와 인민의 드팀없는 의지”라고 대전제를 깔았다. 그리고는 북이 핵무력을 가질 수밖에 없는 원인을 미국의 적대시정책 그리고 핵위협에로 돌렸다. 북이 핵을 ‘자위적 핵무력’이라는 개념화해 표현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북은 자신의 핵을 ‘세계의 비핵화’와 연동시키고 있다. “우리의 핵무력은 미국을 포함한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나라의 자주권과 최고리익을 수호하고 우리 공화국을 겨냥한 침략의 본거지들을 보복타격하기 위한 가장 위력한 수단으로 우리 군대와 인민의 수중에 흔들림 없이 장악되여 있게 될것”이라고 밝힌 것이다. 이는 세계의 비핵화가 실현될 때까지 북은 핵을 포기하지 않은 것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그 어떤 북미대화도 거부하겠다는 것을 북은 명료하게 한 셈이다.
북은 정책국 성명에서 미국에게 대화를 위한 실천적 조치 세 가지를 주문했다.
북의 주장에 기초하게 되면 북미대화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미국은 첫째로 북을 반대하여 벌려온 모든 ‘도발행위’들을 즉시 중지하고 이에 대해 사죄를 해야한다. 이와 관련하여 미국이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제결의를 철회하는 일이다. 미국은 두 번째로 북을 겨냥한 ‘핵전쟁연습’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세계 앞에 공언해야한다. 미국은 마지막으로 한반도에 배치된 ‘핵전쟁수단’을 철수하고 재투입시도를 단념해야한다.
북은 아울러 대화의 원칙까지도 제시했다. ‘자주권 존중과 평등 원칙’이 그것이다. 이른바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를 하자는 것이다. 북은 ‘미국이 우리가 먼저 비핵화 의지를 보여주어야 대화를 하겠다고 하는 것’에 대해 ‘우리 당의 노선과 공화국의 법을 감히 무시하려 드는 오만무례하기 그지없는 적대행위’라고 주장함으로써 자주권을 존중하지 않은 것으로 규정해버렸다. 이어 ‘핵몽둥이를 휘둘러대는 상대와의 굴욕적인 협상탁에는 마주 앉을 수 없다’고 밝힘으로써 평등한 대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은 북의 제기를 거부했다. 케리 장관이 18일 상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북이 주문한 실천적 조치 세 가지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예상되었던 결과였다.
결국, 현 정세는 대화국면진입과 관련하여 비핵화를 전제로 하는 대화와 대북대결정책의 폐기를 전제로 하는 대화가 정면에서 충돌하고 있는 양상을 띠고 있다. 아직은 치열하게 진전되고 있지는 않지만 과연 접점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의구심이 정세분석가들에게 생겨날 만도 하다.
이렇게 되면 결국, 대화는 없게 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미국이 대화를 시도하지만 진정성이 없을 뿐만 아니라 더구나 비핵화를 전제로 하고 있고 북이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적대정책폐기를 제시하지만 미국이 받아들이지 않게 되어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다. 대화가 없다는 것은 긴장과 대결이 지속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북이 16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의 대조선적대시정책과 핵위협에 맞서 군사훈련을 하겠다는 것까지도 밝혔다는 것은 매우 특별하게 다가온다.
"세계최대의 핵보유국인 미국이 핵몽둥이를 쳐들고 위협 공갈하는 이상 우리가 핵무력 강화로 자위적 대응을 하는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미국이 우리를 겨냥해 가상목표를 정하고 핵타격 훈련을 한 것만큼 우리도 그에 대응한 훈련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 있다"
미국의 전제조건인 ‘비핵화’와 북이 전제조건인 ‘적대정책폐기’가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하게 되었을 때 크게 부각되고 문제시될 정세지점이다. 한반도 여전히 위험한 것이다.
[출처: 자주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