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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25> 제3세계의 눈으로 서구열강을 파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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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3-03-25 03:19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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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25> 3세계의 눈으로 서구열강을 파헤친다.

 

마르크스주의의 진정한 의미

마르크스주의와 주체사상은 무엇이 다른가?

 

미국의 오리건 대학에서 종교와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여 사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필 주커먼 (P. Zukerman) 박사는 <신 없는 사회,Society without God> 라는 책을 출판하여 2009년에 포워드 매가진이 선정한 올해의 책은상을 수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2011년에 그의 유명한 책 <신앙은 그만, Faith no more>을 출판하여 서구문명과 미국의 바탕이 되고 있는 기독교에 대하여 가차 없는 비판의 글을 발표했다. 

사실에 있어서 주커먼 박사는 2005-2006년에 덴마크와 스웨덴에서 생활을 하면서 북유럽에 대한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였다. 그의 연구방법은 수 없이 많은 남녀노소, 빈부귀천 다양한 현지인들 수백 명과 인터뷰를 통하여 방대한 자료를 수집했는데 이 자료들을 사회학적인 렌즈를 통하여 관찰하면서 분석 했다. 

주커먼 박사가 북유럽에서 사회학적인 렌즈를 통하여 발견한 요점들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 하느님이 없는 사회는 지상의 지옥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오늘 미국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하지만 북유럽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기독교 보수주의적 관습이 사라저도 북유럽 사람들은 여전히 훌륭하게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 

주커먼 박사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 클레어몬트는 인구가 33,000명으로 비교적 작은 도시인데 매일 경찰을 보면서 살고 있다. 하지만 북유럽에서 한 달 동안 살았는데도 이곳에서 경찰이 전혀 눈에 띄지 않는 것을 느끼게 됐다. 

미국인들은 유명한 목사들의 말을 들으면서 기독교가 무서운 범죄를 낮춘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북유럽의 사람들은 범죄 사건이 지구상에서 가장 낮은 것을 자랑하고 있는데 하느님 때문에 범죄율이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한다. 

. 북유럽의 사람들이 결혼식을 교회에서 거행하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북유럽은 <신이 없는 사회>이지만 그렇다고 <교회가 없는 사회>는 아니다. 교회에서 결혼식 가행하는 것을 선호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느님의 축복을 받기 위함이 절대로 아니다. 종교적 의미보다는 문화적인 전통을 따르면서 낭만적인 분이기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결혼예식을 썰렁한 시청의 건물 안에서 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웅장한 교회 건물안에서 거행하는 것이 그 얼마나 로맨틱한가? 

. 미국에서 정치인들이 투표에 당선이 되려면 반드시 종교와 교파의 소속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만일 미국에서 어떤 후보자가 무종교인이나 무신론자라고 하면서 출마를 한다면 그것은 차라리 알카에다 조직원이 미국에서 공직에 출마하는 것과 비슷한 사건이 될 것이다. 

하지만 북유럽에서는 공직에 출마하는 사람이 무슨 종교를 믿는다고 말로 표시를 하지 않는다. 공직에 출마하는 사람이 종교가 전혀 없다고 하면 그 편이 훨씬 더 유리하다. 미국에서는 불신자가 공직에 출마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75%이상 된다고 한다. 하지만 북유럽에서는 10%미만에 불과하다. 

북유럽에서 만일 어떤 사람이 나는 <하느님이나 예수를 믿는다>라고 공개적으로 말하기를 좋아하면 그 사람을 <이상한 사람, 비정상적인 사람, 괴짜인>으로 낙인을 찍는다. 

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후에 조성된 국제정세는 동서대립의 이른바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시작됐다. 냉전시대의 대립으로 인하여 회생물이 된 것은 바로 코리아 반도가 북과 남으로 분열된 비극이었다. 냉전시대의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구소련의 몰락으로 인하여 바람과 함께 사라져 없어지고 말았다. 그런데 오직 코리아 반도의 분열과 대립만이 아직도 요지부동으로 그대로 남아 있다.

오늘 세계의 문제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의 문제가 절대로 아니다. 오늘 세계의 문제는 굶주리는 세계배부른 세계로 양분되어 있는 문제이다. 굶주림의 원인이 무엇인가? 분명히 먹을 것이 모자라서 아니다. 굶주림의 근본적 원인은 토지와 식량을 독차지하고 있는 이른바 기독교 국가라고 큰소리치기를 좋아하는 미국이 제국주의적 패권을 쥐고 세계를 양분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을 추종 하는 서방의 기독교 국가들이 기독교의 근본정신을 배반하고 오직 물질주의와 제국주의적인 패권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3318일 한국일보가 밝힌 기사에 의하면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이 진실한 기독교인임을 과시하면서 저지른 이라크 전쟁의 전비가 6조 달러가 넘는다고 했다.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가 134천명이며 그외의 사망자 총수는 18만 명이라고 한다. 

어디 이라크전의 과거사의 문제뿐인가? 오늘 현재 코리아반도에서 세계적인 긴박한 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이것도 역시 기독교인 오바마 대통령이 통치하고 있는 미국이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 전쟁을 코리아 반도에서 일으키려고 <키 리졸부, 독수리> 북침전쟁 연습을 강행하면서 극단적인 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이와 같은 긴박한 위기상황 하에서 미국이 지원하고 있는 한국의 이명박근혜정권은 <우리 민족끼리 남북자주평화통일> 방안을 무조건 반대 하고 있다. 

이명박근해 정권은 왜 그런가? 이에 대하여 심도 깊은 고찰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서구문명의 기독교적 자본주의 체제에 대하여 칼 마르크스는 왜 어찌하여 영국에서 혁명의 광풍을 일으켰는가? 이에 대하여 고찰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마르크스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올바른 이해

 

인류의 역사에서 급격한 변화와 혁명은 계속하여 일어났다. 루터의 종교개혁, 기계화 발전에 의한 산업혁명, 나폴레옹에 의한 정치혁명 심지어 일본의 명지시대의 혁명등 모두가 다 역사발전에 있어서 사회혁명은 불가피한 사건들 이였다. 

마르크스(1818- 1883)의 사회혁명에 대한 방대한 자료에 대하여 이 짧은 글에서 도저히 다 언급할 수 없다. 그럼으로 극히 간추린 자료를 통하여 오늘 우리 조국의 <자주화평화통일>을 위하여 관련된 중요한 과제와 논점을 살펴보려고 한다. 

마르크스 사회주의 혁명을 생각해 보면 당시의 독일, 프랑스 그리고 영국을 비롯한 서구사회와 기독교는 어떠했는가를 가히 이해할 수 있다. 당시의 사람들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자각의 눈뜨기를 시작하였다. 하지만 부패한 교권과 상업 적 자본가들의 밀착된 결탁은 일반 민중들의 사회적 삶의 불안과 위협이 되고 있을 뿐이었다. 하느님을 믿는 곳에는 진실이 있어야하고 정치에는 정의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개인의 해방과 사회의 해방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 당시 기독교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고 상업적 자본가들로 인한 사회적 불안과 공포심은 유럽 하늘에 가득차 있었다. 독일 태생인 마르크스는 독일에 실망하여 프랑스로 이주하였으며 프랑스 혁명에 대하여 연구하게 됐다. 

마르크스는 헤겔 법철학비판 서문등을 출판하여 학문적 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프랑스에서 마르크스는 평생의 동지가 된 엥겔스를 만나게 됐다. 1845년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독일 이데올로기를 공저로 출판했으며 1848년에 발생한 프랑스 혁명을 마르크스는 적극 도와주기도 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프랑스 혁명이 실패함으로 실망하여 영국으로 망명을 하게 됐다. 영국에서 마르크스는 프랑스 혁명이 실패한 의미를 반추하는 <1848년 프랑스 계급투쟁>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영국 런던에서 마르크스는 한때 최하의 빈민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와중에서 그는 1864년에 <세계노동자 단결>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간행물 <1인터내셔널>을 출판하였다. 그 후 마르크스는 영국에서 8년 동안 최저의 빈민으로서 연구 활동을 계속하여 <자본론>을 저술했다. 

마르크스는 말년에 평생의 동지인 엥겔스의 경제적 도움으로 비교적 안정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1873년에 뇌졸증으로 건강이 악화된 중에서도 단편적인 저서활동을 계속하다가 1883년에 안락의자에 앉은 채로 별세했다. 

왜 마르크스가 옳았으며 어찌하여 그의 혁명적 사상이 서구문명에서 유명했는가?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혁명사상과 투쟁에 대하여 간략하게 요약하여 살펴 본다. 

. 마르크스의 역사관은 인류의 역사는 절대로 우연적이 아니라 법칙적으로 발전하는데 그 발전의 원동력은 개인의 실행력과 동시에 초개인적인 사회적인 원동력에 의하여 발전한다. 그런데 이 역사발전의 실현은 사회적 계급투쟁이라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자본주의에 대항하여 싸우는 계급투쟁은 절대로 우연적이 아니며 또 맹목적이 아니다. 역사의 각 시대에 내재하고 있는 인간의 욕구와 생산력은 낡은 구사회에서부터 정화되어 발전하는 과정에 있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주장하기를 개인 또는 계급투쟁은 절대로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생산의 발전을 통하여 인류의 의식을 발전시키고 또 발전된 의식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역사의 발전의 방향에 있어서 민중들이 결정을 하는냐 안하는냐에 따라서 좌우된다고 주장한다. 그럼으로 자본주의적 사회형태는 결국에 가서 민중의 승리로 끝날 것이며 착취와 약탈의 시대는 끝난다고 한다. 

인간다운 인간의 삶의 실현되고 역사다운 역사의 발전이 시작되는 것은 오직 자본주의에 의하여 억압당하고 착취를 당하는 역사의 종결을 통해서만 성취된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 사회주의 혁명의 요점이다. 

마르크스 혁명사상에 대하여 감탄하는 것은 혁명사상에 대한 충성심과 그 목적에 대한 초개인적인 희생봉사 정신은 백절불굴의 열정으로 타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주의 민중들은 정부나 혹은 상부조직으로 부터 어떤 지시를 받으면 그들의 의기는 더욱 치솟는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가난을 극복하고 제국주의와 싸우는데 있어서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일생동안 자본주의에 시달리는 고난 속에 지내면서도 오히려 가난한 민중들의 정의로운 최후의 승리를 굳게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 마르크스주의를 사회주의라고 부른다. 사회주의는 인간이 자유를 획득하기위해서는 사회조직에 의한 계급적인 착취의 관계를 폐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는 사회조직의 변혁운동을 통해서만 계급적 착취의 굳은 철망을 폐지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주의는 사회제도의 개혁운동인데 특히 경제와 관련된 재산과 이득의 분배의 문제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있어서는 자본가와 노동자는 계급과 빈부의 차이로 완전히 갈라져 있다. 만일 불경기에 부딪치면 자본가는 아무 대책이나 양심의 가책 없이 노동자들을 제멋대로 해고하고 거리에 던져진다. 

그러므로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하여 잘못된 비인간적이고 비종교적이며 비사회적인 자본주의 제도의 병폐에 대한 수정을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인간적이며 종교적으로도 당연하다. 이 운동이 이른바 사회주의운동이다. 

. 마르크스는 도덕주의에 기초한 사회운동을 전개한다. 1864년에 마르크스가 기초한 <국제노동자협회 규약>에 의하면 도덕주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모든 단체와 개인은 진리, 정의, 도덕을 인종과 종교와 국적의 관계없이 행위의 기초로 인정함을 선언한다>라고 했다. 이로서 마르크스는 진리와 정의에 대한 기본적인 요소는 도덕이며 도덕은 <사회적 본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도덕이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신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인간이 사회를 조직하고 유지하기 위하여 가지는 본능이며 도덕은 정의와 사랑과 평등을 추구하는 사회적 충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덕률은 동물에게 존재하지 않고 오직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사회적 요소이다. 다시 말하면 도덕은 인간의 사회적 요구에 의하여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사회 형태의 변화에 따라서 변화할 수 있다. 그럼으로 절대로 만대불변의 도덕을 주장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사회주의적 생산관계가 정의롭게 실현되기만 하면 여기에 비로소 계급의 대립은 극복되고 도덕은 <계급적 도덕>이 아니라 참된 <인간적 도덕>이 가능하게 된다. 

. 마르크스의 혁명론은 헤겔 철학의 정반합 이론에 의하여 발전했다. 물에 열을 가하면 일정한 온도에서 기체로 변하여 폭파하여 밖으로 나온다. 즉 량의 변화를 통하여 질에의 전환가 이루어진다. 이와 같이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도 급격한 변화가 사회제도상에서 발생하고 있다. 진화는 서서히 변하지만 혁명은 급속히 변하는 형상이다. 

흐르는 물이 어느 한 곳에서 폭포를 이루는 것처럼 사회적 역사에 있어서 돌연히 발생하는 혁명적 변화가 있다. 이와 같은 혁명적 변화는 이론이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로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뜻한다. 

마르크스는 혁명을 통하지 않고서는 자본주의자들이 고정적 이익추구에만 몰두하고 자기중심으로만 사회를 이끌어 가는 것을 절대로 막을 수 없다고 단정했다. 피지배계급의 정치혁명적인 행동에 의해서만 인류 사회는 전진할 수 있다고 마르크스는 주장한다. 

혁명은 때로는 폭력적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지배계급이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도리어 지배계급은 그 지배하는 폭력을 총동원하여 억압하는 수단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폭력을 먼저 사용하는 편은 지배계급이다. 피지배계급이 먼저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럼으로 사회개혁을 위한 약자들의 혁명적 투쟁방법은 필연적으로 폭력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주장하기를 오직 정치 혁명을 통해서만 지배계급이 전복되고 지배계급의 본질은 타파된다. 이렇게 함으로서 자유인의 자유사회가 실현된다고 마르크스주의는 주장한다. (마르크스의 공산주의 선언참조)

 

마르크스주의와 주체사상은 무엇이 다른가?

 

마르크스주의와 주체사상은 민족관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다르다. 마르크스가 몸담아 성장하며 살아 온 독일, 프랑스와 영국은 역사적으로 후진국들을 침략하고 수탈하여 식민화하는 제국주의 길을 걸어 왔다. 그런데 침략과 수탈의 방법으로 부를 축척한 서구 문명국들은 축적한 부를 골고루 분배하지 아니하고 시민사회에서 계층을 위주로 하는 <계급사회>가 굳어져가고 있을 뿐이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서구의 문명국들은 자국 내에서는 인간평등 문제를 도외시하고 <계급사회>가 굳어져가고 있었으며 대외적으로는 다른 민족의 주체성 따위는 송두리째 짓밟으면서 서구 제국주의가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르크스의 혁명운동은 오직 인간평등을 도외시하고 악질적인 <계급사회>가 조성되어 뿌리깊이 자리잡고 있는 서구 자본주의적 부패한 정권에 항거하여 개혁적인 사회주의 혁명운동을 전개했던 것이다. 그럼으로 마르크스의 혁명의 주 관점은 오직 자본주의 국가들의 내부에서 발생하고 있는 자본가들의 경제독점 문제와 결부시킨 혁명운동이었다. 

마르크스주의 유물사관 에서는 모든 서구 유럽의 사회현상의 기초에는 계급들의 이해관계가 놓여 있고 서구 문명의 역사는 경제적 계급투쟁의 역사라는 관점에서부터 출발했다. 그럼으로 마르크스주의는 서구문명권 하에서 개인과 집단적인 계급해방만이 인간해방의 전부로 보았다. 

그럼으로 마르크스주의가 주장하는 인간해방 문제에 있어서 한계점이 들어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오직 유럽의 사회적 집단가운데 <계급>이 차지하는 특출한 지위와 문제를 주요시 했을 뿐이었으며, 세계적인 인류의 역사창조 활동에 있어서 <민족>이 차지하는 커다란 역할은 보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민족해방 문제에 있어서 독자적인 <민족>의 성격의 중요성을 간과함으로써 마르크스주의적 견해는 국제관계에 대하여는 이론적으로 미숙함을 지니고 있었다. 

만일 우리 민족이 일본의 식민지 침략을 저지할 수 있었다면.. 또 외세에 의하여 북남으로 분열시킨 술책을 방지할 수 있는 주체적 역량이 있었다면.. 우리민족의 비극적인 운명을 미리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은 모두 한 집안이라는 <민족>의 참뜻을 지킬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 우리 민족의 잘못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가? 마르크스주의를 지도이념으로 하였던 일련의 피지배 국가들이 사회주의 국가 건설에 실패한 이유가 무엇인가?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제3세게 나라들이 제각기 자기 민족의 주체의식을 강화하지 못한 것이 실패의 원인의 길이 있을 뿐이다. 마르크스주의에는 오직 <계급>의 문제가 있을 뿐 <민족>의 주체의식을 강화시키는 뼈대가 완전히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인간해방을 주장함에 있어서 두 가지 뜻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는 마르크스주의에 의하면 인간해방은 경제적 해방을 통하여 <계급타파>를 성취함으로서 사회적 안전과 평화를 쟁취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둘째로 민족주의적 주체사상은 외세의 침략을 배격하고 자주적인 민족공동체를 성취하는 길만이 오직 참된 인간해방의 길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두 가지의 상이한 주장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인 분석을 시도해 본다. 

. 마르크스는 경제해방을 제일 중요시하면서 시민혁명을 통하여 계급주의를 완전히 타파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시 말하면 마르크스의 중요한 주장은 서구 문명의 선진국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시민혁명을 성공시킴으로서 고질적인 뿌리 깊은 경제적 <계급주의>를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마르크스는 사회주의적 혁명을 주장했지만 그의 사회주의 혁명운동에 있어서 중요한 요점은 경제적인 정의를 위한 사회제도 개혁을 위한 경제혁명을 주장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에 있어서 약점은 피지배 민족들이 당면한 민족해방 문제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답변을 피하고 오직 서구 문명사회에서 침략문제는 이미 지나간 옛 시대의 문제로만 여기고 있었다. 

. 민족관에서 마르크스주와 주체사상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경제문제에만 치중한 결과로 인하여 피지배국에 대한 역사적 관찰에 있어서 제한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주체사상은 마르크스주의가 극복하지 못한 제한성을 해결하면서 포괄적인 민족해방 문제를 정립하면서 민족통일의 근본방도를 제시해 주고 있다. 

. 마르크스주의는 유물사관에서 모든 사회현상의 기초에는 오직 경제관계로 인한 이해관계와 계급투쟁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함으로서 민족해방 문제를 경제문제로 귀속시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주체사상은 마르크스주의 그와 같은 오류에 대하여 제국주의의 침략에 항거하는 새로은 역사적인 민족관을 제시해 준다. 

다음은 주체사상이 밝히는 민족의 자주성과 민족의 생명체로서의 자주에 대하여 살펴보면서 분단된 조국통일을 위한 근본 방도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려 한다. 

. 자주성은 민족의 생명과 직결된 과제이다. 장구한 세월을 거처 다양한 사회제도가 교체되고 변화됨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동질성은 절대로 변하지 않고 가장 견고한 사회적 집단으로 존재한다. 

사회의 발전과정에서 사회의 기본 계급이 변하여 없어지고 무계급 사회가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그 후에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민족>이다 . 그럼으로 <민족>은 계급에 비하여 절대적으로 훨씬 높고 공고한 집단이며 민족공동체는 인류 역사의 과정에서 인간의 사회의 기본단위로 존재한다. 

각 민족의 독자적 자주성이 강화되고 저마다 민족의 독창성으로 민족의 자주성이 확립됨으로서 민족의 중요성은 오늘 미국 제국주의적 침략이 노골화 되고 있는 시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과제이며 피지배 민족들의 공동적인 추세로 대두되고 있다. 

. 민족의 자주성은 분단된 조국의 민족 통일을 전면적으로 추진하는 책임을 담당해야 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강대국들은 우리 민족의 주권과는 어긋나게 북과 남으로 가라 놓았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계급적 대립이 큰 문제지만 우리 민족의 문제는 <계급>의 문제가 아니라 외세침략으로 분열의 문제이며 또 외세의존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민족분단의 체제가 60년이 지났는데도 친일 친미 세력들이 한국 사회의 상층부를 독점하고 민족분열의 색깔론을 형성하여 반통일 체제를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오늘 우리민족의 통일문제는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발휘하여 우리 민족끼리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반통일 세력은 국제무대에 까지 우리 문제를 끌고 가서 민족의 수치를 당하고 있다.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어떤 나라에서든지 나라 안에서 분파로 싸우던 세력들도 외부에서 외적이 침략해 오면 분파사이의 싸움을 중단하고 분파간의 이해관계를 초월하고 민족적으로 단결하여 서로 협력함으로서 외세의 침략을 물리친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어떠한가? 민족 자주성의 확립하는 길이 바로 우리민족끼리의 길을 헤쳐 나아가야 하는 유일한 길이다. 분열의 상징이 외세라면 통일의 상징은 군사강국이다. 

군사강국을 뒷받침해 주는 길이 바로 핵보유국의 선포이다. 그러므로 핵보유의 유일한 목적은 분열의 원흉인 외세를 우리 땅에서 물리치기 위함이 근본적인 목적이다. 

. 민족의 자주성으로 민족통일을 성취한 후에 또 하나 중요한 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민족의 <주체의식>을 높이는 길이다. 민족의 <주체의식>을 높이는 것은 통일 민족이 주체적이며 진보적인 민족주의를 확립하여 민족적 주체의식을 강화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민족적 주체의식은 민족의 자주성에 기초하여 우수하고 고유한 우리 민족의 마음을 배양시켜 사대주의와 민족허무주의부터 탈피하도록 민중을 인도한다. 

주체의식은 우리 민족의 우수한 문화적 지식을 공유하고 나라와 민족에 대한 강력한 애국심을 가지고 민족의 번영과 행복을 위하여 헌신하도록 인도하는 중요한 공헌이 된다. 사대주의와 외세 의존적인 사고방식을 버리고 독자적으로 판단하면서 우리의 주권과 독자적 신념에 따라 민족문제를 풀어 나가는 힘은 오직 주체의식을 강화하는데 달여 있다. 

민족통일 과업은 창조적 사업이기 때문에 우리의 당면한 문제를 주체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민족의 주체적 신념에 따라 모든 문제를 풀어 나가야 한다. 외세에 대한 교조주의와 기계적 모방을 배격하고 민족 분단의 쓰라린 역사적인 현실을 토대로 하여 우리 민족의 특성에 맞게 투쟁해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민족적 주체사상의 슬기롭고 존엄한 교훈이다. 우리 민족의 통일의 대업을 승리의 길로 인도하고 성취하게 하는 길이 될 것이다.

 

이 글을 끝맺으며,

 

한국의 기독교는 사회적 불의를 묵인하는 노예적 종교이기 때문에 차라리 마르크스주의가 사회 정의를 대신하여 싸운다고 주장하면서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 많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그런가하면 사회 정의를 말하고 또 이명박근혜 정권에 대하여 비판의 말을 하기만 하면 마르크스주의를 추종하는 빨갱이라고 매도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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