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173] 황교안이 국무총리 되어서는 안 되는 10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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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태영 작성일15-12-06 11:09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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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173] 거짓과 위선으로 나라를 망치는 황교안 국무총리
박근혜 정권 창출과 호위 일동공신 기독교인 황교안
황교안이 국무총리 되어서는 안 되는 10가지 이유
유태영(재미동포전국연합회 고문)
황교안은1957년 생으로 경기고등학교 졸업생이다. 한국 사회에서 수재의 표식인 경기고등학교에서 3년 내내 <학도호국단 단장>을 지냈는데 자랑스러운 경기고의 교복보다는 오히려<교련복>을 즐겨 입던 학생이었다. 그 당시 <학도호국단>은 박정희 정권이 만들어놓은 독재 유신정권의 권위를 선호하는 교육의 풍토였다.
황교안은 1976년에 경기고등학교의 모범적 졸업생인데도 불구하고 서울대학 입학에 두 번이나 실패했다. 서울대 입학에 실패한 황교안은 차선으로 성균관대학 법학과에 입학하였다.
황교안은 서울대 입학을 두 번이나 실패한 것으로 하여 심리적 좌절감과 정신적 충격이 그의 삶의 행태에 있어서 주류사회 지향적 욕망으로 가득차 있는 기형적인 인물로 만들어지는 보상으로 표출되고 있었다.
황교안은 경기고등학교의 자랑스러운 교복보다는 오히려 <교련복>을 즐겨 입던 그의 특이한 심성의 발로가 여실히 나타났다. 황교안은 성균관대학 법대를 졸업한 후에 이를 악물고 <사회 주류>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철저한 적개심을 가슴 속에 품고 악전고투의 결단을 하고 있었다.
1981년에 전두환이 대통령 취임을 했으며, 황교안은 제2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황교안이 비록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법관이 되었다 할지라도 전두환 정권하에서는 <육사출신>과 <서울법대출신>이 아니면 선택의 길이 많치 않았다.
하지만 황교안은 유리한 선택의 길을 스스로 만들어 놓았다.
황교안은 <4.19 혁명은 사회적 혼란을 이르켰을 뿐이다>라고 왜곡된 평가절하의 주장을 했으며 박정희가 이르킨 5.16군사 쿠테타에 대해서는 <박정희 장군의 애국적인 민족을 위한 군사혁명이었다>라고 군정을 높이 찬양하는 주장을 했다.
황교안은 전두환 정권 하에서 애국적 법관으로 변신하여 유능한 <공안통 법관>으로 인정받는데 일단 성공했다. 그리하여 황교안은 <공안통 법관>이 된 이후에 사회적 주류에서 절대로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욕망을 쟁취하는데 일단 성공했다.
그리고 황교안은 자기 자신이 보수주의적 진실한 기독교 신자인 것을 과시했다.
황교안은 1981년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공안통>법관이 되었으며 1983년에는
극단적 보수주의 침례교 야간신학을 졸업하여 전도사가 되어 <하나님의 종>이 됐다.
황교안은 양의 탈을 쓴 전도사가 되어 보수주의 일변도의 한국 기독교의 허상을
여지없이 들어내 보이고 있었다.
<미국산 하나님>은 인디언 원주민과 흑인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삼은 죄악의 역사를 하나님의 정의와 축복이라고 주장한다. 황교안이 주장하는 <한국산 하나님>은 어떠한가?
황교안은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독재정권의 끝을 모르는 연속에 대하여 반공주의 국가를 건설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정의와 축복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국의 천주교인들은 박정희 정권을 찬양한 박홍 신부가 싫어서 성당에 안 간다고
했다. 그런데 한국의 개신교 기독교인들은 황교안이 싫고 미워서 교회에 안 간다는 소동을 이르키고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스스로 보수주의 기독교인으로 자처하면서 <하나님과 국정원>
을 분리할 수 없는 연결고리의 축복으로 여기고 있다. 오늘 한국의 정치와 기독교는 황교안 전도사-국무총리로 인하여 정치-기독교의 연결고리를 맺게 하는 괴상한 희대의 쑈를 연출하고 있다.
황교안 국무총리의 어처구니 없는 자질을 좀 더 살펴보기 위하여 다음의 자료들을
10가지로 나누어 무순으로 기록한다. 황교안 국무총리를 비판하기 위한 목적이 아
니라 <이래서는 정말 안 된다>라는 민족적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함이다.
1.황교안은 성규관 법대의 학생으로서 1977-1979년에 징병검사를 3차레나 연기받았다. 그리고 1980년 7월에는 징병검사에서 <두두러기 질환>으로 병역을 완전히 면제받았음으로 <군복무기록>이 전혀 없다.
<두두러기 질환> 때문에 병역을 면제받았다는 사실은 보통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확실한 <병역기피의 범죄>의 비상한 꼼수였다.
황교안은 1977 -1980년 3년간 <병역면제>를 받은 덕분으로1981년에<사법시험>
에 합격할 수 있었다.
무슨말인가 하면 군복무의 기본적 의무를 기피하기 위하여 두두러기 질환을 핑게
삼았으며 그 3년 동안에 <사법시험준비>를 하여1981년에 <사법고시 시험>에 합격하여 법관이 됐다.
전두환은1981년에 대통령이 됐고 황교안은 1981년에 법관이 됐다.
황교안은 전두환 정권 하에서 <친정부 우익 법관>으로서 승진을 계속하여 1991년
에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가 되어 <공안검사>로서 확고한 위치를 확보해 놓았다.
2. 황교안은 병역기피를 이용하여 <공안통검사>가 되어 부산, 대구, 서울 등 요지에서 유능한 검사장으로 계속 승진되었으며2013-2015년에는 법무장관이 됐다.
황교안이 <공안검사>로서 승진하고 출세한 것을 이해하는데 세 가지 요점이 있다.
첫째는 4.19 혁명을 혼란으로 규정하고 평가절하 했다. 둘째는 5.16박정희 군사 쿠
데타를 애국적인 혁명으로 평가하여 군부정권을 적극 지지했다. 셋째, 국가보안법을 적극 옹호 지지함으로서 친미-반통일을 기본정책으로 확정했다.
황교안은 심지어 통일 이후에도 국가보안법은 존속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황교안에 대하여 <Mr. 국가보안법>이라는 특이한 별명까지 얻은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있다.
3. 황교안의 막대한 부정축재 의혹은 그가 정말 보수주의 기독교인인가를 의심하
게된다. 황교안은 부산 고검검사장을 2011년8월에 퇴임하고 2013년 3월에 법무
장관이 될 때까지 1년 6개월 동안의 공백기간이 있었다.
황교안은 이 1년 6개월의 공백기간에 법무법인 태평양의 고문변호사가 되고 있었
다. 그런데 그는 이 공백기간에 태평양 로펌의 고문 변호사로서 12건의 사건들을 수임하여 17억 원의 수입을 획득했다. 뿐만 아니라 2013년 3월에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받을 때 태평양 로펌으로부터1억7천만원의 축하금을 받기고 했다.
황교안의 병역면제와 불법 탈세의혹 외에도 삼성 X파일 떡값 사건, 용인 수 지아파트 투기 의혹, 장남의 불법증여 등 허다한 의혹들에 대하여 언론들이 태산같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황교안은 법망을 이리저리 회피하는 <슈퍼양파>
작전으로 모든 의혹들을 무죄로 만들어놓고 있는 것이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황교안의 탈세와 모든 불법의혹들에 대하여 정부가 불문에 문제로 취급되는 것은 황교안을 무조건 신임하고 보호해주는 이명박근혜가 배후에 있기 때문이다.
4. 황교안 법무장관이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를 감행한 것은 어찌된 이유인
가? 그것은 채동욱 검찰종장이 국정원과 박근혜의 공작선거를 문제삼고 국정원장
원세훈에게 정치적 책임을 추궁하는데 대하여 황교안 법무장관이 불만을 쏟아내고 보복의 처사를 했기 때문이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법관으로서 국가의 법질서를 지키고 <인간적 양심>의 결단으
로서 원세훈 국정원장의 범죄행위에 대하여 명백히 진상을 밝히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황교안은 채동욱 검찰총장의 <인간적 양심>을 일일히 감시하고 있었다.
황교안 법무장관은 정치적 야심을 끝까지 채우기 위하여 채동욱 검찰총장을 정권에서 추방하고 몰아내기 위하여 채동욱의 <혼외 아들> 논란을 고의적으로 일으켜 검찰총장직에서 강제로 쫓아내는데 성공했다.
채동윽의 <인간적 양심> 과 황교안의 <종교적 양심>의 대결은 부패된 사회에서 항
상 왜곡된 결과를 초래하여 정의와 허위가 뒤바뀌는 비극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5. 세월호 참사에 대하여 박근혜는 모든 책임을 구원파에 전가시키고 있다. 히지만 황교안 법무장관은 박근혜가 말하는 구원파의 비리에 대하여 어떠한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일절 말이 없었다.
세월호 침몰로 인하여 아들 딸을 잃은 부모들의 울부짖음에 대하여 황교안 전도사
법무장관의 공안정국은 오직 <좌경의 위험>이 있다고 협박만을 하고 있다.
황교안 법무장관은 진실한 기독교 전도사로서 구제사업과 선교에 사명감을 항상
역설히고 있으므로 교계에서 큰 화제로 선전되고 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교안 전도사-법무장관은 어찌하여 세월호 희생자들의 비참한 비극을 모르는척
하고만 있었는가 ?
황교안 전도사-국무총리로서 세월호 유가족들의 슬픔의 눈물을 딱아주기 바란다.
황교안 전도사-국무총리는 여야에 억매이지 말고 예수정신을 실천하기를 바란다.
2015년 12월 1일에 국회에서 여당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세월호 조사특별위
원회>가 박근혜를 <가해자>로 규정하고 그녀의 행적을 조사하기로 결정하였다.
지금까지 대통령으로서 <박근혜의 범죄행위>에 대한 조사신청서가120여 건이 접수됐다고 한다. 국민들은 박근혜를 <세월호 침몰 가해자>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황교안 법무장관은 세월호 침몰 시건에 대하여 <박근혜의 동반자>로 보아야 마땅하다.
6. 황교안은 2013년9월 4일에 국회에 출두하여 <이석기 내란음모사건>을 조작하
여 체포동의안을 제출했다. 그리고 2014년 2월3일에 징역 9넌을 확정했다.
황교안은 또다시 통합진보당을 모략하여 정당해산을 하도록 맹열히 작업했다. 황
교안 법무장관은 통합진보당을 모략하여 북한식 사회주의 실현을 위한 불순한 용
공주의적 조직이라고 모략했다. 그리하여 황교안은 2014년 12월 19일에 통진당
을 강제로 해체시켰다.
이것이 <하나님의 종-범무장관>으로서 할 짓인가?
7. 황교안 은 2011년 5월11일에 부산 호산나교회 특별집회에서 강연했다.
황교안 부산검사장은 강연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지칭하여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니까 나라가 흔들린다>라고 비난하는 발언을 하여 민주화 정권 출범에 대하여 악평하는 망언을 쏟아냈다.
황교안은 1989넌에 공안검사로 활약할 시절에 서경원 전 평민당 의원의 방북사건을 문제삼고 김대중도 재판에 넘겨지고 있었다라고 자랑스럽게 회고담을 말했다.
황교안 공안검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헤서도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니까>라는 악평발언을 계속하였으며 민주화 정권에 대하여 비판과 반기를 들고 있었다.
황교안은 2006년에 이명박 정부 하에서 승진의 혜택을 독차지하여 주로 검사장의 높은 직책을 계속한 후에 법무장관이 됐다. 황교안은 그의 모든 발언 중에서 항상 의식적으로 발언하는 소리는 <나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성공하였다>는 것을 자랑
한다.
<이명박 장로>와 <황교안 전도사>는 기독교의 특이한 그들만의 하나님을 서로 공
유하고 있는 것이다.
8. 2013년 대통령 선거에 국정원이 개입 조작하여 박근혜를 가짜 대통령으로 출생시
켰다. 가짜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통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민족적으로 서글프고 마음이 아플 뿐만 아나라 국제적으로 부끄럽고 수치스럽다.
국정원의 부정선거 조작사건을 수사하고 법적 절차를 진행하던 채동욱 검찰총장과
서울 중앙특별 수사팀은 원세훈 국정원장이 부정선거 조작의 총책임자인 것을 인
정하고 원세훈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에 대하여 황교안 법무장관이 전적으로 나타나 채동욱 검찰총장과 서울중앙의
특별팀의 활동에 정면으로 반대하면서 대통령 부정선거에 대한 <중거가 충분하지
않다>라고 주장하면서 검찰들의 활동에 재동을 걸었다.
황교안 법무장관은 원세훈 국정원의 부정선거 조작에 대한 수사활동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국정원의 부정선거 문제를 파헤치는 윤석열 부장검사와 박형철 검사에게 징계를 내려 각각 시골 지방으로 좌천시켰다.
이것은 황교안 법무장관이 국정원의 부정선거조작으로 박근혜가 가짜 대통령이 된 것을 끝까지 숨기려는 모략적 처사인 것이다. 그리고 황교안 법무쟝관은 원세훈의 부정선거 조작범죄 행위를 끝까지 숨기고 옹호하며 무죄로 석방하기를 강요했다.
하지만 서울 고등법원은 황교안의 강요를 거절하고 원세훈에게 징역 3년을 선고
했다.
9. 황교안은 이명박 정권 하에서 승진의 급행열차를 타고 김대중과 노무현 시절에서는 꿈도 꿀 수 없었던 승진을 계속하여 2008-2011년에 대구와 부산에서 검사장이 되어 이명박 대통령의 정권유지를 위하여 기둥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의 악명 높은 망국적인4대강 사업을 적극 지지했다.
박근혜는 국정원의 부정선거공작에 의하여 2013년2월25일에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런데 박근혜는 3월11일에 황교안을 제63대 법무장관으로 입명했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는 2넌 후2015년6 월18일에 황교안을 제 44대 국무총리로 임명했다.
박정희는 <인혁당 사건>을 항의하는 양심적 기독교인들에게 <정교분리>를 주장
하면서 기독교인들은 <예수만 믿고 정치에는 관려하지 말라>라고 했다.
그런데 박정희의 딸 박근혜는 아버지와는 정반대로 <정교일치>를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는 황교안 국무총리가 주장하는 <하나님 의 뜻>이 <친미반공주의 정치노선>
과 일치하기 때문에 <정교일치> 노선에 만족해 하고 있는 것이다.
황교안은 <세상법>보다 <교회법>이 더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황교안은 자기 자신이 법무장관과 국무총리가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을 펼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성취라고 자화자찬한다.
그런데 박근혜는 <하나님의 뜻이든 말든> 관심이 없고 오직 정권유지를 위하여 한국의 막강한 보수주의 기독교 세력의 <친미반공주의>를 최대의 정치적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박근혜는 황교안의 <하나님의 뜻>을 활용하는 방법으로서 황교안의 기회주의적
욕망을 만족시켜 주기 위하여 황교안을 <법무장관>과 <국무총리>로 임명했다.
황교안 전도사-국무총리는 오늘 타락하고 비뚤어진 한국 기독교를 더욱 더 우려스러운 위기와 위험을 조장하고 있다.
10. 오늘 한국은 <가짜대통령>에 <가짜국무총리>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박근혜와 비교하여 한 치의 차이점이 없는 황교안의 <가짜의 본질>이 여실히 폭로됐다.
황교안의 병력기피와 부정축재 의혹은 과학적 증거로 밝혀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렁이 담넘기 식으로 청문회를 그대로 통과시켜 <가짜국무총리>가 등
장했다.
황교안에 대한 <법무장관청문회>와 <국무총리청문회>는 자격에 대한 청문회가 아니라 <무사통과>를 위한 형식적인 청문회들이었다.
황교안이 관련된 2012년 <사면의혹사건>을 비롯하여2013년 <법무장관 청문회>
와2015년 <국무총리 청문회>에서 청문위원들이 요구한 자료를 황교안은 재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교안은 국회의 다수통과를 획득하여 법무장관과 국
무총리로 취임했다.
인사청문회를 무력화시킨데 대하여 <깜깜이 청문회> <황교안 법>이라는 유행어가
박근혜 정가에서 비밀리에 유행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 내부 사정을 잘아는 어떤 한 법조인은 황교안의 무사통과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것은 <박근혜-황교안의 상습적인 승리전략 이다>라고 평했다.
이 글을 끝 맺으며,
박근혜는 국무총리 후보자로 5명 후보자를 선택헸다. 김용준, 안대희, 이완구 세 후보자들은 아들의 병역기피와 천문학적인 거액의 부정축재들이 백일하에 노출
되어 모두 다 낙마했다.
박근혜는 할 수 없이 종교인 두 사람 후보자를 선택했다. 문창국과 황교안 이다.
문창국은 언론인으로 한국 보수언론계의 대표적 위치에 있다. 문창국은 대형교회 현직 장로이기도 하다.
문창국은 극렬한 보수주의 신앙의 소유자이다. 그는 교회 강연에서 친일파적인
의미가 내포된 강연을 하여 문제가 되고 있다. <일본의 36년 식민지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을 수 있다. 라고 주장했다. 이것을 기독교적 역사관이라고 주장했다.
독실한 기독교인 문창국의 낙마에도 불구하고 박근혜는 또다시 보수주의 교회의 전도사 황교안을 국무총리 후보자로 선택했다. 황교안도 역시 기독교적 역사관을
주장한다.
그런데 박근혜는 왜 어찌하여 기독교인을 최종 후보자로 선택했을가?
그 대답은 미국 때문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국의 분단은 불변의 정책이다.
그럼으로 민족통일보다는 <하나님의 뜻> 우선주의가 친미반공-반통일 정책을 지속하는데 있어서 박근혜에게 유리하고 필요한 것이다. 박근혜가 문창국과 황교안을 최종 국무총리 후보자로 추천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끝. (12/3/15. 유태영)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5-12-06 11:15:08 새 소식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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