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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일본군성노예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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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양리 작성일16-01-06 11:2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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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일본군성노예문제

조선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전 소장, 조선력사학회 회장 조희승

 

지금 온세계가 들끓고있다. 일본군성노예문제때문이다. 지난 2015년 12월 28일 서울의 외교부청사앞에서 남조선의 윤병세외교부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외상이 공동기자회견이라는것을 벌려놓고 위안부문제는 해결되였다고 전격 선포한것이다.

세상에 아연이라는 말이 있다. 너무 놀라서 벙어리처럼 말이 안나간다는 뜻이다. 그래서 벙어리 《아》(唖)에 그럴 《연》자를 달아서 아연(唖然)이라고 부른다. 《위안부문제타결》이라는 광대극보도를 듣고 너무 어처구니없고 놀라고 괴이해서 말이 안나갔다.

어쩌면 그럴수 있을가.일본군성노예문제를 정치적흥정거리로 삼다니…

그날 일본측은 위안부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하에 다수 녀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일본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하였고 이어 아베총리는 다시한번 위안부로 많은 고통을 겪은 모든 분들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전했다.

이른바 《한일수교 50돐》에 즈음하여 두 나라 외교수장이 모여 일본군위안부문제는 해결되였다고 하였는데 50년만에 또다시 날치기로 《걸림돌》을 《제거》한것이다.

지난 반세기전에 《한일회담》,《한일협정》을 정치적모략극의 날치기로 조작하더니 이번에도 또 그러한 날치기《명성》을 떨쳤다.

  주지하는바와 같이 1965년의 《한일회담》때 다른 모든것은 《타결》되였는데 략탈문화재반환문제만이 걸림돌이 되였다. 그래서 남조선에서는 박정희의 조카사위로서 당시의 중앙정보부 부장인 김종필과 당시 일본외상인 오히라가 만나 정치적흥정을 막후에서 벌려 《김-오히라메모》가 나왔다.

  50년전에 특등친일파 박정희가 그따위짓을 하더니 오늘은 그의 딸이 또 그러한 짓을 하였다. 그러나 《일본군성노예》문제는 절대로 그러한 정치적흥정거리가 될수 없으며 그렇게 하여 해결되는것이 결코 아니다.

일본군성노예-일본군위안부문제는 이른바 두 나라간의 《타결》로 해결될수 있는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

  일본군성노예문제는 일본과 남조선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일제《황군》이 20만에 달하는 젊은 조선녀성들을 끌어갈 때 38°선이남지역의 녀성들만을 끌어간것이 아니였다.

도대체 그때 북과 남이란것이 있었던가. 위안부생활을 강요당한 위안부할머니들은 남에도 있고 북에도 있다. 왜 남조선과 《타결》되면 해결되는 문제이겠는가. 이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일본의 민간조사단체가 추산한데 의하면 제2차 세계대전시기 일본군이 《위안부》로 만들어 성노예생활을 강요한 녀성은 대략 70만이 넘는다고 한다. 성노예생활을 강요당한 녀성은 북과 남의 조선녀성과 중국,필리핀, 등 아시아와 유럽의 각이한 국가와 민족의 젊은 녀성들이 강제로 또는 사기협잡에 의해 련행되였다.

  따라서 일본과 남조선의 위정자들이 모여 위안부문제가 해결되였다고 기자회견에서 선포한것자체가 언어도단이고 어불성설이다.

또 일본정부가 《녀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히고》《책임을 통절하게 느낀다》고 하였고 아베총리가 《다시한번 위안부로 많은 고통을 겪은 모든 분들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한다.》고 전했다고 하였는데 속이 빤드름하게 들여다보이는 위선이고 위작이다.

 이 보도에 접하면서 떠오르는것이 있었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인 1998년에 있었던 일이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고 김학순(1924-1997)할머니가 1991년 8월 자기가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련행되고 성노예생활을 강요당한 내용을 기자회견을 통하여 폭로하였다. 같은해 12월 일본국을 상대로 제소하였다.

 김학순할머니는 길림성태생인데 아버지가 죽은 다음 어머니와 함께 살다가 그후 중국에 갔는데 베이징에서 일본군부대에 강제련행당하여 성노예생활을 강요당하였다. 그 할머니는 1997년 12월에 사망하였다. 이것이 계기가 되여 수많은 위안부피해자들이 들고일어났다. 그러던 1998년 한창 위안부문제가 부상됨으로써 일본과 아시아의 언론계를 떠들썩하게 할 때의 일이다.

  2005년 NHK(일본방송협회)는 《재판받은 전시성(性)폭력》이라는 프로를 방영하게 되여있었다. 그런데 방영직전에 당시의 경제산업상이였던 나까가와 쇼이찌(中川 昭一)와 자민당간사장인 아베 신조(安部 晋三)는 《비뚤어진 내용》이 들어있다고 하면서 NHK간부들에게 정치적압력을 가함으로써 《종군위안부》들의 증언과 《일본병(日本兵)에 의한 강간이나 위안부제도는 〈인도에 대한 죄〉에 해당하며 천황에게 책임이 있다.》고 한 민간급에서 조직진행한 녀성국제전범법정의 결론부분을 대량적으로 삭제하도록 한 사건이다.

 이에 대하여 일본사회각계에서는 언론보도의 자유를 엄중위협하는 위헌적행위이며 전시(일제시기의)하에서의 《검열》을 상키시킨다고 항의가 비발치듯 하였으나 일본정부는 도리여 《지적만 했을뿐 개입이나 간섭이 아니였다.》고 딴전을 부리였다. 일본정부는 가재는 게편이라고 나까가와와 아베를 비호두던하였던것이다.

이런 사실외에도 아베총리는 력사적으로 일본군성노예문제를 시종일관 외면하고 부인하며 모독하였다. 지나간 2015년 한해만 놓고보아도 아베는 중요한 계기때마다 기자회견을 비롯한 여러 계기에서 일본군성노예문제를 외곡하는 발언들을 꺼리낌없이 내뱉았다.

 2015년 3월 30일 아베총리는 일본국회 중의원예산위원회에서 위안부문제를 둘러싼 외국신문의 회견기사와 관련하여 《이 문제로 하여 인신매매에 대한 론의도 벌어진것은 사실이다》고 함으로써 일본군위안부문제를 《인신매매》로 취급하였고 악어의 눈물마냥 《위안부녀성들에 대해 가슴이 아프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또한 아베총리는 2015년 8월 일제패망 70년을 맞으면서 한 담화에서 일본군위안부에 대하여 사죄한마디 하지 않았고 마치도 가해자의 립장이 아니라 피해자인것처럼 외면하였다.

  또 얼마전(2015년 12월) 창당 60년을 맞으면서 일본자민당은 력사검증위원회라는것을 내왔다. 그것은 아베총리의 직속 기구로서 검증포괄범위는 조선을 반식민지로 전락시킨 1894년의 청일전쟁과 련합국의 일본점령정책까지 폭넓게 다루도록 되여있다. 심지어 남경대학살과 일본군위안부문제도 포함된다고 한다. 이에 앞서 2014년에는 석달동안이나 《고노담화》를 검증한 뒤 《위안부강제련행의 증거가 없다》는 보고서를 제출함으로써 거센 국제적비난을 받았다.

이러한 아베총리가 성노예생활을 강요당한 《일본군위안부》들에 대하여 《통절한 책임을 느낀다》고 하였는데 무슨 책임을 어떻게 느낀다는것인지 도무지 알수 없다. 몇푼의 돈으로 굼때서 어떻게 하자는것인지. 기금이란 그전날의 《아시아녀성의 기금》이나 본질은 같지 않겠는지.

  《고노담화》를 부인할 때에는 《일본군위안부》의 강제성이 없었다고 하였지만 이번에는 《일본군의 관여》가 있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이제까지의 모든 《담화》와 기자회견장에서의 발언을 뒤집는것인지 전혀 가늠이 안간다.

   일제시기의 《일본군위안부》, 일본군성노예문제는 말마디로 굼땔수 없으며 그냥 스쳐지나갈수 없는 엄중한 인권, 인륜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도의 죄》에 어긋하는 다시 말하여 반인륜적범죄이기때문이다. 반인륜적범죄에는 시효가 적용될수 없다.

 일본은 패망을 앞두고 조선총독부와 대만총독부를 비롯하여 모든 출장기관들과 군부대들에 긴급지령을 내려 위안소관련자료들을 소각할것을 명령함으로써 증거인멸에 나섰다. 하지만 최근에도 1942년당시 먄마주둔 일본군 18사단소속 위안소관련자료들이 미국립문서보관서에서 발굴(2015년초)된것처럼 관련자료들이 속속 드러나고있다.

  여기서 성노예생활을 강요당한 녀성들의 대다수가 조선녀성이였다는것은 물론이다.

세계최대의 인권침해국인 일본이 위안부문제를 가지고 오그랑수를 쓰면서 이리저리 회피하다가 이번에 《정치적타결》로 어물쩍해서 넘기였다. 그러나 이러한 진정성없는  《책임》과 《사죄》는 그 누구도 믿지 않으며 납득시킬수 없다.

마지막으로 이번 일본군성노예문제의 《정치적타결》에 뻗친 미국의 검은 촉수에 대하여 한마디 한다.

지나간 50년전 《한일회담》이 타결되게 된것도 미국의 압력에 의한것이였다. 리승만시대에 이러저리 난항을 보이던 일본과 남조선의 《회담》이 박정희가 권좌에 올라 앉자마자 급류를 타고 《타결》된것은 전적으로 미국의 압력이 있었기때문이다.

 이번 역시 그렇다. 아베로서는 일본군성노예문제를 가지고 《군이 관여》하였다거나  《책임을 통감》한다느니, 《사죄와 반성의 마음》같은것은 꼬물만큼도 없었으나 상전의 압력에 굴복하여 하는수없이 그렇게 가면을 쓴 놀음을 하였다는것을 삼척동자도 알수 있다. 여러 언론들이 그에 대하여 시사하는 보도를 날린것은 우연치 않다. 이 한가지 사실을 놓고 자주가 없는 정치가 안아오는 비극의 후과는 시간이 흐를수록 얼마나 큰가하는것을 절감하는 사람은 나혼자뿐이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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