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독: 박정희와 이현란의 관계, 박근혜의 정체 박정희가 많은 여자관계를 가졌다는 것, 육영수 시절부터 그랬다는 것은 유명하다. 하지만, 그 여러 여자들 중에 박정희의 둘째 부인 격이던 이현란 만큼은 좀 색다르므로 고찰해보고자 한다. 이현란은 1947년부터 박정희와 이대 1년생으로서 동거를 시작한 여성으로 1948년 11~12월 6개월된 아들이 죽어 비통해하며 묻었다는 이야기가 박정희 관련기사에는 반드시 등장한다. 1948년11월이면 박정희가 여순반란사건 토벌대에 참가했다가 김창룡에게 체포되면서 사형언도를 받았다가 국군 내의 남로당 조직들을 죄 불면서 풀려나는 바로 그 시기이다. 이현란은 이북 출신이면서 공산당이 싫어 남한에 왔는데 남로당인 박정희와 엮였다고 매우 후회했다고 한다. 하여, 이현란은 박정희 관사를 1950년2월 혼자 떠날 때까지 가출과 방황을 여러번 하였으며 그럴 적마다 박정희는 울며 이현란을 찾아 다녔고 찾아서 다시 데려왔다고 한다. 이현란이 박정희와 살림하던 집에서 마지막 사라진 것이 1950년2월이고 박정희는 이후 매우 낙담하고 슬퍼했다는 것이 지인들의 표현이다. 1950년이면 바로 6.25가 터진 해이다. 6.25가 터지고 국군이 대구까지 쫓겨나던 그 때, 박정희는 육영수와 맞선을 보았으며 12월에는 결혼식을 치렀다. (12월이면 중공군의 역습으로 초비상이 났던 때다.) 전쟁 와중에서? 그랬던 것이다. 당시까지 박정희는 첫번 부인 김호남의 이혼거부로 이혼할 수 없었다. 그것 역시 11월에 협의이혼으로 마무리하여 12월 육영수와 혼인을 무사히 치르게 된다. 의문점이 드는 것은, 박정희가 이현란을 못 잊어하면서, 왜 다른 여성과 맞선을 그리 서둘렀을까. 또 결혼도 전쟁통인데 서둘렀던 것일까 하는 점이다. "이현란과 헤어졌을 때 박정희는 서른세살의 홀아비..박정희가 친구들을 배신하여 살아났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그의 근처에도 가지 않으려했다...1950년의 봄은 박정희에게 최악의 나날들이었다." "박정희는 비참한 모습이었습니다. 술에 취해서 내 방에 기어들어와서는 울기도 하고 잠을 못이루면서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나한테 하소연을 하다가 흐느꼈고..." 이현란이란 여성의 사진은 남아 있지 않으니, 이현란에 대해 전하여진 기록들로만 설명하면, 본 필자가 보건대, 딱 박근혜가 그려진다. 첫째. 이현란은 키 크며 이국적인 미인이었다. 둘째, 애교있고 매력적이다. 세째, 몸매가 날씬하며 성격이 쾌활했다. 네째. "화사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의 소유자" 다섯째. 이화여대 아동교육과를 다녔는데 '율동과목 점수가 가장 높았다'여섯째. 정신적 불안정 - 가출과 방황이 잦았다. "이현란은 여러 차례 가출을 했고 그 때마다 박정희가 찾으려 다녔다."일곱째, 정서적 불균형 - 쾌활과 우울함을 오간 듯. 여덟째. 차갑고 삐치기 잘 하는 성격. 박근혜씨의 출생일을 기준(1952.2월2일), 역으로 계산하면 임신일은 4월28일 경이다. 박정희는 1951년 중공군이 휴전선을 돌파하던 무렵, 일주일 휴가를 내어 육영수와 강릉에서 지내는데 그 마지막 날이 4월25일이었던 듯. 바로 이 시기에 국군 7사단이 괴멸하였고 그 공백을 박정희가 참모장으로 있던 9사단과 3사단이 메꾸었다고 전사에는 나온다. 육영수 여사의 성품은 인내심이 강하고 정서적으로 균형적이며 안정되어 있는 사람이다. 또한 불쌍한 사람에게 동정심이 강하다. 외모믄 예쁜 얼굴은 아니다. 이현란의 성품이 차갑고 삐치기 잘 할 것이라는 점은, 박정희가 그토록 울며 매달렸음에도 여러 번 뿌리치고 가출하다가 결국 몰래 집을 나가버리고 이틀 후 트럭까지 갖고 와 자기 짐을 다 꾸려 떠났다는 점에서 판단된다. 또 조울증 성향과 정서적 불균형이 있을 것이란 점 역시 잦은 가출 때문에 그렇게 판단되는 것이다. 육영수라면, 그런 상황에서 가출과 방황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육영수라면 불쌍하게 된 - 군에서 잘리고 친구들까지 떠나버린 - 박정희를 홀로 남겨두고 떠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현란은 아무리 빨갱이가 싫다지만, 전향까지 한 박정희를 끝내 거부하고 떠났으며 자기 짐까지 싸서 가버리는 차가움을 보여준다. 이국적인 미모라든지, 애교가 있고 매력적이어서 박정희가 그의 동료에게 헤어지기 싫다 말했다는 점에서 보듯 이현란은 애교가 매우 넘치고 매력이 있고 미모가 출중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실제, 이후 박정희는 최고 권력자가 되면서, 벼라별 미모의 여성들은 다 수청 들리게 하듯 하였는데, 이현란에의 미련 때문이 아니었을까. 육영수에게서 태어났다는 박근혜가 왜 그 성품이 육여사는 닮지 않고 이현란을 빼닮았을까. 게다가 외모까지 전혀 안 비슷할까. 연구대상이라 본다. 게다가 전란 중에 서둘러 결혼해 치운 일도, 박정희가 이현란을 그리 못 잊어하였음에도, 독특한 일이다. 더 생각하자면, 이현란은 가출이 잦았다. 여자가 남성과 살다가 가출하는 경우는 그리고 끝내 남자를 차버리는 이유는, 그 마음이 안 돌아서는 이유는, 새로운 다른 남성이 생기지 않고는 힘들다. 게다가 이현란은 당시 갈 데 없던 홀로 피난 내려왔던 신분 아니었던가. 박정희와 동거하게 된 시초도, 이대에서 방학이 되었는데 기숙사를 비워야 하는데 갈 곳이 없어 박정희가 그의 관사에 와 있으라 하여 그리 되었다고 한다. 이현란이 박정희와 동거하자마자 아이를 임신, 출산, 그 아들이 결국 6개월 살고 죽었지만, 이는, 이현란이 가임이 수월했음을 시사한다. 48년12월 군 감옥에서 풀려난 박정희는 오로지 갈 데 없이 이현란과 지내어야 했을 것이다. 헌데 아이가 추가로 안 들어섰다면 그것도 이상한 것이다. 갈 곳 없을 여자-미모의-가 하루 아침에 집을 나가고 이틀 후 다시 와 트럭으로 짐을 싸서 갔다는 것은 - 돈도 없었을 터 - 어딘가 갈 곳이 이미 있었음을 시사한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이후 이현란의 남동생이 박정희 때 창와대대 출입기자를 하였다고 한다. 왜 이현란은 그의 남동생이 청와대를 드나드는 꼴을 놔두었을까. 박정희는 왜 이현란의 남동생의 청와대 출입을 허락했을까? 그것이 왜 필요할까? 박근혜의 성격은 침울하고 쾌활하고 차갑고 냉담하며 유쾌하다가도 돌아서는 편이다. 한나라당에서도 가출한 전력이 있으며,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박정희의 얼굴과 육영수의 얼굴을 비교.검토해보았지만, 도통 닮아 보이지 않는 다는 것도 수수께끼 다. 다들 알듯이 육영수 여사에겐 애교라곤 약에 쓰려도 없다. 육여사의 성격에는 음울함도 없다. 변덕이나 삐침, 냉랭함 따위는 근처에도 오지 못한다. 이현란, 아니, 박근혜와 철두철미 반대 성격이다. 왜 박정희는 전란 중에 결혼을 서둘러 했을까. 이대생 이현란을 못 잊어 울며 찾고 다니던 남자가 말이다. 가장 큰 특징인, 박근혜 특유한 애교만땅, 사람을 녹을 듯 눈웃음치는 미모, 연예인 뺨치는 카메라 빨, 매력적이다 못해 서린 독기, 게다가 그 이기심과 냉기, 삐치며 비밀을 즐기는 고약함, 요가에 능숙하며 날씬한 외모 - 허리 사이즈 24.5 - 는 대체 어디에서 온 것들일까? 아니 더 나아가, 박근령을 외면하다 못해, 못 잡아 먹어 안달까지 하는 이유는 대체 무얼까? 이현란에게 그 수수께끼가 있음은 아닐지? (박근혜는 아버지가 죽자 그 피묻은 옷가지를 동생 근령에게 빨게 시킨다. 정상적인 누나라면 동생의 마음이 아플 것을 생각, 자기가 빨았을 것이다. 또 청와대에서 들고 나왔던 '대통령 용돈'이나 별도의 6억 현찰을 박근령과 나눴다는 기사도 없다. ) 육영수 여사는 늘 옷을 수수하게 입고 다니기로 유명했다. 하지만, 육영수의 큰 딸이라는 박근혜는 오히려 이현란처럼, 화사한 것을 좋아해 수시로 패션이 바뀐다. 오죽하면,대선출정 패션, 수해패션까지 등장할까. 정말 아리송하지 않은가? 박이 만약 이현란의 딸이라면, 박정희가 큰 딸을 제치고 박근혜에게 그리 무한 관대했던 이유도 나름 이해감직 한 것이다. 하지만, 설마? 설마 그렇다면 현대사의 대 변고다. 박근혜가 박정희, 육영수의 유훈을 팔아 대통령까지 하겠다면, 최소한 박정희, 육영수는 닮아야 한다. 헌데, 도통 안 그렇지 않은가? 왜 그런지 묻고 싶다. 육영수라면, 한센환자들을 그런 식으로 이용했을까? 이용하게 두었을까? 천만에. 피살된 조카들을 모른다고 했을까? 천만에. 살해협박 당한다는 신동욱을 감옥에 갇히도록 하였을까? 천만에. 모두 천만에. 추서: 어느 분께서 박근혜의 입과 코는 박정희를 닮은 듯 하다고 알려오셨고, 하여 다시 관찰하니, 그런 것 같으므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육영수와는 하나도 닮지 않았다는 것을 그 분도 인정해 오셨습니다. 2011.9.29. 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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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를 황홀한 듯 바라보는 박정희의 눈길. 박근령에 대해서는 이런 사진이 없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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