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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칼럼] 철학자가 본 청계천 촛불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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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병창 작성일13-08-24 13:17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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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창 칼럼] 철학자가 본 청계천 촛불 광장

촛불집회 장소에서 눈에 띈 흥미로운 사실들...국정원은 왜 댓글을 달게 됐을까?

이병창 동아대 철학과 명예교수입력 2013-08-24 10:54:00l수정 2013-08-24 13:03:11기자 SNShttp://www.facebook.com/newsvop
특검으로 진상을 규명하라

2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제9차 범국민촛불대회가 열렸다.ⓒ이승빈 기자



‘민중의소리’ 고 기자가 필자한테 광장에 나가볼 생각이 없냐고 전화로 물었다. 그게 바로 어제저녁의 일이다. 당시 후배들과 술자리에서 즐거운 얘기로 웃고 있다가 웃는 김에 그럼 그러자 했다. 지난 광우병 촛불 당시 광장에 선 이래 광장에 나간 적이 없어 마음 한 켠에 사람들한테 미안한 마음이 있은 지라 그런 시원한 대답이 나왔던 모양이다.

그런데 아침에 깨어 생각해 보니, 이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이번 일은 소크라테스처럼 광장에 나가 사람들을 붙들고 입씨름을 하라는 것도 아니고, 사르트르처럼 지식인의 하나로서 광장의 빈자리를 채워달라는 것도 아니다.

광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철학적 관점에서 분석해 달라는 것일까? 하지만 이번 일에 철학적 관점이 굳이 필요한 것인가? 국정원이 대선에 개입했는가를 밝히는 것은 검찰의 몫이고 만일 부정선거로 당선된 것이라면 거기에 맞는 법적 책임이 있을 것이 아닌가?

하지만 일단 나가기로 약속했으니, 비겁하게 물러날 수는 없었다. 무조건 나가기로 했다. 순발력으로 버티는 거다. 이렇게 생각하고 드디어 집을 나섰다. 고 기자가 어제 문자로 필자에게 나가보라고 한 곳은 두 군데였다. 5시 30분에 시작하는 민주당 국정조사 보고대회와 7시에 시작하는 시국회의의 촛불대회이다. 민주당 집회에 나가는 것은 좀 뻘쭘한 일이다. 고 기자는 내가 민주당을 싫어하는 것 정도는 알 텐데, 왜 나보고 거기도 들러 보라 했을까?

아침에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오늘 보고대회에 전 민주당 대통령 후보 문재인이 참가할 수도 있다는 기사가 있었다. 물론 그 기사의 말미에는 기자가 보기에 아마도 거의 참가하지 않을 것이 확실하다는 평가가 붙어 있었다. 아, 그렇다면 고 기자는 문재인의 참가를 예상한 것일까? 이렇게 생각하며 청계천 광장에 이르렀다. 어제 비가 와서 그런가? 왠지 바람이 선선했다. 광장에 꽂힌 민주당 깃발들은 바람을 맞아 세차게 흔들렸다.

나는 속으로 기대했다. 아마도 문재인이 깜짝쇼처럼 이 자리에 나설지 모른다. 만일 그가 나선다면 지금까지 그에 대해 섭섭했던(?) 마음을 접으리라. 보고대회 내내 나는 목이 빠지라고 그를 기다리면서 연단에 오른 민주당 연사들의 말을 건성 건성으로 들었다. 별로 기억나지 않는 말이다. 요컨대 국정원을 개혁하고, 박근혜는 사과하라는 요구이다. 그런데 결론은 한 가지였다. 국정원장 남재준이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국정원 개혁의 핵심이고 박근혜 사과의 핵심이다. 그러나 솔직히 국정원장 하나를 물러나게 하려고 촛불을 든다니, 이 무더운 여름에 너무 맥 빠지는 일이다.

국정원 개혁과 남재준 퇴진이 답? 맥 빠지는 일일뿐...
지금까지의 국정원 해체하고 민주사회에 걸맞은 국정원 새로 조직해야

국정원 특검을 향한 촛불이 모이고 있다
2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제9차 범국민촛불대회가 열렸다.ⓒ이승빈 기자



생각해 보자. 현 국정원장 남재준이 물러난들 국정원이 국내 정치나 선거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까? 따지고 보면 국정원이 저런 괴물이 된 것은 국가보안법이라는 것 때문이다. 보안법은 오직 북한과 관련해서만 적용되는 법이며 접촉만 해도 그리고 혐의만 있어도 처벌이 가능한 법이다. 바로 이런 법이 있어서 국정원은 국내에서 사람들의 모든 동태와 발표되는 모든 문건을 추적 감시해 왔다. 게다가 국가보안법은 필요 이상으로 인신을 잡아 가둘 수 있도록 만들었고 그런 수사를 국민의 감시 밖에 있는 국정원이 직접 담당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 수많은 고문조작 사건들이 다 국가보안법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니냐? 이 수많은 고문조작 사건들이 왜 필요했는가? 국내 정치에 개입하려는 목적이 아니었다면 그런 고문조작은 없었을 것이다.

하기야 지금까지 국정원은 직접 처벌을 담당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적 원칙에 따라서 처벌만은 사법부가 맡아 왔다. 그 결과 다행히 거의 대부분의 고문조작이 양심적인 재판관들에 의해 무죄로 판명됐다. 하지만 이에 물러설 국정원이 아니었다. 절치부심 끝에 국정원은 사법부 대신 스스로 처벌권을 가지기로 했다. 이명박 정부의 실용주의가 이렇게 실현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댓글이라는 사건이다. 국정원은 그가 종북으로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사법부를 대신하여 직접 처벌을 가하기로 했다.

우선은 댓글이라는 언어적 폭력을 시험해 보기로 했다. 댓글은 겨우 언어적 폭력이니 별 문제 되지 않을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게 단지 언어적 폭력이라고 해서 약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언어적 폭력이 조중동과 같은 보수우익의 기관지와 결합하게 되면 사회적인 매장이라는 어마어마한 위력을 발휘한다. 국가보안법의 보호를 받으며 마침내 국정원은 사법부의 역할조차 빼앗아 버렸다. 국정원은 스스로 수사하고 스스로 처벌하는, 국가 속의 국가가 되어 버렸다.

정작 분노해야 할 당사자들은 사법부여야 한다. 자신의 권한조차 빼앗긴 사법부는 왜 말이 없는가? 사법부조차 헌법에 명문화되어 있는 사법권의 독립을 주장할 만큼 헌법의 권능을 믿기는 어려웠던 모양일까?

결국 국가보안법의 폐지 그리고 국정원의 수사권 폐지와 같은 차원이 아니면 국정원의 국내 정치 개입은 결코 막을 수 없다. 남재준 국정원장 한 사람을 쫓아낸다고 잠시 주춤할지는 몰라도 국정원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정원 개혁이 아니라 국정원 폐지가 맞다. 지금까지의 국정원은 해체하고 민주사회에 걸맞은 국정원을 새로 조직해야 한다. 그런데 국정원 개혁이라니, 남재준의 퇴진이라니, 맥이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왜 남재준 퇴진에 촛불을 억제하려는 것일까? 결국 그들 역시 국정원의 근본적인 개혁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왜냐고? 그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된다. 작년 통합진보당의 사건을 보자. 조중동이 통합진보당을 종북으로 몰았을 때 민주당은 침묵했다. 그것은 통합진보당을 종북으로 몰아, 통합진보당에 쏠리는 민심을 차단하여 야권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민주당 역시 야권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서 국가보안법과 국정원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그러니 그저 더는 자기들을 해치지 못하도록 국정원을 적당하게 혼내주는 정도에서 타협하자는 신호가 바로 남재준 퇴진이다.

필자가 배가 고파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민주당은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진짜 촛불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민주당 보고대회 때 필자는 그중 젊은 축에 속했는데 갑자기 청소년들이 광장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 청소년들이 필자를 바라보는 눈치가 영 이상하다. 필자를 가스통 할아버지 정도로 보는 게 아닐까? 웬만하면 필자한테도 촛불을 하나 건네 줄만 한 데 자기들끼리만 나누어 가지고 본체만체다.

이럴 때 조직이 없는 게 서럽다. 둘러보니 옛날에 관여했던 교수조직이 깃발을 들고 나왔다. 나도 저기로 찾아가야 할까? 거기에 가면 반가운 사람들을 만날 것 같다. 페이스북을 뒤져 보니 아는 페북 친구들도 제법 나온 것 같다. 그들에게 연락해 볼까? 그런데 오늘은 안 된다. 그들을 만나면 그냥 헤어질 수가 없는데, 고 기자가 오늘 밤 글을 써서 내일 아침까지 보내라고 부탁을 했다. 평생 처음, 그야말로 기자 스타일의 즉흥적인 글을 쓰는 셈이다. 나는 일부러 가장 어린 청소년들이 모여 있는 곳에 다가가 슬쩍 옆에 앉았다. 어린 청소년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이 무얼까 궁금했다.

그런데 시국회의 집회 내내 그들은 아무 말도 없이 손에 든 휴대전화기로 누군가와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촛불을 들고 함성을 지를 때는 어김없이 동참하고 노래패들이 나와 노래를 부를 때는 열심히 온 몸을 흔들며 따라 부르지만 연단에 사람들이 올라 사자후를 터뜨릴 때는 다시 휴대전화기에 눈길을 던진다.

빨간 팻말 들까, 파란 팻말 들까

촛불 목소리 '국정원 특검 촉구'
2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국정원 정치공작 대선개입 시국회의가 연 '9차 범국민촛불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며 국정원 특검을 요구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그런데 필자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들고 있는 팻말이 두 가지이다. 한 가지는 국정원 해체, 대선 무효이다. 다른 한 가지는 특검 도입과 박근혜 책임론이다. 전자는 빨간색이고 후자는 파란색이다. 연단에서 앞부분에는 사람들이 주로 빨간색 팻말을 들고 있다. 필자가 앉아 있던 연단 중간 부분 이후부터는 사람들이 파란색 팻말을 들고 있다. 결국 시국회의가 선언했다. 파란색 팻말이 시국회의의 결론이라고 말이다. 빨간색 팻말을 아직 성급하다는 판단인 모양이다. 꼭 굳이 이렇게 정통과 비정통을 나눌 필요가 있을까? 각자 자기가 원하는 팻말을 들고 있으면 안 될 것은 없지 않을까? 그래서 필자는 두 팻말을 모두 받아두었다.

생각해보니 광우병 당시 촛불과 지금의 촛불에 약간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때보다는 더 조직화한 것 같고 덜 산만한 것 같다. 그런데 그만큼 획일화시키려는 힘도 보인다. 광우병 당시 촛불의 실패에 대한 반성 때문일까? 조금 마음이 혼란스럽다. 어느 방식의 촛불이 더 좋은지? 그리고 빨간 색과 파란 색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좋은지? 국가보안법 때문인지 마음은 빨간색에 가지만 몸은 파란색에 간다. 이건 거의 생리적인 현상이다.

뭐, 일단 특검을 통해 진상규명을 더 확실하게 해 보고 그런 다음 대선 무효할지 말지를 결정해도 늦지 않겠지. 필자 역시 아직 대선에 개입한 국정원의 책임이 대선을 무효로 할 정도로 위중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서지 않는다. 법학자들은 무얼 하는가? 필자가 알기로 법에 따르자면 모든 물건에 빠짐없이 소유자가 있다고 한다. 그게 소유권 이론의 가혹함이라고 한다. 가난한 사람에게 돌아갈 눈 먼 소유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에 따르면 모든 행위에 적절한 책임도 있을 것이 아닌가? 형법도 소유권만큼 정확하지 않을까? 그러니 국정원이 댓글로 선거에 개입했다면 거기에는 응분의 책임이 있을 것이다. 만일 그 책임이 대선무효라면 대선은 무효가 되어야 한다. 그게 법치가 아닌가? 머지않아 진상이 더 명확해지면 법학자들이 법적인 판단을 알려 주겠지.

하지만 파란색 팻말에 나오는 박근혜가 책임지라는 구호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나 참, 이 세상에 이렇게 모호한 구호도 있는가? 무슨 남녀 간의 연애사건도 아닌데 책임지라니? 속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민주당의 박근혜 사과론에서 시국회의의 박근혜 책임론은 무언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 그런데 책임을 어떻게 지라는 말이 없다. 그러니 책임이란 말치레에 불과하고 이 말은 실질적으로는 민주당의 입장을 받아들인 것에 불과하다. 즉, 남재준을 쫓아내는 정도로 타협하자는 것이 아닐까?

‘결기’ 이상규, ‘솔직담백’ 김조광수...일베나 국정원이 뭐 다른가?

국정원 규탄 촛불이 밝혀진 청계광장
23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제9차 범국민촛불대회가 진행 참가자들이 촛불을 밝히고 국정원 대선개입 규탄을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필자는 소크라테스처럼 시국회의를 찾아가 입씨름을 하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그러면서 연사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일종의 품평회라고나 할까? 역시 단식 중인 진보당 이상규 의원의 연설이 가장 결기가 있었고 박수도 많이 받은 것 같다. 그렇지만 필자에게는 김조광수 감독과 민변 변호사의 연설이 어눌하지만 진실이 담겨 가장 좋았다. 김조광수 감독은 우리 국정원이 창피하다고 한다. 공작한답시고 얼굴 가리고 댓글이나 달고 있는데 그 댓글의 수준이란 쌍욕의 수준에 불과하니 말이다. 일베나 국정원이 뭐 다른가? 한참 속으로 웃었다. 그리고 민변의 김용민 변호사는 이번에 국정원 고문조작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 국정원의 수사권이 문제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그리고 국정원 수사권을 폐지하자고 말한다. 정말 문제의 핵심에 다가가는 발언이라 생각했다. 거기에 국가보안법 폐지나 국정원 해체까지 외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오늘 밤 안으로 글을 써야 하니 서둘러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돌아오던 중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다. 촛불에 맞불을 놓던 반공 목사, 가스통 할아버지, 뉴라이트, 일베들의 집회도 촛불이 끝나면 정확히 그 시간에 끝난다는 것이다. 왜 그들은 30분 정도 더 할 정도의 애국심은 없는지, 왜 꼭 촛불집회만큼만 애국심을 가지는지, 그들의 애국심의 정체가 철학적으로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