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환 추기경? 김수환씨는 피착취 계급의 벗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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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천주뉴스 작성일13-07-12 12:08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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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김수환씨는 피착취 계급의 벗일 수 있는가?
일본군복을 걸치고 지휘봉을 든 채, 의젓하게 뒷짐을 지고있는 김수환의 저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라! 과연 이런 사람이 한 나라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자임하는 추기경의 반열에 오를 자격이 있는 것일까? 이 사진은 1944년, 김수환이 도쿄 남쪽의 섬 후시마에 있는 사관학교에 다닐 때 찍은 것이다. 주지의 사실이듯 사관학교는 한 국가의 사관(장교)을 양성하기 위해 설치한 곳이다.
"대동아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 -만주 신경 군관학교 시절,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가 씨부렸던 흰소리- 김수환도 박정희 못지 않게, 천황과 일본제국을 위한 충성을 끝없이 끝없이 끝없이 맹세했을 것이다. 사관학교는 원래 그런 곳이 아니던가.
'어느 한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존 던의 싯귀다. 하지만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 글을 쓴다는 식의 마음에 없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마음에 없는 말은 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마석 모란 공원묘지에 누워계신 수많은 열사들의 죽음이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에 비해 너무 초라하고 쓸쓸하게 느껴져 서럽기 때문이다......"
엊그제 김수환 추기경 -이하 김수환으로 호칭함-의 장례미사가 있었다. MBC 뉴스데스크와 KBS뉴스는 장장 30분에 이르는 긴 시간을 김수환에 대한 용비어천가로 충분히, 흥근하게 도배질했다. MBC와 KBS 뿐만이 아니다. 요 며칠동안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은 우상화를 방불케하는 온갖 미사여구와 찬사를 총동원하여 가짜 우상에 불과한, 함량미달의 김수환을 과대포장했다.
기사를 볼 때마다 '내가 아는 김수환과 저 이가 아는 김수환은 다른 존재인가?'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로 언론의 객관성은 확보되지 못했다. 버나드 쇼의 어록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위인전에 쓰여진 얘기는 반만 믿어라!" 그렇다면 언론이 보여주지 않았던 김수환의 나머지 반의 진실은 무엇일까.
2차대전이 끝난 후 나치정권에 부역했던 자들을 처벌한 나라는 프랑스 뿐만이 아니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프랑스보다 더 철저한 처벌을 했다. 한국이 아닌 프랑스나 벨기에였다면 이런 매국노의 전력을 지니고 있는 자가 추기경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을까. 일본이 패전하지 않았다면 김수환은 일본군복을 입고 어디에서 무엇을 했을까?
사흘 낮 사흘 밤을 꼬박 새워 싸우며 우리는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었지 총대에 내 몸을 칭칭 감아 동여매고 장고봉 넘어 치내려온 관동군, 만철수비대 수백여 구의 뼛속에 박힌 분노가 되어 아!!! 나는 북로 군정서 소년병 최인걸! 자랑스런 대한독립군의 기관총 사수였다. -도종환 시인의 '다시 부르는 기전사가' 중에서-
이 글은 청산리 전투 때 자신의 몸을 기관총에 묶고 총탄이 다 떨어질 때까지 밀려오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사격을 퍼붓다 기꺼이 산화하신, "소년병 최인걸"의 의로운 죽음을 기리는 시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불꽃처럼 내던졌던가. 소년병 최인걸이 자신의 몸을 기관총에 칭칭 동여매고 일본군과 싸우다가 죽어갈 때, 김수환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천황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 사관학교까지 다녔던 者가 한 나라의 정신적 지도자인 추기경의 지위를 누리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언론의 과대포장에 의해 휘청이는 여론을 등에 업고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추모를 받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외롭고 고단했던 항일투쟁 전선에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영령들이 이 일을 아시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
김영삼 정부 후반기 무렵부터 현실을 바라보는 김수환의 시선은 급격히 보수화되기 시작한다. 오죽했으면, 함세웅 신부가 '김수환 추기경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말까지 했겠는가.
김수환, 아니 "김씨"는 민족의 재통합을 가로막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 반대했고, 4대 개혁법률안 중의 하나였던 사학법 개정에 반대했으며, 과거사 청산에도 노골적으로 선을 그었다. -일본사관학교 출신이라는 어두운 전력 때문이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평화를 추구해야할 사제의 본분을 망각하고 이라크 파병에도 찬성했으며, 시대를 걱정하는 정의구현 사제단 신부들과 사사건건 마찰을 일으켰다.
'나는 젊은 신부들이 자꾸 시국기도회를 여는 것을 말리는 편이었다. 당시 내가 정의구현 사제단의 대부라는 소문도 들렸다. 사실이 아니다.' -김씨의 회고록 중에서-
왜 김수환은 피착취 계급의 벗이 될 수 없는가?
김씨는 명동성당에서 농성하고 있는 카톨릭 성모병원 노동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성당 안으로 공권력 투입을 요청하는 반민중적인 작태를 벌이기도 했다. 믿지 못할 사람도 있을 것 같아 기사를 인용한다.
"지난 9월 11일 병원 공권력 투입 이후 명동성당에서 노숙농성을 해온 보건의료 노조에 대해 9차례에 걸친 퇴거요청서 발부와 미사시간 강론과 주보를 통한 노조 비방, 화장실 폐쇄와 가로등 전기공급 중단, 김수환 추기경의 공권력 투입 요청 시사, 개별 협상을 통한 부당노동행위 등 그 동안 가톨릭이 취해온 태도에 대해 국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지켜볼 일이다."
출처:오마이뉴스 기사입력2002-11-15 05:17 |최종수정2002-11-15 05:17
이것 뿐만이 아니다. 2002년에는 노골적으로 이회창을 지지해 국민들을 놀라게했으며 2003년에는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법 수용'을 압박하기 위해 단식하고 있던 최병렬 전 대표를 위문해 세간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이하의 글은 민중의 소리에 실린 기사다.
2006년에는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을 만난 자리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 보다 정권 교체가 잘 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면서 “국민들이 믿을 곳은 한나라당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게 잘해 달라”고 말해 정치적 색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대선을 바로 앞둔 2007년 5월에는 당시 대선 주자였던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여론) 조사 결과가 놀랍더라”면서 “늘 건강하고 하는 일이 잘 되길 바란다”는 기도를 올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사입력:2009-02-16 22:31:39 최종편집:2009-02-16 23:35:37
그리고 지난 해 성탄절 때 자신을 문병온 이명박에게 이런 말을 했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대통령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내가 참 힘이 난다."
김수환은 피착취 계급의 벗일 수 있는가.
"헤매이지 않고서 어덯게 분별에 이를 수 있는가? -Karl Marx-
김수환 추기경? 김수환씨는 피착취 계급의 벗일 수 있는가?
일본군복을 걸치고 지휘봉을 든 채, 의젓하게 뒷짐을 지고있는 김수환의 저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라! 과연 이런 사람이 한 나라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자임하는 추기경의 반열에 오를 자격이 있는 것일까? 이 사진은 1944년, 김수환이 도쿄 남쪽의 섬 후시마에 있는 사관학교에 다닐 때 찍은 것이다. 주지의 사실이듯 사관학교는 한 국가의 사관(장교)을 양성하기 위해 설치한 곳이다.
"대동아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 -만주 신경 군관학교 시절,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가 씨부렸던 흰소리- 김수환도 박정희 못지 않게, 천황과 일본제국을 위한 충성을 끝없이 끝없이 끝없이 맹세했을 것이다. 사관학교는 원래 그런 곳이 아니던가.
'어느 한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존 던의 싯귀다. 하지만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 글을 쓴다는 식의 마음에 없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마음에 없는 말은 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마석 모란 공원묘지에 누워계신 수많은 열사들의 죽음이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에 비해 너무 초라하고 쓸쓸하게 느껴져 서럽기 때문이다......"
엊그제 김수환 추기경 -이하 김수환으로 호칭함-의 장례미사가 있었다. MBC 뉴스데스크와 KBS뉴스는 장장 30분에 이르는 긴 시간을 김수환에 대한 용비어천가로 충분히, 흥근하게 도배질했다. MBC와 KBS 뿐만이 아니다. 요 며칠동안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은 우상화를 방불케하는 온갖 미사여구와 찬사를 총동원하여 가짜 우상에 불과한, 함량미달의 김수환을 과대포장했다.
기사를 볼 때마다 '내가 아는 김수환과 저 이가 아는 김수환은 다른 존재인가?'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로 언론의 객관성은 확보되지 못했다. 버나드 쇼의 어록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위인전에 쓰여진 얘기는 반만 믿어라!" 그렇다면 언론이 보여주지 않았던 김수환의 나머지 반의 진실은 무엇일까.
2차대전이 끝난 후 나치정권에 부역했던 자들을 처벌한 나라는 프랑스 뿐만이 아니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프랑스보다 더 철저한 처벌을 했다. 한국이 아닌 프랑스나 벨기에였다면 이런 매국노의 전력을 지니고 있는 자가 추기경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을까. 일본이 패전하지 않았다면 김수환은 일본군복을 입고 어디에서 무엇을 했을까?
사흘 낮 사흘 밤을 꼬박 새워 싸우며 우리는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었지 총대에 내 몸을 칭칭 감아 동여매고 장고봉 넘어 치내려온 관동군, 만철수비대 수백여 구의 뼛속에 박힌 분노가 되어 아!!! 나는 북로 군정서 소년병 최인걸! 자랑스런 대한독립군의 기관총 사수였다. -도종환 시인의 '다시 부르는 기전사가' 중에서-
이 글은 청산리 전투 때 자신의 몸을 기관총에 묶고 총탄이 다 떨어질 때까지 밀려오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사격을 퍼붓다 기꺼이 산화하신, "소년병 최인걸"의 의로운 죽음을 기리는 시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불꽃처럼 내던졌던가. 소년병 최인걸이 자신의 몸을 기관총에 칭칭 동여매고 일본군과 싸우다가 죽어갈 때, 김수환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천황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 사관학교까지 다녔던 者가 한 나라의 정신적 지도자인 추기경의 지위를 누리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언론의 과대포장에 의해 휘청이는 여론을 등에 업고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추모를 받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외롭고 고단했던 항일투쟁 전선에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영령들이 이 일을 아시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
김영삼 정부 후반기 무렵부터 현실을 바라보는 김수환의 시선은 급격히 보수화되기 시작한다. 오죽했으면, 함세웅 신부가 '김수환 추기경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말까지 했겠는가.
김수환, 아니 "김씨"는 민족의 재통합을 가로막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 반대했고, 4대 개혁법률안 중의 하나였던 사학법 개정에 반대했으며, 과거사 청산에도 노골적으로 선을 그었다. -일본사관학교 출신이라는 어두운 전력 때문이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평화를 추구해야할 사제의 본분을 망각하고 이라크 파병에도 찬성했으며, 시대를 걱정하는 정의구현 사제단 신부들과 사사건건 마찰을 일으켰다.
'나는 젊은 신부들이 자꾸 시국기도회를 여는 것을 말리는 편이었다. 당시 내가 정의구현 사제단의 대부라는 소문도 들렸다. 사실이 아니다.' -김씨의 회고록 중에서-
왜 김수환은 피착취 계급의 벗이 될 수 없는가?
김씨는 명동성당에서 농성하고 있는 카톨릭 성모병원 노동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성당 안으로 공권력 투입을 요청하는 반민중적인 작태를 벌이기도 했다. 믿지 못할 사람도 있을 것 같아 기사를 인용한다.
"지난 9월 11일 병원 공권력 투입 이후 명동성당에서 노숙농성을 해온 보건의료 노조에 대해 9차례에 걸친 퇴거요청서 발부와 미사시간 강론과 주보를 통한 노조 비방, 화장실 폐쇄와 가로등 전기공급 중단, 김수환 추기경의 공권력 투입 요청 시사, 개별 협상을 통한 부당노동행위 등 그 동안 가톨릭이 취해온 태도에 대해 국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지켜볼 일이다."
출처:오마이뉴스 기사입력2002-11-15 05:17 |최종수정2002-11-15 05:17
이것 뿐만이 아니다. 2002년에는 노골적으로 이회창을 지지해 국민들을 놀라게했으며 2003년에는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법 수용'을 압박하기 위해 단식하고 있던 최병렬 전 대표를 위문해 세간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이하의 글은 민중의 소리에 실린 기사다.
2006년에는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을 만난 자리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 보다 정권 교체가 잘 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면서 “국민들이 믿을 곳은 한나라당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게 잘해 달라”고 말해 정치적 색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대선을 바로 앞둔 2007년 5월에는 당시 대선 주자였던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여론) 조사 결과가 놀랍더라”면서 “늘 건강하고 하는 일이 잘 되길 바란다”는 기도를 올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사입력:2009-02-16 22:31:39 최종편집:2009-02-16 23:35:37
그리고 지난 해 성탄절 때 자신을 문병온 이명박에게 이런 말을 했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대통령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내가 참 힘이 난다."
김수환은 피착취 계급의 벗일 수 있는가.
"헤매이지 않고서 어덯게 분별에 이를 수 있는가? -Karl Marx-
일본군복을 걸치고 지휘봉을 든 채, 의젓하게 뒷짐을 지고있는 김수환의 저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라! 과연 이런 사람이 한 나라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자임하는 추기경의 반열에 오를 자격이 있는 것일까? 이 사진은 1944년, 김수환이 도쿄 남쪽의 섬 후시마에 있는 사관학교에 다닐 때 찍은 것이다. 주지의 사실이듯 사관학교는 한 국가의 사관(장교)을 양성하기 위해 설치한 곳이다.
"대동아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 -만주 신경 군관학교 시절,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가 씨부렸던 흰소리- 김수환도 박정희 못지 않게, 천황과 일본제국을 위한 충성을 끝없이 끝없이 끝없이 맹세했을 것이다. 사관학교는 원래 그런 곳이 아니던가.
'어느 한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존 던의 싯귀다. 하지만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 글을 쓴다는 식의 마음에 없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마음에 없는 말은 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마석 모란 공원묘지에 누워계신 수많은 열사들의 죽음이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에 비해 너무 초라하고 쓸쓸하게 느껴져 서럽기 때문이다......"
엊그제 김수환 추기경 -이하 김수환으로 호칭함-의 장례미사가 있었다. MBC 뉴스데스크와 KBS뉴스는 장장 30분에 이르는 긴 시간을 김수환에 대한 용비어천가로 충분히, 흥근하게 도배질했다. MBC와 KBS 뿐만이 아니다. 요 며칠동안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은 우상화를 방불케하는 온갖 미사여구와 찬사를 총동원하여 가짜 우상에 불과한, 함량미달의 김수환을 과대포장했다.
기사를 볼 때마다 '내가 아는 김수환과 저 이가 아는 김수환은 다른 존재인가?'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로 언론의 객관성은 확보되지 못했다. 버나드 쇼의 어록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위인전에 쓰여진 얘기는 반만 믿어라!" 그렇다면 언론이 보여주지 않았던 김수환의 나머지 반의 진실은 무엇일까.
2차대전이 끝난 후 나치정권에 부역했던 자들을 처벌한 나라는 프랑스 뿐만이 아니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프랑스보다 더 철저한 처벌을 했다. 한국이 아닌 프랑스나 벨기에였다면 이런 매국노의 전력을 지니고 있는 자가 추기경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을까. 일본이 패전하지 않았다면 김수환은 일본군복을 입고 어디에서 무엇을 했을까?
사흘 낮 사흘 밤을 꼬박 새워 싸우며 우리는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었지 총대에 내 몸을 칭칭 감아 동여매고 장고봉 넘어 치내려온 관동군, 만철수비대 수백여 구의 뼛속에 박힌 분노가 되어 아!!! 나는 북로 군정서 소년병 최인걸! 자랑스런 대한독립군의 기관총 사수였다. -도종환 시인의 '다시 부르는 기전사가' 중에서-
이 글은 청산리 전투 때 자신의 몸을 기관총에 묶고 총탄이 다 떨어질 때까지 밀려오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사격을 퍼붓다 기꺼이 산화하신, "소년병 최인걸"의 의로운 죽음을 기리는 시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불꽃처럼 내던졌던가. 소년병 최인걸이 자신의 몸을 기관총에 칭칭 동여매고 일본군과 싸우다가 죽어갈 때, 김수환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천황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 사관학교까지 다녔던 者가 한 나라의 정신적 지도자인 추기경의 지위를 누리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언론의 과대포장에 의해 휘청이는 여론을 등에 업고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추모를 받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외롭고 고단했던 항일투쟁 전선에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영령들이 이 일을 아시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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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 후반기 무렵부터 현실을 바라보는 김수환의 시선은 급격히 보수화되기 시작한다. 오죽했으면, 함세웅 신부가 '김수환 추기경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말까지 했겠는가.
김수환, 아니 "김씨"는 민족의 재통합을 가로막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 반대했고, 4대 개혁법률안 중의 하나였던 사학법 개정에 반대했으며, 과거사 청산에도 노골적으로 선을 그었다. -일본사관학교 출신이라는 어두운 전력 때문이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평화를 추구해야할 사제의 본분을 망각하고 이라크 파병에도 찬성했으며, 시대를 걱정하는 정의구현 사제단 신부들과 사사건건 마찰을 일으켰다.
'나는 젊은 신부들이 자꾸 시국기도회를 여는 것을 말리는 편이었다. 당시 내가 정의구현 사제단의 대부라는 소문도 들렸다. 사실이 아니다.' -김씨의 회고록 중에서-
왜 김수환은 피착취 계급의 벗이 될 수 없는가?
김씨는 명동성당에서 농성하고 있는 카톨릭 성모병원 노동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성당 안으로 공권력 투입을 요청하는 반민중적인 작태를 벌이기도 했다. 믿지 못할 사람도 있을 것 같아 기사를 인용한다.
"지난 9월 11일 병원 공권력 투입 이후 명동성당에서 노숙농성을 해온 보건의료 노조에 대해 9차례에 걸친 퇴거요청서 발부와 미사시간 강론과 주보를 통한 노조 비방, 화장실 폐쇄와 가로등 전기공급 중단, 김수환 추기경의 공권력 투입 요청 시사, 개별 협상을 통한 부당노동행위 등 그 동안 가톨릭이 취해온 태도에 대해 국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지켜볼 일이다."
출처:오마이뉴스 기사입력2002-11-15 05:17 |최종수정2002-11-15 05:17
이것 뿐만이 아니다. 2002년에는 노골적으로 이회창을 지지해 국민들을 놀라게했으며 2003년에는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법 수용'을 압박하기 위해 단식하고 있던 최병렬 전 대표를 위문해 세간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이하의 글은 민중의 소리에 실린 기사다.
2006년에는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을 만난 자리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 보다 정권 교체가 잘 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면서 “국민들이 믿을 곳은 한나라당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게 잘해 달라”고 말해 정치적 색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대선을 바로 앞둔 2007년 5월에는 당시 대선 주자였던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여론) 조사 결과가 놀랍더라”면서 “늘 건강하고 하는 일이 잘 되길 바란다”는 기도를 올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사입력:2009-02-16 22:31:39 최종편집:2009-02-16 23:35:37
그리고 지난 해 성탄절 때 자신을 문병온 이명박에게 이런 말을 했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대통령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내가 참 힘이 난다."
김수환은 피착취 계급의 벗일 수 있는가.
"헤매이지 않고서 어덯게 분별에 이를 수 있는가? -Karl Marx-
김수환 추기경? 김수환씨는 피착취 계급의 벗일 수 있는가?
일본군복을 걸치고 지휘봉을 든 채, 의젓하게 뒷짐을 지고있는 김수환의 저 자랑스러운 모습을 보라! 과연 이런 사람이 한 나라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자임하는 추기경의 반열에 오를 자격이 있는 것일까? 이 사진은 1944년, 김수환이 도쿄 남쪽의 섬 후시마에 있는 사관학교에 다닐 때 찍은 것이다. 주지의 사실이듯 사관학교는 한 국가의 사관(장교)을 양성하기 위해 설치한 곳이다.
"대동아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聖戰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 -만주 신경 군관학교 시절,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가 씨부렸던 흰소리- 김수환도 박정희 못지 않게, 천황과 일본제국을 위한 충성을 끝없이 끝없이 끝없이 맹세했을 것이다. 사관학교는 원래 그런 곳이 아니던가.
'어느 한 사람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존 던의 싯귀다. 하지만 고인의 명복을 빌며 이 글을 쓴다는 식의 마음에 없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마음에 없는 말은 하면 안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마석 모란 공원묘지에 누워계신 수많은 열사들의 죽음이 김수환 추기경의 죽음에 비해 너무 초라하고 쓸쓸하게 느껴져 서럽기 때문이다......"
엊그제 김수환 추기경 -이하 김수환으로 호칭함-의 장례미사가 있었다. MBC 뉴스데스크와 KBS뉴스는 장장 30분에 이르는 긴 시간을 김수환에 대한 용비어천가로 충분히, 흥근하게 도배질했다. MBC와 KBS 뿐만이 아니다. 요 며칠동안 대한민국의 모든 언론은 우상화를 방불케하는 온갖 미사여구와 찬사를 총동원하여 가짜 우상에 불과한, 함량미달의 김수환을 과대포장했다.
기사를 볼 때마다 '내가 아는 김수환과 저 이가 아는 김수환은 다른 존재인가?'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로 언론의 객관성은 확보되지 못했다. 버나드 쇼의 어록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위인전에 쓰여진 얘기는 반만 믿어라!" 그렇다면 언론이 보여주지 않았던 김수환의 나머지 반의 진실은 무엇일까.
2차대전이 끝난 후 나치정권에 부역했던 자들을 처벌한 나라는 프랑스 뿐만이 아니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프랑스보다 더 철저한 처벌을 했다. 한국이 아닌 프랑스나 벨기에였다면 이런 매국노의 전력을 지니고 있는 자가 추기경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을까. 일본이 패전하지 않았다면 김수환은 일본군복을 입고 어디에서 무엇을 했을까?
사흘 낮 사흘 밤을 꼬박 새워 싸우며 우리는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었지 총대에 내 몸을 칭칭 감아 동여매고 장고봉 넘어 치내려온 관동군, 만철수비대 수백여 구의 뼛속에 박힌 분노가 되어 아!!! 나는 북로 군정서 소년병 최인걸! 자랑스런 대한독립군의 기관총 사수였다. -도종환 시인의 '다시 부르는 기전사가' 중에서-
이 글은 청산리 전투 때 자신의 몸을 기관총에 묶고 총탄이 다 떨어질 때까지 밀려오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사격을 퍼붓다 기꺼이 산화하신, "소년병 최인걸"의 의로운 죽음을 기리는 시다.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목숨을 불꽃처럼 내던졌던가. 소년병 최인걸이 자신의 몸을 기관총에 칭칭 동여매고 일본군과 싸우다가 죽어갈 때, 김수환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천황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고 일본 사관학교까지 다녔던 者가 한 나라의 정신적 지도자인 추기경의 지위를 누리는 것이 합당한 일인가?
그것으로도 부족해서 언론의 과대포장에 의해 휘청이는 여론을 등에 업고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추모를 받는 것이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외롭고 고단했던 항일투쟁 전선에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영령들이 이 일을 아시면 어떻게 생각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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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정부 후반기 무렵부터 현실을 바라보는 김수환의 시선은 급격히 보수화되기 시작한다. 오죽했으면, 함세웅 신부가 '김수환 추기경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말까지 했겠는가.
김수환, 아니 "김씨"는 민족의 재통합을 가로막고 있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 반대했고, 4대 개혁법률안 중의 하나였던 사학법 개정에 반대했으며, 과거사 청산에도 노골적으로 선을 그었다. -일본사관학교 출신이라는 어두운 전력 때문이다.-
이것 뿐만이 아니다. 평화를 추구해야할 사제의 본분을 망각하고 이라크 파병에도 찬성했으며, 시대를 걱정하는 정의구현 사제단 신부들과 사사건건 마찰을 일으켰다.
'나는 젊은 신부들이 자꾸 시국기도회를 여는 것을 말리는 편이었다. 당시 내가 정의구현 사제단의 대부라는 소문도 들렸다. 사실이 아니다.' -김씨의 회고록 중에서-
왜 김수환은 피착취 계급의 벗이 될 수 없는가?
김씨는 명동성당에서 농성하고 있는 카톨릭 성모병원 노동자들을 몰아내기 위해 성당 안으로 공권력 투입을 요청하는 반민중적인 작태를 벌이기도 했다. 믿지 못할 사람도 있을 것 같아 기사를 인용한다.
"지난 9월 11일 병원 공권력 투입 이후 명동성당에서 노숙농성을 해온 보건의료 노조에 대해 9차례에 걸친 퇴거요청서 발부와 미사시간 강론과 주보를 통한 노조 비방, 화장실 폐쇄와 가로등 전기공급 중단, 김수환 추기경의 공권력 투입 요청 시사, 개별 협상을 통한 부당노동행위 등 그 동안 가톨릭이 취해온 태도에 대해 국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지켜볼 일이다."
출처:오마이뉴스 기사입력2002-11-15 05:17 |최종수정2002-11-15 05:17
이것 뿐만이 아니다. 2002년에는 노골적으로 이회창을 지지해 국민들을 놀라게했으며 2003년에는 '대통령 측근 비리 특검법 수용'을 압박하기 위해 단식하고 있던 최병렬 전 대표를 위문해 세간을 아연실색하게 했다.
이하의 글은 민중의 소리에 실린 기사다.
2006년에는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을 만난 자리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 보다 정권 교체가 잘 되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면서 “국민들이 믿을 곳은 한나라당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게 잘해 달라”고 말해 정치적 색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대선을 바로 앞둔 2007년 5월에는 당시 대선 주자였던 이명박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여론) 조사 결과가 놀랍더라”면서 “늘 건강하고 하는 일이 잘 되길 바란다”는 기도를 올렸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사입력:2009-02-16 22:31:39 최종편집:2009-02-16 23:35:37
그리고 지난 해 성탄절 때 자신을 문병온 이명박에게 이런 말을 했다.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 대통령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내가 참 힘이 난다."
김수환은 피착취 계급의 벗일 수 있는가.
"헤매이지 않고서 어덯게 분별에 이를 수 있는가? -Karl Mar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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