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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통일운동에서 빛나는 임창영 선생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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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6-09-20 17:45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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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통일운동에서 빛나는 임창영 선생의 삶

 

 

박수영 기자

 

조국통일상을 받은 사람 중에는 재미교포 임창영 선생도 있다.

 

식민지민족의 불우한 운명을 안고 태어난 수난자의 첫 세대였던 그는 평양에서 출생하여 193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가 펜실바니아의 라파이에트대학을 졸업하고 도산 안창호 선생의 국민회의에 가입하여 항일구국운동에도 가담하였다. 그리고 뉴욕 웨체스타 한인연합감리교회의 초대목사로도 있었으며, 장면 정권때에는 남녘 정부의 유엔대사로도 활약하였다.

 

 

▲임창영 선생과 그의 부인

 

 

그런 그가 조국통일을 위한 애국운동에 뛰어들었으나 그의 과거경력으로 해서 그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로 해서 임창영 선생의 심중은 복잡하였는데, 이러한 때 북에서는 평양에서 나라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위한 논의를 허심탄회하게 하자는 것을 제의하고 해외의 여러 인사들과 함께 그도 초청하였다.

 

조선의 오늘 사이트는 임창영 선생이 평양을 방문하게 된 사연과 그후의 삶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전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 어느날 그는 나치스의 반유태인정책에 의하여 도이췰란드로부터 추방되어 미국 프린스톤시에 와있던 세계적인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 교수와 조선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이런 질문을 받았다.

 

“조선의 위대한 김일성 장군은 어떤 분이십니까?”

 

그때 그는 아인슈타인의 이 질문에 만족한 대답을 주지 못하였다. 사회정치학자로서 항일의 명장 김일성 주석에 대하여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던 것이다.

 

1955년 그와의 마지막상봉시에도 아인슈타인은 북과 남으로 갈라진 조선의 현실과 조선인민의 위대한 수령, 존경하는 김일성 주석에 대하여 또다시 문의하였다. 김일성 주석의 존함과 높은 명성은 지구의 서쪽끝인 미국땅에 사는 물리학자도 관심을 가질만큼 세상에 자자했던 것이다.

 

그는 자기자신이 알고 있는 김일성 주석에 대하여 민족의 미래와 결부시켜 설명하였지만 주석에 대하여 깊이 알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더욱 깊이 느끼게 되었다. 그후 그는 오랜 세월 김일성 주석에 대한 간절한 흠모로 가슴을 불태워왔으며 결국은 평양방문을 하게 되었다.

 

임창영 선생이 1992년 4월 조국을 방문하였을 때 뜻밖에도 평소 흠모하던 김일성 주석과 함께 김정일 위원장을 한날한시에 처음으로 만나뵙는 최상 최고의 행운을 지니게 되었다.

 

김일성 주석은 정중히 인사를 올리는 그에게로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다가가 연로한 몸으로 멀리서 오시느라고 수고가 많았겠다고, 선생님과 같은 분들이야말로 해외조국통일운동의 원로이고 선각자라고 하며 그의 손을 뜨겁게 잡아주었다.

 

그는 끓어오르는 흠모의 정으로 “온 겨레가 운명과 미래를 맡기고 사는 장군님께서 분초가 새로운 국사를 미루시고 무상의 영광을 베풀어주시니 송구한 마음을 달랠 길 없습니다.”

 

그러자 김일성 주석은 조국통일보다 더한 국사가 어디에 있겠는가고, 7천만겨레의 최대의 숙원인 조국통일위업 앞에서는 모두가 심신을 바칠 줄 아는 전사가 되어야 한다고 절절하게 말하였다. 그리고 통일성업의 길에서 함께 손잡고 나가자고 하며 그의 손을 다시금 굳게 잡아주었다.

 

그날 밤 숙소로 돌아온 그는 온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조국통일보다 더한 국사가 어디에 있겠는가고, 조국통일위업앞에서는 모두가 심신을 바칠줄 아는 전사가 되어야 한다고 하던 김 주석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가슴을 파고들었기 때문이었다.

 

김일성 주석은 지금까지 그가 민족을 위한답시고 다니던 시절이나 미국땅에서 많이도 보아온 정객이나 위인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분이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나는 주석님을 “민족의 사표(덕행이 높아 스승으로 되는 사람)”로 삼고 눈에 흙이 들어가는 날까지 통일성업에 매진하겠다고 말하였다.

 

김일성 주석은 조국방문기간 그에게 성대한 환영연회도 조직해주고 가족친척들과 만나 즐겁게 지낼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그의 건강을 염려하여 유능한 의료진의 치료를 받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었다.

 

임창영 선생은 김 주석의 믿음과 은정 속에 인생고목에 꽃을 피운 자신을 새롭게 느끼며 참된 인생의 좌표와 신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새로운 희망과 각오를 안고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교포들 속에서 자주적인 조국통일방침을 널리 선전하고 민족대단결을 이룩하기 위한 사업에 정력을 기울였다.

 

1995년 11월 28일 범민련 해외본부 의장으로 선출된 그는 동포들 속에 들어가 민족대단결로 통일성업을 이룩해나가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였고, 여러 차례나 김일성 주석을 만나뵙고 통일위업실현에서 나서는 문제들에 대한 가르침을 받아안았으며 남은 여생을 통일을 위해 바쳤다.

 

그는 민족의 자주권과 조국의 자주적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성스러운 위업에 기여한 것으로 하여 조국통일상을 받았다.

 

 

 

 

고령의 몸으로 통일을 위해 정력적으로 일하던 임창영 선생은1996년 1월 25일 급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눈을 감기 전에 장례를 교회에서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치르며 유해는 화장하여 조국이 통일된 후 평양에 묻어달라고 유언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를 받은 김정일 위원장은 해외조국통일운동의 원로들이 떠나가는 것이 못내 가슴아파하며 림 선생은 가족장만으로는 안된다고, 조국에서 추도회를 크게 해야 한다고 하며 화환까지 몸소 보내주었다.

 

 임창영 선생의 생애는 위대한 조국의 품이야말로 조국통일위업에 한몸 바친 애국자들의 삶을 영원히 빛내준 태양의 품이라는 고귀한 진리를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깊이깊이 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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