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1] 이남에서 저지른 미국의 범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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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7-10 16:24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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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남에서 저지른 미국 범죄자료 (1)
편집국
2015-07-10
<우리민족끼리>가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의 범죄자료”를 연재하여 미국이 1957년부터 이남에서 무차별적으로 벌이는 범죄적 만행들을 열거 폭로하고 있다. 이에 전문을 게재한다.
<우리민족끼리>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의 범죄자료 (1)
미제는 남조선을 강점한 첫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에게 헤아릴수 없는 고통과 불행을 강요하였다. 특히 미제침략군은 남조선에 더러운 군화발을 들이민 첫날부터 남조선인민들을 짐승처럼 여기며 온갖 범죄적만행을 무차별적으로 감행하였다. 미제침략군의 만행들은 인두겁을 쓴 야수들만이 저지를수 있는 특대형의 반인륜적범죄였다.
아래에 그중 일부 자료를 폭로한다.
○ 미제침략군 군수렬차습격조작사건
1957년 4월 12일밤, 인천에서 미제침략군의 군수물자를 싣고 경기도 동두천의 군사기지로 가던 군용렬차가 고개길에서 갑자기 멈춰섰다. 렬차에서 손전지신호가 오자 9명의 사람들이 렬차로 달려가 산소용접기로 문을 절단하고 서양담배 24상자를 들어냈다. 이때 갑자기 총성이 울리면서 3명이 쓰러지고 나머지 사람들은 체포되였다. 그들은 민간인들이였다.
심문과정에 군수렬차 경비책임자인 미제침략군상사 윌슨의 공모관계가 드러났다. 이자는 렬차에서 손전지로 신호하여 범인들을 렬차로 유도하였으나 그들이 범행모의때 화차의 문고리를 흔적없이 따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산소용접기까지 들이대자 책임을 모면하기 어렵다는 판단아래 총을 쏘아댔던것이다. 문제는 윌슨이 범인들과의 사전모의와 손전지신호에 대해서는 인정하였으나 이것은 범인일당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함정》이였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내들고 발뺌해나섰던것이다.
○ 부평소년 직승기궤짝사건
1958년 2월 25일, 이날 새벽 미제침략군 소령 토마스 제임스와 대위 마빈 켐프는 경기도 인천시 부평(당시)에 있는 공군기지정비장 숙소에 들어온 구두닦이소년 김춘일(14살)을 《도적》으로 몰아 붙잡은 후 다섯시간동안이나 곤봉과 가죽혁띠로 때렸다. 그리고 심심풀이로 칼로 찌르고 뻰찌로 두 발톱을 뽑았으며 머리칼을 잡아뜯다 못해 전기리발기로 빡빡 깎아버리고 눈섭을 뜯어냈다. 그리고는 빈사상태에 빠진 그의 머리와 얼굴에 골탄칠까지 한 후 직승기부속품상자에 넣은 다음 직승기로 경기도 양주군 의정부에 있는 미제침략군비행장에 날라다버리는 악착한 만행을 감행하였다.
○ 동두천녀인뼁끼사건
1959년 12월 31일, 이날 동두천에서 미제침략군 7사단소속 대위 메케네리는 사병들이 리유없이 잡아온 박화자(20살)녀성의 옷을 강제로 벗기고 구타한 후 온몸에 유성뼁끼를 바른 후 막사밖으로 내쫓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그로부터 한주일후인 1960년 1월 7일 같은 기지안의 7사단소속 40장갑부대 2땅크대대 대위 토마스 역시 한 녀인이 부대에 《접근》했다는 리유로 붙잡아 강제로 옷을 벗기고 뼁끼칠을 하는 똑같은 만행을 저질렀다.
○ 동두천녀인삭발사건
1960년 1월 2일 아침 동두천의 미제침략군 7사단소속 중대막사에서 사병 10여명과 대위 메케네리는 김순자(30살), 김정애(21살)를 잡아다놓고 젖가슴을 만지며 희롱하다가 머리채를 자르고 전기면도기로 완전삭발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메케네리는 3일전인 1959년 12월 31일에도 한 녀인의 온몸에 뼁끼를 칠하였던자이다.
○ 파주나무군사살사건
1962년 1월 6일 경기도 파주군 문산읍에서 사는 황광길주민 등 40여명은 경기도 장단군 진동면 모포리뒤산으로 나무하러 갔다. 갑자기 미제침략군 수십명은 그들을 포위하고 《노루》라고 하면서 총을 쏘아 2명을 살해하고 여러명을 부상입히는 만행을 저질렀다.
1963년 1월 21일 경기도 련천군에서도 이곳 주민 15명이 나무하러 마을뒤산에 올라간것을 본 살인귀들은 포탄을 발사하여 그중 5명을 즉사시키고 10명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 고철주민 집단구타사건
1962년 5월 29일 경기도 파주군 주내면 파주리에 사는 리일룡과 간석진은 고철을 수집하기 위해 미제침략군 4기갑전투단 중대앞을 지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달려나온 미제침략군장교 워드와 사병 8명은 그들을 《도적》으로 몰아 막사로 끌고들어갔다. 그리고 몽둥이와 톱, 권총 등으로 집단구타를 한 다음 옷을 벗겨 전주대에 거꾸로 매달고 사정없이 때렸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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