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로 본 현지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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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7-04 13:48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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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로 본 현지지도
위찬미 기자
2015-07-04
<우리민족끼리>가3일 “57만 8 000여㎞”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였다.
기사에 의하면 이는 “백두산에서 한라산까지 300여 번 왕복한 것과도 같고 지구를 14바퀴 반이나 돈 것과도 맞먹는 거리이며, 공장과 기업소, 협동벌을 비롯한 북의 방방곡곡 무려 2만 600여개 단위를 현지지도한 총연장길이라고 하였다. 또 해방직후부터 생애의 마지막 시기까지 현지지도로 보낸 일요일과 명절날들만 해도 무려 2,530여일 간이며 이것은 근 7년 세월과 맞먹는다고 하였다.

필자는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한몸 바칠 각오를 가지고 혁명의 길에 나섰으며 그때로부터 오늘까지 언제나 나의 마음을 지배한 것은 인민에 대한 사랑이었습니다.”라고 한 김주석의 말을 상기시키며, 이렇듯 인민에 대한 사랑을 천품으로 지닌 영도자였기에 그처럼 지칠줄 모르는 정력으로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갔던 것이라고 솟구치는 격정을 담아 이야기하였다.
또 북의 최북단으로부터 서해기슭의 자그마한 외진 섬과 연백벌에 이르기까지 김주석은 “인민들이 있는 곳이라면 다 가보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진창에 빠진 승용차를 한치한치 미시며 북방의 어느 산촌을 찾으신 이야기며 한낮이 기울 때까지 여러 농장포전들을 돌아보시고 렬차에서 풋강냉이로 때늦은 점심식사를 하신 이야기, 광부들이 일하는 막장에 들어가지 않을바에야 무엇하러 광산에 왔겠느냐고 하시면서 석수가 떨어지고 바닥이 질벅한 막장에까지 들어가시여 광부들을 만나신 이야기…” 등 끝이 없이 펼져진 그의 현지지도의 자욱을 전하였다.
그리고 1970년 5월 덕천지구를 현지지도할 때에는 평양시의 한 일군에게 그 고장의 색다른 ‘흙김치’를 수도시민들도 맛볼 수 있게 대책을 세우도록 하고 생애의 마지막 시기인 1994년 6월에는 30℃ 이상의 무더위 속에서 여러 농촌을 현지지도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북의 땅 그 어디에나 뜨겁게 새겨진 김주석의 정열적인 현지지도의 자욱은 세인들을 경탄하게 하였을뿐만 아니라, 6만t능력의 분괴압연기에서 12만t의 강편을 밀어낸 강선의 기적, 전후 재더미를 헤치고 단 14년 만에 사회주의 공업화를 실현한 성과… 등등 너무나 많은 기적과 혁신을 낳게 하였다고 하였다.
필자는 “이렇듯 인민의 행복을 위해 끊임없이 이어가신 김주석의 현지지도 자욱이 있어 인민의 이상과 염원이 현실로 꽃펴나는 공화국의 자랑찬 오늘이 마련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하며 “조국과 인민을 위한 현지지도로 빛나는 위대한 수령님의 한평생은 후손만대에 길이길이 전해질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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