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살륙의 원흉 미국을 고발한다. > 성명/논평/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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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논평/칼럼

기타 | 인간살륙의 원흉 미국을 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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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반제민족민주전선 작성일13-03-17 01:11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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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발장

인간살륙의 원흉 미국을 고발한다.

 

3월 15일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선전국이 침략자, 략탈자인 남조선강점 미제침략군의 각종 범죄행위들을 폭로단죄하는 고발장을 발표하였다.

고발장은 다음과 같다.

지금 《한》반도의 정세는 《한》미호전광들이 벌려놓고있는 북침《키리졸브》, 《독수리》합동군사연습소동으로 제2의 조선전쟁발발직전에 처해있다.

스쳐지날수 없는것은 미국이 마치 저들이 있어 전쟁이 일어나도 국민의 생명이 《담보》될것처럼 여론을 내돌리고있는것이다.

이것은 이 땅에 숭미사상을 더욱 주입시키고 나아가 우리 국민들을 저들의 식민지노복으로 만들려는 교활한 기만술책이다.

미국에게 있어서 우리 국민은 살아움직이는 목표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 주《한》미군이 서울 도심에서 자행한 범죄행위가 이를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선전국은 침략자 미제가 이 땅을 강점하고 자행한 사건중에서 그 일부를 년대별로 묶어 만천하에 고발한다.

 

극악한 살인 집단

(1945년 9월~1950년 5월)

《해방자》의 간판을 달고 이남을 강점한 미군은 가는 곳마다에서 우리 녀성들을 집단강간하고 로동자들을 무참히 학살하였다.

o목포행렬차 집단강간사건

1947년 1월 7일, 이날 서울-목포행렬차는 전라북도 황등역을 가까이 하고있었다.

렬차가 황등역에 도착하자 렬차에 타고있던 미군사병 네명은 대구에 사는 김금옥을 비롯한 젖먹이어린이를 가진 녀성 3명만 남겨두고 승객들을 사정없이 내쫓았다.

그후 미군사병들은 이들에게서 소지품을 강탈하고 집단적으로 달려들어 수욕을 채웠다. 이자들은 이것도 성차지 않아 그들을 마구 때리고 질식시키는 야수적만행을 감행하였다.

재판장과 변호사, 검사 등을 저들로 구성한 미군은 2월 7일 형식상의 《재판》을 벌려놓고 《증거불충분》이라는 구실을 붙여 범죄자들을 《무죄》로 석방하였다.

o화순탄광로동자 집단학살사건

1946년 8월 15일, 이날 전라남도 화순탄광로동자 1 140여명은 8. 15해방 1돐기념 경축군중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20여리나 되는 광주로 가고있었다.

미제는 그들의 련북지향을 묵살해버려야 한다고 하면서 사정없이 총포사격을 가해 무참히 학살하였다.

그리고 매복하고있다가 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그들을 또다시 사살하였다.

o독도어장공습사건

1948년 6월 8일, 이날 독도해상에서는 이 부근에서 모여온 30여척의 고기배들이 고기잡이를 하고있었다.

11시 40분경에 갑자기 달려든 미군 《B-29》폭격기편대는 고기잡이를 하는 우리 어민들을 《산표적》으로 삼아 폭탄을 퍼붓고 기관총을 마구 쏘아댔다. 하여 11척의 고기배가 가라앉고 14명의 어민이 살해되였으며 수많은 행방불명자와 부상자가 생겨났다.

그러나 미국은 도적이 매를 드는격으로 《그 지역은 폭격시험장이였다.》느니, 《연구조사중이다.》느니 뭐니 하면서 꼬리를 사렸다.

 

전대미문의 량민학살

(1950년 6월~1953년 12월)

리승만을 사촉하여 조선전쟁을 감행한 미국은 우리 국민을 닥치는대로 죽이였다.

o로근리학살사건

1950년 7월 26일, 이날 미군은 충청북도 영도군 림계리와 주곡리의 주민 500여명을 《안전한 곳으로 피난시켜준다.》면서 남쪽으로 끌고나갔다.

이들이 로근리에 있는 철교부근에 이르자 미군은 짐을 모두 검사하고 그곳을 떠났다.

얼마후 미군비행기 7대가 나타나 철교의 피난민들을 목표로 폭격과 기관총사격을 들이대는 바람에 순식간에 100여명의 사상자가 나는 대참사가 빚어졌다. 당황하여 갈팡질팡하던 주민들은 앞을 다투어 철교밑의 수로용 동굴로 뛰여들어가 몸을 숨겼다.

그러자 이번에는 동굴량쪽에 기관총을 걸어놓고 일제사격을 가하였다. 총소리는 그후 3일간이나 계속되였다.

어둠을 리용하여 현장에서 달아난 청장년들을 제외하고는 로인들과 어린이, 녀성들 대부분이 처참하게 목숨을 빼앗겼다.

그러나 미제는 로근리학살의 진상을 은페하고 책임을 회피하였으며 당국을 사촉하여 로근리의 참상을 입밖에 내지도 못하게 하였다.

1990년대가 다 저물어서야 살아남은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이 미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사건의 진상이 언론에 공개되게 되였다.

o마산재실학살사건

1950년 8월초, 리씨성을 가진 100여명의 주민들은 경상남도 마산 곡안리 뒤산아래에 있는 한 재실을 피난지로 삼고 집단생활을 하고있었다.

재실이란 이전시기 가문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운 집을 말한다.

어느날 통역관을 데리고 재실에 나타난 미군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이 민간인이며 그 가운데는 어린이들과 녀성들, 로인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있다는것을 확인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다음날 난데없이 미군직승기가 나타나 재실을 향해 마구 폭탄을 떨구었다.

양키들은 갈팡질팡하는 어린이, 녀인, 로인들을 향해 총질을 한 후 박격포탄을 날리고 비행기에서 기총사격을 퍼부었다.

그로하여 10살아래의 어린이 17명, 녀성 36명, 로인 20명을 비롯한 83명의 무고한 주민들이 목숨을 잃었다.

이 살인만행을 직접 명령한자는 미25사단장이였다. 그는 산하부대들에 《작전지역에서 움직이는 모든 민간인들을 적으로 간주하고 그에 따르는 조치를 취할것》이라는 명령을 하달하였다.

재실에서의 학살만행은 그 명령에 따른것이였다.

o거창량민대학살사건

1951년 2월 11일, 미군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유격대를 소탕한다는 미명하에 국군 제11사단 9련대장 오익경(대령)과 제3대대장 한동석(소령)에게 량민대학살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이자들은 신원면 부락민들을 신원국민학교에 모이도록 한 다음 면인민위원장 변영택을 비롯하여 187명을 무참히 학살하였다. 이어 신원면 대현리, 와룡리를 비롯한 6개 리에서 700여호의 집을 불사르고 100여명의 청년들을 성탄골짜기로 끌고가 무참히 학살하였다. 그후 부락들에 남아있던 늙은이, 부녀자, 어린이를 포함하여 500여명을 박살골짜기로 끌고가 휘발유를 뿌리고 불태워 죽이였으며 흔적을 없애기 위하여 산까지 폭파시켰다.

미제와 리승만은 이 사건으로 민중의 거세찬 항의에 부닥치게 되자 교활하게도 《국회조사위원단》을 파견하는 놀음을 벌리였다. 그리고 뒤에서 당시 헌병부사령관이며 경남지구 계엄민사부장인 김종원(대령)으로 하여금 국군 1개 소대를 유격대로 가장시켜 이 《조사위원단》에 위협적인 총격을 가하게 함으로써 사건을 은페하려고 획책하였다.

1960년 4. 19인민봉기때 거창일대의 애국적주민들은 학살만행당시 면장이였던 박영보를 끌어내여 징벌하였다.

 

인두겁을 쓴 야수의 무리들

(1954년~현재)

조선전쟁이후 미군은 우리 국민을 더욱 야수적으로 무차별적으로 탄압하였다.

미군의 만행은 인두겁을 쓴 야수들만이 자행할수 있는 특대형범죄이다.

o미군수렬차습격조작사건

1957년 4월 12일밤, 인천에서 미군의 군수물자를 싣고 경기도 동두천의 군사기지로 가던 군용렬차가 고개길에서 갑자기 멈춰섰다.

렬차에서 손전지신호가 오자 9명의 사람들이 렬차로 달려가 산소용접기로 문을 절단하고 서양담배 24상자를 들어냈다.

이때 갑자기 총성이 울리면서 3명이 쓰러지고 나머지 사람들은 체포되였다.

그들은 민간인들이였다.

심문과정에 군수렬차 경비책임자인 미군상사 윌슨의 공모관계가 드러났다. 이자는 렬차에서 손전지로 신호하여 범인들을 렬차로 유도하였으나 그들이 범행모의때 화차의 문고리를 흔적없이 따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산소용접기까지 들이대자 책임을 모면하기 어렵다는 판단아래 총을 쏘아댔던것이다. 문제는 윌슨이 범인들과의 사전모의와 손전지신호에 대해서는 인정하였으나 이것은 범인일당을 일망타진하기 위한 《함정》이였다는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내들고 발뺌해나선것이다.

o부평소년 직승기궤짝사건

1958년 2월 25일, 이날 새벽 미제침략군 소령 토마스 제임스와 대위 마빈 켐프는 경기도 인천시 부평(당시)에 있는 공군기지정비장 숙소에 들어온 구두닦이소년 김춘일(14살)을 《도적》으로 몰아 붙잡은 후 다섯시간동안이나 곤봉과 가죽혁띠로 때렸다.

그리고 심심풀이로 칼로 찌르고 뻰찌로 두 발톱을 뽑았으며 머리칼을 잡아뜯다 못해 전기리발기로 빡빡 깎아버리고 눈섭을 뜯어냈다.

그리고는 빈사상태에 빠진 그의 머리와 얼굴에 골탄칠까지 한 후 직승기부속품상자에 넣은 다음 직승기로 경기도 양주군 의정부에 있는 미군비행장에 날라다버리는 악착한 만행을 감행하였다.

o동두천녀인뼁끼사건

1959년 12월 31일, 이날 동두천에서 미제침략군 7사단소속 대위 메케네리는 사병들이 리유없이 잡아온 박화자(20살)녀성의 옷을 강제로 벗기고 구타한 후 온몸에 유성뼁끼를 바른 후 막사밖으로 내쫓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그로부터 한주일후인 1960년 1월 7일 같은 기지안의 7사단소속 40장갑부대 2땅크대대 대위 토마스 역시 한 녀인이 부대에 《접근》했다는 리유로 붙잡아 강제로 옷을 벗기고 뼁끼칠을 하는 똑같은 만행을 저질렀다.

o동두천녀인삭발사건

1960년 1월  2일  아침 동두천의 미제침략군 7사단소속 중대막사에서 사병 10여명과 대위 메케네리는 김순자(30살), 김정애(21살)를 잡아다놓고 젖가슴을 만지며 희롱하다가 머리채를 자르고 전기면도기로 완전삭발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메케네리는 3일전인 1959년 12월 31일에도 한 녀인의 온몸에 뼁끼를 칠하였던자이다.

o파주나무군사살사건

1962년 1월 6일 경기도 파주군 문산읍에서 사는 황광길주민 등 40여명은 경기도 장단군 진동면 모포리뒤산으로 나무하러 갔다.

갑자기 미제침략군 수십명은 그들을 포위하고 《노루》라고 하면서 총을 쏘아 2명을 살해하고 여러명을 부상입히는 만행을 저질렀다.

1963년 1월 21일 경기도 련천군에서도 이곳 주민 15명이 나무하러 마을뒤산에 올라간것을 본 살인귀들은 포탄을 발사하여 그중 5명을 즉사시키고 10명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o고철주민 집단구타사건

1962년 5월 29일 경기도 파주군 주내면 파주리에 사는 리일룡과 간석진은 고철을 수집하기 위해 미제침략군 4기갑전투단 중대앞을 지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달려나온 미군장교 워드와 사병 8명은 그들을 《도적》으로 몰아 막사로 끌고들어갔다.

그리고 몽둥이와 톱, 권총 등으로 집단구타를 한 다음 옷을 벗기고 전주대에 거꾸로 매달아 사정없이 때렸다.

o미군 고엽제살포사건

1967년초 미제침략군사령부는 그 무슨 《남침》을 막는다는 미명하에 《비무장지대의 초목을 효과적으로 제거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고엽제살포계획을 작성하였다.

이에 따라 1968년 3월 20일 《고엽제살포작전을 4월 15일까지 실시한다.》는 미8군사령관의 명령이 하달되였다.

그리하여 불과 1g으로 2만여명을 죽일수 있다는 디옥신을 주성분으로 한 고엽제살포작전이 대대적으로 감행되였다.

1968년부터 1969년에 걸쳐 미국은 국군을 동원하여 비무장지대의 남측지역 2 200만평에 달하는 방대한 지역에 2만 1 000gal(9만 5 000ℓ)을 살포하였다.

미국은 고엽제살포를 철저한 비밀사항으로 하고 국군에 알려주지조차 않았다.

하여 그에 동원되였던 국군사병들이 큰 피해를 입고 오늘도 그 후유증으로 고통을 당하고있다. 그  피해자와  후유증환자는 5 000~1만여명에 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9년 미국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고엽제살포는 <한국>정부가 결정한것이며 따라서 미국정부는 피해자들에게 보상할 법적책임이나 근거는 없다.》고 발뺌을 하였다.

미군이 비무장지대에서 감행한 고엽제살포만행은 우리 민족을 멸살시키기 위한 극악한 범죄행위이다.

o동두천 부부살해사건

1970년 3월 4일, 마약중독자들인 미제침략군 7사단소속 사병 월터와 브라운트가 동두천에서 사는 김화남(28살)의 집에 뛰여들어 아편을 요구하였다. 거절당하자 이자는 이들 부부를 돌로 내리치고 면도칼로 목을 자르고 도주하는 귀축같은 만행을 감행하였다.

o택시운전기사 집단감금사건

1990년 9월 4일, 미침략군헌병들은 서울시 룡산구 미8군부대앞을 운행하던 택시운전수 홍두표(50살)와 리금주(46살)에게 《질서위반》트집을 걸어 차에서 끌어내렸다. 그리고 땅바닥에 무릎을 꿇어앉힌 다음 군화발로 마구 들이찼다.

30여명의 택시운전수들이 이에 항의하자 미군은 그들을 3시간동안이나 막사에 감금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o윤금이살해사건

1992년 10월 28일, 이날 경기도 동두천의 미제2사단 20보병련대 일병 케네스 마이클은 기지주변의 2㎡짜리 방에서 세방살이하는 윤금이(26살)녀성에게 달려들었다.

그가 반항하며 뛰쳐나가자 마이클은 윤금이의 머리채를 휘여잡고 다시 방으로 끌고들어가 옆에 있는 병으로 윤금이녀성의 머리를 마구 내리쳐 실신하게 만들었다. 그것도 성차지 않은 이자는 반주검이 된 그의 음부에 깨진 병을 틀어박고 홍문에는 우산대까지 꽂아넣어 숨지게 하였다. 그리고는 그의 시체우에 세척가루를 뿌려놓고 도망치는 잔인한 살인만행을 감행하였다.

이자는 자기의 범죄가 그 무슨 자랑거리나 되는듯이 같은 패거리들에게 설명하면서 정 믿지 못하겠으면 그곳에 가보자고까지 하였다.

o미군장갑차 녀중학생살인사건

2002년 6월 13일 오전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효촌리에서 14살의 두 녀학생이 미군의 장갑차에 무참히 깔려죽는 참사가 빚어졌다.

동무집에 놀러가던 조양중학교 2학년생들인 신효순, 심미선은 밀려오는 미군장갑차행렬을 피하여 손으로 두귀를 막고 길한쪽옆으로 비켜섰다. 앞에는 효순이가 섰고 뒤에는 미선이가 따라섰다.

미제침략군 제2사단 44공병대대소속 운전수 마크 워커와 관제병 페르난도 니스라는 미친듯이 그들에게로 장갑차를 몰아댔다.

순간 미선이를 순서로 효순이까지 장갑차의 무한궤도밑으로 깔려들어갔다.

살인귀들은 하반신만 치워 채죽지 않은 효순이를 보자 장갑차를 다시 후진하여 그의 머리를 재차 깔아뭉개였다.

효순이의 짓이겨진 머리에서는 골수가 쏟아져 길바닥에 뿌려졌다.

저녁 8시가 지나서야 사건현장에 나타난 미군은 광적파출소 경찰관을 현장에 들여놓지도 않고 《운전수가 규정에 따라 제대로 운행하였다.》느니, 《어쩔수 없는 사고였다.》느니 하면서 잘못을 녀학생들에게 넘겨씌우려 획책했다.

국민의 항의에 못이겨 하는수없이 경찰과 《공동조사》를 벌리기로 하였으나 미군은 이를 어기고 《통신장애로 인한 단순한 교통사고》라고 사건을 매듭지었다.

용납할수 없는것은 녀학생들의 장례식을 치르기 전날까지 살인자 워커는 부대주변의 술집들을 뻐젓이 싸다니며 술추념을 한것이다.

경향각지가 반미로 끊어번지자 미국은 기만적인 《재판》놀음을 벌렸으며 그후 《무죄》를 선언하고 본국으로 빼돌렸다.

o미군고엽제매몰폭로사건

2011년 5월 19일 출판물을 통해 주《한》미군이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기지에 고엽제를 매몰한 사실이 공개되였다.

자료에 의하면 미군이 1952년 조선전쟁에서 사용할 목적밑에 고엽제와 함께 공중살포장비를 연구개발하였으며 1963년 7월부터 1964년 4월사이에 경기도 부천시에 있는 미군기지에서 각종 화학물질과 페기물을 매몰하였다.

1968년에는 3차례에 걸쳐 메릴랜드주의 식물과학연구소에서 제조한 독성이 강한 제초제를 비행기로 실어다 국군전방부대에서 실험하였다.

1968년 강원도 철원과 화천, 린제군 등 동부전선의 비무장지대에 국군을 강제로 동원하여 8 800여개 도람통의 고엽제를 맨손으로 살포하도록 하였다.

1989년 인천시 부평미군기지에서도 독성물질인 폴리염화비닐(PCBs)이 들어있는 도람통 448개를 처리하였다.

특히 2011년 6월 28일, 미군이 경상북도 칠곡군에 있는 왜관기지의 환경오염이 심각하다는것을 이미전부터 알면서도 지금껏 이를 조직적으로 은페한 사실이 밝혀진 예비조사보고서가 공개되여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다.

*                     *

우의 자료들은 미군이 이 땅에서 자행한 범죄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제반 사실은 미국이야말로 침략자, 략탈자이며 우리 국민의 원쑤라는것을 말해주고있다.

각계 애국민중은 더이상 미군의 희생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반미투쟁의 불길을 더욱 세차게 지펴올려야 할것이다.

 

반제민족민주전선 중앙위원회 선전국

2013년 3월 15일

서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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