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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녘 | 함께 읽는 <제국의 몰락과 후국의 미래>, 미 제국의 중남미 침탈사(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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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7-12-19 11:10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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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제국의 몰락과 후국의 미래>, 미 제국의 중남미 침탈사(4)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브라질, 페루

 

김영준 담쟁이기자 

 

베네수엘라 : 차베스의 반제·반미 행보

 

베네수엘라는 20세기 초에 엄청난 규모의 석유가 발견되면서 미 제국의 주요 공작 목표가 되었다. 미국의 후원을 받은 고메즈 장군이 쿠데타로 정권을 잡으면서(1908~1935) 석유, 천연자원, 주요 농산물은 미국 기업의 차지가 된다.(155)

 

 

▲차베스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1999년 헌법의 초소형 견본을 자랑하고 있다. 사진출처 : Agência Brasil

 

 

▲볼리바리안 혁명 : 고메즈 이후 민주행동당의 베탄코트 대통령, 갈레고스 대통령은 개혁정책을 시행한다. 하지만 페레스 히메네스의 친미 우익 쿠데타로 개혁정책은 좌초한다. 80만 헥타르에 이르는 토지의 석유 채굴권이 미국 석유회사로 넘어갔다.

 

우익과 좌익 쿠데타를 반복하는 부침 끝에 1998년 12월 선거에서 차베스가 당선된다. 그는 남미의 독립운동가 볼리바르의 이름을 본떠 일명 볼리바리안 계획에 착수한다. 헌법을 개정하고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에 맞섰다. 전력과 통신 등 국가 기간산업 국유화 법령이 공포되었다. IMF나 세계은행에 대항하기 위해 남아메리카은행의 창설도 주도했다. 2006년 9월 유엔총회에선 “미 제국은 지금 몰락의 길을 걷고 있으며, 진짜 악마는 미국이 지정한 북조선·이란 등이 아니라 바로 부시의 미국”이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차베스 제거 공작 : 차베스의 행보를 방관할 기득권과 미국이 아니었다. 2002년 4월 수구우익 방송국이 총파업을 선동했다. 자본가들은 생필품 유통을 봉쇄했다. 사회 혼란을 명분으로 군부집단이 쿠데타까지 일으켰다. 그러나 전국적 규모의 반(反) 쿠데타 시위와 명령을 거부한 하급 장교들의 저항으로 친미 쿠데타는 삼일천하로 끝나게 된다. 쿠데타 당시 베네수엘라 오실라섬 공군기지에선 미 공군기가 대기했고, 미 해군 함정이 베네수엘라 영해에 머물렀다.

 

2004년 5월에는 콜롬비아에서 자국민을 학살하던 우익 민병대 126명이 베네수엘라 수도 인근에서 체포되었다. 이들은 베네수엘라 군복으로 위장하여 차베스 암살에 투입될 예정이었다. 암살 음모가 성과를 내지 못하자 대통령 국민소환을 시도했다. 하지만 2004년 8월 국민투표 결과로 차베스의 입지만 강화되었다.(156~160)

 

볼리비아 : 민중의 희망 모랄레스

 

▲체 게바라의 죽음 : 볼리비아는 체 게바라가 최후를 맞은 곳이다. 20명 안팎의 게릴라를 이끌던 그는 1967년 10월8일 미군 특전사의 지휘를 받은 볼리비아 정부군에게 생포된다. 그는 정식재판 없이 곧장 총살된다. 본래 볼리비아 정부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의식해 체 게바라를 살려놓으려 했다. 하지만 미 대통령 존슨은 그를 즉각 죽이라고 명령했다. 시신도 곧장 화장하여 분골마저 없앴다. 재판을 통해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과 동정 여론을 조기 차단하기 위함이었다.(163~164)

 

 

▲사진출처 Bolivian Gas War, 2003

 

▲자원의 저주 : 볼리비아는 은, 주석, 철, 마그네슘, 천연가스 등이 대량으로 매장되어 일찍이 제국주의 수탈에 시달려왔다. 전체 인구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원주민들은 자원 수탈을 위해 광산, 농장 등지에서 중노동에 시달렸다.

 

제국주의와 기득권층에 의한 ‘자원의 저주’는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이어졌다. 유전·광산·통신·철도 등 국가 기간산업이 민영화되었다. 임금삭감, 노조 무력화, 사회보장제도 축소도 잇따랐다. 수돗물 공급권조차 미국계 기업으로 넘어가 2000년에는 물값이 300% 인상하는 일이 생겼다. 월 70달러 버는 주민들에게 월 20달러가 넘는 물값을 부담시킨 것이다.

 

2003년 10월에는 국가의 가장 큰 수입원인 가스·유전 민영화를 둘러싸고 정부와 에보 모랄레스가 이끄는 시위대가 충돌하여 수백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미 국무부는 “볼리비아의 헌정 질서를 어지럽히는 시위대의 난동을 좌시하지 않겠다”며 협박 성명까지 발표했다. 내정간섭을 금하는 유엔헌장의 문구는 무용지물이었다.(161~163)

 

 

▲에보 모랄레스 (2006) 사진출처 Agência Brasilia

 

▲민중의 희망 모랄레스 : 코카 잎을 재배하던 원주민 출신 에보 모랄레스는 2005년 12월 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는 500년 동안 이어진 불공평을 털어내겠다고 약속했다. 천연가스와 광물자원을 국유화하고 원주민 언어를 학교 정규 수업에 포함했다.

 

코카 재배 근절을 외치는 미국의 정책에도 맞섰다. 코카 근절을 명분으로 화학물질로 농지를 파괴하고 농부들을 강제로 내쫓거나 학살하는데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그는 2006년 9월 유엔총회 연설에서 “코카를 코카인으로 제조한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 미국 등 서구 제국”이며 코카 잎은 “안데스 산간 부족의 전통 식품이므로 이를 불법화하는 미국의 조처에 순응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부시 정부가 선언한 ‘악의 축’에 맞서 베네수엘라·쿠바와 함께 ‘선의 축’을 선언했다. 베네수엘라와 볼리비아의 이런 움직임은 지난 세기 미 제국의 수탈에 시달려온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반미·자주화 의식의 고조를 보여준다.(164~167)

 

브라질 : 우리 편이 아니면 적

 

아프가니스탄 침공 전 부시는 “미국 편이 아니면 당신은 테러리스트 편”이라며 국제사회에 양자택일을 강요했다. 미국의 이런 논리는 과연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특수한 시기에만 국한되는 것일까? 하지만 “친미 아니면 주적”이라는 막무가내 논리는 미국의 일관된 정책이었다.

 

▲‘자주’는 미국의 적 : 1960년 말 브라질 대선에서 자니오 콰드로스가 압도적 지지를 받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민족주의 성향이 강했지만 정치적으론 중도에 가까웠다. 그는 동구권과 통상관계를 수립하고, 미국의 쿠바 침공 지지요청을 거부했다. 그런데 취임한 지 7개월 뒤 콰드로스는 “외국인을 포함한 극우세력의 가공할 위협으로 더 이상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사직서와 함께 돌연 사퇴했다.

 

헌법 절차에 따라 부통령 골라트가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그는 정유산업 국유화, 외국기업 소유의 유휴 토지 개발, 이윤 유출 억제 등 국민자본 형성에 주력했다. 정치적으론 제3세계와 외교를 증대하며 비동맹 자주노선을 추구했다. 미국은 그를 두고 공산주의자라고 흑색선전을 벌였다. 백만장자의 아들인 골라트는 결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지만, 그의 자주노선은 미국의 이익과 상충했다.(168~170)

 

 

▲ 브라질 군사정부 기간 리오 데 자네이루의 탱크 행렬 (1968) 사진출처 Brazilian National Archives

 

골라트 정부 전복 : 미국 정부는 골라트를 축출키로 했다. 1962년 총선에 CIA는 극우 후보들에게 2000만 달러를 지원한다. 학생과 부녀자들 사이에 각종 친미단체도 조직한다. 극우언론에 자금 지원도 병행했다. 선거공작이 실패하자 쿠데타 공작으로 넘어갔다. ‘공산주의자를 타도하자!’는 대중 선동작업을 벌였다. 미 대통령 존슨은 “골라트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처를 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1964년 3월 브랑코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미국은 자금·무기·연료 지원에다가 쿠데타 이후 군사원조도 약속했다. 게다가 브라질 군부 내 반 쿠데타 움직임을 차단하기 위해 브라질 남부 해안에 전함도 급파했다. 쿠데타 이후 의회는 폐쇄되고, 노조 활동과 정부 비판이 법으로 금지되었다. 고문·학살도 자행되었다.

 

특히 고문·학살에는 미국의 역할이 컸다. 미국 국제개발처(USAID)는 브라질 국립경찰을 만들어 10만 명의 경찰을 훈련했다. 이들은 상대를 공황상태로 몰아넣는 고문법을 배웠다. 이에 따라 임산부 앞에서 남편 고문, 부모가 보는 앞에서 어린이 고문 등이 자행됐다. 미국의 고든 대사는 이 쿠데타를 두고 “민주적 반란”이라 불렀다.(170~173)

 

페루 : 원주민 멸족을 위한 불임시술

 

 

▲ 알베르토 후지모리 사진출처 : Gobierno Peruano

 

▲후지모리 독재정권 : 페루는 정부군과 게릴라 사이의 유혈 충돌로 약 7만 명이 학살당하거나 영구 실종되었다. 페루 정부는 게릴라 출몰지역의 주민들을 빨갱이로 낙인찍어 무참히 학살했다. 특히 후지모리 정권에서 인권유린이 가장 극심했다.

 

1990년 7월 일본 이민자 출신 후지모리는 대통령에 당선된다. 그는 1인 독재체제를 위해 야당 해산, 주요 정적 국외 추방, 의회와 대법원 폐쇄 등 폭거를 자행했다. 이에 일부 유럽국가와 베네수엘라, 그리고 미국도 페루와 단교를 선언했다. 하지만 미국은 후지모리가 페루 내 미군 주둔을 수락하자 곧바로 단교를 철회하고 적극적으로 후지모리를 두둔했다.

 

후지모리는 재임 기간에 좌익 동조세력이라며 산간 원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이들을 멸족시키기 위해 20만에 가까운 원주민들에게 강제로 불임시술을 했다. 이런 인권유린 및 부정부패로 국민적 저항이 커지자 후지모리는 2000년 11월 APEC 회의 후 곧바로 일본으로 도망쳤다. 후지모리 이후에도 페루 군부는 미국의 군사원조에 의존하고 있다. 또 고급 지휘관의 상당수는 아메리카군사학교(SOA) 출신이다. 미국의 그늘 아래 있는 한 페루의 진정한 민주화는 요원할 것이다.(175~179)

 

베네수엘라 반(反)차베스 쿠데타, 브라질 골라트 정부 전복 그리고 칠레 아옌데 정부 전복에서 보듯이 미국은 상대 정부가 사회주의든, 민족주의든, 마르크스주의든 개의치 않았다. 단지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타도해야 할 적이었다. 선거에 개입하거나 하수인을 통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만약을 대비해 군함과 전투기도 후방에 준비해뒀다. 1980년 5월 광주항쟁 당시 후방지원을 위해 한국에 항공모함을 급파했던 것처럼 말이다.

 

[출처: 민플러스]

 

 

 

 관련기사

►함께 읽는 <제국의 몰락과 후국의 미래>, 미 제국의 중남미 침탈사(3)

함께 읽는 <제국의 몰락과 후국의 미래>, 미 제국의 태생과 성장(2)

►미국이 떠드는 《인권옹호》의 침략적이며 략탈적인 본색을 만천하에 발가놓는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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