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NCC성명 | [논평] 2012년의 역사적 의의와 좌절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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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대변인 작성일12-12-28 00:00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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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면 광복과 더불어 분단된 우리나라의 남쪽은 미군정의 비호아래 이승만이 집권하는 과정에서 민족이 하나로 정부를 수립하여야 한다고 주창한 김구, 여운형이 암살되며 단독선거로 나라의 분단을 고착화하게 되었다.
이승만 정권의 민족양분 고착화 정책은 남쪽에서 조봉암과 같은 진보인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하는 탄압으로 지속하여 독재정권을 유지하면서 남쪽은 외세의 신식민지로 전락되는 과정을 가속화하였다.
1960년 4.19 봉기가 이승만의 독재정권을 끝장내고 민주주의 정권을 이룩하였지만 4.19 학생봉기 자체가 우발적인 시민항거에 기초하였기에 새로 정권을 이양받은 민주당 정권은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박정희의 군사쿠데타에 의하여 단명을 살고 끝장이 났다.
1961년에 시작한 군사정권은 박정희 18년, 전두환의 8년 독재, 노태우를 마지막으로 30여년이란 긴 세월 남한을 무자비한 철봉으로 지배하여 왔다. 얼마나 많은 민주민족인사들이 가혹한 고문과 억압으로 생명을 잃은 기간이었는가?
1993년 집권한 김영삼정권 기간에 민주주의를 재활하려는 노력으로 남쪽정부는 군사정권을 종막하고 “국민에 의한, 국민의, 국민을 위한 정부”로 환원하는 길을 열어 주었다고 본다.
그리고 2008년 김대중 정권의 탄생은 실로 우리 민족사적인 의의를 지니고 탄생하였다. 김대중도 분단 상황에서 역대 독재정권에 의하여 극심한 탄압의 대상으로 “좌경”, “빨갱이”로 몰아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고서 대통령에 당선된 최초의 민주대통령, 민족사적인 대통령이 되었다. 사실 김대중 대통령도 몇 번이고 형장의 이슬로 아니면 현해탄에 수장될 위기를 모면하여 살아남은 민주적 진보인사였다.
2003년 탄생한 노무현 대통령 역시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탄압받던 민주인사, 노동자, 농민들의 인권을 위하여 투쟁한 민주 진보인사로서 남한의 대통령이 되었다.
이 두 민주민족 대통령으로 55년간 적대 상태에서 경쟁적 소모전을 하던 남-북 관계는 끝장나고 북과 남이 한 민족으로서 상생, 공영하여야 한다는 철학으로 민족화해의 길을 터놓았다.
교류협력을 통한 평화적인 상생공영의 10년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기였는가!
2000년 6월 남-북 수뇌의 평양상봉을 통한 6.15공동선언과 2007년 10월 북-남 수뇌의 평양상봉을 통하여 채택된 10.4선언은 우리민족사에 있어서 분단을 종식하고 우리가 함께 민족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하여 우리민족끼리 협력하여 통일을 이룩하자는 원칙과 방도를 밝혀준 역사적인 선언들이였다.
이렇게 하여 두 정권은 북과의 대화를 통하여 전쟁의 위험을 씻고, 교류왕래하면서 민족의 동질성을 회복하면서 치유와 화해, 상호이해의 새 시대를 열어 주었다.
그러나 외세는 동북아에서의 패권유지를 위하여 우리 민족과 강토에서 정전으로 멈춘 전쟁을 종식하지 않고 휴전협정 하에서 집요하게 대북적대정책을 유지하여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군사적 긴장을 유발하며 우리 민족이 화해하려는 움직임을 저지하면서 민족의 분단을 영구화하는 정책을 유지하여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과거 민족민주진영의 대통령들이 이룩한 민족화해와 평화적인 자주통일에로의 길을 차단, 저지하는 외세의 앞잡이로의 출현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이명박 정권은 외세의 앞잡이로서 민족대결정책을 들고 나와 북을 적대시하는 정책으로 일관하였다. 그래서 우리 강토는 전쟁촉발 일보직전으로 몰아왔으며 이를 구실로 한-미합동 전쟁연습으로 국고를 탕진하며 천문학적인 혈세를 들여 미국무기수입을 강행하여왔다.
그리고 경제정책은 어떠했는가? 불평등한 한미자유무역협정으로 외국투자가들이 투자한 대기업들의 이익창출을 돕는데서 끝이지 않고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영세 상인들의 영역에까지 문어발식의 침식을 허용하였으며 대기업의 이익창출 극대화를 위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로 대치하여 노동자들의 생존을 위협하였고 나라의 식량을 외국의 농산물에 의존하게 하여 농업을 망치고 농민들을 파산에 이르게 하였다.
이것이 신자유주의경제, 대재벌중심의 경제, 이익창출극대화를 위하여 민생을 도탄에 몰아넣는 잔인한 경제정책이었으며 이명박이 청와대를 타고 앉아서 벌려온 5년간의 치적이다.
이러한 역사적 환경에서 2012년 18대 남한의 대선은 민중과 민족의 장래를 밝게 할 민족민주진영과 외세에 의존하여 기생하는 독재, 특히 군사독재의 잔재와의 대결이라는 역사적인 의의를 지닌 대선이었다.
이 대선이 표면상으로는 친일외세의존독재의 잔재파가 승리를 하였다고 되었지만 사실 투표의
전산화처리로 고도의 조작이 백성들의 진의를 도착시켰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의견들이 여러 요인들로서 의심을 더하고 있다.
우리 모국의 참된 민주화와 민족의 화해단합을 열망하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이번 대선결과로 인하여 극심한 좌절과 분노를 어찌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다. 이른바 “멘붕”이란 심리적 상태에서 허탈감과 무력함을 피하지 못하고 몸부림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권교체를 통한 변화를 촉구하는 국민들이 선거의 50%, 즉 반으로 상승하였다는 현상은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하고 있다.
특히 통합진보당 이정희 후보의 역할은 우리 민족사의 현실이 당면한 문제들을 과감히 파헤쳐준 역사적 장거가 되었다. 우리 모두는 역사를 알고도 무서워서 말 한마디 하지 못하던 과거나 현재에서 비겁하게 살아오고 있었다.
친일세력과 그 후예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민족문제나 통일을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좌경”이니 “좌빨”, “종북”세력으로 몰아세우는 정치적인 색깔탄압이 두려워 아무 말도 못해온 지식인, 종교인들 모두는 이정희 후보가 제1회 TV토론에서 한 발언들을 듣고 그의 역사의식과 용기에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였을 것이다.
2012년은 우리 모국 남쪽에서 친미, 친일 외세의존 세력의 재집권을 저지하고 민주민족자주 세력의 집권으로서 남쪽 내부의 빈부격차, 지역차별, 혈연, 학연에 의한 나눠 먹기식의 악습을 개선하며 이와 더불어 6.15 공동선언과 10.4 선언의 복원으로 북-남관계를 개선하여 60년 된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종전을 통해 남과 북이 함께 민족경제의 균등한 발전을 도모할 새로운 역사적 장정을 시작하기를 간절히 염원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염원이 일시적으로 좌절된 상태지만 우리는 더욱더 힘을 내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지지하고 이행하려는 개인, 단체등 모든 해내외 애국 세력과 단결하여 남쪽의 경제 민주화, 정치민주화, 그리고 민족화해와 자주평화통일의 역사적 임무를 완성하기위해 노력해 나가는 2013년을 힘차게 열어나갈 것이다.
2012년 12월 26일
재미동포전국연합회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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