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 글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에 대한 가치판단과 본지의 편집방향은 무관합니다. 다만 필자가 소개하는 북에 대한 정보를 통해 남북이 서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개합니다.]
2013년 6월 29일자 《로동신문》은 “항일의 옛 전사를 영생의 언덕에 내세워준 은혜로운 품”(최창격 씀)이라는 제목으로 200자 원고지 55매 분량의 글을 실었다. 신문의 속성을 좀 아는 사람들은 쉬이 판단하겠지만 2면을 꽉 채울 긴 글을 조선노동당 기관지가 발표한다는 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백두산위인들께서 최용한동지에게 베푸신 크나큰 영광과 은정”이라는 부제가 붙은 글은 이렇게 시작된다. “지난해 2월 4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에서는 최용한동지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칭호와 조국통일상을 수여하는 정령을 발표하였다. 최용한동지는 항일혁명투사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이름을 처음 알았고 항일혁명투사들에게조차 귀에 설었다.” 뒤이어 글은 김일성 주석 곁에서 오랫동안 사업해온 항일투사 리을설의 회상에 의하면 항일무장투쟁시기 김일성 장군이 몸소 키운 투사들 중에는 유능한 군사, 정치일군들만이 아니라 정보, 정찰사업을 하면서 눈에 뜨이지 않는 투사들도 있었는데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최용한이었다고 소개했다. 글은 계속하여 김일성 주석이 항일무장투쟁시기에 그를 《최 니꼴라이》, 《미샤》라는 러시아식이름으로, 해방 후에는 《김영한》, 《김용한》이라는 가명으로 부르며 특수공작임무를 많이 주었기 때문에 그가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그가 세상을 떠난 지 반세기가 넘다보니 항일의 전우들 중에도 그의 본래이름을 아는 사람이 거의나 없게 되었으며 그가 세운 공로에 대해 아는 사람도 많지 못하였다고 전제하면서, 그의 경력과 사적들을 알렸다.
이름이 아주 비슷한 최용진은 조선(북한)에서 널리 알려진 항일투사지만 최용한은 조선사람들도 잘 모르는 인물이었다는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선이 공식적으로 그를 높이 평가해주지 않은 것은 아니다. 10여 년전에 운영되다가 사라진 어느 조선사이트에서는 최용한을 이렇게 소개했었다.
“최용한 (1909. 4. 14 - 1962. 6. 27)
항일혁명투사이다. 강원도 문천시의 가난한 농민가정에서 출생하였다. 주체5(1916)년부터 고향에서 사립학교를 다니다가 중퇴한후 농사를 지었다. 1926년 2월 로씨야로 들어가 철공로동을 비롯한 여러가지 로동을 하였다. 1935년부터 김일성주석께서 조직령도하신 조선인민혁명군의 투쟁에 적극 호응하여 국제공산당 련락원으로서 북부조선의 국경일대에 진출하여 활동하였다. 1941년 8월부터 조선인민혁명군의 한 소부대에 망라되여 활동하였다. 1946년 7월부터 보안간부훈련소 부장, 조선인민군 주요 직책에서 사업하면서 광복후 정규무력으로 건설되여 처음으로 진행된 조선인민군의 열병식을 성과적으로 보장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조국해방전쟁시기 조선인민군 려단장, 군사정전위원회 우리 측 위원으로 사업하였다. 1956년부터 김일성군사종합대학과 만경대혁명학원에서 후방부장, 민족보위성 총무국장으로 있으면서 혁명의 수뇌부를 철저히 보위하고 인민군대를 정치사상적으로 강화하는데 적극 기여하였다. 국기훈장 제1급을 비롯한 많은 훈장과 메달을 받았다. 묘는 애국렬사릉에 있다.”
날짜를 따져보면 《로동신문》은 최용한 사망일(6. 27)에 맞추어 그를 소개한 셈이다. 글에 의하면 몇 해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한평생 당과 수령을 받들어 혁명무력강화에 공헌한 일군들을 소개하라는 지시를 내려 항일혁명투사들의 투쟁자료들을 발굴고증하는 활동이 진행됐는데 그 과정에 더 확증된 최용한의 투쟁내용이 담겨진 문건을 지난 해(2012) 1월 19일 김정은 최고사령관이 읽어보고 최용한의 위훈을 높이 평가했으며 그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칭호와 조국통일상을 수여하도록 조치를 취했다 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당보에서 크게 선전한 것이다.
글은 “《붓대포》를 쏘는데 응당한 관심을 돌려야 한다” , “정규무력의 핵심부대를 건설하던 나날에”, “미군직승기나포작전” 등 소제목 아래에 최용한의 성장과정과 항일투쟁시기, 광복 후, 전쟁기간의 경력 및 사적들을 소개했는데, 공적들 가운데서 편폭이 제일 큰 것이 200자 원고지 8매를 웃도는 분량(전문의 15%에 가까움)을 차지한 직승기나포작전이다. 1952년 2월에 조선이 미군직승기를 유인, 나포한 사건에서 최용한이 세운 공로에 대한 소개는 “우리는 여기에 아직은 알려지지 않은 하나의 사실을 전하게 된다.”라는 구절로 시작되었는데, 완전히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 그 사건을 조선의 공식자료들에서는 다루지 않은 모양이지만, 문학형식으로는 이미 다뤘을 뿐아니라 필자가 본 책들에서 3번이나 그렸으니 말이다.
《로동신문》이 공개한 역사사실을 전하기에 앞서 우선 소설들에서 그려진 직승기나포작전들을 소개한다. 발표시간순으로 열거하면 단편소설 《동틀무렵》(고영길 지음, 1985년), 장편소설 《전선사단》(김익철 지음, 1997년), 장편소설 《전선의 아침》(박윤 지음, 2005년)인데 필자는 정반대로 《전선의 아침》, 《전선사단》, 《동틀무렵》의 순서로 책을 얻어 읽으면서 그 작전에 상당한 흥미를 가졌었다. 아래에 창작, 발표순서에 따라 소개한다.
▲ 단편소설 <동틀무렵>이 수록된 단편소설집 <영원한 기발>(문학예술출판사, 2012) [자료사진= 중국시민] | | 단편소설 《동틀무렵》은 김일성 주석을 주인공으로 하는 단편소설우수작 100편을 모아서 20편을 1권씩 출판하는 단편소설집의 5권 《영원한 기발》(문학예술출판사 2012년 1월 출판발행, 도합 503쪽, 사진)의 224~ 244쪽에 실렸다.
소설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시기는 1952년 입춘이 지난 뒤, 지점은 강원도 통천지구. 전선을 시찰하던 김일성 최고사령관은 전에 없던 간첩비행기가 자주 나타난다는 보고를 받게 된다. 여기서 이야기를 엮어가는 주요인물은 도내무부장 최덕무이다. 소설에서는 1938년 벌목공으로 일하던 그가 동료인 김철국과 함께 감독 칠복이를 양덕군의 어느 산속으로 끌고 들어가 처단하려다가 당시 김일성 장군이 거느린 유격대를 만나는 것으로 묘사한다. 소박한 반일감정과 민족의식만 가졌던 그는 조국광복회 성원이 되어 지하투쟁을 벌렸고 광복 후에는 내무일꾼으로 자라났다.
한편 최덕무는 인민군 연대장이 되어 동부에서 활동한다. 간첩비행기에 맞서서 아군 역량을 배비변경하는 척 하기도 하고 허위군사기재들을 만들어놓기도 하면서 적군의 엉터리폭격을 유도하던 최덕무는 그에 만족하지 않고 새 작전방안을 세웠다. 며칠 전 인민군 고사포병들이 적기 여러 대를 격추할 때 낙하산을 타고 내린 비행사 잭슨이 생포되었는데 그의 아버지가 미국의 대군수재벌이어서 적들이 그를 구출해보려고 애쓰기에 최덕무는 부상당한 잭슨이 게릴라 소굴에서 맹활동을 하는 듯이 계책을 꾸미고 잭슨의 명의로 허위정보를 날려온 것이다. 김일성 최고사령관은 사고 끝에 직승기를 빨리 나포해야겠다고 지시한다.
당시 강원도 산간일대에는 공중에서 투하된 게릴라들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 내무기관에서 침투시킨 공작원들로 조직된 “다비대”라는 무전대가 있었다. 다비대를 이용하여 잭슨의 명의로 적들에게 혼란을 주고 보급물자들을 공급받는 것으로 만족했던 최덕무는 김일성 최고사령관의 지시에 눈앞이 환해진다. 쌍방의 두뇌싸움이 치열하게 진행된 다음 김일성 최고사령관이 직접 정해준 상면장소- “다비대”공작조성원들이 들어있는 범골의 동굴과 20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서 최덕무와 내무원들은 약속된 시간- 아침 8시에 비행기를 맞을 준비를 갖추었다.
헌데 직승기의 뒤로 여러 대의 추격기들이 따라온다. 최덕무는 초조해난다. 공중에 머물러 좀처럼 착륙할 염을 하지 않던 직승기는 4명의 “다비대” 대원들이 “환자”를 눕힌 담가를 들고 달려나가니 서서히 착륙한다. 대원들이 “환자”를 들고 직승기에 들어가서 적들을 제압하는 것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으나, 진상을 발견한 적들이 직승기와 잭슨까지 포함하여 모든 것을 없애버리려 하면 야단이다. 속이 탄 최덕무가 결사전을 벌이려고 직승기쪽으로 다가갈 때, 좌우측 산마루에서 요란한 포성이 울리면서 추격기들을 향해 고사포탄들이 날아간다. 최덕무는 그만 어리둥절해난다. 허나 눈앞에서는 직승기에 탔던 5명의 적군이 땅에 어질어질 내려서고 적기들은 곤두박질치거나 뺑소니친다. 김철국이 나타나 최덕무에게 사연을 알려준다. 소설에서는, 미군이 비행사를 구출한다고 직승기를 보내겠다고 했지만 직승기만 보내지 않고 여러 대의 전투기로 구출작전을 엄호할 수 있다고 예견한 김일성 최고사령관이 김철국에게 고사포부대를 범골로 이동하여 나포작전에 참여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그려진다.
작전이 성공한 날 밤에 평양의 최고사령부에 도착한 최덕무와 김철국은 김일성 최고사령관에게 직승기사진들을 보이고 직승기에 탔다가 잡힌 5명이 국군첩보대 요원들과 알섬파견대 미군고문관임을 보고한다. 김일성 최고사령관은 작전의 영향력을 이렇게 판단한다. “이번에 적직승기를 나포한것은 군사적으로도 매운 큰 의의를 가집니다. 미제침략자들과 리승만괴뢰도당은 전선동부에서의 인민군대의 무력배치정형을 탐지해내여 중요군사요충지들을 봉쇄하려고 꿈꾸었댔소. 그런걸 동무들이 여지없이 짓부셔버렸소. 이 공작으로 하여 적들내부는 이제 곧 와해되고말것입니다. 적들은 <다비대>의 속임수에 속았기때문에 알섬파견대본부도 믿지 않을것이며 곳곳에 꾸려놓은 제놈들의 간첩망도 믿지 않을것입니다. 결국 동무들은 미제와 그 앞잡이들의 교활한 정탐모략책동을 짓부시고 우리 인민정권과 민주주의제도를 지키기 위한 투쟁에서 또 하나의 승리의 열쇠를 마련한셈이요.”(243쪽)
결국 소설은 최덕무가 김일성 최고사령관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하게 되고 앞으로 더 잘 싸워나갈 신심이 높아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단편소설에서 나포부분을 간추리면 시간은 1952년 초봄의 어느 날 아침 8시, 지점은 전선에서 얼마간 떨어진 범골, 주역은 도내무부, 보조역은 “다비대”라는 가짜반공게릴라들과 뜻밖에 나타난 인민군 고사포병들, 무기는 고사포. 그리고 적비행사는 대군수재벌의 아들(생존), 직접적인 적수는 동해상 알섬에 있는 첩보대의 파견대, 전과는 직승기 1대 나포와 수량 미상의 적기 격추. 작전결과는 직승기사진을 김일성 최고사령관에게 보이는 것이다.
▲ 장편소설 <전선사단>(김익철 지음,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7) [자료사진= 중국시민] | | 단편소설 《동틀무렵》보다 10여 년 늦게 나온 장편소설 《전선사단》(김익철 지음,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7년 7월 출판발행, 도합 423쪽, 사진)은 주로 인민군 65사단의 1951년 전투과정을 다뤘는데 적기와의 싸움이 상당한 편폭을 차지한다. 소설에서, 일부 인물들은 고사포부족만 한탄하면서 보병무기로 초당 300미터 이상 날아가는 비행기들을 잡을 수 있겠는가고 의심하지만, 주인공인 사단장 장준혁은 김일성 최고사령관의 지시대로 비행기사냥꾼조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인민군의 첫 여성비행기사냥꾼조 분대까지 조직한다. 미 8군 사령관 밴플리트의 공세는 65사단이 지키는 운무봉 일대에 “피로 물든 봉우리(피의 능선)”이라는 별명이 달리는데 그치고, 게다가 밴플리트의 아들인 비행사 제임스가 전선으로 통하는 철교를 끊으려고 야간폭격에 나섰다가 격추되어 비행기에서 탈출한 뒤 소식이 끊어진다.
탐색과 구출활동이 별 성과가 없으니, 5공군 사령관 버커스는 시험용으로 도쿄에 들어와 있는 신형 헬리콥터가 정탐용으로서 최신장비를 갖춰서 군사가들이 관심하는 대상이 되었다면서 도쿄 “유엔군”사령부에 제기하여 그 헬리콥터를 얻어 쓰자고 제의한다. 밴플리트는 구출활동을 전적으로 버커스에게 맡기고, “유엔군”사령관 리치웨이는 헬리콥터 사용을 허가한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65사단으로 내려온 군단장이 제임스가 추락되어 즉사한 줄을 모르는 적들이 대규모구출작전을 벌이면서 최신형 정탐직승기를 동원한다면서, 이에 맞서 최고사령부가 정탐직승기나포작전을 지시했고 그 작전을 대공화력으로 보장할 임무가 65사단에 차례졌다고 알린다. 그동안 사냥꾼조운동을 잘한데 대한 믿음이라는 것이다. 장준혁의 지시로 보장임무를 책임지게 된 고사포참모 고순종(이 사람은 직무자체가 말해주지만 사냥꾼조운동을 믿지 않았으나 실적 앞에서 생각이 바뀌었다)이 대오를 조직하여 떠난다. 실무적인 세부들이 많이 그려졌으므로 길더라도 그대로 인용한다. “목적지는 고성에서 좀 떨어진 해변가에서 얼마쯤 들어와있는 산속이였다. 옛날 절간터가 있는곳인데 얼마간 넓은 공지가 있는 동, 서, 북은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삼태기 모양을 이룬곳이였다. 그래서 일명 삼태기골로도 부른다고 했다. 밤이 되여 현지에 도착한 그들은 생땅을 파헤치고 진지와 좌지들을 굴설했다. 동쪽과 서쪽 고지들에 각각 고사총을 한문씩 배치하고 지휘소가 자리잡을 북쪽 고지에는 녀성조와 그밖의 한문을 배치했다. 만약 경우를 생각하여 고사총은 예비진지까지 준비하였다. 거기에는 이 작전에 인입할 미군 비행사 포로가 이미 와있었다. 그 포로는 제임스가 추락되는 날 낮에 동해지구에서 비행기사냥군조에 맞고 락하산으로 내리다가 잡힌 놈이였다. 이놈은 유사시에 구조대와 련계할수 있는 휴대용 무선기와 신호총을 가지고있었다. 바로 그 포로가 제임스로 가장하여 구조대를 부르고 놈들의 구출작전을 역리용하여 직승기를 나포하기로 작전이 되여있었다. 최순종은 전투원들을 모아놓고 작전의 구체적 과정과 임무수행방법을 세세히 설명해주었다. 대공사격지휘는 최순종이 맡아하며 그의 지휘소는 녀성진지곁에 준비했다. 녀성고사총의 발사가 곧 일제사격신호로 내정되였다.
작전개시시간은 새벽 6시 30분이였다. 아직 얼마간 시간이 있었다. … 시간이 되자 절간터 뜨락의 넓은 공지에 흰천으로 된 네모난 표식포가 펴지였다. 이윽고 그 우에 비행복차림에 무선기를 휴대한 비행사가 나타났다. 그런다음 뜨락 한모퉁이에 모닥불을 피워올렸다. 차츰 불길이 번지면서 연기가 타래쳐오르기 시작했다. 비행사가 무선기 마이크에 대고 구조대와 련계를 짓노라고 씨벌여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종은 쌍안경을 손에 든채 긴장한속에 정황을 주시했다. 아니나다를가 한동안이 지나서 비행기 동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쌕쌔기》 한개 편대가 불쑥 나타났다. 얼마간 간격을 두고 또 한개 편대가 나타났다. 비행사의 위치를 발견한 적기들은 주저없이 곧장 절간상공으로 날아들었다. 적기들은 대뜸 고도를 낮추어 선회하면서 비행사를 엄호하기 위한 기총사격을 마구 해댔다. 비행기사냥군조는 직승기가 착륙하기전까지는 일체 사격이 엄금되여있으므로 바스락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일단 발견만되면 나포작전은 파투가 되는 판이였다. 비행사가 적기들과 무슨 련계를 짓는지 연방 팔을 흔들어대며 뭐라고 고아댔다. 적기들은 더구나 미친듯이 날치며 향방없이 기총탄을 갈겨댔다.
눈먼 탄알이 진지주변에 비발치듯했다. 전투원들은 눈을 뜨고 보기만하기가 급해 이를 갈았다. … 드디여 직승기가 나타났다. 확실히 지금껏 보아오던것과는 모양이 달랐다. 그놈은 조심성 많은 짐승모양으로 굼뜬 동작으로 절간상공으로 접근하여 한바퀴 선회하고는 포로의 위치를 가늠해가며 점점 고도를 낮추어 접근했다. 땅으로부터 30메터쯤 상공에서 딱 멈춰서서 문을 열고 줄사다리를 내리떨구었다. 줄사다리는 허공중에서 바람결 따라 그네뜀을 하며 포로를 향해 점점 접근해왔다. 만약 포로가 우리와의 약속된 동작을 어기는 경우에는 발사하게 되여있었다. 포로는 약속대로 사다리를 잡지 않고 다리가 부상된 시늉을 하며 땅에 내려오라고 팔을 저었다. 그러나 직승기는 선뜻 행동하지 않고 주춤거리다가 아무래도 안되겠던지 차츰 고도를 낮추어 20메터, 15메터, 10메터까지 내려와서 딱 멎어섰다. 모든 진지들에서 직승기가 눈아래로 내려다보이였다. 포로는 여전히 사다리를 잡지 않고 같은 시늉을 했다. 비행기에서는 열려진 문으로 사람이 팔을 내밀고 빨리 오르라고 강박했다. 아무리 해야 더 내려올 태세가 아니였다. 적들이 무슨 기미를 알아차린것 같았다. 이제 달아빼면 헛탕이였다. 순종은 단호히 결심하고 봉쇄사격 구령을 내렸다. 금실은 사전 지시를 받은대로 직승기를 사격하지는 않고 그 상공으로 수평사격을 했다. 그러자 모든 총들이 일제히 입을 열었다. 콩볶듯하는 총성과 함께 직승기 상공은 탄알이 서로 교차되여 하나의 장벽을 이루었다. 와뜰 놀란 직승기는 상승하지도 내려앉지도 못하고 한동안 망설이다가 하는수 없이 내려앉았다. 이때를 기다려 가까이에 매복해있던 조가 달려들어 승무원들을 생포했다.
사태가 험악하게 번져지게 되자 상공을 마음놓고 선회하고있던 《쌕쌔기》편대가 급기야 진지들에 급강하하기 시작했다. 금실은 정확한 조준사격으로 급강하는 적기들에게 불벼락을 안기였다. 적기들은 속은것이 분했던지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고사기관총과 중기들이 일제사격을 퍼붓는바람에 뭣도 모르고 접어들던 적기 한대가 대번에 벌둥지처럼 얻어맞고 검은 연기를 토하여 곤두박히였다. 적기들은 한순간 주춤했다가 여러 방향으로 진지를 향해 덤벼들었다. 이러는 사이에 함선에서 함재기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금실은 덤비지 않고 주도기들을 포착하고 사격을 유도했다. 다른 진지들에서는 기준총을 중심으로 집중사격을 했다. 이렇게 되자 적기들은 제일 좋은 위치에 있는 금실이네를 알아보고 거기에 무리로 달려들었다.”(390~394쪽)
그후 최순종의 명령으로 여성분대는 전투 전의 눈먼 탄알에 이미 부상당했던 박금실을 부축하고 150미터 밖의 예비진지로 옮겨가는데, 그 사이 다른 조가 엄호사격을 해준다. 기준총의 기동으로 일시 깨어졌던 사격의 일치성이 곧 수습되어 함재기 한 대를 또 격추한다. 그러자 적기들은 슬슬 꽁무니를 뺀다. 격전은 끝났으나 직승기를 옮겨갈 때까지 최순종과 사냥꾼조원들은 임무를 계속 수행해야 한다. 장준혁은 만족과 감동에 차서 나포작전승리보고를 듣는다.
장편소설에서 나포부분을 간추리면 시간은 1951년 여름(8월경)의 어느 날 아침 6시 30분부터, 지점은 “고성에서 좀 떨어진 해변가에서 얼마쯤 들어와있는 산속”의 삼태기골, 주역은 미상이나 최고사령부의 지시로 작전이 진행된다고 밝힘, 보조역은 비행기사냥꾼조, 무기는 고사총과 중기, 경기. 그리고 적비행사는 밴플리트의 아들 제임스(사망), 미군 포로가 제임스로 분장, 직접적인 적수는 5공군사령관 버커스이고 그 뒤에 밴플리트와 리치웨이가 등장하며, 추격기 2개 편대와 함재기들이 참전하며, 전과는 직승기 1대 나포와 적기 2대 격추. 작전결과는 나포한 직승기를 옮겨가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소설은 부상당한 박금실에게 여성분대 성원 분옥이 알려주는 형식으로 제임스의 결과를 알린다.
“금실동무, 기쁜 소식이예요. 이번에 8군사령관의 아들놈을 떨군게 기동고사포중대 활동을 하던 금석이네 포라는게 알려졌어요.”(399쪽)
금석이란 한동안 헤어졌던 박금실의 동생이다. 박금실을 위문하러 갔던 장준혁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니까 이번의 큰 사변에서는 금실동무네 오누이가 주역을 한 셈이요.”(같은 쪽)라고 크게 감동한다.
▲ 장편소설 <전선의 아침>(박윤 지음, 문학예술출판사, 2005) [자료사진= 중국시민] | | 김일성 주석을 주인공으로 하는 총서 “불멸의 역사”중 장편소설 《전선의 아침》(박윤 지음, 문학예술출판사 2005년 11월 출판발행, 도합 423쪽, 사진)에서는 보다 폭넓은 범위에서 직승기나포작전을 다룬다. 우선 제1편 2장의 1952년 초 “유엔군”사령관 리치웨이가 밴블리트, 9군단 사령관 젠킨스, 부사령관 정일권을 대동하고 전선을 시찰하는 대목에서 직승기가 거들어진다. 밴블리트의 조카이며 대재벌의 아들인 헨리 밴플리트가 폭격행동에서 실종되었는데 여러 나라 정보부문과 육군정보국 지어는 특무대까지 나서서 샅샅이 뒤져도 소식이 없다. 그런데 리치웨이가 밴플리트를 동정하고 정일권은 냉소적으로 대하는데, 미극동공군사령관이 보낸 미3사 대대장 죤 아이크 2세가 리치웨이를 찾아온다.
리치웨이가 한갖 소좌를 작전회의에 불러들이는 바람에 어리둥절해났던 정일권은 죤 아이크 2세가 아이젠하워의 아들임을 알게 되어 영문을 깨닫는다. 아이크 2세는 자기와 인맥이 있는 미중앙정보국 현지반이 국군정보국선을 통하여 대단히 중요한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최근 대북첩보기관이 힘들게 련계를 회복한 북조선군지역의 한국군게릴라소부대”(52쪽)에 헨리 밴플리트 대위가 억류되었음을 확인했다고 용건을 알린다. 리치웨이는 믿을 수 있는 정보인가고, 북조선반탐기관의 함정일 수도 있다고 미심쩍어한다. 아이크 2세는 응당한 의문이라면서, “전선가까운 북조선군지역에 전개한 그 게릴라소조는 무전기가 파손되여 지금까지 본부와 련계를 못취했던것입니다. 우리가 파견한 신형무전기를 가진 련락원이야 믿을수 있겠지요? 오늘 아침 나는 그 련락원과 약속된 암호로 교신했습니다.”(같은 쪽)라고 설명하더니 연락원이 구출작전을 요구한다고, 이미 무선교신이 진행된 만큼 시간을 끌면 진짜 북의 반탐선에 노출될수 있다면서 “전선가까운 지대인 관계로 신형직승기만이 헨리를 구원할수 있”(같은 쪽)다고 주장한다. 리치웨이는 밴플리트를 얼핏 넘겨다보더니 대답한다. “좋소… 신형직승기 2대를 주겠소.… 하지만 덤비진 말아야 해. 정보에 의하면 까게베가 요즘 최근에 개발한 이 신형직승기를 탐낸다고 하오. 하지만 밴플리트대장을 위해 무엇을 주저하겠소. 그대신 안전을 위해 비행대만이 아니라 극동군분함대의 일부도 동원해야겠소.”(52~ 53쪽)
뒤이어 방관자로서 정일권의 생각이 그려진다.
“정일권은 릿지웨이가 말하는 안전이 헨리의 생명인지, 신형직승기의 보호인지 알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가지만은 명백하였다. 밴플리트대장의 조카구출작전에 아이젠하워가 관심하고있다는것, 릿지웨이는 이 정치적흥정의 매파가 되려는것이다. 군인이라고 결코 정치적감각이 무딜수는 없다.”(53쪽)
이처럼 소설은 직승기의 등장부터 국제적인 판도로 넓혀서 미국 정계의 새 실력자인 아이젠하워와 소련의 KGB와 얽었다.
한 장 건너 4장에서는 당시 김일성 최고사령관이 보고를 받고 지시를 하는 대목에서 직승기가 나온다. 내무성 부상 방학세와 정찰국 국장 박성철을 따라 최고사령관 집무실로 온 정찰국 부국장 최영환이 먼저 보고한다. 이 사람의 다른 신분은 특수공작조 책임자이다. 그는 특수공작조성원들이 내무성 성원들과 함께 산속에 깊이 숨은 적무장게릴라집단을 다 들춰낼 목적으로 연락원을 끌어들일 계획을 세웠는데 성공했다고, 그 후의 사태발전과 무전문해독과정 그리고 정찰국의 통보에 따라 여러 가지로 소득이 있는 신형직승기나포작전을 진행하려고 한다고 설명한다. 정찰국장은 최영환이 제기한 작전을 찬성하면서, 전에 탐조등을 이용하여 아군 비행장을 습격하는 미군비행기들을 떨군 일이 있었는데 그때 헨리가 추락되어 재가루로 된 것으로 추측된다고, 그 죽은 자를 “살려서” 작전을 벌리려 한다고 보충하더니, 다른 각도에서 작전의 의의와 어려움을 밝힌다.
“미제침략군이 최근에 개발한 신형직승기를 사로잡는것도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통보에 의하면 각국의 군사첩보기관들도 이 신형직승기의 기술문건을 노리고있습니다. 그리고 가끔 이놈이 전선상공에 떠돌아치군 하는데 경계선을 넘지 않고 갖은 못된짓을 다하고있습니다.”(86쪽)
뒤이어 적측의 극비자료를 통보해온 제3의 선에 대한 의문이 잠깐 거들어진 다음, 일정한 고사화력만 보장받으면 정찰국이 해낼 수 있고, 현지에서 내무성 성원들이 협력하리라면서 작전을 가볍게 생각하는 정찰국장에게 김일성 최고사령관은 작전의 규모와 위험성을 지적한다.
“이보라구, 작전지역이 전선가까운 통천근방이라면 그래 놈들이 고작 비행기 몇대의 엄호하에 신형직승기를 띄울것 같소?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는 미륙군대장네 귀공자를 구출하는 거사인데… 이제 작전이 벌어진다면 이건 엄청난 규모의 큰 전투로 될거요. 미군의 인원구출작전이라는게 또 하나의 틀이라고 할가, 그런게 있소. 내 짐작에는 적어도 수십대의 비행기가 날아와 작전지역의 반경을 따라 초토화공습을 진행한 후 특공대가 탄 직승기가 나타날수 있소. 바다가이므로 적함선들까지 뒤에서 엄호할것도 예견해야 해.”(86~ 87쪽)
수령이 적수의 의도들을 간파한다는 게 조선의 총서작품 틀의 하나임을 고려하면 이 대목을 이해하기 더 쉽겠다. 박성철과 방학세의 눈이 휘둥그레지는데 최영환은 그저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이 작전을 진행한다면 전선사령부에 임무를 주고 동무네가 직접 주관해야겠다는 김일성 최고사령관의 말을 듣고서야 최영환은 뒤통수를 긁으면서 가방에서 문건철을 꺼낸다.
“최고사령관동지, 그렇지 않아도 저희들이 방안을 세웠습니다. 이 동무들이 너무 욕심부리기에 내적으로 만들긴 했지만…”(87쪽)
김일성 최고사령관은 문건을 읽어보더니 방안과 성원들에 만족을 표시하고, 고사포를 비롯한 화력문제는 통천지구의 71군단과 전선사령부와 토의하라고 지시한다. 최영환과 정찰국장이 나간 다음 김일성 최고사령관은 방학세와의 대화를 통해 나포작전에서 이용하는 무장집단의 내력을 알게 된다.
“지난해말에는 황해도 장연군 주계봉일대에서도 수백명의 무장간첩집단을 소멸했습니다. 사실 이번 직승기작전에 역리용되는 통천군 절골무장집단도 그 선의 연장에서 우리 내무원들이 인민들의 도움을 받아 체포한자들입니다.”(88쪽)
좀 뒤에서 소련의 스탈린이 미국의 신형직승기정보획득공작에 대해 문의하니 KGB 책임자 베리야가 면목이 없다고, 대외공작조들이 치열한 작전을 벌리고있지만 아직 소득이 없다고 난색을 짓는다. 스탈린은 불만스러워한다.
“까게베야 전통이 있지 않소. 설계문건정보가 당장 힘들다면 그 날개쪼각이라도 얻어다 분석해봐야 하오.”(97쪽)
이처럼 직승기의 가치를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작전에 대한 궁금증을 강화하는 자리에서도 조선을 위해 움직이는 미지의 정보선이 소련의 정보망을 통해 조선에 정보를 전하는 일이 언급된다.
그 다음 무대는 다시 평양으로 돌아가 김일성 최고사령관은 신형직승기를 실은 군용차들이 최고사령부 소재지 건지리에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는다. 앞마당에 나온 김일성 최고사령관은 최영환과 작전조 성원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꽤 덩치가 큰 직승기를 살펴본다. 앞차에 실은 것이 동체부분이고 뒤차에 날개와 기차 부분들이 실렸다. 손상된 것이 없느냐는 김일성 최고사령관의 물음에 “다 제대로입니다.”(100쪽)라고 대답하는 최영환의 “살편이 적은 얼굴에 가볍게 미소가 비꼈다.”(같은 쪽)고 저자는 형상묘사를 해주었다. 뒤이어 김일성 최고사령관이 나포작전을 현지에서 지휘하고 도로 뜨려는 직승기에 뛰어오른 최고사령부 특수정찰조장 리문철 중좌에게 경과를 물어, “키가 후리후리하고 기름한 얼굴이 거밋거밋한 거쿨진 중좌”(같은 쪽)가 차렷자세를 취하고 대답한다. “최고사령관동지, 놈들이 수십대의 그라망으로 현장에 무작정 맹폭격을 가하며 생지랄을 치다가 직승기 2대를 <대상>에게로 내려보냈습니다. 마감무렵 습격조와 차단조, 위장조동무들이 엄호를 잘했습니다. 눈치를 챈 직승기놈들이 줄사다리를 올리려는 순간 위협사격을 하면서 몸을 날렸습니다. 71군단 58사 김필원과장동무도 함께 올라 엄호를 했습니다.”(같은 쪽)
김일성 최고사령관이 크게 웃으면서 칭찬한 다음, 최영환이 자랑스럽게 말한다.
“《… 예견대로 놈들은 직승기가 눈깜짝할 새에 사로잡히자 해안가까이 전개했던 함선들의 화력지원하에 비행대로 다시 달려들었습니다. 작전지역 뒤산에 배치했던 고사포들이 적기 5대를 격추하였습니다.》 《그러니 모두 6대를 나포 및 격추하였구만. 보시오, 한 전투에서 적기 6대를 나포 또는 격추하였으니 얼마나 통쾌한 승리입니까. 우리가 비행기사냥군조운동을 전개하여 도처에서 적기사냥을 벌리고있을 때에 한번에 적기 5대를 격추하고 생생한 직승기 1대를 나포하였으니 적들이 아우성을 칠것입니다. 릿지웨이나 밴플리트는 아예 기가 죽었을거요. 부국장동무네가 말하는 정치적의의만이 아니라 군사적면에서도 좋은 경험을 주는 잘 째인 전투요.》”(101쪽)
김일성 최고사령관이 직승기를 병기부문 일꾼들에게 인계하라고 지시했는데, 이튿날 총참모장 남일이 최영환과 함께 찾아와 난처한 일이 생겼다면서, 소련대사와 무관이 어떻게 소식을 알았는지 찾아와서 직승기의 날개조각만이라도 얻을 수 없겠는가고 대단히 조심스럽게 문의했다고, 스탈린이 관심한다더라고 전한다. 김일성 최고사령관은 뭘 그리 잴 게 있는가고 우리 병기부문동무들이 다 알아봤으면 통째로 주라고, 형제국가사이에 무슨 아낄 게 있는가고 말한다. 두 사람의 눈이 커지는데, 김일성 최고사령관이 또 이야기한다.
“민주진영, 사회주의진영의 강화견지에서 우리 혁명가들은 비록 이것이 사소한 문제같지만 넓게 생각해야 하오. 원자탄개발에서 미제에 뒤진것으로 쏘련이 얼마나 고심했소. 쓰딸린동지와의 친분관계로 봐도 그렇고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원칙에서 봐도 이건 필요한 일이라고 봅니다.”(102쪽)
뒤의 6장에서 “쏘련에 보내준 신형직승기가 모스크바의 이와노브광장에 도착한 날 쓰딸린이 크나큰 격정속에 직승기동체를 매만져봤다는”(116쪽) 묘사로 직승기의 결과를 알리는데, 이야기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제2편 제4장은 클라크가 리치웨이를 대신하여 “유엔군”사령관으로 된 뒤의 시기를 다루는데, 김일성 최고사령관은 장령들과 군관들을 만난 자리에서 “지난 2월에 적신형직승기 나포작전을 지휘한 리문철동무”(236쪽)을 알아보고 리문철이 직승기를 모스크바까지 호송했던 일을 상기해 확인한다.
“음, 보고서를 읽었소. 난 쏘련사람들이 그 직승기 날개나 부분설계도라도 얻으려고 까게베까지 동원해서 근 반년간 추적한 사실을 알고 놀랐댔소. 그런 면에선 우리가 늦게라도 도와주길 정말 잘했소. 동무가 〈설악산 2호〉도 찾아냈고 공적도 크고 수고도 많았소.”(같은 쪽)
여기에서 “설악산 2호”란 바로 그 미지의 신비한 정보선을 맡은 사람으로서 《뉴욕타임스》지 사회부기자로서 반도에 와서 활약하는 조선계 미국시민 리지아인데, 사실은 김일성 항일유격대 지하공작원의 후예이다. 이 인물은 조선의 문학작품들에서 보기 드물다는 호평을 받았는바, 이 글의 주제와 거리가 멀기에 구체적인 소개를 줄인다.
신형직승기는 “금화공세”가 참패로 끝난 뒤인 1952년 가을 제3편 제6장 여인들을 데리고 전선에 온 직승기를 타고 두루 돌아보는 대목에서 마지막으로 언급된다. 클라크가 어머니에게 동방나라의 가을경치를 보여드려야겠다면서 기수를 낮추라고 지시하니 아이크 2세가 냉철한 눈길을 번뜩인다.
“귀하, 전선지역에서 더 낮추 뜨는건 대단히 위험합니다. 불미스럽게도 제가 오판해서 북조선군이 이런 신형직승기를 로획했다는 사실을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402쪽)
뒤이어 신분미상의 름멜소장도 얼굴이 찌뿌듯해진다.
“각하, 벌써 우리는 신형직승기 29대를 북조선군 대공화력에 잃었습니다.”(같은 쪽)
장편소설 《전선의 아침》에서 그려진 직승기나포작전을 간추리면 시간은 1952년 2월인데 구체적인 시간은 미상, 지점은 강원도 통천지구의 절골. 주역은 정찰국 부국장 최영환, 보조역은 내무성과 71군단 등, 무기는 고사포. 적비행사는 밴플리트의 조카 헨리 밴플리트(사망), 적수들은 밴플리트, 리치웨이 등. 전과는 직승기 1대 나포와 적기 5대 격추. 작전결과는 직승기를 평양으로 날라다가 연구한 다음 소련에 넘겨줌.
보다시피 시간, 지점, 인물, 경과들이 상당히 다르다. 그러면 《로동신문》은 어떻게 역사사건을 소개했는가? 글에 나오는 경칭, 경어들을 적당히 다듬으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된다.
1952년 2월 5일, 김일성 최고사령관은 전선동부에서 미군비행기를 격추하고 비행사를 생포하였는데 그 비행사가 대재벌의 아들이므로 무조건 구출하라는 지시를 받고 직승기가 온다는 자료를 보고받은 뒤 해당 부문의 일꾼들에게 “미군직승기를 나포하기 위한 작전을 빈틈없이 짜고들어야 하겠습니다.”라고 하면서 그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가르치고 작전이 중요한 것만큼 책임적인 일꾼이 맡아하여야 되겠다고 이야기했다. 이에 따라 최고사령부 부국장인 최용한이 직승기나포작전 책임자로 임명되었고 작전은 곧 수행되어 미군직승기는 나포되었다.
김일성 최고사령관은 “미제침략자들”이 직승기가 나포되었으니 아마 악에 받쳐할 것이라면서 나포한 직승기가 손상되지 않도록 대책을 철저히 세워 최고사령부에 빨리 올려와야겠다고 지시했다. 최용한은 항공기술일꾼들과 함께 직승기를 분해하여 2대의 자동차에 싣고 이틀 동안 달려 평양에 도착했다.
2월 10일, 김일성 최고사령관은 일꾼들과 함께 직승기가 있는 곳에 와서 최용한의 손을 잡으며 이번에 수고했다고 직승기를 보자고 말했다. 최용한은 앞차에 실은 것은 동체이고 뒤차에 실은 것은 날개와 기타 부분품이라고 보고했다. 김일성 최고사령관은 직승기가 최근에 개발되어 장비한 직승기라는 것과 그 전술기술적제원을 요해하고 놈들이 최신형직승기를 나포당했으니 화가 치밀어 야단일 것이라면서 최용한에게 어떻게 나포했는가고 물었다. 최용한은 최고사령관의 가르침대로 작전을 수행한데 대하여 보고했는데, 미군직승기를 아군지역으로 유인한 다음 고사무기와 저격무기로 위협사격을 하여 나포했다는 사실을 보고받은 김일성 최고사령관은 만족해하면서 직승기를 나포하기 위한 책략을 잘 짰다고 높이 치하했다.
기사에 따르면, 김일성 최고사령관은 세계전쟁역사를 보아도 비행기를 격추하거나 습격하여 노획한 일은 있어도 생포한 적비행사를 역리용하여 비행기를 나포한 일은 없다면서 미제침략자들이 《공중우세》를 떠벌이면서 허장성세하지만 우리가 기묘하고 영활한 전법으로 싸우면 적들의 기도를 얼마든지 짓부실 수 있다고 가르쳤다. 최용한이 이번 전투에서 미군직승기를 나포한 다음 그것을 구출하기 위하여 날아온 적비행기 5대도 격추했다고 보고하니, 김일성 최고사령관은 무척 만족해하며 “그러니 모두 6대를 나포 및 격추하였구만. 보시오. 한 전투에서 적기 6대를 나포 또는 격추하였으면 얼마나 통쾌한 승리입니까.”라고 치하했다. 김일성 최고사령관은 우리가 비행기사냥꾼조운동을 전개하여 도처에서 적기사냥을 벌리고 있는 때에 한 번에 적기 5대를 격추하고 생생한 직승기 1대를 나포했으니 적들이 아우성을 칠 것이라면서 이것은 우리가 내놓은 비행기사냥꾼조운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세계에 널리 시위한 것으로 된다고 말했다.
이렇게 보면 직승기나포작전은 1952년 2월 8일(이틀 달려 평양에 도착했다는 대목에서 거꾸로 추정)경에 진행되었는데, 주역은 부국장 최용한이었고 생포한 적비행사를 역이용했으며 고사무기와 저격무기를 결합하여 위협사격으로 적기를 나포했다.
소설들과 대조해보면 시기적으로 제일 다른 건 《전선사단》으로써 작전시기가 1951년으로 바뀐 것은 1952년 2월에 평양에서 진행된 조선인민군 모범비행기사냥꾼조원대회로 맺은 소설이 주요한 내용들을 1951년에 모아서 묘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또한 비행기사냥꾼조운동의 효력을 강조하다나니 순전히 보병무기로 전과를 올렸다고 그린 것도 이해가 된다. 그러나 전투과정은 가장 생동하고 상세하다.
이야기가 많이 달라진 건 《동틀무렵》으로서 도내무부가 작전을 전담하다가 작전과정에 난관에 부딪쳐서야 군대의 도움을 받게 되어 사연을 알게 된다는 설정은 상당히 억지스럽다. 작전의 의의와 규모에 어울리지 않거니와 《전선사단》에서 그렸다시피 고사총, 기관총들을 설치하려고 해도 진지굴설이 필수이고 고사포는 요구가 더욱 엄격한데, 중요작전을 준비해온 내무원들이 부근에서 진지작업이 벌어지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물론 단편소설의 부피제한으로 하여 일부 내용을 비약시킨 것은 이해가 된다.
가장 사실에 접근한 건 아마 《전선의 아침》이 아닐까 생각된다. 분명 최용한을 원형으로 삼은 최영환이 등장하여 작전을 지휘하고 뒤에서 반당분자색출에서도 큰 공을 세우며, 전과들에 대한 묘사도 신문과 마찬가지이다. 물론 소설이니까 묘사된 사건의 세부들과 국제적 의의 등까지 다 사실이라고 믿을 필요는 없겠다.
한국이나 미국의 기록만 본 사람들은 혹시 직승기나포가 조선의 뻥이라고 단언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필자가 여러 글에서 거듭 지적했다시피 1950년대 초반의 전쟁은 경험자, 관찰자, 연구자들의 시각과 정보제한으로 말미암아 아직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 더욱이 아직까지도 비밀해제가 되지 않은 자료들이 있으므로 공개되지 않은 내막들은 얼마든지 있다. 정전담판만 놓고 보더라도 필자가 직접 경력자에게서 들은 지원군 측 특수소조의 존재는 지금까지 그 어떤 자료에서도 나타나지 않았다. 때문에 어떤 주장을 접하면 속단을 하지 말고 여러 모로 자료들을 모아서 대조, 연구하여 가급적으로 진실에 가까운 결론을 얻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로동신문》의 글에 의하면 최용한은 고혈압병에 시달리다가 53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경력을 따져보면 공개해서는 안되는 비밀들과 많이 얽혀졌다. 특히 비밀정보선들과 관계되는 경우에는 북에서도 무슨 공로를 세웠노라고 알리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때문에 생전에 별로 선전되지 않았고 사후에도 50년 가까이 지나서야 영웅칭호를 추증받지 않았겠나 짐작된다.
최용한에 대한 표창과 선전은 소련“고려인”(외부에서 흔히 “소련파”로 분류하는 사람들)들의 삶에 대한 평가를 통해 역사해석권리를 확보하고(한국에서는 걸핏하면 “고려인”들이 소련에서 어떻게 박해를 받았다면서 “약소민족의 설음”을 운운한다), 보이지 않는 전선에서 일해온 사람들에 대한 공개적인 선전을 통해 비슷한 일들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또한 직승기나포작전에 대한 공식적인 선전은 지금도 대미투쟁을 벌이고 있는 조선사람들에게 미국과의 두뇌전에서 얼마든지 이긴다는 신심을 북돋아주는 효과도 낳지 않을까? 최용한에 대한 조선의 공개표창과 선전이 김정은 제1위원장의 지시로 이뤄졌다는 점을 놓치지만 않는다면 필요한 연구가 진행되어야 정상인데, 한국에서 이에 관한 자료를 전혀 보지 못했으므로 적임자가 아닌 필자가 재간껏 써서 소개한다. 조선사람들의 생각을 아는 과정이 바로 통일문화를 이루는 과정이라고 믿어서이다.(2013년 7월 20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