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 [연재33]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 2. 역전되는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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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9-09-03 15:38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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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33] 장편소설 <네덩이의 얼음> 2. 역전되는 사건
편집국
(제 33 회)
제 7 장
2. 역전되는 사건
웅카라가 츄홍따이가 기다리는 싸칼리정박장에 도착한것은 오후 5시경이였다.
다리입구에서 기다리던 츄홍따이가 정박장책임자인 몸좋고 인상좋은 녀인과 함께 마중나왔다.
《부장님! 이렇게 제 청에 응해주어서 감사합니다.》
웅카라의 손을 잡고 소탈하게 웃는 츄홍따이와는 달리 녀인은 웬일인지 입과 눈모습이 몹시 긴장되여있는 자세였다.
《그래 상했던 팔은 일없소?》
《예, 다 나았습니다.》
츄홍따이는 선선히 웃으며 웅카라에게 함석지붕의 푸른 도색이 번들거리는 정박장 본체뒤로 보이는 숲속을 가리켰다.
《저 정박장창고뒤에 조용한 집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로 가십시다.》
츄홍따이는 제 먼저 그쪽으로 앞장섰다.
웅카라는 조용한 장소를 택한데다 자기의 의사를 묻지 않고 주동적으로 앞장서 걷는 츄홍따이에게서 확실히 무엇인가 결심하고 행동하는듯 한 이상한 촉감을 느꼈다.
정박장책임자는 뒤에 떨어졌다.
참대가 우거진 소로길을 걸어 얼마쯤 가니 흰 벽체가 산뜻하고 아담한 한채의 단층이 나졌다. 나무계단을 올라 현관에 오른 웅카라는 사위를 둘러보며 츄홍따이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정갈하게 꾸린 방안에서 탁자를 마주하고 앉자 츄홍따이는 집을 관리하는 녀인에게 차를 가져오게 하고는 다신 들어오지 말라고 당부하며 내보냈다.
차를 한모금 마신 웅카라는 차잔을 탁자에 놓으며 물었다.
《츄홍따이사장! 무슨 일이요? 우리사이가 뭐 이렇게 격식을 차리고 무게를 두면서 만날 사인 아닌것 같은데.》
그 말에 개의치 않고 웅카라를 정면으로 지그시 바라보던 츄홍따이는 《웅카라부장! 이제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으시오.》하더니 잠시 동안을 두었다가 불쑥 단도직입으로 말을 꺼냈다.
《당신은 지금 필사적으로 니시하라 겐따로와 도미꼬의 살인범을 찾고있지 않소?》
(아, 결국 그 문제구나.)하며 웅카라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소.》
《난 그 살인범을 알고있소.》
《뭐라구? …》
웅카라는 바위돌에 깔리기라도 한듯 숨이 가빠옴을 느끼며 놀란 눈으로 츄홍따이를 쳐다보았다.
《정말이요?!》
《내가 여기로 당신을 부른건 바로 그 문제때문이요.》
《누구요? 그 범인이…》
《나요.》
그 말에 웅카라는 흠칫 놀라 눈을 치떴다.
《츄홍따이사장! 이건 롱담이요 뭐요?》
《지금 롱담할 계제요? 그 아지자와와 렌꼬 즉 니시하라 겐따로와 도미꼬는 내가 죽였소. 이 츄홍따이가 죽였단 말이요.》
《?! …》
웅카라는 오싹 온몸에 일어나는 전률속에 츄홍따이의 두눈을 꿰뚫듯 지그시 쏘아보았다.
《츄홍따이사장!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생각하며 말하는거요? 자신을 외국인살해사건의 범인, 극형으로 처형될수 있는 그런 테로사건의 범인으로 자처하고있단 말이요.》
《웅카라부장! 그건 진실이요.》
《이건 자수요 뭐요? 당신이… 당신이 살인자라니? …》
웅카라가 어이없는듯 뇌이자 츄홍따이는 격하여 부르짖었다.
《웅카라부장! 그러니 당신이 지금 힘들게 벌리고있는 그 수사를 즉시 중지하고 한시바삐 결속하기 바라오.》
웅카라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렇다면 츄홍따이사장! 난 당신을 이 자리에서 체포해야겠소.》
웅카라가 일어선 자세에서 권총과 수갑을 꺼내들자 츄홍따이는 느긋이 웃으며 올려다보았다.
《웅카라부장, 그런건 거두오. 스스로 자수하는 내가 아니요?
당신이 이길로 방코크로 돌아간 다음 나를 오라고 청한대도 주저없이 찾아가 수갑을 찰테니까. 앉으시오. 앉아 이제부터의 내 얘기를 잘 듣소.》
너무도 태연자약하고 여유있는 츄홍따이의 태도에 웅카라는 다시 자리에 앉을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당신은…》
웅카라는 씹어뱉듯 뇌였다.
《수사본부가 선 후 보름가까이 지나도록 날 옆에서 지켜본셈이로군. 그러다 이제 와서 자수라…》
웅카라는 츄홍따이의 말이 아직 진실로 믿어지지 않아 반신반의하며 말했다.
《여하튼 털어놓소. 그들을 왜 죽였고 어떻게 죽였소?》
《당신은 알게요. 쑤코타이에서 유적도굴단을 칠 때 부상당한 나와 한 초막에서 지내며 들려준 내 과거이야기 말이요.》
웅카라는 머리를 끄덕였다.
《그때 그 얘기야 잊을수 없지.》
츄홍따이는 낯빛이 사납게 일그러졌다.
《나의 아버지 츄마키리유격대장과 그 전우 마흔두명을 머리가죽을 벗겨 교살하고 무고한 녀인들과 아이들을 집단학살했으며 나의 어머니를 집단륜간하고 성노예로 끌어간 그 일본군대위, 그 이야기도 생각나오?》
《생각나오.》
《그놈이 바로 니시하라 겐따로요.》
《뭐, 뭐라구?! …》
웅카라는 말문이 꺽 막혀 츄홍따이를 쳐다보았다.
《그게 사실인가?》
츄홍따이는 말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세상에 이런… 그, 그러니 그놈이 자기가 칸쿤마을사람들을 집단학살했던 그 자리에 당신에게 붙잡혀와 당신 아버지를 목매달아 죽인 그 나무에서 꼭같은 방법으로 처형됐단 말이요?》
《…》
당장에 사건의 본질과 진상을 파악하는 재기가 뛰여난 웅카라를 건너다보며 츄홍따이는 말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츄홍따이는 갈린 목소리로 계속했다.
《며칠전에 당신이 작년 5월에 고대조선어연구로 여기 라후족을 찾아왔던 두 일본대학생에 대해 물었을 때 내가 그들을 안내했다고 하지 않았소.
참으로 우연중에도 우연이지만 바로 그 이마무라청년의 할아버지가 당시 어린 대학생으로 군에 징집되여 니시하라놈의 중대대원으로 그 칸쿤학살만행에 참가했소. 그런데 그놈에게 인간백정질을 강요당하고 그만 정신이상자가 됐던거요. 할아버지를 그렇게 만든 원흉을 찾고찾던 그 청년은 수십년이 지난 오늘에야 그놈이 니시하라라는것을 알게 됐소.
이마무라와 아끼꼬는 타이 방코크에 수만세대의 집을 지어놓고 동남아에서 침략과 살인에 날뛰던 옛 <황군>출신 은퇴자들을 끌어들이려는 그 니시하라놈이 바로 칸쿤학살만행의 주범, 나의 부모들을 무참히 학살한 그 니시하라대위라는것을 알려왔던것이요.
웅카라부장! 그런 때 그래, 당신이 내 경우라면 어떻게 해야 될것 같소?》
《…》
웅카라의 두볼은 경련이라도 인듯 무섭게 실룩거렸다.
그의 가슴은 폭풍을 안은것처럼 걷잡을수 없이 높뛰였다.
그것이 정말 내 경우라면 어째야 할것인가.
《간악한 그놈의 과거를 알게 된 이마무라와 아끼꼬는 천진하게도 그놈의 죄상자료를 가지고 들이대여 그자들에게서 사죄와 배상을 받으려 했소.
그자들이 어떤자들이라는것을 너무도 몰랐거던.
그래서 나를 찾아 타이로 떠나기 전에 도미꼬를 만나 들이댔소.
아끼꼬가 쓴 광고원고와 첫회분 원고를 보고 놀란 도미꼬는 즉시 타이에 가있는 니시하라에게 그 사실을 알렸던거요. 자기의 지난 과거가 낱낱이 밝혀지면 그 추문으로 자기의 정치적생명이 끝나는것은 물론 <천황>가에 돌이킬수 없는 타격이 되고 더우기는 방코크에서 현재 벌리고있는 <미니 도꾜>사업이 중도반단되고 타이인민을 잔인하게 학살한 전범자로 체포되든가 추방당하는 신세가 되리라는것을 즉석에서 깨달은 니시하라는 그 자리에서 44년도에 못 죽인 옛 유격대장의 아들인 나와 이마무라 그리고 아끼꼬를 없애버릴 결심을 내렸던거요.
니시하라의 지령을 받은 도꾜의 도미꼬와 흉악한 극우익패들은 그날로 졸개들을 동원해 두사람을 랍치해가지고 저들의 소굴로 끌어갔소.
그리고는 이마무라가 지켜보는 속에서… 차마 눈뜨고 볼수 없는 잔인한 악행으로 아끼꼬를 륜간하고 학살했고 그들의 몸에 돌을 달아 바다에 싣고 나가 물속에 처넣었소. 그리고…》
여기서 츄홍따이는 더 이야기하기 숨이 가쁜듯 동안을 두었다가 자기의 왼쪽어깨를 가리켰다.
《전번에 내가 당신에게 벼랑에서 굴러 상했다고 했던 이 상처… 이것도 바로 그 니시하라가 나를 죽이려고 부하들을 시켜 칼로 찌른 상처요.》
《뭐, 뭐라구? 니시하라가?》
《그렇소.》
《그게 언제요?》
《9월 30일이요. 아끼꼬가 죽고 이마무라만 살았다는 련락을 받았을 때 난 각성해야 했소. 니시하라가 그 즉시 나에게도 마수를 뻗칠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거던.
그 이틀후에 무챠룬호수에 갔다오는 쟝글속의 소로길에서 날 죽이려고 덤벼든 무술단수가 뛰여난 세놈의 습격을 받았소.
내 운전사가, 특공대에 있을 때 부하로 있었던 내 운전사만 아니였다면 난 그 일본깡패들의 손에 이미 죽은 몸이 됐을거요. 그는 온몸이 피투성이되여 숨지면서도 나를 이렇게 살려냈소. 오늘의 복수를 위해 난 그 운전사가 죽은 사실도 숨겼소.
웅카라부장! 이런 년놈들이요. 이런 살인마들을 응징하지 않는다면 아마 하늘이 노하여 천둥을 치고 벼락을 내릴거요.
그래서 이마무라와 나는 우리의 목숨을 걸고,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기어이 이 원쑤들을 징벌하기로 결심했소.
난 첫 기회를 놓친 니시하라와 도미꼬년이 틀림없이 다시 덤벼들리라는걸 생각했소.
아닐세라 첫날에 나를 죽이지 못한걸 알게 된 도미꼬는 제밑의 뛰여난 살인업자 몇놈을 직접 끌고 제 할애비를 찾아 타이로 떠났던거요. 그년을 뒤따라 이마무라도 떠났소.
베이징을 거쳐 도착한 이마무라에게서 그가 바다에 던져졌다 겨우 살아난 이야기, 아끼꼬가 죽게 된 구체적인 사연을 들으며 너무 통분해 가슴을 쳤소.
그때 놈들을 처형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것은 나였소.
원쑤를 갚자. 그러되 놈들을 방코크가 아니라 칸쿤마을로 끌고 가 악귀들이 그때 우리 부모, 우리 라후족사람들에게, 아끼꼬에게 저지른것과 꼭같은 방법으로 징벌하자! 이마무라도 이를 갈며 동의해나섰소. 자! 웅카라부장! 이 사건은 이렇게 되여 일어나게 된거요.
이런 살인마, 악귀를 응당하게 복수했는데 그래도 당신은 나를 체포하겠소? 체포할 자신이 있소?》
《후-》
웅카라는 기가 막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긴숨을 내쉬였다.
가슴이 끓어올랐다.
법률을 대표하는 경찰로서 응당 살인사건을 감행한 그를 체포하지 않는다면 자기는 범죄의 공모자로, 신성한 법률의 파기자로, 사건수사를 중도반단한자로 락인될수 있다.
하지만 웅카라는 츄홍따이를 체포할 그 어떤 명분도 의지력도 완전히 잃어버렸다.
오히려 세월을 두고 침략과 략탈, 살인과 륜간, 온갖 비인간적악행으로 타국사람들에게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재난을 가져다준 일본놈들에 대한 이름할수 없는 분노가 가슴속에서 용암처럼 이글거리며 끓어올랐다.
《츄홍따이사장! 어떻든 나는 법의 집행자요. 그러니 이 자리에서 사건과 관련한 구체적전말을 들어야겠소. 그래 사건가담자는 당신 두사람뿐이요?》
츄홍따이는 머리를 저었다.
《아니요. 난 사건을 계획하면서 일본의 야만들을 징벌하는 이 성전에 일제에 대한 원한으로 가슴에 피멍든 아시아나라의 벗들이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했소. 그래서 부르게 된것이 필리핀의 판따시웅과 중국의 왕선홍이였소.》
《필리핀과 중국사람이라고?》
《그렇소.》
《아니?! …》
웅카라는 자기가 그처럼 찾고찾던 범행의 가담자들을 서슴지 않고 불러대는 츄홍따이를 놀라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 동기가 어떻든 극형으로 처벌받아야 할 살인사건의 범인들을 주저없이 털어놓는 츄홍따이의 결단, 그뒤에 느껴지는 강렬한 복수심과 생사를 초월해 의협심으로 뭉친 그들 범인들의 무서운 의지가 가슴을 섬뜩하게 했다.
《왕선홍과 판따시웅이 도착한것이 10월 5일이였소.
니시하라놈과 나의 부모들, 이마무라의 할아버지와 아끼꼬의 죽음에 얽힌 구체적인 이야기를 다 들은 왕선홍과 판따시웅은 분노로 치를 떨며 두말없이 징벌에 나서겠다는 결의를 표명해나섰소.》
《그 참-》하고 웅카라는 그만 절규하듯 긴숨을 내쏟았다.
《판결집행장》에 찍혀있던 그 각 나라 반일단체명들이 환등처럼 눈앞을 스치며 지나갔다.
수사경찰생활이 20여년이 넘지만 여러 나라 민간인들이 모여 강행한 이런 엄청난 국제련합의 정치적살인사건은 그야말로 처음인 웅카라였다.
아니, 이런 사건이 생길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것이다.
《왕선홍과 판따시웅은 이 사건과 어떤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요?》
《그 둘 다 위안부녀인들의 자식들이요.》
《친자식들인가?》
《물론 아니요. 작년 12월 도꾜녀성국제전범법정때 난 우리 싼따라어머니를 모시고 도꾜에 갔댔소.
그때 필리핀에서 위안부양어머니를 모시고 왔던 판따시웅과 중국 상해에서 역시 양어머니를 모시고 온 왕선홍이란 한족청년과 깊이 사귀게 되고 거기서 결의형제를 맺었던거요.
판따시웅이 모시고 온 가뜨반야할머니는 필리핀의 빠나이섬 일로일로지역에 있던 제1위안소에 끌려가있었는데 왜놈들이 제놈들의 말을 안 듣는다고 온몸과 입술 지어 혀에까지 가장 상스러운 말을 입묵시킨, 그래서 지금까지 그 어떤 보도에도 한번 못 나갔던 녀인이였소. 입을 열면 입술의 그 글자들이 보이는, 그래서 입을 열기 힘들어하는, 한생 무거운 침묵으로 가장 격렬한 증오를 토로하며 살아온 그런 할머니의 양아들이 판따시웅이였소.
중국의 소소미할머니는 대만의 기꾸사이로항공군위안소에 끌려가 일본비행사놈들의 성노예로 온갖 고초를 다 겪은 로인인데 왕선홍은 그의 조카였소.
왜놈들의 악행을 대를 두고 복수하겠다고 이를 가는 청년이였소.》
웅카라는 수사과정에 제일 의문이 많았던 문제를 물었다.
《니시하라와 도미꼬는 어떻게 호텔에서 유인해내 칸쿤까지 끌고 갔소?》
《니시하라와 계약을 맺고 <미니 도꾜>건설을 맡아하게 될 <방콕랜드>의 아난드칸자사장은 나와 가까운 친구의 한사람이였소.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운 나는 놈들을 끌어낼 기회를 엿보던중 아난드칸자사장이 다음날 저녁에 그달 방코크항에 선적되는 건설자재들의 문건을 니시하라에게 넘겨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였소. 6일 오후 6시에 난 니시하라에게 전화를 걸었소.
아난드칸자사장의 서기인데 니시하라씨에게 전달하라는 문건을 가져왔다고 하니 놈이 지금 목욕중인데 호텔앞의 공원에서 7시에 만나자고 하더란 말이요.
난 아난드칸자사장이 당신의 외손녀 도미꼬양에게 보내는 선물도 있으니 함께 나왔으면 좋겠다고 했소.
그때 만약 도미꼬가 다른 사정이 있어 함께 나오지 못한다면 구실을 대고 기회를 다음날로 미룰수밖에 없었소.
그런데 다행히도 니시하라놈이 도미꼬와 저녁산보를 함께 나가니 그 시간에 만나자고 하더란 말이요.
시간을 약간 넘어 저녁 7시 20분에 약속대로 니시하라가 도미꼬를 데리고 공원으로 나왔소. 두번다시 없을 절호의 기회였소.
문건을 넘겨주고 수표를 해달라고 했소. 그런데 니시하라가 <수표는 무슨… 아난드칸자사장에게 그대로 자재를 입고시키라고 해.> 하며 그대로 돌아서려 하는게 아니겠소. 순간에 아찔했소. 그래 아난드칸자사장이 꼭 수표를 받아오라고 당부했다고 사정했소.
그제서야 그놈이 마지못해 돌아서더군.
차안에 들어오는 순간에 왕선홍과 이마무라가 니시하라를 마취수건으로 덮쳤소.
선물함을 받고 좋아하던 도미꼬가 그때 소리치려 하는것을 내가 입을 막고 차안으로 밀어넣었소. 전날에 그들의 구내산보때는 경호원들이 따르지 않는다는걸 우린 이미 알았댔소.
그 즉시로 승용차 두대로 치엥마이로 통한 4번국도를 따라 달렸소. 밤중으로 치엥마이를 거쳐 7일 새벽녘에 여기 싸칼리정박장에 도착했소. 그리고 바로 이 집…》 츄홍따이는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이 집에 머물렀다 그날 밤에 커누를 타고 삥강을 따라 칸쿤마을로 내려갔던거요.》
《그런데 그 커누는 어떻게 된거요? 우리 프리야춘형사는 그때 여기 정박장을 와보고 등록된 배가 다 있더라고 보고했단 말이요.》
츄홍따이는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사실 그 배는 이 정박장에서 쓰고있던 배요. 그걸 도색을 다시해서 번호를 지우고 놈들을 태워갔던거요. 놈들을 징벌한 후 우리를 찾아오라고 당신들 눈에 쉽게 띌수 있게 칸쿤마을 정박장앞 강에 그 배를 가라앉혀놓았소.》
《그러니 우야 흔적을 남겨놓았다는 소리 아닌가?》
《그렇소. 그런데 아까 만났던 정박장책임자 그 뚱보녀인이 다음날 나에게서 사건의 내용을 들은 뒤 장부를 깨끗이 고쳐놓았던거요. 사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도 말이요.》
《사건당일 밤에 그 녀자를 찾으려면 여기로 오라고 전화한것도 그런 목적에서였는가?》
《그렇소. 음성기록을 남기고 커누를 발견하게 해서 당신들이 우리를 공식적으로 하루빨리 체포하게 만들자는것이였소. 그래서 세계여론이 이 사건을 떠들게 하자는것이였소.》
《세계여론이? …》
《그렇소. 이 사건이 끝까지 은페되면 우리는 당신들의 수사에 걸려 붙잡히게 되고 결국 비밀리에 살인죄의 루명을 쓰고 죽을수밖에 없는거요. 언론과 세계의 정의의 목소리에 공개하는 길만이 이 사건의 진실을 정확히 밝히고 우리가 살수 있는 길이란걸 우리는 확신하고있었소.》
《음…》
웅카라는 옆구리에 칼이라도 맞은듯 숨이 막혀왔다.
의도적으로 흔적을 남겨 자기들을 찾게 하려 했다는 츄홍따이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였다.
그러고보면 어이없을 정도로 그 흔적들이 명백하고 단순한 사건을 지난 이십여일간 완벽한 전문테로범들의 행동으로 착각하고 전문가적인 수사를 해온 자신이 어처구니없어 저절로 한숨이 나갔다.
《츄홍따이사장! 그런데…》
웅카라는 츄홍따이의 토설을 들으며 지금껏 의문스러웠던것을 다시 물었다.
《애당초 당신이 이 사건의 진상을 공개할 작정이였다면 범행한 직후에 얼마든지 날 찾아올수 있었소. 그런데 왜 오늘에야 찾아왔소?》
츄홍따이는 분개해서 말을 이었다.
《우린 당신들이 일본수사팀까지 끌어들여 놈들과 한통속이 돼서 이런 엄청난 사건의 진상을 그렇게 필사적으로 은페할줄 몰랐소. 당신들의 수사망이 거의다 좁혀온 오늘에 와서 우린 결정적인 다른 대책을 세워야겠다는 결론을 내린거요.》
웅카라는 츄홍따이를 면바로 쏘아보며 따졌다.
《그렇다면… 진상을 공개할 다른 방법은 뭔가?》
《그건 당신이 우리 타이의 각 언론사 기자들과 각국의 기자들을 불러 이 자리에서 사건의 진상을 공개하고 나를 공식적으로 체포해서 국제경찰에 넘기는거요.》
《국제경찰에?!》
《그렇소. 바로 그래서 내가 당신을 만나자고 이렇게 초청한거요.》
《당신이 스스로 기자들앞에 공개해도 되지 않는가?》
《아니…》
츄홍따이는 머리를 저었다.
《이미 산악려행중의 추락사로 공개한 사건을 우리가 죽였다고 이제 와서 밝힌들 누가 믿겠는가.》
《그래서 살인사건의 범인들로 우리의 공식적인 체포가 필요했다?》
《그렇소.》
웅카라는 머리가 쭈삣 일어서는 생각에 머리를 번쩍 쳐들며 소리쳤다.
《도대체 그 범인들, 당신의 그 친구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소?》
츄홍따이는 이윽히 웅카라를 건너다보다가 대답했다.
《이마무라는 며칠전에 도꾜로 떠났소.》
《도꾜로? … 그가 도꾜에 돌아가면 무엇이 기다린다는걸 알겠는데 그걸 무릅쓰고 일본에 돌아갔다? 그렇다면 당신이 방금 말한 판따시웅과 왕선홍은 어디 갔소? 그들도 타이를 빠져나갔는가?》
《아니요. 그 두사람은 지금 여기 타이에 남아있소.》
《뭐라구?》
웅카라는 벌떡 일어났다.
《츄홍따이! 당신 지금 어쩌자는거야? 그들과 여기 남아 또 무슨 일을 저지르자는거야. 엉?》
웅카라는 더는 참을수 없어 격노한 어조로 소리쳤다.
그러자 웅카라를 마주 쏘아보던 츄홍따이가 눈에 불을 달며 부르짖었다.
《당신이 우리를 공식적으로 체포하지 않겠다면 우리는 당신들이 그렇게 할수밖에 없는 기회를 기어이 만들자는거요.》
《뭐, 뭐라구?! 츄홍따이! 지금 당신 제정신인가?》
웅카라는 기절할듯 두눈을 부릅떴다.
《웅카라부장, 똑똑히 아오! 니시하라 그 살인마가 57년이 지난 오늘 이 타이에 또다시 버젓이 나타나 <황군>늙다리들의 안락지대를 꾸려놓고는 어린 소녀들을 돈으로 끌어들여 마음껏 롱락하고있소. 어제 신문을 보니 도이췰란드에선 일곱명의 유태인을 처형하고 변성명하고 숨어있던 나치스중위가 전범자로 잡혀 재판을 받았소. 그런데 일본에선 저 니시하라 같은 악귀가 버젓이 제 이름그대로 달고 신도동맹 부회장, 거대재벌의 상무취체역까지 하고있소. 이런자를 누가 처벌하고 그놈의 죄악을 누가 세상에 공개해야 하는가. 나서는 그 누구도 없다면, 그자의 손에 무참히 죽은 사람들의 후손들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웅카라씨! 이래도 나를 살인자라고 하겠는가. 더이상 이 사건의 진상을 숨기겠는가?》
격노한 츄홍따이는 웨치다싶이 부르짖었다.
《이번 사건은 그 어떤 살인사건이나 범죄사건이 아니요. 더더구나 단순한 정당방위따위로 론할 문제도 아니요.
침략자에 대한 식민지인의 복수, 식인살인마에 대한, 짐승에 대한 인간의 징벌이고 복수인것이요. 이것을 똑똑히 알아두오.
그런데 당신은 왜 사실을 은페하고 진실을 위조하려는 일본놈들과 한짝이 되여 날뛰는가 말이요? 당신은 그래 이 타이의 한 국민이 아닌가?》
《…》
너무도 통렬한 츄홍따이의 규탄에 웅카라는 더 응대할 힘을 잃고 주저앉고말았다.
츄홍따이의 웨침소리에 놀란듯 누군가가 문을 열고 뛰여들었다.
정박장책임자녀인이였다.
츄홍따이가 나가라고 손짓하자 녀인은 웅카라를 쏘아보며 다시 밖으로 나갔다.
《그러니 저 녀자도 이 사건가담자의 한사람이구만.》
웅카라는 신음소리처럼 내뱉았다.
《그가 누군지 아오?》
《누구요?》
《우리 어머니가 내가 군대에 나간 후 데려다 키운 양딸이요. 그도 고아요. 퓨반따라고… 우리 어머니, 참 웅카라부장 당신도 알지 않소. 지난 해 도꾜재판에 가서 우리 싼따라어머니가 자기가 조선녀자라고 밝혔던 사실을… 내 돌아와서 당신에게 다 말해주지 않았댔소.》
《음… 기억나오.》
웅카라는 머리를 끄덕였다.
《위안소에서 당신 친어머니와 함께 있었다고 했지. 죽은 어머니를 대신해서 타이의 한 아들을 맡아키운… 참, 그 어머니에게 내 정말 감동됐었는데…》
웅카라는 신음비슷한 소리를 입술을 다물어 삼켰다.
《조선녀자들의 고결함을 찬양하던 동방학교수의 이야기가 다시금 실감되누만. …》
밤이 깊어 웅카라는 자기가 어떻게 츄홍따이를 떨궈두고 그냥 정박장을 떠났는지 기억되지 않았다.
츄홍따이의 이야기를 다 듣고난 그로서는 도저히 그를 체포할 자신이 없었다. 이런 정황에 부닥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던 그였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웅카라는 고민에 잠겼다. 수사국장에게 츄홍따이를 만난 결과를 보고해야 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의 뇌리속에서는 니시하라와 도미꼬가 응당 받아야 할 징벌을 받았으며 자기가 반대로 츄홍따이의 립장에 놓였어도 응당 그렇게 했을것이라는 그들의 범행에 대한 동정의 감정과 그리고 이 사건을 철저히 은페하고 범인들을 한시바삐 체포해야 할 수사책임자로서의 임무를 놓고 번뇌의 파도가 끝없이 일고일었다.
(후…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
…
그날 저녁 웅카라를 통해 츄홍따이가 범행의 전부를 자백했다는 소식을 들은 무라야마는 깜짝 놀랐다.
츄홍따이의 뜻밖의 요청을 받고 싸칼리정박장에서 단독으로 그를 만났는데 자기와 이마무라가 다른 두명의 외국인들과 공모하여 니시하라와 도미꼬를 방코크에서 유인랍치했고 칸쿤마을로 끌고 와 처형했다는것이다.
《그게 사실이요? 자백이라니? 체포되거나 협박을 당한것도 아닌데 스스로 찾아와 사건전반과 범인전부를 실토했단 말이요?》
《그렇소.》
무라야마는 첫 순간 어리둥절했다가 허- 하고 김빠진 소리를 했다.
《이거 우연같지만 시간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누만. 우리 역시 여기서 이번 사건의 주범인들로 추정되는 네사람의 강력한 물증을 확보했는데 말이요.》
웅카라는 츄홍따이가 털어놓은 사건의 진상을 구체적으로 전달한 다음 마지막에 말했다.
《이마무라가 16일 도꾜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다시 일본으로 돌아간 사실을 아오?》
《우리도 방금전에 통보받았소. 그래서 지금 수사팀전체를 그자의 체포에 동원하라는 지시를 내렸소.》
《이마무라가 니시하라의 극우익패들에게 죽을수 있다는걸 알면서도 왜 한사코 도꾜로 돌아갔으며 판따시웅과 왕선홍이 자기 나라로 가지 않고 왜 아직 방코크에 남아있는지 난 츄홍따이를 만나고야 알게 됐소. 그들은 지금 어떤 방법으로든 이 사건의 진상을 공개하겠다는거요.》
《뭐라구? 그건 절대 안되오.》
그러자 웅카라는 반발적으로 물었다.
《그런데 무라야마! 내 당신에게 한가지 묻겠소. 당신 그 니시하라의 정체를, 그의 지난날을 다 알고있지 않는가?》
순간적으로 무라야마는 지금 웅카라가 니시하라의 모든것을 다 알고 묻는다는것을 느꼈다. 《…》
뭐라고 해야 할지 선뜻 대답이 나가지 않았다.
무라야마가 대답을 못하자 웅카라는 언성을 높였다.
《왜 대답을 못하오. 당신은 다 알고있으면서 그 사실만은 나에게 말하지 않았지? 좋소. 그자가 어떤자였는지, 이번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내 다 확증한 다음에 다시 전화하겠소.》하고 웅카라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무라야마는 그 순간 어디선가 자기 머리를 치며 꾸르릉- 천둥소리가 들려오는 착각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