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 북, 사회주의 혜택속의 인민들 삶의 모습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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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8-04-18 11:20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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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사회주의 혜택속의 인민들 삶의 모습 소개
편집국
<노동신문>은 18일 기사에서 <세상에 부럼없어라>노래가 어찌하여 60년 동안 끊임없이 북의 최고애창곡이 되고 있는지 묻는 사람들에게 근 20년을 불구자로 살아오던 한 처녀가 기적적으로 다시 대지를 활보하게 된 이야기로 대답하였다.
필자는 2살 때부터 불구가 되어 발등으로 걸으며 웃음을 잃어버린 수경이가 한나라 대가정, 무상치료제 속의 의료일꾼들과 지역당일꾼들의 눈물겨운 정성으로 정상적인 다리와 웃음을 되찾은 과정을 감동적으로 이야기하였다. 그리고 수경이가 부르는 “《세상에 부럼없어라》노래의 구절속에 바로 자본주의가 흉내낼 수도 가질 수도 없는 사회주의생활이 비껴있고 그러한 아름다운 생활을 꽃피워준 위대한 어머니당에 드리는 또 하나의 찬가가 있다”고 하였다. 전문을 소개한다.
사회주의찬가-《세상에 부럼없어라》는 이렇게 울려간다
20년만에 대지를 활보한 승호군의 한 처녀에게 바쳐진 사랑과 정성에 대한 이야기
공화국창건 일흔돐을 마중해가는 우리 인민의 심장속에서 더더욱 격조높이 울려퍼지는 노래가 있다.
《세상에 부럼없어라》
어이하여 이 노래는 태여난 때로부터 근 60년세월 시련의 날에나, 행복한 날에나 우리 인민이 가장 사랑하는 사회주의찬가로 세기와 세대를 이어 불리워지는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을 우리는 20년세월 불구자로 살아오던 한 처녀가 기적적으로 다시 대지를 활보하게 된 이야기로 대신하려고 한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주체의 사회주의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생을 다 바쳐 마련해주신 우리 혁명의 고귀한 전취물이며 우리 인민의 생명이고 참된 삶과 행복의 보금자리입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라면 병원문전에도 가보지 못했을 평범한 로동자의 딸이였다. 바로 그가 오늘은 불구자로서의 모든 아픔과 고통을 말끔히 가시고 인간사랑의 대화원에 향기를 더해주고있다.
세상에 황금을 뿌려 불구자라는 아픔을 가신 백만장자에 대한 이야기는 있어도 화목한 대가정의 정과 사랑속에 불구자로부터 아름다운 꽃으로 활짝 피여난 로동자의 딸에 대한 이야기는 오직 당도 사회제도도 인민을 위해 멸사복무하는 사회주의 우리 조국, 우리의 로동당세월에만 태여날수 있는것이다.
우리는 모두다 친형제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 2008년 여름 어느날, 승호구역(당시)의 16살 소녀 황수경은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1년 365일 조롱속의 새처럼 방안에 갇혀 하염없이 창밖만 내다보던 수경이앞에 평양의 모습이 비껴들었다. 우정 차를 돌려 그가 평양의 거리를 더 많이 볼수 있게 로정을 잡은 박영식 승호구역당위원회 책임일군은 차창가에서 눈길을 뗄줄 모르는 수경이에게 마치도 소학교선생님이 우리 말을 배워주듯 차근차근 말해주었다.
《저기 바라보이는 곳이 주작봉마루이다. 그곳에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어머님의 반신상이 모셔져있지.》
《네가 그렇게 가보고싶어하던 금수산기념궁전이다. 이제 다리를 고치고 우리 함께 어버이수령님께 인사를 드리러 가자.》
《개선문을 지나면 만수대언덕이다.》
평양의 거리를 따라 달리는 수경이의 얼굴은 어느덧 눈물범벅이 되였다. 운전사도 남몰래 눈굽을 훔쳤고 수경의 어머니 정명남녀성도 목이 꺽꺽 메여 울었다. 문득 그에게는 구역당책임일군을 처음으로 만났던 얼마전의 일이 돌이켜졌다.
《항상 명랑하고 락천적으로 일하기에 아무런 근심이 없는줄 알았는데 가정에 남다른 아픔이 있더구만. 잘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오.》
뜻밖의 이야기에 구역녀맹위원회 일군인 정명남녀성은 깜짝 놀랐다. 구역에 온지 얼마 되지 않은 그가 어느새 자기 딸에 대해 다 알고있었던것이다.
수경이가 걸음마를 채 익히지 못한채 웬일인지 오른다리를 쓰지 못하는 불구가 된것은 두살때였다.
의료일군들의 극진한 치료속에 그냥 주저앉기만 하던 수경이는 한다리를 끌며 겨우 걷게 되였다. 그런데 일곱살에 잡혀서부터는 오른다리가 점점 안으로 휘여들더니 발잔등은 아예 발바닥이 되다싶이 되였다.
학교까지는 15분이면 가닿을 거리였다. 하지만 발잔등으로 걷다싶이 하는 수경이가 교실까지 들어서자면 한시간나마 걸려야 하였다.
편리화우에 발을 올려놓고 그 발과 신발을 고무줄로 몇바퀴나 동여매고서도 자꾸만 넘어지는 수경이에게 제일 부러운것은 마음껏 뛰여노는 아이들이였고 그 아이들을 넋을 잃고 바라보는 딸애의 모습을 보는것은 수경이어머니의 제일 큰 괴로움이였다.
차츰 철이 들자 수경이는 더는 치마를 입지 않았다. 사진도 더는 찍지 않았다. 웃음도 노래도 점점 그에게서 멀어져갔다. 하지만 학교는 그와 더욱 가까와졌다. 12살부터는 아예 문밖에 나설념을 못하는 그에게 저녁마다 선생님이 교수안을 안고 찾아왔던것이다. 그렇게 날과 달이 이어져 또다시 개학날을 맞이하던 어느날 깊은 밤 이불속에서 수경이가 별안간 어머니목을 꼭 그러안고 울먹울먹 귀속말로 속삭이였다.
《엄마, 나 한번만이라도 치마입고 고운 신발 신고 학교에 가고싶어.》
난치의 병인줄 뻔히 알면서도 수경이부모는 다 큰 딸을 번갈아 등에 업고 더욱 극성스럽게 병원들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어쩌는 도리가 없었다. …
수경이의 병상태와 치료과정에 대하여 세세히 듣고난 구역당책임일군의 나직한 목소리가 정명남녀성의 가슴을 세차게 흔들었다.
당의 사랑을 누구보다 많이 받아온 유자녀인 동무가 어쩌면 그럴수 있는가. 수경이는 동무의 자식만이 아니다. 한창 피여나야 할 그애가 마음속그늘을 안고 눈물속에 하루하루를 보낸다는것을 우리 장군님께서 아시면 얼마나 가슴아파하시겠는가고 동가슴을 두드리는 그의 이야기에 정명남녀성은 참고참았던 눈물을 쏟고야말았다. 이름할수 없는 격정으로 가슴이 꽉 메여올랐다. 불구자자식을 둔 어머니보다 더 속을 태우며 잠 못 들고 마음을 쓰는 그런 고마운 어머니가 항상 곁에서 그를 굽어보고있었던것이다.
아픈 매를 안기는 구역당책임일군의 목소리도 젖어있었다.
《우리 수경이를 꼭 일으켜세웁시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보건제도가 있고 화목한 대가정의 식솔들이 있지 않소. 어머니는 자식의 래일을 포기하지 않소!》
이렇게 되여 수경이는 구역당책임일군과 함께 그의 차를 타고 평양의학대학병원(당시)으로 가게 되였던것이다. 그날 병원에서는 신경계통의 권위있는 의료일군들의 참가하에 한 평범한 소녀를 위한 긴급협의회가 진행되였다. 수경이의 병든 다리를 유심히 진찰해보던 미세외과연구실 실장(당시) 장명국동무가 《수술만 잘한다면 고칠수 있습니다.》라고 진단을 내렸을 때였다.
구역당책임일군이 자리를 차고 벌떡 일어났다. 이젠 됐다고, 정말 고맙다며 어쩔바를 몰라하던 그가 《수경아, 걸을수 있다누나. 수술하면 된다누나.》 하며 울며 웃을 때 의료일군들의 가슴은 얼마나 뭉클했던가.
마침내 수경이는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속에서 수술을 받게 되였다.
집도를 맡은 장명국실장은 여느때없이 긴장되였다.
20여년전에 벌써 일부 발전된 나라들에서만 독점하고있던 미세외과수술의 필수수단인 무손상봉합침의 생산체계를 우리 식으로 확립한 그는 우리 나라 미세외과부문의 권위자였다. 하지만 구역당책임일군이 부모가 되여 데리고 온 수경이의 다리를 보았을 때 그에게는 자신심보다 위구심이 먼저 앞섰다. 수경이와 같은 마비성내번족환자는 수십년동안 수많은 수술을 해온 그에게도 처음이였던것이다. 하지만 《할수 있다.》는 그 말을 기다려 자기의 입만 가슴조이며 바라보는 소녀의 애원에 찬 눈빛을 마주한 순간 그는 저도 모르게 《고칠수 있다.》라고 대답하게 됨을 어쩔수 없었다. 단순히 동정이나 의무감때문만이 아니였다.
꼭 친손녀처럼 여겨지는 수경이앞에 그는 우리의 사회주의보건제도를 대표하는 인간생명의 기사였다. 하기에 《고칠수 있다.》고 대답할 때 그자신의 가슴속에서는 벌써 시대와 조국이 주는 명령을 받아안은듯 무조건 해내겠다는 심장의 웨침이 절절히 울리고있었다.
왼다리보다 더 길어진 수경이의 오른다리는 한마디로 제멋대로 자라난 구부러진 나무와도 같았다. 발뒤축이 없는 조건에서 삭뼈를 깎아 발뒤축을 만들어야 하였는데 뼈들의 놓임이 복잡한 발수술에서 가장 중요한것은 력학적으로 체중중심이 자기 위치에 놓이도록 해야 하는것이였다.
이제는 눈감고도 훤한것이였지만 그는 수경이의 발을 찍은 렌트겐필림과 인체해부도를 놓고 뼈재단에 의한 발교정수술준비를 꼼꼼히 해나갔다. 그 수술의 단번성공을 위하여 그가 기울인 고심어린 노력과 피타는 탐구의 낮과 밤들을 우리는 여기에 다 적지 못한다.
드디여 수술을 앞둔 날 밤 그는 늘 그러했던것처럼 기타를 손에 잡았다.
나가자 나가자 싸우러 나가자 용감한 기세로 어서빨리 나가자…
독자들이여, 일흔나이를 앞둔 그가 혁명가요를 부르며 왼손, 오른손을 맞추어 열정적으로 기타를 타는 모습을 그려보시라.
비단 그것은 수술에서의 유연성을 보장하기 위해 부단히 손놀림을 하는 외과의사의 범상한 생활일과가 아니였다. 그에게 있어서 한건한건의 수술은 나의 환자이기 전에 나의 혈육에게 생의 희열을 주고 마음껏 희망을 꽃피울수 있는 래일을 안겨주기 위한 결사전과도 같은것이였다. 하많은 노래중에서도 굳이 혁명가요를 골라부르며 기타를 탈 때 그는 무엇을 그려보았고 무엇을 생각했겠는가. …
수술이 성과적으로 진행된 그날 장명국실장은 금방 마취에서 깨여난 수경이의 눈앞에 그의 다리를 들어보이며 웨치다싶이 말하였다.
《수경아, 네 발이 바로 섰다!》
수경이는 10년만에 비로소 온전한 자기의 발잔등을 보았다. 자꾸만 흐려지는 눈시울사이로 환하게 웃는 구역당책임일군의 얼굴도 비껴들었다.
수경이는 구역당책임일군이나 장명국실장을 비롯한 의료일군들이 어이하여 만난 첫 순간부터 오래동안 함께 살아온 한식솔처럼 정답게 느껴졌던지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바로 그것은 자기를 늘 시름안고 바라보던 어머니에게서는 찾아볼수 없었던 확신으로 빛나는 그들의 눈빛때문이였다. 당일군이라는 직분우에, 인간생명의 기사라는 본분우에 우린 모두 한식솔이라는 혈육의 정이 있었기에 그들에게 있어서 마음속그늘과 아픔을 안은 수경이는 누구보다 더 활짝 아름답게 피여야 할 대가정의 꽃송이였다.
수경이는 지금껏 한번도 품은적 없었던 희망을 안고 17살 생일을 맞이하였다. 처음으로 생일날의 기쁨을 느낀 9년전 그날, 친지들과 이름도 미처 모르는 의사, 간호원들, 호실사람들이 안겨준 갖가지 생일기념품속에 싸여 웃고있는 수경이에게 장명국실장이 다가섰다.
《머지않아 네 소원대로 고운 치마를 입고 춤도 추게 될 그날 이 양말을 신거라.》
하많은 뜻과 축복을 담아 장명국실장이 안겨준 생일기념품을 가슴에 꼭 안고 수경이는 온밤 잠들지 못하였다.
불행하다고만 생각했던 자기였다. 그런데 평양에서 갑자기 늘어난 친혈육들,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그들속에 묻혀 수경이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처녀로 다시 태여나고있었다.
수경이의 밝은 웃음이 온 나라가 한집안식솔로 사는 대가정의 기쁨으로 되는 사회주의 내 조국, 잊을수 없는 고마운 사람들의 진정에서 그는 온몸으로 느꼈다.
이 땅우에 싹트고 뿌리를 내렸다면 그 꽃은 하나같이 곱게 활짝 피여야 한다는 어머니 우리 당의 웅심깊은 사랑을!
부르고불러도 또 부르고싶은 노래의 구절구절이 심장깊이 새겨졌다.
우리는 모두다 친형제 세상에 부럼없어라
하늘은 푸르고 내 마음 즐겁다
병원에서 퇴원해온 수경이를 둘러싸고 온 동네가 이구동성으로 의료일군들의 보배손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을 때 그 주인공인 장명국실장은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수경이의 치료는 이제부터 시작이였다. 뒤집어진 발잔등을 바로잡는것보다 더 어려운것은 오랜 세월 신경이 마비되여 후들거리는 그 발로 땅을 마음껏 짚을수 있도록 하는것이였다. 퇴화된 신경은 살릴수 없었다. 방도는 한가지 발목고정수술을 하는것이였는데 뼈를 깎아서 접합하는 뼈마디가 완전히 붙을수 있게끔 하자면 각이한 뼈재단에서의 각도를 자그마한 편차도 없이 꼭 맞추어야 하였다. 선행문헌에도 그러한 수술의 성공률은 높지 못한것으로 씌여져있었다. 더우기 그에게 있어서는 생소한 첫걸음이였다.
재단사가 한번 가위질을 잘못해도 그 옷감을 버려야 할진대 하물며 온몸의 지지점과도 같은 발에 한번 칼을 잘못 대면 영영 불구자로 될수도 있었다.
때없이 들어서는 수술장, 매일같이 입는 위생복, 손에 익은 수술칼이라도 항상 그 의미를 새롭게, 무겁게 느낄줄 알 때라야 환자의 오늘만이 아닌 래일까지도 담보할수 있다는것이 장명국실장의 지론이였다.
그는 그렇게 수경이에 대한 새로운 치료전투에 진입하였다. 수경이는 병원에서와 꼭같이 그의 치료지시를 받으며 다음번 수술을 준비해나갔다.
이듬해 4월 수경이는 장명국실장의 집도하에 두번째 수술을 받았다. 그 한초한초가 얼마나 긴장한 순간의 련속이였던지 장명국동무는 오늘까지도 사소한 조작 하나에 이르기까지 모든것을 생생히 기억하고있었다.
그날부터 그는 수경이의 머리맡을 떠나지 않았다. 때로는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도 읽어주고 때로는 제손으로 끓인 잉어국도 한술두술 입에 떠넣어주며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는 그의 정성은 수경이를 낳은 친어머니도 때없이 울렸다.
그러던 어느날 수경이는 할아버지처럼 따르던 장명국실장을 되게 노엽히게 되였다. 제대로 운신을 못해 때없이 간호원들에게 수고를 끼치는것이 미안하여 수경이가 우정 식사를 적게 한다는것을 그가 알게 되였던것이다.
《밥을 꽝꽝 먹어야 빨리 일어서지 않겠느냐. 어서 밥을 먹자.》 하며 수경이가 밥 한그릇을 다 비우는것을 보고서야 한결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언제인가 내가 어느 한 자본주의나라에 갔을 때였다. 너만 한 나이의 청년이였는데 골절된 다리를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앉은뱅이가 될 형편이였지. 그런데 돈이 없어서 끝내 병원에서 불구자가 되고말았구나.
내 가슴에 모셔진 위대한 수령님의 초상휘장을 보더니 그가 눈물을 흘리며 하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당신네 나라엔 수술비라는것이 없다지요?〉
아마도 자본주의사회에서 네 병을 고치려면 백만금을 뿌려도 모자랐을거다. 이 고마운 제도에 보답하는 길은 네가 빨리 일어서는것이다.》
환자도 의사도 치료비를 계산해본적 없는 나라, 하루빨리 병을 털고 일어서는것이 곧 보답이 되는 고마운 조국을 위해 수경이는 더욱 이악하게 회복치료에 달라붙었다. 퇴원후 그의 치료목표는 하루에 만보걷기였다.
금방 석고붕대를 댔던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걷기련습을 하자니 처음엔 다섯걸음도 아름찼다. 가다가는 쉬고 쉬다가는 가고 이렇게 열걸음, 스무걸음 걷는 구간을 늘여가며 몇해가 지난 어느날 그는 너무도 힘들어서 그만 주저앉고말았다. 이때 멀지 않은 곳에서 귀익은 목소리가 엄하게 들려왔다.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너를 기다리고계신다고 생각해봐라. 그래도 못 일어서겠느냐?》
집에서 위대한 수령님들의 태양상모자이크벽화가 모셔진 곳까지 걷기련습을 하도록 구간을 정해주고 매일같이 남모르게 그를 지켜본 군당책임일군이였다.
수경이는 이를 악물고 일어섰다.
피눈물의 12월, 위대한 장군님의 태양상앞에 쌍지팽이를 짚고 서지 않으면 안되였던 죄스러움이 녹지 않는 고드름처럼 맺혀있는 그였다. 자기의 한걸음한걸음이 꿈결에도 그리운 위대한 수령님들께로 가는 걸음이고 고마운 사회주의조국을 위하여 떼는 보답의 첫걸음이라는 생각으로 그는 이악스레 걷기련습을 하였다.
날이 갈수록 수경이의 걸음새는 눈에 뜨이게 달라졌다.
수경이에 대한 치료방법은 또 달라졌고 그에 대한 의료일군들의 관심은 더 높아졌다. 두차례의 대수술과 물리치료, 각종 검사와 검진을 받으며 오랜 세월 쓰지 못하던 다리의 기능이 완전회복될 때까지 5년세월 모르고 받아안은 무상치료제의 혜택을 어찌 글에 다 담을수 있겠는가.
마침내 수경이가 은혜로운 사회주의대지에 지팽이없이 첫걸음을 내디디던 그날 누구보다 기뻐하며 왼심을 쓴 사람은 군당책임일군이였다.
언제 다 뽐으로 재여보았는지 발에 꼭 맞는 굽높은 구두를 받아안은 수경이의 가슴은 불덩어리를 안은듯 달아올랐다.
편리화마저 제대로 신을수 없었던 그에게 있어서 굽높은 구두를 신어보는것은 꿈속에서도 바라지 못했던 소원이였다. 그런데 그 소원을 꿈이 아닌 현실에서 이루게 되였으니 이 땅에선 모든 꿈 이루어지리라는 노래가사의 구절이 새삼스럽게 되새겨졌다.
그 구두를 신고 수경이는 처음으로 제발로 걸어 선거장으로 향하였다.
어제날 문밖에도 나서기 저어했던 그가 치마저고리를 입고 나비처럼 춤을 추듯 오가는 예쁜 모습을 사람들은 누구나 희한하게 바라보았다. 그 정다운 눈빛속에 싸인것이 너무 좋아서 추운줄도 모르고 온종일 치마저고리차림으로 거리를 누비며 수경이는 목청껏 웨치고싶었다.
(사회주의제도가 나를 일으켜세웠어요!)
그날 수경이에겐 선거장 어디서나 보이는 공화국기발이 더없이 소중히 안겨왔다. 그 기폭에서는 평범한 로동자의 딸에게 마음껏 대지를 활보하고 마음껏 희망을 꽃피울 그날을 안겨주기 위해 사랑과 정을 아낌없이 기울이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한명한명 눈물겹게 어려왔다.
그런 아름다운 인간들이 사는 땅이 바로 사회주의 내 조국이였고 그들을 키워주는 품은 바로 위대한 어머니당이였다.
이 세상 어머니들의 사랑을 다 합쳐도 비기지 못할 불같은 열과 정으로 마음속 한점 그늘마저 가셔준 위대한 어머니를 우러르며 그는 귀중한 사회주의제도를 한마음다해 받들 맹세를 담아 찬성의 한표를 무겁게 바쳤다.
자연의 해빛은 그늘진 곳에 있는 꽃이라고 하여 따로 빛을 더 주지 못하지만 우리 당의 해빛은 그늘진 곳에서 외로이 자라는 꽃일수록 더욱 따사로운 빛과 열로 아름답게 피워주기에 사회주의화원에는 나날이 그 향기 더욱 짙어지는것이 아니랴.
지난해 11월 수경이는 꿈결에도 그리던 금수산태양궁전을 찾게 되였다.
날마다, 달마다 쌓고쌓았던 감사의 마음을 안고 그는 위대한 수령님들께 삼가 허리굽혀 큰절을 드리였다.
(지팽이를 버리고 내 발로 걸어서 왔습니다. 우리 원수님 은덕으로 이제 더는 세상에 부러운것이 없습니다!)
눈물로 두볼을 적시는 그의 귀전에는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를 부르던 시대가 지나간 력사속의 순간이 아닌 오늘의 현실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헌신분투할것이라고 하시던 우리 원수님의 말씀이 쾅쾅 메아리쳐 들려왔다.
천리마 나래펴는 내 조국 백화가 만발하였네라는 《세상에 부럼없어라》노래의 구절속에 바로 자본주의가 흉내낼수도 가질수도 없는 사회주의 우리 생활이 비껴있고 그러한 아름다운 생활을 꽃피워준 위대한 어머니당에 드리는 또 하나의 찬가가 있는것이다.
사회주의 이 땅이 품들여 가꾸어 내세워준 수경이, 그의 밝은 웃음과 앞날의 밑뿌리가 되여준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어찌 사회주의 내 조국에 만발하는 백화의 한송이라고 긍지높이 말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 *
꽃피는 4월의 봄날에 수경이는 새 가정을 이루었다. 김책공업종합대학의 끌끌한 제대군인대학생청년이 처음 집문턱을 넘어섰을 때 수경이어머니는 너무나 과남하게만 여겨지는 그에게 수경이의 지난 20년에 대하여 솔직히 터놓았다. 그때 그 청년은 호탕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하였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 영예군인의 안해, 영예군인의 남편이 얼마나 많습니까. 설사 수경동무가 불구자라고 해도 저는 기꺼이 일생의 길동무가 되였을것입니다.》
어이하여 이 땅에서는 재난과 불행을 겪은 사람들, 두메산골에 살고 외진 섬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소리가 더 열렬하게 울려나오는것인가.
누구에게나 창창한 래일이 있고 화목한 대가정의 웃음이 넘치는 이 땅, 사회주의 내 조국에는 《세상에 부럼없어라》노래를 제일로 사랑하시는 위대한 어버이가 계신다.
인민의 웃음소리와 더불어 세세년년 더 높이 울려퍼질 노래 《세상에 부럼없어라》, 진정 그것은 이 땅에 삶의 뿌리를 내린 매 사람, 매 가정의 심장깊이에서 우러나오는 로동당 만세, 사회주의 만세의 대합창이며 세상에 유일무이한 사회주의찬가, 사회주의승리의 대교향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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