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행 | 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설레이는 2월의 백두산의 관문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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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전철주 작성일13-02-11 08:27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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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명성절을 맞으며 백두산밀영고향집에로의 기행길에 오른 우리가 혜산시에 도착한것은 저녁 8시경이였다. 해발고가 수백m인 이곳에서 우리를 처음으로 맞이한것은 압록강이 뿜어올리는 차디찬 수증기로 두볼을 얼구는듯싶은 북방의 강추위와 백포자락과도 같이 흩날리는 눈보라였다. 누군가가 백두산바람의 첫맛을 보는것 같다고 웃으며 하는 말에 우리도 공감을 표시하였다.
립춘때라 하지만 2월의 량강도는 무던히도 춥다. 백두의 눈보라한생과도 같이 흐른 우리 장군님의 거룩한 혁명생애를 잊지 못해서인듯 이해의 혜산시 날씨는 류달리도 맵짜고 눈바람 또한 몹시도 세차다. 례년에 없이 들이닥친 혹한으로 백두의 대지를 얼구고 바위돌이 쩡쩡 얼어터지는 소리가 어디서나 들린다. 아마도 강추위와 사나운 눈보라를 자기 고유의 매력으로 하고있는 백두산이 주체102(2013)년 광명성절을 앞두고 어버이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부림치는듯싶다. 이곳 사람들도 뜻깊은 광명성절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절세의 위인을 못 잊어 흘리는 백두대자연의 눈물이 온 량강땅에 그대로 흘러 얼음강산을 펼친다고 말하고있다.
추위는 사납고 눈보라가 세찬 올해 2월의 혜산시이지만 누구나 이곳을 찾으면 뜨거워오르는 격정을 금치 못하군 한다.
렬차에서 내린 백두산밀영고향집에로의 답사행군대원들의 열기띤 모습을 보아도 그렇고 광명성절을 맞으며 강추위속에서도 혁명의 성지에 안고갈 축원의 꽃다발을 삼가 엮는 혜산시의 평범한 주민의 말에 귀를 기울여도 어버이장군님 생각으로 잠 못 이루는 백두산의 관문도시의 그리움의 열풍을 잘 알수 있다. 해마다 꽝꽝 얼던 압록강도 올해에는 겨울을 모르는 소백수의 맑은 물이 그대로 흐르는듯 이상할 정도로 사나운 추위를 이겨내며 사품치는것이 마치 소백수골의 설경을 펼쳐보이는것만 같다.
2월의 백두산의 관문도시 혜산시에서 백두산밀영고향집으로 달리는 온 나라 인민의 뜨거운 마음을 느끼고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에서 광명성절에 즈음하여 다채로운 경축행사들을 준비하고있다는 소식을 듣느라니 위대한 김정일동지에 대한 다함없는 그리움과 열화같은 흠모심이 량강땅의 강추위를 후덥게 녹여준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을 우리 당과 인민의 영원한 수령으로 높이 모시고 장군님의 혁명생애와 불멸의 혁명업적을 길이 빛내여나가야 합니다.》
이즈음 혜산시는 전국각지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로 류달리 붐비고있다.
우리가 혜산땅에 첫발을 디디며 만난 사람들속에는 중앙기관의 일군들과 평성시에서 온 대학생답사행군대원들도 있었고 열두삼천리벌의 농장원들이며 최전연을 지켜선 병사들 그리고 동해안의 어로공들과 평양에서 떠난 나어린 학생소년들도 있었다.
이름과 주소, 나이와 직종은 서로 달라도 그들이 찾아가는 목적지는 하나같이 백두산밀영고향집이였다. 어버이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그리움을 안고 각계층 근로자들이 유서깊은 혁명의 성지로 달려오고있는것이였다.
혜산시를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먼저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이 솟아있는 괘궁정마루부터 오른다. 답사행군대오의 물결에 실려 우리도 압록강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괘궁정마루에 올랐다.
한계단한계단 화강석층계를 밟으며 올라서니 우리 수령님께서 항일전의 군복차림으로 사랑하는 전사, 제자들을 불러주시는것만 같았다.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 탑신에 형상된 펄럭이는 붉은 기폭을 바라볼수록 한세대에 두 제국주의강적을 물리치고 이 땅우에 사회주의강국을 일떠세우신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의 정이 뜨겁게 북받쳐올랐다.
올해에 창립 50돐을 맞는다는 여기 혜산혁명전적지관리소 소장 김만길동무는 우리에게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곳을 처음으로 찾으시였을 때 우리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순간도 잊지 말고 영원히 빛내여나갈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고 말하였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쳐오신 어버이수령님의 거룩한 발자취가 력력히 어려있는 백두의 산발들과 만주광야를 눈앞에 그려보시는듯 오래도록 압록강너머로 눈길을 주시였다고 한다.
아마도 그이의 안광에는 저 멀리 카륜으로부터 안도와 소왕청, 남호두와 동강, 남패자와 소할바령 등 잊지 못할 항일의 전구들이 뜨겁게 안겨드시였으리라.
준엄했던 전장들을 종횡무진하시던 백두산청년장군의 그 모습으로 빨찌산의 위대한 아들이신 어버이장군님께서 력사의 땅에 불멸의 자욱을 새기시였으니 그날은 정녕 민족사에 영원히 빛날 뜻깊은 하루였다.
백두의 혁명전통을 꿋꿋이 이어갈 숭고한 뜻을 안으시고 괘궁정마루에 오르시였던 그이의 거룩한 모습을 되새기며 백두산천지에 시원을 두고 이 나라의 북변을 적시는 2천리 장강 압록강의 기슭에 서니 감회는 비길데 없이 컸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열네살 어리신 나이에 빼앗긴 조국을 기어이 찾으실 성스러운 맹세를 남기신 압록강물결우에 우리 장군님께서도 10대의 나이에 수령위업계승의 위대한 맹세를 실으시였구나 하는 생각이 우리의 가슴을 후덥게 해주었다. 혁명의 성산 백두산과 더불어 시작된 우리 장군님의 위대한 혁명력사의 갈피갈피가 숭엄히 되새겨졌다.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57년전 답사행군대오를 이끄시고 찾으시였던 마동희동지의 비가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혜산에 도착하신 다음날이였다. 도의 한 일군이 우리 장군님께 혜산시 참관일정을 알려드리자 그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백두대산줄기의 높은 산들과 깊은 골짜기들에는 일제를 반대하여 용감히 싸우다 희생된 수많은 혁명투사들이 잠들어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조국의 오늘을 보지 못하고 먼저 간 혁명투사들을 잊지 못하고계십니다. 우리모두 항일혁명투사 마동희동지의 비를 먼저 찾아가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합시다. …
우리 장군님의 혁명적도덕의리의 세계는 10대의 그 시절부터 이렇듯 고결하였다.
답사행군대오가 마동희동지의 비앞에 이르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마동희동지는 사령부의 안전을 위하여 일제놈들앞에서 자기 혀를 끊었다, 자기 이발로 자기 혀를 끊는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하였던 항일혁명선렬들을 따라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력사의 사연이 깊이 새겨진 글발들을 읽어내려가는 우리에게는 장군님을 우러르며 근엄한 표정으로 굳은 맹세를 다지던 그날의 답사행군대원들의 모습이 눈에 선히 어려오는것만 같았다.
백두의 험한 산발들과 골짜기들마다에 더운 피를 뿌린 항일혁명선렬들을 추억하시는 우리 장군님의 심중이 얼마나 뜨거우시였으랴.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백두산의 산발들을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김일성장군의 노래》에도 있지만 백두산줄기마다에는 강도 일제를 때려부신 수령님의 혁명의 뜻과 고귀한 발자취가 깃들어있습니다. 혜산에 오니 수령님의 발자취가 깃들어있는 력사의 땅을 눈앞에 바라보게 됩니다. …
백두산장군의 뜨거운 추억이 어려있는 혜산땅을 둘러보며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이시야말로 10대의 시절에 벌써 비범한 선견지명과 담대한 배짱으로 혁명의 길에 나서신 희세의 위인이심을 더욱 절감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성스러운 혁명력사에 그늘을 던지려는자들이 나타났던 그때 우리 장군님께서 단행하신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에 대한 답사행군이야말로 정녕 그 발기부터가 위대한 천출위인의 대용단이였다. 그것은 백두에서 시작된 주체의 혈통을 꿋꿋이 이어가시려는 우리 장군님의 신념과 의지의 분출이였으며 내 나라, 내 조국을 위대한 수령님의 나라로 영원히 빛내이시려는 장엄한 선언이였다.
괘궁정을 내린 우리는 량강도인민들의 뜨거운 지성이 붉은 꽃송이로 피여나는 량강도김일성화김정일화온실을 찾았다. 계절을 앞당겨 활짝 핀 김정일화들이 온실에서 이슬을 머금고 우리를 반기여맞는듯싶었다.
이곳에서 우리와 만난 김경복 량강도김일성화김정일화위원회 위원장은 불리한 야외조건에서 김정일화를 재배하기 위해 고심어린 노력을 기울이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제는 백두산이 자리잡은 유서깊은 량강땅에 김정일화가 뿌리를 내리였다고, 한여름철이면 괘궁정마루로 잇닿은 답사행군로정에 김정일화들이 붉게 피여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준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하였다.
알고보니 그는 20여년전 제대배낭에 김정일화와 《김정일화재배지도서》, 온습도계를 넣고 백두산밀영고향집에 찾아와 다섯형제들과 함께 김정일화를 피우기 위해 뜨거운 지성을 바쳐 온 나라에 소문났던 1990년대의 로력영웅이였다.
북방의 추위속에서 김정일화를 키우느라 남모르는 수고가 많았다는 우리의 말에 그는 손을 저으며 혜산시인민들의 뜨거운 지성에 대해 많이 소개해달라고 부탁하는것이였다. 그러면서 신강호, 리순정, 조심혁을 비롯한 유순, 유정형제학생을 우리앞에 내세웠다.
우리는 구태여 그 학생들의 소행과 부모들에 대하여 묻지 않았다.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들도 다름아닌 자식들을 혁명선렬들의 넋을 이어 경애하는 원수님을 충직하게 받드는 선군시대의 대들보로 억세게 키우려는 량강도인민들, 혜산시주민들일것이기때문이였다.
어버이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그리움의 정과 백두산밀영고향집으로 달리는 순결한 마음을 뜨겁게 느끼며 온실을 나서니 흰눈속에 싸인 혜산시 전경이 눈앞에 안겨왔다.
수많은 답사자들이 기념탑으로 쉴새없이 찾아오고있었다.
량강도당위원회의 한 일군은 요즘 시내의 답사숙영소들뿐아니라 려관들도 백두산밀영고향집을 찾는 각계층 근로자들과 군인, 청년학생들로 전례없이 흥성이고있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그의 말을 통해서도 혁명전적지를 통한 교양사업을 중시하고 거기에 늘 커다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있는 도의 일군들의 미더운 모습을 느낄수 있었다.
김정숙사범대학, 영웅혜산제1중학교, 혜산신발공장을 비롯한 혜산시의 이르는 곳 그 어디서나 뜻깊은 광명성절을 앞두고 우리 장군님의 고향집으로 달리는 백두산의 관문도시주인들의 후더운 심장의 열기를 느낄수 있었다.
그 소중한 충정의 마음을 가슴에 새기며 우리는 백두산밀영고향집에로의 취재길을 다그쳤다.
특파기자 전철주
본사기자 김준혁
주체102(2013)년 2월 11일 로동신문
립춘때라 하지만 2월의 량강도는 무던히도 춥다. 백두의 눈보라한생과도 같이 흐른 우리 장군님의 거룩한 혁명생애를 잊지 못해서인듯 이해의 혜산시 날씨는 류달리도 맵짜고 눈바람 또한 몹시도 세차다. 례년에 없이 들이닥친 혹한으로 백두의 대지를 얼구고 바위돌이 쩡쩡 얼어터지는 소리가 어디서나 들린다. 아마도 강추위와 사나운 눈보라를 자기 고유의 매력으로 하고있는 백두산이 주체102(2013)년 광명성절을 앞두고 어버이장군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몸부림치는듯싶다. 이곳 사람들도 뜻깊은 광명성절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절세의 위인을 못 잊어 흘리는 백두대자연의 눈물이 온 량강땅에 그대로 흘러 얼음강산을 펼친다고 말하고있다.
추위는 사납고 눈보라가 세찬 올해 2월의 혜산시이지만 누구나 이곳을 찾으면 뜨거워오르는 격정을 금치 못하군 한다.
렬차에서 내린 백두산밀영고향집에로의 답사행군대원들의 열기띤 모습을 보아도 그렇고 광명성절을 맞으며 강추위속에서도 혁명의 성지에 안고갈 축원의 꽃다발을 삼가 엮는 혜산시의 평범한 주민의 말에 귀를 기울여도 어버이장군님 생각으로 잠 못 이루는 백두산의 관문도시의 그리움의 열풍을 잘 알수 있다. 해마다 꽝꽝 얼던 압록강도 올해에는 겨울을 모르는 소백수의 맑은 물이 그대로 흐르는듯 이상할 정도로 사나운 추위를 이겨내며 사품치는것이 마치 소백수골의 설경을 펼쳐보이는것만 같다.
2월의 백두산의 관문도시 혜산시에서 백두산밀영고향집으로 달리는 온 나라 인민의 뜨거운 마음을 느끼고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에서 광명성절에 즈음하여 다채로운 경축행사들을 준비하고있다는 소식을 듣느라니 위대한 김정일동지에 대한 다함없는 그리움과 열화같은 흠모심이 량강땅의 강추위를 후덥게 녹여준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을 우리 당과 인민의 영원한 수령으로 높이 모시고 장군님의 혁명생애와 불멸의 혁명업적을 길이 빛내여나가야 합니다.》
이즈음 혜산시는 전국각지에서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로 류달리 붐비고있다.
우리가 혜산땅에 첫발을 디디며 만난 사람들속에는 중앙기관의 일군들과 평성시에서 온 대학생답사행군대원들도 있었고 열두삼천리벌의 농장원들이며 최전연을 지켜선 병사들 그리고 동해안의 어로공들과 평양에서 떠난 나어린 학생소년들도 있었다.
이름과 주소, 나이와 직종은 서로 달라도 그들이 찾아가는 목적지는 하나같이 백두산밀영고향집이였다. 어버이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그리움을 안고 각계층 근로자들이 유서깊은 혁명의 성지로 달려오고있는것이였다.
혜산시를 찾는 사람들은 누구나 먼저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이 솟아있는 괘궁정마루부터 오른다. 답사행군대오의 물결에 실려 우리도 압록강이 한눈에 바라보이는 괘궁정마루에 올랐다.
한계단한계단 화강석층계를 밟으며 올라서니 우리 수령님께서 항일전의 군복차림으로 사랑하는 전사, 제자들을 불러주시는것만 같았다.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 탑신에 형상된 펄럭이는 붉은 기폭을 바라볼수록 한세대에 두 제국주의강적을 물리치고 이 땅우에 사회주의강국을 일떠세우신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의 정이 뜨겁게 북받쳐올랐다.
올해에 창립 50돐을 맞는다는 여기 혜산혁명전적지관리소 소장 김만길동무는 우리에게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곳을 처음으로 찾으시였을 때 우리 수령님의 불멸의 혁명업적을 순간도 잊지 말고 영원히 빛내여나갈데 대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고 말하였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항일의 혈전만리를 헤쳐오신 어버이수령님의 거룩한 발자취가 력력히 어려있는 백두의 산발들과 만주광야를 눈앞에 그려보시는듯 오래도록 압록강너머로 눈길을 주시였다고 한다.
아마도 그이의 안광에는 저 멀리 카륜으로부터 안도와 소왕청, 남호두와 동강, 남패자와 소할바령 등 잊지 못할 항일의 전구들이 뜨겁게 안겨드시였으리라.
준엄했던 전장들을 종횡무진하시던 백두산청년장군의 그 모습으로 빨찌산의 위대한 아들이신 어버이장군님께서 력사의 땅에 불멸의 자욱을 새기시였으니 그날은 정녕 민족사에 영원히 빛날 뜻깊은 하루였다.
백두의 혁명전통을 꿋꿋이 이어갈 숭고한 뜻을 안으시고 괘궁정마루에 오르시였던 그이의 거룩한 모습을 되새기며 백두산천지에 시원을 두고 이 나라의 북변을 적시는 2천리 장강 압록강의 기슭에 서니 감회는 비길데 없이 컸다.
어버이수령님께서 열네살 어리신 나이에 빼앗긴 조국을 기어이 찾으실 성스러운 맹세를 남기신 압록강물결우에 우리 장군님께서도 10대의 나이에 수령위업계승의 위대한 맹세를 실으시였구나 하는 생각이 우리의 가슴을 후덥게 해주었다. 혁명의 성산 백두산과 더불어 시작된 우리 장군님의 위대한 혁명력사의 갈피갈피가 숭엄히 되새겨졌다.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57년전 답사행군대오를 이끄시고 찾으시였던 마동희동지의 비가 있는 곳으로 향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혜산에 도착하신 다음날이였다. 도의 한 일군이 우리 장군님께 혜산시 참관일정을 알려드리자 그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백두대산줄기의 높은 산들과 깊은 골짜기들에는 일제를 반대하여 용감히 싸우다 희생된 수많은 혁명투사들이 잠들어있습니다.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조국의 오늘을 보지 못하고 먼저 간 혁명투사들을 잊지 못하고계십니다. 우리모두 항일혁명투사 마동희동지의 비를 먼저 찾아가 경건한 마음으로 추모합시다. …
우리 장군님의 혁명적도덕의리의 세계는 10대의 그 시절부터 이렇듯 고결하였다.
답사행군대오가 마동희동지의 비앞에 이르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마동희동지는 사령부의 안전을 위하여 일제놈들앞에서 자기 혀를 끊었다, 자기 이발로 자기 혀를 끊는다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수령님께 끝없이 충직하였던 항일혁명선렬들을 따라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
력사의 사연이 깊이 새겨진 글발들을 읽어내려가는 우리에게는 장군님을 우러르며 근엄한 표정으로 굳은 맹세를 다지던 그날의 답사행군대원들의 모습이 눈에 선히 어려오는것만 같았다.
백두의 험한 산발들과 골짜기들마다에 더운 피를 뿌린 항일혁명선렬들을 추억하시는 우리 장군님의 심중이 얼마나 뜨거우시였으랴.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백두산의 산발들을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김일성장군의 노래》에도 있지만 백두산줄기마다에는 강도 일제를 때려부신 수령님의 혁명의 뜻과 고귀한 발자취가 깃들어있습니다. 혜산에 오니 수령님의 발자취가 깃들어있는 력사의 땅을 눈앞에 바라보게 됩니다. …
백두산장군의 뜨거운 추억이 어려있는 혜산땅을 둘러보며 우리는 위대한 장군님이시야말로 10대의 시절에 벌써 비범한 선견지명과 담대한 배짱으로 혁명의 길에 나서신 희세의 위인이심을 더욱 절감하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성스러운 혁명력사에 그늘을 던지려는자들이 나타났던 그때 우리 장군님께서 단행하신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들에 대한 답사행군이야말로 정녕 그 발기부터가 위대한 천출위인의 대용단이였다. 그것은 백두에서 시작된 주체의 혈통을 꿋꿋이 이어가시려는 우리 장군님의 신념과 의지의 분출이였으며 내 나라, 내 조국을 위대한 수령님의 나라로 영원히 빛내이시려는 장엄한 선언이였다.
괘궁정을 내린 우리는 량강도인민들의 뜨거운 지성이 붉은 꽃송이로 피여나는 량강도김일성화김정일화온실을 찾았다. 계절을 앞당겨 활짝 핀 김정일화들이 온실에서 이슬을 머금고 우리를 반기여맞는듯싶었다.
이곳에서 우리와 만난 김경복 량강도김일성화김정일화위원회 위원장은 불리한 야외조건에서 김정일화를 재배하기 위해 고심어린 노력을 기울이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이제는 백두산이 자리잡은 유서깊은 량강땅에 김정일화가 뿌리를 내리였다고, 한여름철이면 괘궁정마루로 잇닿은 답사행군로정에 김정일화들이 붉게 피여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준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하였다.
알고보니 그는 20여년전 제대배낭에 김정일화와 《김정일화재배지도서》, 온습도계를 넣고 백두산밀영고향집에 찾아와 다섯형제들과 함께 김정일화를 피우기 위해 뜨거운 지성을 바쳐 온 나라에 소문났던 1990년대의 로력영웅이였다.
북방의 추위속에서 김정일화를 키우느라 남모르는 수고가 많았다는 우리의 말에 그는 손을 저으며 혜산시인민들의 뜨거운 지성에 대해 많이 소개해달라고 부탁하는것이였다. 그러면서 신강호, 리순정, 조심혁을 비롯한 유순, 유정형제학생을 우리앞에 내세웠다.
우리는 구태여 그 학생들의 소행과 부모들에 대하여 묻지 않았다.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들도 다름아닌 자식들을 혁명선렬들의 넋을 이어 경애하는 원수님을 충직하게 받드는 선군시대의 대들보로 억세게 키우려는 량강도인민들, 혜산시주민들일것이기때문이였다.
어버이장군님에 대한 다함없는 그리움의 정과 백두산밀영고향집으로 달리는 순결한 마음을 뜨겁게 느끼며 온실을 나서니 흰눈속에 싸인 혜산시 전경이 눈앞에 안겨왔다.
수많은 답사자들이 기념탑으로 쉴새없이 찾아오고있었다.
량강도당위원회의 한 일군은 요즘 시내의 답사숙영소들뿐아니라 려관들도 백두산밀영고향집을 찾는 각계층 근로자들과 군인, 청년학생들로 전례없이 흥성이고있다고 말하였다.
우리는 그의 말을 통해서도 혁명전적지를 통한 교양사업을 중시하고 거기에 늘 커다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있는 도의 일군들의 미더운 모습을 느낄수 있었다.
김정숙사범대학, 영웅혜산제1중학교, 혜산신발공장을 비롯한 혜산시의 이르는 곳 그 어디서나 뜻깊은 광명성절을 앞두고 우리 장군님의 고향집으로 달리는 백두산의 관문도시주인들의 후더운 심장의 열기를 느낄수 있었다.
그 소중한 충정의 마음을 가슴에 새기며 우리는 백두산밀영고향집에로의 취재길을 다그쳤다.
특파기자 전철주
본사기자 김준혁
주체102(2013)년 2월 11일 로동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