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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 소식

상식 | 조선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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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실 작성일13-02-08 02:48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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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훈!》, 《멍훈!》 하며 승벽내기로 장기를 두는 사람도 열이 오르지만 훈수군들의 마음 또한 이를데 없어 훈수하지 않고는 참지 못하는것을 두고 예로부터 《장기훈수는 뺨을 맞아가면서도 한다》는 속담까지 전해지고있다.

기록에는 우리 나라에서 장기가 고려시기부터 전하여오는것으로 되여있으나 그 시원은 더 오랜것으로 보고있다.

조선장기에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성격과 기질, 례의도덕과 문화심리, 군사사상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되여있다.

우선 장기쪽의 이름은 붉은색과 푸른색(또는 검은색)으로 표시하는데 장기를 둘 때 흔히 웃사람이 붉은색쪽을, 아래사람이 푸른색쪽을 가지는것이 도덕적인 관례로 되여왔다. 장기쪽을 다 배치한 다음에는 《약자선수》라 실력이 낮은 사람이 먼저 두는것이 상례로 되였다.

또한 《상》과 《말》이 서로 위치를 바꿀수 있게 한것은 인재등용과 군사전략에서의 령활성이 보다 풍부하다는것을 의미한다. 또 한쪽켠 《졸》이 서로 붙어있고 《차》가 직접 대방을 공격할수 있게 배치한것은 조선장기가 대칭의미보다도 방어와 공격을 결합하는 면에서 보다 령활하고 기동적이라는것을 보여준다. 그 수가 깊고 두는 사람마다 제나름의 식과 수가 있어 전술 또한 매우 다종다양하였다.

조선장기는 나이에 관계없이 누구나 할수 있는 대중오락으로서 지혜를 겨루는 좋은 놀이일뿐아니라 사람들의 사고력을 계발시키며 생활을 즐겁게 해주는 민속놀이이다.

우리 인민들은 예로부터 설명절을 비롯한 생활의 여러 계기들에 장기를 널리 두었으며 그와 관련한 교훈적인 일화들도 적지 않게 전해오고있다.

류몽인(1559―1623)이 쓴 《어유야담》에는 리조왕실의 집안이였던 서천령이 장기를 잘 둔다고 자랑하다가 이름없는 한 농군에게 여지없이 코대를 꺾인 이야기를 전하고있다.

서천령이 매일 장기로 세월을 보내면서 수가 높아가자 이 세상에 자기를 당할 적수가 없다고 제 자랑을 하면서 교만하게 놀았다.

이 소문을 듣고 시골의 한 늙은 농민이 그의 코대를 꺾어주고싶어서 궁리하던 끝에 좋은 수를 생각해냈다.

그는 서울에 번살이가는 기회에 자기가 먹이던 말 한필을 끌고 서천령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그에게 장기를 청하였는데 만약 자기가 지면 말을 주겠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마주앉아 장기를 두게 되였는데 늙은 농민은 세번 두어 두번 지게 되였고 결국 자기 말을 내놓게 되였다.

농민은 선뜻 사랑하는 말을 내놓으면서 《후일에 번살이기간이 끝난 다음 다시 찾아와서 또 한번 장기를 두어볼가 하는데 대감님은 어떻게 생각할런지. 그때 제가 장기에서 이기면 말을 도로 찾아가겠소이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워낙 교만하게 자부하던 서천령인지라 속으로 《제까짓게 나를 이겨.》 하며 좋도록 하라고 쾌히 승낙하였다.

그후 서천령은 말을 잘 먹여 살찌게 하였는데 때마침 번살이를 끝낸 농민이 다시 찾아와서 장기를 청하였다. 장기가 시작되자 서천령은 농민의 장기수에 완전히 제압되여 옴짝 못하고 3전 3패하였다.

이때 농민이 말하기를 《소인은 이 말을 무척 사랑합니다. 그런데 제가 번살이를 하는동안 먹여기를 사람이 없어 고심하던중 마침내 대감님댁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되여 그렇게 한것인데 대감님께서 말을 잘 길러주시였으니 무어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농사군의 말에 서천령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채 피둥피둥 살찐 말을 몰고가는 농민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하였다고 한다.

본사기자

주체102(2013)년 2월 8일 《우리 민족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