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 | 북녘땅 곳곳을 뜨겁게 흐르는 김형직 선생의 애국과 인민사랑의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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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편집국 작성일17-03-23 10:53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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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녘땅 곳곳을 뜨겁게 흐르는 김형직 선생의 애국과 인민사랑의 정신
편집국
우리민족끼리 사이트가 3. 1인민봉기를 전후하여 반제자주적 입장이 강한 반일지하혁명조직인 조선국민회 결성 100주년을 맞이하여 오늘 북녘땅 곳곳을 뜨겁게 흐르고 있는 김형직 선생의 정신을 되새겼다.
기사에 따르면 그는 그의 학생들에게 소나무처럼 변함없이 깨끗이 살 것과 무기를 가진 원수는 오직 무기를 가지고 때려눕혀야 한다는 사상과 애국의 정신을 심어주었고, 그의 왜놈의 학정에 대한 끝없는 격정과 분노는 그대로 “민족의 정신을 깨우쳐주는 계몽의 종소리로, 암흑을 불사르는 횃불”이 되었다고 하였다. 또 의사였던 그는 그의 의술도 혁명을 위하여 썼으며, 인민에 대한 그의 사랑은 오늘 사회주의조국땅 그 어디에나 뜨겁게 흐르고 있다고 하였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김형직선생님께서 결성하신 조선국민회는 3. 1인민봉기를 전후한
시기 우리 나라의 애국자들이 무은 조직들가운데서 가장 규모가 크고
반제자주적립장이 강한 반일지하혁명조직이였습니다. 김 정 일
남산의 푸른 소나무의 억센 기상으로
봉화산비밀회의장소를 찾은 참관자들
학생들에게 심어주신 애국의 정신
주체6(1917)년 가을 어느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명신학교 학생들을 데리고 봉화산에 오르시였다.
단풍지는 가을에도 변색을 모르고 푸르러 설레이는 소나무를 바라보시던 김형직선생님께서는 학생들에게 다른 나무들은 겨울에 잎이 떨어지고 생기를 잃지만 소나무만은 눈서리를 이겨내고 사시장철 푸르다고, 사람도 이렇게 변함없이, 깨끗이 살아야 한다고 하시였다. 그러시고는 한 애국충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죽으면 죽었지 변절자가 되여서는 안된다고, 조선민족은 단결심이 강한 민족이기때문에 모두가 단결할수 있고 단결하면 일제침략자들을 조국강토에서 능히 몰아낼수 있다는 내용으로 이야기를 마감하시였다.
숨소리마저 죽여가며 듣고있는 학생들에게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산아래에 보이는 수수밭의 수수대들을 가리키시였다.
여기서 보니 봉화산은 장군같고 저것은 조선의 군대같다고 하시며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조선에 군대가 저렇게 많으면 얼마나 좋겠는가고 누구에게라 없이 말씀하시였다.
조선에 군대가 저렇게 있다면 왜놈을 물리치고 나라를 찾을수 있다고, 그러니 우리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학생들을 깨우쳐주신 김형직선생님,
그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명신학교 학생들에게 무기를 가진 원쑤는 오직 무기를 가지고 때려눕혀야 한다는 사상을 심어주시였다.
《짓밟힌 동포야 일어나거라》
청수동회의에서 새로운 방침을 제시하시고 그 관철을 위하여 벽동에서 반일운동자들과의 모임을 가지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완월루에 오르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그 옛날 나라의 변강방위임무를 수행하던 장수들이 달구경을 즐기였다는 완월루에서 동주리를 굽어보시였다. 구름 한점 없는 달밤의 동주리는 참으로 아름다왔다. 그 아름다운 조국산천을 오래도록 바라보시던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짓밟힌 겨레에 대한 사랑과 원쑤에 대한 증오를 시에 담으시였다.
…
굶주리는 민중아 슬퍼말아라
짓밟힌 동포야 일어나거라
판가리싸움에 이 몸 바치니
사나이 총검이 분노에 운다
…
왜놈의 학정아래 달빛도 산천도 빛을 잃은 조국산천, 김형직선생님의 가슴속에서는 끝없는 격정과 분노의 파도가 일어번졌다. 그것은 그대로 민족의 정신을 깨우쳐주는 계몽의 종소리로, 암흑을 불사르는 홰불로 되여 비운의 조국강산을 흔들어놓았다.
의술도 혁명을 위하여
혁명활동무대를 옮기실 때마다 《순천의원》, 《무림의원》과 같은 병원을 차려놓으신 김형직선생님께서는 고장들마다에서 명의로 소문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독립운동의 지도자로서뿐아니라 《김의원》, 《김선생》으로 인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으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 명의라는 평판을 얻게 되신것은 의술덕이 아니라 인술의 덕이였다.
빈손으로 오거나 얼마 안되는 돈을 가지고와서 병을 보이며 약값때문에 걱정하는 환자들에게 김형직선생님께서는 돈을 내겠으면 나라가 독립된 후에 내라고 하시면서 지금은 우리들이 다른 나라에 와서 빈곤한 생활을 하고있지만 멀지 않아 나라를 찾고 다시 압록강을 건늘 날이 올것이라고 위로해주군 하시였다.
김형직선생님께서는 어디를 가나 사람을 귀중히 여기시였다.
고향도 조국도 모두 빼앗기고 설음많은 이국살이에 허덕이고있는 조선동포들을 위해주고 돌봐주시는 김형직선생님의 정성은 각별하였다.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직선생님께서 지니셨던 인민에 대한 사랑은 오늘 우리의 사회주의조국땅 그 어디에나 뜨겁게 흐르고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리금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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